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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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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ㅇ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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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이는 조금 많이 작지만 호흡에도 건강에도 큰 문제 없는 비교적 건강한 사내아이 쌍둥이었다. 쌍둥이의 맥은 짚어내기도 쉽지않았고 어미인 강징이 워낙 몸도 마음도 고생을 한 탓에 배가 작아 쌍둥이를 품은 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고, 산모인 강징 본인조차도 연화오에서 도망쳐나온 뒤에야 알았다.

어쨌든 두 아이는 어미의 병이 어쨌든 건강하게 태어났다. 워낙 불안한 출산이었던지라 아이를 제대로 진찰을 보게하기 위해 금릉이 미리 따로 불러둔 의원은 아이가 작고 출산 당시 호흡이 잠깐씩 불안정하긴 하나 지금은 괜찮으니 조심조심 해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미의 바람대로 건강하게 태어났으나, 아이들을 품은 어미의 몸은 그렇질 못했다.





"만음...?"

"아징? 아징, 아이들 왔어. 어? 그렇게 지키고싶어 했던 니 아이들이잖아. 응?"

"외숙...! 아기들 봐요...이렇게 예쁜 동생 둘이나 태어났어요! 외숙!"





의원의 다급한 외침에 이어 의원과 산파의 손이 바빴지만 강징의 하반신 아래로는 흰 장막이 펼쳐져 가리고 있어 의원이 뭘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방안을 가득 채운 혈향이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줘서 굳이 아무도 말을 꺼내진 않았다.

산모가 정신을 잃으면 안된다는 의원의 다급한 지시에 방 밖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리자마자 뛰어들어온 위무선은 하혈을 많이 해 하얗게 질린, 힘을 너무 많이 줘서 실핏줄이 다 터진 강징의 얼굴을 붙들고 소리를 쳤다가, 달랬다가, 울었다가, 결국 빌었다. 제발 깨어나 아이들을 보라고. 여기 울고있는 우리 큰조카를 보라고. 애가 타는 자신을 보라고.

사람이 아니라 마치 흉시같은 모습의 강징을 마주하고, 이번만큼은 무너지는 위무선과 남희신을 보는 남망기도 뭐라 하지도 못했고,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귀한 조카를 둘이나 품고 그 힘든 여정을 견뎌낸 강만음이 무사히 눈을 떠주길 빌 뿐.





"침통을 가져와! 얼른!"





출산이 끝나고 급격히 붓는 온 몸에 약을 먹이고 손발을 주물러주던 의원이 강징의 온 팔다리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계속 흰 천 너머에서 뒷수습을 하던 산파가 다급히 무어라 외쳤고 씨끄러움에 누구보다 예민한 도려가 오늘은 미동도 없는 걸 지켜보던 남희신은 강징에게 쥐어주었던 열빙을 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강종주! 눈을 뜨십시오, 정신 놓으시면 안됩니다!"

"외숙...! 제발..."





많은 이들의 울음과 간절함이 울려퍼지는 강염리의 처소 안에서 그 모든 걸 감싸 안으려는 열빙의 음률은 강징이 좋아하던 흔들림없이 청아한, 아정한 택무군이 연주하던 그것이었다. 이 연주에는 제 도려를 향한 애정과 염려가 담겼고 그토록 원망하고 핍박했으나 건강하게 태어나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흘렀으며 강징에 대한 온갖 감정들을 누르고 못난 제 형을 대신해 강징을 돕고 자신을 막아준 남망기에 대한 고마움이 자리했다.

제 형장이 연주하는 음률을 들으며 남희신의 뜻을 안 망기도 제 금을 꺼내 열빙의 소리에 맞춰 연주를 시작했다. 망기금을 연주하는 게 참 오랜만이었지만 제 형장과의 합주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망기금의 화려한 선율은 강징을 도우면서도 강징을 질투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울렸고, 제 도려가 진정하길 바라며, 제 형장이 평온해지길 빌었다.





"...흐읍..."

"아징...?!"





의원과 산파는 여전히 바쁘고, 위무선은 두 형제의 연주를 들으며 강징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삼독이 강징의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꼭 쥐고 있었다. 금릉은 눈물을 멈추려고 눈이 벌겋게 부어오를 때까지 소매로 닦고 또 닦아냈다.

그러기를 한참, 죽은듯 미동도 없던 강징의 입에서 바람이 새어나오는 듯한 신음소리가 났다.





"아징!"

"외숙! 정신 들어?!"

"만음...!"





남희신은 연주를 급히 멈추고 제 무릎 위에 있는 강징 의 뺨을 어루만졌다. 혈색이 없이 차가운 얼굴이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제 도려였다.





"아징, 정신이 들어요? 아징, 납니다 희신."

"아...환..."

"네, 아징, 저에요, 당신의 아환. 나 알아보겠어요?"

"...우리, 아이들은..."

"둘 다 무탈하답니다. 아들들이에요."





출산과 동시에 정신을 놓았던지라 아이들 얼굴도 못 봤던 강징에게, 남망기와 금릉이 급히 두 아이를 강징의 눈 앞에 데리고 왔다. 상체를 들어볼 힘도 없어 겨우 고개만 꺾은 강징의 눈 앞에 늘 어찌 생겼을지, 무사히 태어날지, 성별은 무엇일지 상상만 했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잠들어 있었다.





"...못생겼...네..."

"야, 강징...너...진짜..."





저때문에 무거운 방안의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나름의 농을 던지는 강징 때문에 위무선은 긴장이 다 풀려 강징을 흘겨봤다. 사람의 혼을 여럿 빼놓더니 저런 농이라니. 원체 농을 즐겨하지 않는 강징이라 조금도 재미없었지만 위무선은 강징의 머리만 쓰다듬을 뿐이었다.





"아징을 닮아 크면 예쁠거에요."

"...아환을 닮았으면 했는데..."

"야, 둘 사이의 아인데 둘 다 닮겠지! 그만해! 징그러워!"





여태 그 난리를 친 것이 민망했는지 위무선은 일부러 과장된 소리를 내며 제 도려와 조카가 안고있는 아이들의 얼굴만 들여다봤다. 자신이 감히 이 아이들을 쳐다볼 자격이나 있나 괴로운 마음에도 그 악의들 속에서도 무사히 태어난 제 동생의 핏줄을 외면할 수 없었다.

우물쭈물 거리는 손에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고개를 바라보던 강징은 위무선의 팔을 툭 쳤다. 아픈 놈이 이건 또 무슨 짓인가 싶어 위무선은 강징을 내려다봤다.





"...안아봐..."





힘 하나 없지만 다정한 말투에 위무선은 주책도 없이 나는 눈물에 앞이 뿌옇게 보였다. 그걸 본 남망기가 안고있던 아이를 조심히 도려의 품에 얼른 안겼다. 일평생 이렇게 작은 아이는 안아본 적이 없던 위무선은 어정쩡한 자세였지만 남망기는 그저 말없이 자세를 교정해줄 뿐이었다.





"...작네."

"...좀 잘 안아봐, 위무선."

"씨끄러, 잘 하고 있다고."





괜히 미운소릴 하는 두 형제를 보는 남희신과 남망기도 서로를 보며 그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이 남가의 형제는 애초에 말도 행동도 많지 않았기에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흐아아앙...!"





그 때, 두 아이가 마치 같이 맞춘듯 동시에 울어댔다. 그리고 동시에 기력이 다한 강징의 눈도 다시 감겼다.




"만음...?!"

"아징! 정신차려, 야!"

"외숙!"





여전히 흰 천 너머에 있던 의원이 다급히 잠시 모두에게 나가달라는 축객령을 내렸고, 모두들 경황도 없이 지켜보던 부사의 지시와 함께 밖으로 일단 물러났다.






32.

강징이 요양을 떠났다. 요양을 핑계로 도망갔던 저번과 달리, 출산 후의 강징은 불편한 몸이었지만 홀가분하게 떠났다. 출산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의원과 부사를 앞세워 남희신과 위무선의 출입을 제한하던 강징이 먼저 떠나고 난 뒤인 지금에서야 남망기와 부사에게 듣고 안 남희신과 위무선의 표정은 가히 뒤통수 몇대 세게 맞은듯한 얼굴이었다.





"...뭐? 남잠, 뭐라고?"

"...위영, 강종주는 정말 그저 몸을 추스리러 잠깐 요양간 것일 뿐이다."





혹여 저번과 같은 사단이 날까 위무선의 손을 급히 잡은 남망기가 달래듯 말을 이었다. 다행이라 해야하는지, 위무선의 표정은 크게 놀란 것에서 더 변하진 않는 듯 했다.

동생 부부를 지켜보던 남희신은 부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만음은...정말 요양을 떠난 게 맞나."

"예, 택무군. 그리고,"

"?"

"위 대사백과 택무군께 전해주라던 서신이 있습니다."





부사는 품에서 두 개의 서신을 꺼내 세 사람 앞에 놓았다. 하나는 부사에게 강징 자신과 아이가 모두 잘못되면 공개하라고 했던, 부적에 봉인된 서신이었고 또 하나는 강징의 필체로 쓰여진, 편안할 안 安 이 자색 겉봉에 쓰여진 강징의 종주인장이 찍힌 평범한 서신이었다.





"이게 뭔가?"

"부적에 봉인된 서신은 종주와 아기씨 모두 변을 당하셨을 때 공개하라고 하신 겁니다. 허나 자신과 아이 모두 무사하니, 이것을 열어보는 건 두 분의 자유에 맡긴다 하셨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 무거운 말과 의미가 담겨있을 서신을 보던 남희신은 위무선을 돌아봤다. 위무선은 말이 없었다.





"어쩌시겠습니까?"

"...전 안보렵니다. 괜히 부정탈까봐요."

"...그럼 저도 안 보겠습니다. 부사, 가져가게."

"그럼 종주께서 돌아오시면 종주께 돌려 드리겠습니다."





부사는 공손히 서신을 받아 챙기고 남망기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는 말과 함께 물러났다. 도려와 형장을 두고 자리를 비우는게 영 떨떠름한 얼굴이었지만 남망기는 이 둘도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어 조용히 방을 나섰다.





"...택무군 먼저 보시지요."





그 때의 일들 때문인지 어색하기 짝이없는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견디다못한 위무선이 결국 먼저 입을 뗐다. 위무선도 남희신도 일부러 그 일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고 있었기에 남희신은 서신을 열었다.





[먼저 위무선. 내가 돌아올 때 까지, 연화오와 금릉을 잘 부탁해. 이제 허튼 짓 하지말고 얌전히 기다려. 위무선 너는 남망기의 도려이기 전에 연화오의 대사백이고, 금릉의 큰외숙이라는 걸 명심해.

그리고 아환, 아이들과 위무선을 부탁합니다. 아무도 탓하지 않고, 아무것도 원망치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이미 지어두었고, 전해주라고 부탁해둔 이가 있습니다. 자는 두 사람이 상의해서 좋은 뜻이 담긴 것으로 지어주세요.

둘에게 아직 어린 아이들을 맡기고 떠나니, 부디 두 사람이 잘 협력하여 건강히 키워주시길.]





남희신은 서신을 위무선에게 넘겨주었다. 서신을 읽은 두 사람의 표정이 무거워짐과 동시에 강징이 서신에 담은 의미를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지옥같은 침묵이 계속되어도 누구 하나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33.

강징은 제 도려도 제 사형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린 시절엔 부모의 눈치를 보며 살았고, 어린 나이에 능구렁이들이 따로없는 종주들 틈에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산 세월이 십수년이 넘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고, 기적처럼 자신도 일단 숨은 붙어있었다. 강징은 자신이 지금 사라져주는 게 아이들과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 곁에 있을 이들에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괜찮으십니까 종주?"

"괜찮네. 따뜻하니 좋군."





몸을 따뜻하게 해야한다는 의원의 말에 별로 따뜻한 차를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따뜻한 차가 담긴 찻잔을 쥐고있는 강징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의원은 강종주가 이다지도 편한 얼굴로 있는걸 처음봐서 매우 어색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강징은 연화오가 그리 되고 가족을 모두 잃은 후, 단 한번도 이런 편한 미소를 지은 적이 없다. 늘 날이 서있고, 늘 말속에 비수를 담아 던지기 일쑤였다. 강징은 지금쯤 자신의 부탁을 받았을 남망기가 부디 자신의 부탁을 잘 들어주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딱히 뜨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






34.

남망기는 자신에게 전해진 강징의 부탁이 담긴 서신을 들고 남희신과 위무선이 여지껏 나오지도 숨소리도 새어나오지 않는 방 문앞에서 꽤 오랫동안 서 있었다. 벌을 받는것도 아닌데 함부로 움직여 들어가자니 영 망설여졌다.

바깥의 동생의 기척을 느낀 남희신이 작은 한숨을 내쉬고 남망기를 불러들였다.





"들어오너라."





조용히 문이 열리고 남망기는 아까 제가 나왔을때와 똑같은 자세로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았다. 서탁 위엔 강징이 남겨둔 서신이 다시 곱게 접혀있었다.





"강종주가 뭐라 합니까?"

"아일 잘 부탁한다고 하네."





대신 대답한 위무선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표정이라 남망기는 도려의 손을 한 번 잡아주었다. 그래도 제 도려가 들어왔다고 기분이 조금 편해진 위무선은 작게 웃음지었다.





"강종주가 아이들의 이름을 제게 남기고 갔습니다."

"...그랬구나."





남망기는 조용히 남희신 앞에 두 개의 서신을 꺼냈다. 하나는 연꽃문양이 고운 자색 봉투였고, 하나는 구름문양이 청아한 옅은 청색 봉투였다.





"그리고..."

"아징이 남긴 말이 더 있어?"

"두 아이 모두 고소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형장께서도 동의하신다면, 아이들 중 차남을, 저와 위영의 양자로 보내겠다 했습니다. 위영에게 약속한 대로요."

"뭐?! 아니 그건 그냥 내가 억지 좀 부렸던ㄱ,"

"만음이 그리 말했다고...?"

"예. 물론 형장께서 동의하지 않으시면,"

"동의하지 않을 게 무엇이냐. 너희가 남도 아니고."

"아니, 택무군..."





온화한 남희신의 표정과는 달리 위무선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여전히 위무선은 강징이 그 고집에 그 난리에 보는 사람이 더 가슴아픈 배려를 해가며 목숨걸고 아이를 지킨 이유보다 강징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그래서 감히 그리하겠다, 좋다 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전 여전히 아징의 목숨이 무엇보다 중합니다."

"압니다."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린 이미 만음의 뜻을 한 번 거슬렀지요."

"택무군."

"형장."

"...만음이 무사히 살아있으니, 그 뜻은 지켜주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강징의 생명을 살리고 싶어했지만 강징의 목숨을 건 도박에서 결국 져줄 수 밖에 없던 희신은 제 동생 부부를 바라보며 부디 제 도려가 이 선택을 기뻐해주며 자신과 아이들에게로 무사히 돌아와주길 기도했다.






35.

그로부터 이틀 뒤, 고소와 운몽이 공식적으로 강징의 출산소식을 발표했다. 두 아들들 중 장남은 강씨 성을, 차남은 남씨 성을 받아 각각 강성(成), 남승(勝) 이란 이름을 받았다.

같은 부모를 둔 아이들을 각각 다른 성을 주는 것과 남승이 남망기와 위무선의 양자로서 고소로 출사하는 것을 두고 몇몇 가벼운 입놀림이 있었으나, 택무군은 두 아이 다 고소와 운몽 모두의 소중한 핏줄이라며 입방아들을 잠재웠고, 남망기는 제 조카들을 두고 가볍게 입을 놀리는 자들에게 평소 함광군 답지않은 꽤 단호한 조치를 취하며 논란을 잠재웠다.





"아...승, 아성."

"위영, 겨우 재웠는데 그렇게 하ㅁ,"

"흐애앵...!"

"이크...! 안 돼, 둘 다 깨면 안 돼...!"





기껏 잘 자다 위무선의 손가락에 홀랑 단잠에서 깬 승이 울음을 터뜨리자 남망기가 저도 모르게 말액을 짚었다. 제손으로 깨워놓고 성까지 깰까봐 안절부절하는 위무선때문에 오늘도 잠은 다 잤다 싶은 평소 칼같이 해시에 잠드는 고소 남씨 둘째공자는 아직 깨지않은 성의 가슴을 살며시 토닥여주었다. 답지않게 다정한 손길이었다.

강징이 요양을 떠난지 21일째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