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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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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죄송합니다, 택무군!”
남희신은 괜찮다는 말을 할 새도 없이 후다닥 달아나는 위무선을 보고 미소를 떠올렸다.
운심부지처에서 뛰면 안 된다는 주의를 주는 것도 포기한지 오래다. 하지만 숙부님은 여전히 포기를 못하신 모양이니, 그렇듯 도망을 치도록 만드는 존재가 누구인지도 알 만하다.
망기와 위공자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해가 갈수록 더욱 깊어진다고나 할까. 이따금씩 망기가 말없는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위공자도 그렇게 하고, 촉촉하게 젖어드는 애정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남희신의 메말라 버린 가슴에도 퍽 위안이 되곤 했다.
함광군은 무섭고 고고한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남희신에게는 언제까지나 자그마하며 조용하게 고집을 피우던 동생일 뿐이었다. 
둘 다 어린애였던 시절, 남희신은 차갑게 닫힌 남망기를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수학을 온 위무선에게 동요하는 그를 보고 남희신은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라도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하지만 거대하게 움직이는 운명은 남희신 한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남망기가 위무선의 망령을 십수년 동안이나 쫓아다닐 정도로 뜨거운 피를 지녔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남희신을 당혹케 했다. 과연 부친의 아들이구나 싶었고, 어찌해 줄 방도가 없는지라 가만 지켜보며 애만 태웠다.
온세상을 경악시키며 이릉노조가 되돌아왔을 때, 남희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졸아든 상태였다. 
이성이 아니라서 결정적인 기대는 할 수 없었지만 서로를 굳게 믿으며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에는 무감한 남희신도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극에 다다라, 위무선이 그토록 눈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망기와 그리도 많은 것을 주고 받았으면서도 어떻게. 분통이 치밀어오른 그는 하마터면 자신을 잊고 화를 낼 뻔했다. 
아무튼 마지막에는 다 잘 되었으니 다행스런 일이라고, 남희신은 위무선이 지나간 자리를 따스한 눈길로 훑었다.
엄중한 선부 내에서 너무 심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바람에 숙부님께서 위장병에 걸릴 지경이지만. 솔직히 말해 남희신은 운심부지처의 분위기가 느슨해지는 것도 싫지 않았다. 
젊은 아이들에다, 아직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는 흉시, 심지어 다른 세력가의 주인이 된 금여란까지 은근슬쩍 섞여서 몰려다니는 것도 즐거운 일로 생각되었다.
그까지 생각하자 별 수 없이, 태평한 세월 중에도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후 자그마치 6년이나 흐르도록 위무선과 강징은 서로를 피해다니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남희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때 관음묘에서 강종주는, 남은 앙금을 다 풀어버린 것처럼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하긴. 
남희신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지난번 일 이후로 강징은 남희신과 마주칠 때마다 서투른 대응 일색이었다. 침착하려고 애는 쓰는 것 같지만, 평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버린 태도 이면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갈등이 선연히 보였다. 아마 억지로 위공자와 붙여 놓는대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지는게 아닐까 싶다.
남희신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내처 걷던 것을 깨닫고 우뚝 멈추어 섰다.
그는 도대체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던 걸까.
조금 더 대화를 해 볼 것을. 
어쩐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




그를 위해서는 냉정하게 자르는 편이 낫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차갑게 말했던 것이다. 
상처를 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어쩌다 저 같은 인간에게 환상을 품고 빠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길 바랄 뿐이었다.
아무튼 상황은 불편하게 삐걱거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택무군’은 온유롭고 사려깊은 사람이니, 남들 앞에서 홀대하여 포기하게 만들 수도 없었다.


그때 마침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난릉 금씨 내에서는 쉬쉬하던 일이었지만, 남희신은 안절부절 못하는 위무선을 통해 그 사건을 알게 되었다.
역시 무모한 이릉노조와의 모험이 원인이었던지, 다함께 사냥을 나갔던 금종주가 부상을 입었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고 불구가 된 것도 아니었지만 까다로운 괴를 만나 곪아진 상처가 쉽게 낫지 않는 모양이었다.
의술에도 조예가 깊은 고소 남씨였으니, 내막을 알게 된 이상 특효약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제자들의 친우가 된 금여란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문제는, 하도 강종주의 생각으로 골똘했더니 약을 금린대가 아닌 연화오로 보내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