- 해연갤 - 중국연예
- 중화연예
https://hygall.com/559508278
view 3853
2023.08.18 00:57
서랍 안에 잠자고 있던 오랜 사진들을 꺼내 본 것은 그저 변덕이었다. 덥고 습한 날의 연속으로 축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무료하게 선풍기 앞에 앉아 자른지 오래되어 밍밍해진 수박을 먹다가 무료함에 꺼내본 그저 아주 작은 변덕.
수박즙이 묻은 손을 대충 윗옷에 슥 문질러 닦고 사진을 한장씩 넘겼다. 웃는 사진, 찡그린 사진, 우는 사진, 왜 찍었는지 모를 사물과 풍경들, 초점이 나가 누굴 찍었는지도 알 수 없는 사진까지. 분명 사진찍는 재미에 빠져 이것저것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 찍어댔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사진을 또 한장 넘기자 아주 오랫동안 잊으려 노력했지만 결코 잊히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사진에 담긴 것은 초점이 흔들려 희미한 옆모습과 멀어져가는 뒷모습 뿐이었지만 기억 저편에 묻어둔 얼굴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사랑은 다 호르몬의 농간에 유효기간도 2년이라는데 어째서 내 사랑은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쏟아지는 기억의 파편과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마루바닥에 드러눕자 열린 창틈으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즐거운 함성소리와 짝을 찾아 우는 매미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다녔던 학교에 별명이 매미인 선생님이 있었지. 매미가 짝을 찾아 울듯이 매일같이 소개팅을 한다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누가 알려줬더라
아, 그 사람이구나
난 정말 그 사람에 대한건 뭐든지 잊지 못해서 이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나봐. 웃을때 말려올라가는 입꼬리가 정말 예뻤는데. 내 이상형이 웃는게 예쁜사람인 이유도 다 그때부터였나.
강만음이 다녔던 학교는 산을 깎아 만들어서 경사가 매우 가파르기로 악명 높아 학생들은 물론 교직원들까지 모두 암암리에 입구부터 정문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통곡의 계단이라고 불렀다. 다들 3년 내내 등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그 중 유머감각이 뛰어난 몇몇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준다면 기꺼이 이용료를 내겠다는 우스개소리도 했으나 강징은 매일 아침 계단을 오르는 것이 *Cloud nine처럼 느껴졌다. 계단 끝에는 늘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정을 가훈으로 둔 엄격한 집안 분위기 덕인지 목끝까지 채운 단추와 가슴팍에 걸린 명찰같은 것들에도 그는 범생이처럼 보이기는 커녕 단정하게 차려입은 도련님처럼 보였다.
그는 생긴것처럼 취미도 고상한 편이라 사진동아리 멤버이자 회장이었다. 하지만 스포츠 동아리의 입부경쟁이 치열한 남고에서 사진동아리는 매년 아슬아슬하게 폐부의 인원을 넘겨 간신히 맥을 이어오고 있었고 강만음이 사진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원래는 축구동아리에 들려고 했으나 입부신청전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도중 혈기왕성한 십대의 남학생들이 공을 뺏기 위한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다 공이 아닌 발목을 차버려서 며칠 병원신세를 지내고 돌아왔을때는 이미 웬만한 동아리는 신청이 마감된 후였다.
어쩔 수 없이 몇 개 없는 남은 동아리를 살피던 중 그나마 괜찮은 것이 사진동아리 뿐이었고 동아리 활동 첫 시간 동방의 문을 열었을때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름은 사진동아리였지만 사실사진을 찍기에 적합한 맑은 날이 아닌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또는 너무 덥거나 추우때면 사진을 찍기보다는 전시회나 미술관을 가거나 동아리실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영화도 회장인 그의 주도하에 미장셴이 뛰어난 영화, 프리다 칼로나 반 고흐같은 예술가의 일생을 다룬 다큐를 주로 보곤 했는데 덕분에 예술의 이응자도 관심이 없던 강만음은 사실주의, 후기 인상주의, 야수파와 같은 미술사조들에 대해서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의 수준만큼 알게 되었다.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강만음의 소극적인 성격탓에 몇마디 해본 적도 없는 그와 처음으로 대화 수준으로 길게 말을 섞게 된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사진 동아리에서 처음 사진을 찍던 날 대부분은 폰카메라로 찍을 생각에 가볍게 왔지만, 누나가 예전에 취미로 쓰다가 지금은 방 안 장식품 취급을 받는 필름카메라를 챙겨온 강만음뿐이었고 덕분에 회장의 눈에 들어 필름카메라의 역사부터 필름종류에 달하는 면대면 강의를 상세히 듣기도 했다. -물론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수평을 잡아주는 선도 타이머도 자동 보정도 손떨림 방지기능도 없는 오래된 필름카메라는 강징의 자비없는 셔터질 아래 금세 필름 한 통이 다 채워졌다.
인화한 사진들은 엉망이었지만, 살아있었다. 생기가 넘쳤다. 필름카메라의 묘미는 사진을 인화할때까지 어떻게 찍혔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지울수도 보정할수도 없는, 정말 순간을 담아내는데 충실한 기능은 강만음을 위해 만들어진것만 같았다. 이리 저리 카메라를 휘두르며 주변사람들을 희생양 삼아 점점 봐줄 만한 사진을 찍는 실력이 갖춰지기 시작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고 늘 칭찬해 주는 누나와 이상하게 찍힌 사진만 골라서 놀리는 형의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어느새 동아리에서 회장 다음으로 사진을 잘 찍는 부원이 되어 있었다.
운동부는 합숙 훈련을 가고 다른 동아리들로 현장 학습을 핑계삼아 이따금 야외 활동을 나가곤 했지만, 사진 동아리는 마땅히 나갈 이유가 없어 그저 동아리실에서 배달음식이나 시켜먹고 얼마전 새로 개봉한 히어로 영화나 보던 어느 날 회장이 손에 티켓을 들고는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다.
"얘들아, 우리 사진전 구경가자."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한 사진작가가 국내에서 사진전을 여는데 자신이 직접 티켓을 구해왔다는 것이다. 사진 동아리이긴 하지만 부원의 절반은 강만음처럼 타의반으로 어쩌다 들어온 것이라 끙-하는 신음소리와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알아, 솔직히 그냥 나가서 공이나 차면서 노는게 더 재밌는거. 그래도 명색이 사진 동아리인데 사진전 한 번은 보러 가야 하지 않을까?"
회장은 부원들의 무언의 항의에도 전혀 굴하지 않은 듯한 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진전은 흥미로웠다. 입구까지 전혀 흥미가 없이 죽상이던 부원들의 표정도 피사체들의 강렬한 눈빛에 빠져드는 듯 보였다. 사진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 관람객은 별로 없었다. 주로 흑백 인물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얼마나 생동감이 넘치는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각자 흩어져 관람 후 입구에서 모이기로 하고 1층을 다 둘러본 강만음은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1층보다 사람이 더 적었다. 전시관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누드사진이 걸려있었다. 누군가의 누드사진을 이렇게 뚫린 공간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전혀 외설적이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 속 인물의 표정이 너무 당당해서 마치 나체인 상태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걸음을 옮기며 천천히 사진을 감상하던 강만음의 발길이 어느 커플의 사진 앞에서 멈췄다. 서로의 몸을 감싸 안은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커플의 눈빛에 사로잡힌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리가 없는데도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교감을 하고 있는 강만음의 코에 어느새 익숙해진 민트향이 들어왔다.
"어떤 것 같아?"
멍하니 서 있던 강만음은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 향한 것을 알아 채고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봐도 수려한 외모의 회장이 한뼘정도 아래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 사진 앞에서 한참 서있었잖아. 사진이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든다... 그걸로는 이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기 역부족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음... 마음에 들기도 한데, 그냥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 날 거 같아요. 눈빛이 살아있다는게 어떤건지 알 것 같아요."
"그렇지? 그래서 나도 이 작가가 좋아. 강렬하거든. 그냥 보면 대단한 기술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또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강만음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뷰파인더를 통해 피사체와 이런 강렬한 눈맞춤을 해보고 싶었다. 더 서서 감상을 하고 싶었지만 곧 전시장이 문을 닫으니 속히 관람을 마쳐달라는 직원의 말에 강만음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사진전에서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사진전을 마지막으로 강만음은 더 이상 카메라를 잡지도 사진동아리에 나오지도 못했다. 성적이 나쁜것도 아니었는데 같은 학년을 다니는 형-사정이 있어 한 학년 늦게 시작했다-보다 성적이 떨어지자 그동안 묵인하고 있던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진 것이다. 사실 어머니 성정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황금같은 주말에 길거리를 쏘다니며 지금껏 사진을 찍을 수 있던 것이 더 놀라운 일이었다. 사진은 대학가서도 취미로도 찍을 수 있다. 그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혔다. 취미. 사진저에서 본 그런 사진을 찍으려면 취미로 카메라를 잡아서는 죽을 때까지 못 찍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강만음이 손에 쥐어야 하는 것은 카메라가 아닌 샤프고 들어야 하는 것은 셔터소리가 아닌 영어듣기 문제들이었다.
결국 대학을 진학한 후에도 취미로도 카메라를 잡지는 못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이 많았고 솔직히 청춘을 즐기는 방법은 카메라를 제외하고도 무궁무진했기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향락과 의무에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한번 심어 단단히 뿌리내린 씨앗은 묻어둔 의식 저편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취업을 한 후에도 문득문득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오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강만음은 부업으로 카메라를 잡기로 했다. 주말이나 휴가때마다 사진전을 가고 길거리를 쏘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그 날 사진전에서 본 것처럼 강렬한 피사체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댄 덕에 실력도 늘었고 방에 카메라용 서랍장을 구비해야 할 정도였다. 게대가 누나의 부탁으로 찍어준 조카의 돌잔치 사진과 가족사진, 기록용으로 남긴 여행사진 등이 SNS에서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아 알음알음 퍼진 덕분에 의뢰도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사진작가로도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본업의 월급을 넘어섰을 때 더더욱 사진에 전념하게 되었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멘토이자 친한 선배가 개인 사진전을 연다는 소식에 강만음은 아침 일찍 일어나 꽃집에 미리 주문해 둔 꽃을 찾아서 미술관으로 향했다. 사진전은 개인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규모가 컸고 이름만 건너건너 들은 몇 유명한 작가들과 인플루언서들도 보였다. 강만음은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선배에게 꽃다발과 함께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조용한 관람을 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했고 선배와 어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진전에 걸린 사진의 대부분을 이미 봤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좀 빠지면 들어갈 생각으로 미술관 앞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가방에 넣고 온 카메라를 꺼냈다.
사진을 부업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후 생일 날 형이 사준 카메라이자 강만음이 제일 아끼는 카메라였다. 여름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달궈진 정수리를 식혀주었다. 늘 하던 대로 벤치 옆에 핀 꽃부터 둥지 속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새까지 눈에 들어오는 대로 찍던 강만음의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앞에 선 누군가와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폭소를 터트리듯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는 입, 시원한 입매, 둥글게 휜 눈가. 햇빛에 반사되어 피부를 더욱 밝히는 하얀 셔츠. 여태 찾아헤매던 완벽한 피사체가 저기 건너편에 서서 살아움직이고 있었다. 허락없이 사람들의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강만음은 천천히 카메라를 들어 눈에 가져다 대고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렸다. 3,2,1... 셔터를 누르려는 찰나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쳐다봤고 강만음은 그와 뷰파인더를 사이에 두고 눈이 마주쳤다. 강만음의 손가락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강만음이 사랑했던 그 어린 시절의 시원한 입매 그대로.
*cloud nine : 단테의 신곡 '천국' 편에서 천국에 이르는 마지막 9번째 계단. 인생에 있어 최고로 행복한 절정의 순간을 뜻함.
https://hygall.com/559508278
[Code: d44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