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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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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찾아온 도시는 떨어지는 벚꽃잎을 애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끌시끌한 말소리가 저 먼 곳에 있는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노란 가로등불 아래에서 잠깐 멈춘 윈란은 흩날리는 꽃잎이 매서운 겨울바람이라도 되는양 몸을 떨었다. 그리곤 다시 지친 몸을 이끌고 발을 죽죽 그으며 보도블럭을 따라 발을 옮겼다.

전날 억지로 밀어넣은 술 때문인지, 몇 달 션웨이 덕에 호강한 몸뚱이가 오랜만에 혹사했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인지 뱃 속이 난리였다. 죽이라도 넣으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나온 것이었는데 밤바람을 맞은게 역효과였는지 결국엔 주저 앉고 말았다.

 

“하아....”

 

윈란은 새까만 하수구로 떨어지는 꽃잎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밟히고 짖눌려 엉망이 된 꽃잎이 제가 지키지 못한 아이들 같아서 속이 쓰렸다.

창청이 연달아 위험해지자 추슈지는 참지 못하고 소년의 영혼을 학살했다. 아이의 영혼은 그 자리에서 소멸했다.

버텨냈더라도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 위험하게 만든 죄는 적지 않았을테지만. 윈란이 억지로 추슈지를 끄집어냈을 때 찌그러진 잿빛 얼굴이 파스스 부서졌다. 촉촉한 붉은 눈은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했고 어린 여자아이의 비명이 쟁쟁 울렸다.

 

그럼에도 윈란은 추슈지가 창청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에 그 분노를 이해했다. 상부로부터 그를 보호하려 애썼고, 다행히 그들은 더 많은 피해가 있었을지 모른다고 여겨 추슈지는 비교적 가벼운 벌을 받았다.

윈란은 찌르르 울리는 배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아무래도 고질병이었던 위경련이 도진 것 같다. 병원은 싫은데.... 중얼 거리며 배를 어루만졌지만 조금도 나아지지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앙”

“엄마가 뛰지 말라고 했잖니.”

 

앳된 울음소리에 눈물 흘리는 법도 잊은 어린 영혼들이 떠올랐다. 윈란은 그들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친절한 경찰아저씨 흉내를 내며 그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돕고싶어했다. 하지만 지키지 못했다.

 

윈란은 몸이고 나발이고 다시 알콜이 절실해졌다. 역시 죽은 때려치고 술이나 들이부어야겠다. 아니면 담배나... 뭐가 되었든 제 몸을 벌 주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정말 도와줄꺼에요?’
‘무서워....그만하고싶어..’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윈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뱃속이 찢어질 것 처럼 아팠다. 고인 눈물이 아스팔트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 때 까맣고 반질반질한 구두 앞 코가 윈란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자 정말 보고싶었던 이가 단정한 얼굴을 구기며 제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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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 윈란”

 

션웨이는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윈란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 마르고 까슬해진 얼굴이 그의 상태를 짐작하게 했고 마음이 아팠다.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어둠 속에 숨어 윈란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1만년간 션웨이가 즐긴 취미였고 일상이며 의무이기도 했다. 며칠 저승에 다녀오는 동안 윈란을 살피지 못한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뱉는 말과는 달리 다정한 마음을 지닌 윈란이 자신을 학대할 것을 알기에 예의주시하던 참이었다. 결국 길바닥에서 주저앉은 윈란을 내버려둘 수 없었던 션웨이는 우연을 가장해 몇 주 만에 그 앞에 섰다.
 

 

윈란은 배를 부여잡고 얌전히 션웨이가 하는대로 몸을 맡겼다. 이렇게 몸을 기대고 부축을 받고있으니 예전 일이 떠올랐다. 지난 겨울 위경련이 왔을때도 이렇게 길에서 주워져 집까지 옮겨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본 날, 혹시나 하는 멍청한 기대를 갖고.. 그 때도 이렇게 몸을 맡겼다. 자신을 가지런히 눕힌 뒤 현관문을 나서던 그는 문이 닫히기 전 윈란을 돌아보았다. 제 눈에 담긴 욕망을 읽은 것인지 늘 다정하고 침착했던 그는 답지않게 집을 뛰쳐나갔다. 

 

대체 우린 뭘 하고 있는거지? 이 남자는 나랑 뭘 하고 싶은걸까. 이게 말로만 듣던 어장관리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심란해진 윈란이 션웨이를 흘겨보았다. 옆선이 참 고왔다. 몇 주 간 떠올렸던 기억 속의 션웨이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눈 앞의 션웨이는 아름다웠다.



 

“찾았다”

 

익숙한 목소리에 윈란의 발이 멈췄다. 고개를 들자 소녀의 영혼이 피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주시하고있었다. 아이는 이제 우는 법을 기억해냈나보다. 제 안에 상처를 내서 그 피를 뚝뚝 흘리며 그렇게 슬픔을 표현했다.

 

 잘 빗어넘겼던 단발머리는 사방으로 뻗쳤고 새까만 피로 얼룩진 손톱에 썩은 살점이 말라 붙어있었다. 어찌나 긁어댄 것인지 할퀸 입 주변이 안쓰러웠다. 새까만 입이 벌어지고 간간히 끅끅 소리를 내며 원망의 말이 쏟아졌다.

 

“날 속였지? 나한테! 나를.! .도와준다고! 너때문이야.너때문이야.너때문이야.너때문이야”

“하지만...찾아냈어.”

 

소녀는 입꼬리를 쭉 올리고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눈엔 악의가 가득했다.

 

“그만. 하... 아직 널 도울 수 있어.샤오린.”

“거짓말!!!! 오빠를 찢었어! 오빠를 찢었어! 찢어서! 뜯어서! 찢었어!!!!”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소녀의 영혼이 달려들었다. 션웨이는 윈란을 등 뒤로 숨기고 팔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가는 손톱이 깊숙히 박혔다가 생채기를 남기고 빠져나갔다.

참혼사에게 성난 영혼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인간 션웨이 행세를 해야했다.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윈란은 그녀를 막아내지 못할것이 분명했기에 흑포를 뒤집어쓰러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윈란은 눈썰미가 좋고 의심이 많기 따문에, 아귀 사건때 다칭과 창청과 있을 때처럼 싸워서는 안됐다.

 

윈란의 눈에 그는 가까스로 소녀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내는 것 처럼 보였다. 샤오린은 히죽히죽 웃으며 네발로 빠르게 기어왔고 윈란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날아오른 순간 윈란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계속 고통을 호소하던 위는 다른 부위에 상처가 나자 얌전해졌다. 윈란은 울컥울컥 피를 쏟아내면서도 제 안에 박힌 손가락을 따라가 손등을 쓸어주며 아이를 달랬다.

그러나 윈란이 입을 떼기도 전에 등 뒤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쏟아졌다. 윈란과 소녀는 그대로 굳어 고개 하나 까딱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션웨이는 샤오린의 팔목을 가볍게 분질러 윈란의 배에서 뽑았다. 샤오린은 죽을것이다. 윈란이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션웨이의 허리를 안고 매달렸다. 그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말은 안돼. 가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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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집에서 윈란을 기다리던 다칭이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다칭은 피 흘리는 자오 윈란과 끔찍하게 변한 샤오린, 찬기운을 머금고 살기를 숨기지않는 션웨이 중 어떤 것 부터 놀라야하나 고민했다.

 

다칭을 본 윈란은 안심이 되었는지 으윽.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션웨이는 식은땀을 흘리는 윈란을 끌어안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칭은 그 둘이 사라진 자리를 황망하게 쳐다보다 제게 맡겨진 소녀의 영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진혼 웨이란 룡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