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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3 11:33


희신강징 약희신광요



강씨 사당에서 향불 올리던 강징이 거의 주저 앉은 일이 있었음. 부친 위패에서 갑자기 흐릿한 연기 같은게 돌더니 강풍면이 저를 쳐다보고 있는 거. 주저앉긴 했지만 비명지르거나 그런 위인은 아니고 과로로 이제 환각이 보이는건가? 하고 그냥 쳐다만 보고 있는 거. 남들 앞에서야 여전히 독설에 왁왁거리는 사람이지만 내면은 적잖히 지친 사람이라 반응도 그게 다임. 
강씨 부자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서로 쳐다만 보다가, 그래도 부친이라고 강풍면이 먼저 입 열 거 같음. 

늙었구나. 

환각이나 귀신인가 싶어서 삼독 꺼내드는 데 강풍면이 감히 강씨 사당에 잡귀가 꼬이겠느냐? 하니까 맞는 말 같은 거. 정없던 아비였으니 대뜸 쉰소리 하는 것도 그럴듯 해서 ..부친? 하고 멍하게 쳐다보고 있음. 근데 강징도 강풍면 아들이잖음. 예에 맞게 인사 올리더니 보통 하는 그 심드렁하고 2할은 빡친 디폴트 표정으로 변함. 

명도를 걸으신 분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부자의 재회는 딱 그 정도였음. 

둘 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로 보다가 강풍면은 그렇게 사라졌고, 강징은 뭐지 싶어서 잠시 생각하다가 일어남. 운몽 강종주는 바빠서 잠시 멍 때릴 시간도 없음. 
하루종일 운몽의 잡무처리하고 저녁엔 위무선이 와서 여어 강사제 하고 귀찮게 구는 통에 소리치느라 목이 좀 쉬었음. 놀러왔으니 밥은 대접해야겠고, 좋아하는 연근갈비탕 끓일 시간은 없어서 대강 볶음 음식이나 뒀는데 입 짧아서 먹지도 않고 화풍주만 축내고 감. 하여간 까탈스러운 새끼 주는대로 처먹지 좀 하고 불만스러워함 그래놓고 주방에 일러 위무선 좋아하는 거 바로 내올 수 있게 양념 몇가지 미리 추가해두고 평소에 쓰는 식재료도 조금 바꿈 

새벽까지 문서 붙잡고 골머리 썩고 있을 듯. 운몽은 이제 가세가 강성해서 주인 잃은 난릉보다 앞서고 고소에 견줄 정도인데 강징은 여전히 자기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함. 매일 새벽 강씨 사당가서 향 올리면서 아무말도 못 할정도로. 

가주 내실에 강풍면이 흐릿하게 또 나타났는데 강징은 그냥 내가 헛것을 보는구나 하고 받아들임. 강풍면은 생전과 똑같았음. 딱히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강징을 쳐다볼 뿐이고, 또 뭐가 못 마땅한지 걱정하다가 이미 삭아버린 속이 더 아프지도 않아서 그러려니 함. 운몽 현판 보수하는데 큰 돈 들어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직인 찍으면서, 변명처럼 대문과 현판은 운몽의 얼굴이니 소홀할 수 없습니다, 부친. 사치하는게 아닙니다 하고 혼자 중얼거림. 
강징은 결정 하나 내릴때도 수백번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래도 결론 끝엔 강풍면이 살아있었다면 자길 비난했을거라는 결론으로 흐름. 새벽 깊어서야 일 끝내고 자리에 눕는데, 이제 책상 앞에 앉아있는 강풍면 힐끗 보고 예. 제가 뭘 하든 성에 안 차실 것 압니다. 하고 잠듦. 

그래도 고인 되신 부친 얼굴 뵈니 좋았음. 

이게 달포정도 지속되고 나서 강징은 한참 고민후에 아는 거 많고 입 제일 무거운 택무군을 찾아가서 상의하기로 함. 귀신이라면 위무선이지만.. 지금 자기에게 잘해주고 사이 좋은 위무선이라도 그냥 아버지에 관한 고민은 그다지 나누고 싶지 않았음. 질투도 있었지만 본인 욱하는 성미를 잘 알아서 위무선이 도와줘도 싸움될게 뻔함. 본인도 내 성격은 왜 이 모양이냐 하고 가끔 고민함. 

택무군은 워낙 사람이 진중해서 자기도 모르게 좀 얌전 떨게 되는데 이유는 본인도 모르겠지. 심지어 남계인보다 남희신 앞에서 얌전하니까. 긴히 여쭙고자 하는게 있어서 한번 뵙자하니 뜻밖에도 남희신이 나오겠다고 함. 금광요와의 일이 지나고 폐관에 들어 몇년 있더니, 이후에도 폐관한 것과 다르지 않아 본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나오겠다는 거 거절하기도 그래서 운몽에 따로 손님 맞이 준비함. 
고소의 어른이라 이것저것 손수 준비하는데 방석 놓다가 강풍면한테 잔소리 들음. 택무군이 너보다 기골이 큰데 그것으로 되겠느냐? 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 속상하기보단 익숙했음. 예. 부친. 하고 큰걸로 가져다 놓고 택무군 드실 찻잎 고르고 있는데 큰 잎은 오히려 좋지 못하니 중간 것으로 골라라 하고 옆에 붙어 계심. 좋은 거 골라두고 너무 작거나 비틀어진 건 자기 쪽으로 넣으니까 강풍면이 인상 찌푸리고 왜 너는.. 하다가 스르륵 사라짐. 강징은 이쯤에서 이게 정말 원귀나 요괴인지 아니면 본인이 미쳐가는건지 고민이었음. 둘다 좋지 못함. 운몽을 지탱하고 있는 건 강징 하나라서 무너질 수가 없음. 

남희신은 사흘 정도 뒤 늦은 저녁 운몽으로 왔음. 그간 좋지 못했으니 사람들 눈을 피하고 싶다는 말에 강징이 그러라고 함. 따로 청당을 비워놓고 맞이하고, 조용히 인사 한 뒤에 얼굴을 보니 사람 얼굴이 말이 아니었음. 온씨 핍박에도 상하지 않았던 얼굴인데. 항간에 떠도는 말에, 금광요와 정이 깊었다더니.. 강징은 저렇게 깊은 정을 받았으니 금광요의 삶도 마냥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생각함. 
자초지종을 말하는데 정신없어보이는 와중에도 남희신은 그 따듯한 성정답게 이야기를 진중히 들어주고, 놀라셨겠다며 강징을 걱정해줌. 거기다 잃은 양친이 제 눈 앞에 나타났다면 강종주만큼 이렇게 침착할 수 없었을 거라는 말에 살짝 귀가 달아올랐음. 금광요는 입안의 혀처럼 굴 수 있는 사람인데 강징은 그저 뻣뻣해서 그런 것도 못하니까. 그게 잠깐 아쉬웠고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새벽 내내 남희신은 잠들지 않았고 운몽의 곳곳을 돌아다녔음. 강징이 말렸지만, 언젠가부터 낮의 번잡한 것들이 싫어 낮엔 자고 밤에 움직이는 게 편하다는 말에 더 말리지도 못 함. 본인 침실과 가까운 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고 돌아가는데 강풍면이 흩날리듯 나타나서 날이 춥다. 하고 한마디하고 사라짐. 그래서 강징은 제가 지금 계절에 맞지 않는 침의를 입고 있다는 걸 알게 됨. 

남희신에게는 나타나지 않고 제 곁에만 맴돌고 있으니 이틀 정도 지나고는 민망해짐. 강징이 그 얘기를 하니까, 그러면 침소를 한번 같이 써볼까요.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거. 강징도 처음엔 별 생각없었음. 워낙 어릴때부터 위무선이랑 같이 지냈고 운몽 사형 사제들은 상하 구분이 칼같지 않아서 종주 아들이라도 침실에서 종종 자고 가고 했으니까. 이부자리 하나 더 깔아주고 같은 방에 있는데, 워낙 강징이 늦게 자고 남희신은 그 시간엔 안 자니까 하나는 책 읽고 하나는 일하고 하며 시간 보냄. 남희신이 강종주, 너무 일에만 매진하시면 몸이 상합니다. 한마디 한 순간이었음. 

누가 자길 이렇게 걱정해준게 오랫만이라, 운몽에서는 이제 제가 가장 윗 사람이라 누구도 이렇게 쉽게 말하지 않으니 기분이 묘해 고개를 들었는데 강풍면이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던 거. 
여태까진 그런 적 없었는데 문득 눈물이 고임. 남희신은 시력도 좋았고 강징이 매일 미간에 줄을 긋고 있어서 그렇지, 실제로운 살구씨처럼 둥글고 큰 눈을 가졌으니 눈물고이는 걸 봤음.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땐 강풍면이 스르륵 사라지는 순간이라 드디어 택무군도 봄. 

악의나 요기가 느껴지지 않으니 정말 전 종주의 혼백이 아닌가 합니다. 

강징은 멍하게 있다가 고개를 끄덕임. 
그러고 보니 고민이겠지. 강풍면이 사라지게 할 수도 없는거고, 아들 된 자가 무슨 부친을 퇴마하라 할수도 없고 또한 오셨으니 원하는 것을 해드려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나 강징은 강풍면이 원했던 게 뭔지 모르니까. 착잡한 표정의 강징을 바라보던 남희신이 손을 뻗어 검지와 엄지로 등유 불을 꺼버림. 
새까만 어둠 속에서 강징이 손 데이십니다. 하니까 예. 강종주. 몸 상하십니다. 하고 대답함. 
생각보다 제멋대로인 사람인가 싶다가 피곤해서 자리에 눕게됨. 정말 아비라는 소리를 듣고나니 몸에 힘이 빠져서 더이상 뭘 읽고 처리할 기력이 남지 않기도 했고. 

그래도 정확히 정체를 모르니 혹시 모른다며 남희신이 자처하여 둘은 꼭 붙어다니게 됨. 강징은 식견이 높은 택무군이 얼마간 도움을 주러 왔다는 말로 대강 설명함. 강징은 반문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니 누구도 되묻지는 않았음. 경험도 많고 남들 돕는 것도 좋아하니 강징이 어려워하는 일은 뭐든 도와주더니 어렵지 않는 일도 도와주겠지. 강징 끼니 엄청 자주 거르는데, 자기가 안 먹으니 택무군도 안 먹어서 결국 소박하게나마 차려서 요기는 함. 
대접을 잘 받고 있으니 차는 본인이 내리겠다던 택무군이, 잠시 장계를 읽는 사이 부드럽게 잘 말린 중간 크기의 잎을 골라 제 다기에 좋고 남은 건 본인 쪽으로 넣는 걸 보는 거지. 말리려고 하긴 했지만.. 기분 묘해서 입술만 달싹이고 말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