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2371094
view 6268
2023.05.12 11:25
위무선의 목소리가 방을 뚫고 강만음의 고막을 때렸지만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위무선이 저렇게 간절히 부를 때는
십중팔구 시덥잖은 일로 괜히 호들갑을 떠는 것이기 때문에
강만음은 못들은척 하던 일을 계속 하기로 했다.

그러나...

"징징아아아아! 나 진짜 한번만! 한번만 도와 줘어! 어?
진짜 딱 한번만! 아주 잠깐이면 되니까! 제바알! 어어?"

이제는 아예 강만음의 고막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사물놀이를 하는 수준으로 '강징'을 찾는 위무선으로 인해
강만음의 미간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깊은 내 천 자가 생겼다.

"간다, 가! 아오! 또 별 거 아닌 걸로 불렀담 봐! 아주 죽어!
이번엔 내가 진짜 가만 안 둘 거라고!"

씩씩거리며 쿵쾅쿵쾅 거실을 가로지른 강만음이
위무선의 방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누워서 머리만 내민 채 이불을 덮고 있는
원수같은 녀석이었다.

"왜 귀찮게 자꾸 불러! 빨리 말해, 나 바빠!
근데 너 거기 누워서 뭐하냐?"

또 이상한 물건을 만들다가 어디 다치기라도 했나 싶어
구급상자도 챙겨 온 강만음은 말끔한 방과 이불에 싸여
단정하게 누워있는 위무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합에
어이가 없었다.

"나 잘 거야. 불 꺼 줘."

"...뭐?"

지금 내가 헛소리를 들었나, 얼이 빠진 강만음이 되물었다.

"불. 꺼 줭. 선선이 꿈나라 가야 돼. 빨리이."

"..."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자려고 누웠는데 불 끄는 걸 깜빡했고
불 끄러 일어나자니 귀찮고 지금이 너무 편하고 딱 좋은데
그냥 자자니 눈이 부셔서 안 되겠으니까 나를 부르셨다?
불.끄.라.고.오? 불? 부울? 부우우우울?

불 끄러 불려 온 강만음은 또 속았다는 분노에 불타올라
위무선의 침대 위로 있는 힘껏 뛰어들어
위무선을 짓뭉개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강징!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너야말로 지금 뭐하자는 건데?!
고작 불 끄는 게 귀찮아서 사람을 오라가라 하냐?!"

"동생이 사랑하는 형아를 위해 불도 꺼 줄 수 있는 거지!"

"사랑하는 형아아? 놀고 있네! 자지 마! 자면 죽을 줄 알아!
자기만 해 봐! 다시는 못 깨어날 줄 알라고!"

"악! 아악! 강징! 말로 하자! 내가 잘못했어! 으악!"

동생들의 목소리에 황급히 달려 온 강염리는
다 큰 남동생 둘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광경에
빙긋 웃더니 방문을 닫았다.

"다 컸는데도 여전히 사이가 좋다니까.
간식이나 만들어서 가져다 줘야지."





운몽쌍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