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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4 12:26
1. https://hygall.com/477584413
21.
강징은 점점 위무선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 종일을 붙어있으면서도 그렇냐고 하면, 놀랍게도 그랬다. 위무선은 하루종일 강징의 머릿속을 우당탕탕 뛰어다녔다. 꽉 찬 방을 헤집고 빈 방의 문을 두드려댔다. 그 쿵쿵대는 울림이 머리를 타고 내려와 심장까지 전해졌다. 위무선을 보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습관처럼 어깨를 감싸는 손에 잡히면 온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색하게 반응하면 위무선이 이상하게 생각할텐데, 긴장으로 얼어버린 강징은 아무것도 신경쓸 수가 없었다.
22.
멍하게 고민하고 있을때면 그 새를 못참은 위무선이 쪼르르 달려와 강징과 똑같이 꽃받침을 하고 마주 앉았다. 무슨 생각해, 강징? 니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적당한 변명을 찾지 못하고 툴툴대는 강징을 보고 위무선이 웃었다. 강징은 괜히 심술이 일었다. 나는 이렇게 복잡한데 뭐가 웃겨. 그러면서도 교실로 들어온 바람에 흩날리는 위무선의 앞머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3.
사실 강징도 바보는 아니었다. 한 발짝만 떼면 알 수 있었다. 왜 위무선 생각으로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왜 등 돌린 뒷모습에 조급해지는지. 다만 겁이 많았다. 내딛은 한 발짝 뒤로 많은 것들이 변할거였다. 그 변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덮어두는게 능사가 아니란걸 알면서도 외면하고만 싶었다. 잃을 게 많은 사람은 겁이 많아지니까. 그러나 밤새 끙끙대며 붙들고 있던 고민이 무색하게, 다음날 등굣길에 당연하게 손을 내미는 위무선을 보고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위무선을 좋아해. 위무선은 항상 강징이 쌓아올린 벽을 가볍게 넘었다. 고슴도치처럼 세운 가시에 몇번이고 베이면서도. 네가 이렇게 다정하니 내가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 잠자코 단단한 손을 맞잡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쩔수 없었다. 강징은 위무선을 이긴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위무선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겼다.
24.
마음을 자각했을때즈음 강징은 위무선의 주변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짝사랑을 자각한 사람에게 생겨나는 제6의 감각이라도 되는 모양으로, 가뜩이나 위무선에게 온 신경이 곤두서있는 강징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다. 위무선은 잘났다. 객관적으로도 그랬고 본인도 잘 알았다. 강징은 위무선이 장난스레 웃을때면 얼마나 많은 시선이 모였다가 흩어지는지, 삼삼오오 모인 여학생들에게서 위무선의 이름이 얼마나 많이 들리는지를 새삼 깨닫고는 내가 이렇게 속좁은 사람이었나 고민했다. 곤란하게도 강징의 질투는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위무선은 강징의 가족이기도 했다. 가족이자 좋아하는 사람을 뺏길 것 같다는 불안과 질투가 콕콕 가슴을 찔렀다.
25.
그래도 위무선이 가장 많이 부르는건 강징의 이름이었다. 위무선은 수많은 사람중에서도 강징을 찾아내 눈을 맞춰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참으로 치사하고 혼자 하기도 민망한 생각이었지만, 위무선의 우선순위에 늘 제가 있다는걸 알때마다 강징은 안도했다.
26.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은 점차 안정되어갔다. 애석하게도 위무선을 포기했다거나 마음이 변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끓는점이 높아진 마음을 보글보글한 상태로 유지할 뿐. 별로 뜨겁지 않은가 싶어 손을 대보면 데이는 식이었다. 강징의 마음을 돌아다니고 들쑤시던 위무선은 아예 성을 짓고 살고 있었다. 대신 짝사랑의 고질병인 기대를 멈췄고 그 바보는 다 아는척 하면서 왜 내 마음도 모르냐고 잉잉 우는 일도 없어졌다. 위무선은 다정한 사람이니까. 자신과는 다르게 선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 다정함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위무선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강징의 옆에 있어주겠다는 약속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됐다고 생각했다.
27.
고등학생이 되었다. 거울에 어색하게 새 교복 입은 모습을 비춰보는 강징의 방으로 위무선이 들이닥쳤다. 강징징 오빠 어때?! 초등학생때까지만 해도 강징과 키가 비슷하던 위무선은 어느순간부터 죽순처럼 자라 눈높이가 껑충 높아졌다. 가오가 안산다며 교복을 사자마자 세탁소로 달려가더니 줄인 교복이 몸에 꼭 맞았다. 어떻긴 뭘 어때...입을 삐죽인 강징이 고개를 돌렸다. 쟤는 잘 어울리는데 나는 왜이렇게 어정쩡한것 같지. 품이 낙낙한 교복 조끼가 신경쓰였다. 위무선은 자라는데 나는 아직도 어린애같아. 치마 길이도 애매한 것 같았다. 좀 줄여볼까. 실실 웃으며 강징의 뒤에 선 위무선이 머리카락을 모아 넘겨주었다. 우리 징징이 너무 예뻐서 누가 훔쳐가면 어떡하지? 오빠 긴장해야겠다. 손쓸새도 없이 답싹 끌어안긴 강징의 볼에 입술이 쪽쪽 와닿았다. 미친놈아! 기겁한 강징이 뻗는 발길질을 쏙 피한 위무선이 웃으며 도망쳤다. 너 죽어 진짜!! 쿵쿵 뛰는 심장때문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주저앉았다. 새 교복이 구겨지는 것도 신경쓸 틈이 없었다. 위무선의 입술이 닿은 볼이 간지러웠다. 저 망아지새끼 남의 속도 모르고. 위무선은 갈수록 능글맞아졌다. 도대체 그 순하고 귀엽게 웃던 어린애는 어디갔을까 강징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28.
형 옆 여고에 어떤 애가 형 소개시켜달라던데 만나보실래요? 반 친구가 꺼낸 말에 심장이 순식간에 쿵 떨어졌다. 폰게임을 하던 강징의 손이 멈췄다. 이미 화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으음? 위무선이 고민하는 소리를 내는 시간이 억만년같았다. 아아니~ 왜요 진짜 이뻐요 형! 아이돌 연습생이었다는데! 위무선이 심드렁한 태도로 몸을 구겨 강징의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형아는 싫다구 했어. 아 형 소개시켜준다고 밥까지 얻어먹었는데...너 형을 밥 한끼에 팔았어? 장난으로 투닥대는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 했다. 아이돌 연습생...예뻐요...듣기 싫은 소리는 어찌나 기억에 잘 남는지. 귓속에서 울리는 메아리에 강징의 어깨가 남몰래 축 쳐졌다. 고개 숙인 강징과 책상 사이로 위무선의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오빠랑 매점가자. 괜히 짜증이 나 무시하는 강징을 보는 위무선의 눈꼬리가 불쌍하게 축 쳐졌다. 아징, 웅? 무성의하게 터치하던 스크린에 글자가 떴다. 게임오버. 한숨을 쉰 강징이 위무선을 매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9.
각오했던 일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거지같았다. 위무선은 고등학생이되자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큰 키에 잘생긴 얼굴, 뭐든 잘하는 재능과 서글서글한 성격. 한살 많은 나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동급생들은 그래도 말 놓기가 어렵다며 형오빠 하며 알아서 존대를 했다. 강징은 물론 '오빠' 소리가 매우 거슬렸다) 위무선은 늘 중심에 있었다. 위무선과 늘 붙어다니는 강징에게도 이목이 쏠렸지만 낯가리는 성격과 예민함 때문에 쉽게 치대지는 못했다. 가끔 용감하게 무슨 사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긴 했다. 어렸을때부터 집안이 친해서 같이 자란사이라고 말하는건 이제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강징이 피곤한 얼굴을 하면 위무선은 비밀이라고 윙크하거나 보통 사이는 아니지 따위의 말을 해서 오해를 샀다. 해명과 위무선의 등짝에 꽂히는 손바닥으로 짓는 마무리는 강징의 몫이었다.
30.
깡징깡징 오빠 응원해야해?! 체육대회에서 축구 선수로 뛰게 된 위무선이 체육복 져지를 벗어 강징의 어깨에 둘렀다. 더워 미친놈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은 이미 흘러내리지 않도록 엉겁결에 잡고 있었다. 위무선이 강징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는 뛰어가버렸다. 강징의 몸을 폭 감싼 옷에서 위무선의 향이 났다. 섬유유연제도 같은걸 쓰는데 왜 새삼 이럴까. 전반전이 끝나면 또 달려올 위무선을 위해 챙겨온 시원한 물을 꼭 쥐었다. 위무선에게 물을 건넬 기회를 노리는 경쟁자가 도처에 깔려있었다. 또 까불다가 넘어져서 다치기만 해. 위무선에게 태클이 들어올때마다 강징이 도끼눈을 뜨는통에 상대팀 선수들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31.
망할놈의 화이트데이에 위무선은 자기 몫의 단것들을 쓸어담았다. 화이트데이는 남자가 여자한테 주는거 아니었냐고...아직 3교시인데 아는 얼굴부터 모르는 얼굴, 남자 여자 할것 없이 줄기차게 위무선에게 온갖 간지러운 포장을 내밀었다. 책상 주위에 널린 쇼핑백을 보고 심란한 강징을 전혀 모른채 위무선은 금자헌이 자기보다 많은 양을 받았다며 불평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강징! 말이 돼?! 그 공작새가 나보다 나아?! 강징은 금자헌이 단걸 받던 쓴걸 받던 전혀 관심이 없었고 위무선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위무선에게 누가 뭘 내미는걸 또 본다면 홧병이 날지도 몰랐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징을 본 위무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가게?! 이동수업이야 멍청아. 앗 같이가! 잠깐만! 흥. 위무선을 기다리지 않고 박력있게 뒷문을 열어젖힌 강징이 누군가와 거의 부딪힐뻔 했다. 씩씩대며 비켜서려는데 상대가 머뭇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저, 선배 이거...얼굴이 새빨간 남학생이 내미는 쇼핑백을 받아든 강징이 손에 든걸 한번, 그를 한번 쳐다봤다.
위무선한테 줘?
네?? 아뇨 이거 선배ㄲ
고마워 후배님!! 선배님은 감동했어 잘가!!
위무선이 강징의 어깨를 감싸 뒤로 빼고는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았다. 이자식 기껏 건네주는걸 그따위로 받다니. 휴 하고 이마를 훔치는 위무선이 얄미웠다. 지는 인기 많다 이거지. 사실 어제 위무선에겐 비밀로 하고 염리와 만든 초콜릿이 가방속에 있었지만 휘황찬란한 쇼핑백들을 보고있자니 자신이 없어졌다. 준다한들 위무선이 다른 것들과 구별이나 할수있을까. 언니의 도움을 받았지만 모양이 영 어설프고 직접한 포장도 눈에 띄지 않아 마음에 걸렸다. 눈 딱 감고 태연하게 주면 되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담긴걸 아무렇지않게 건네려니 양심이 쿡쿡 찔렸다. 하루종일 줄것이냐 말것이냐 고민하다가 결국 수업이 끝나버렸다. 종례가 끝나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주번이라 교무실에 들른 위무선을 기다렸다. 지금 못주면 집에서 줘야할텐데 어쩌지. 포장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데 위무선이 소리도 없이 다가와 와락 끌어안았다. 이거 내꺼지? 커다란 손이 초콜릿 박스와 강징의 손을 한꺼번에 감쌌다. 강징이 놓으라며 소리를 질렀지만 위무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내꺼 맞지? 응? 그래! 그러니까 좀 놔! 위무선은 바보같이 눈까지 접어 웃었다. 아징 오빠 너무 기뻐 이잉 안먹고 보존해놓을래! 지랄말고 쳐먹어라...제 손보다 작은 박스를 품에 안은 모습에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그게 뭐라고 받고 그렇게 좋아해. 정말 세살먹은 어린애가 따로 없다. 아깝다며 포장도 못풀고 시무룩해하는걸 또 만들어준다고 성질을 내고 나서야 입안으로 넣었다.
32.
이불에 파묻힌 강징 머리맡에서 위무선이 왔다갔다했다. 정신사나우니까 앉아있어. 응. 착실하게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게 딱 강아지다. 얘는 어쩜 그렇게 싫어하는 개랑 하는 짓이 똑같을까. 축 처진 입꼬리를 보다 강징이 입을 열었다. 그냥 이리 올라와. 응. 냉큼 강징 옆으로 올라가 누운 위무선이 배쯤을 토닥였다. 아픈것도 나쁜것만은 아니네. 위무선이 알면 딱밤 맞을 철없는 생각을 했다. 강징은 생리만 시작하면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바닥을 쳤다. 재수없게 시험기간까지 겹쳐 무리를 했더니 몸살까지 나버렸다. 앓아 누운 강징에게 약을 먹이고 수발을 드는건 위무선의 몫이었다. 늘 틱틱대는 강징이 얌전하게 응석을 부리는걸 받아주는 것도. 입맛이 없어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강징을 보고 위무선이 한숨을 쉬었다. 사실 약 효과가 돌기 시작해 몸이 점차 낫는게 느껴졌지만 모른척 위무선에게 기대버렸다. 아프니까 이정도 욕심은 괜찮아.
21.
강징은 점점 위무선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 종일을 붙어있으면서도 그렇냐고 하면, 놀랍게도 그랬다. 위무선은 하루종일 강징의 머릿속을 우당탕탕 뛰어다녔다. 꽉 찬 방을 헤집고 빈 방의 문을 두드려댔다. 그 쿵쿵대는 울림이 머리를 타고 내려와 심장까지 전해졌다. 위무선을 보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습관처럼 어깨를 감싸는 손에 잡히면 온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색하게 반응하면 위무선이 이상하게 생각할텐데, 긴장으로 얼어버린 강징은 아무것도 신경쓸 수가 없었다.
22.
멍하게 고민하고 있을때면 그 새를 못참은 위무선이 쪼르르 달려와 강징과 똑같이 꽃받침을 하고 마주 앉았다. 무슨 생각해, 강징? 니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적당한 변명을 찾지 못하고 툴툴대는 강징을 보고 위무선이 웃었다. 강징은 괜히 심술이 일었다. 나는 이렇게 복잡한데 뭐가 웃겨. 그러면서도 교실로 들어온 바람에 흩날리는 위무선의 앞머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3.
사실 강징도 바보는 아니었다. 한 발짝만 떼면 알 수 있었다. 왜 위무선 생각으로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왜 등 돌린 뒷모습에 조급해지는지. 다만 겁이 많았다. 내딛은 한 발짝 뒤로 많은 것들이 변할거였다. 그 변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덮어두는게 능사가 아니란걸 알면서도 외면하고만 싶었다. 잃을 게 많은 사람은 겁이 많아지니까. 그러나 밤새 끙끙대며 붙들고 있던 고민이 무색하게, 다음날 등굣길에 당연하게 손을 내미는 위무선을 보고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위무선을 좋아해. 위무선은 항상 강징이 쌓아올린 벽을 가볍게 넘었다. 고슴도치처럼 세운 가시에 몇번이고 베이면서도. 네가 이렇게 다정하니 내가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 잠자코 단단한 손을 맞잡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쩔수 없었다. 강징은 위무선을 이긴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위무선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겼다.
24.
마음을 자각했을때즈음 강징은 위무선의 주변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짝사랑을 자각한 사람에게 생겨나는 제6의 감각이라도 되는 모양으로, 가뜩이나 위무선에게 온 신경이 곤두서있는 강징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다. 위무선은 잘났다. 객관적으로도 그랬고 본인도 잘 알았다. 강징은 위무선이 장난스레 웃을때면 얼마나 많은 시선이 모였다가 흩어지는지, 삼삼오오 모인 여학생들에게서 위무선의 이름이 얼마나 많이 들리는지를 새삼 깨닫고는 내가 이렇게 속좁은 사람이었나 고민했다. 곤란하게도 강징의 질투는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위무선은 강징의 가족이기도 했다. 가족이자 좋아하는 사람을 뺏길 것 같다는 불안과 질투가 콕콕 가슴을 찔렀다.
25.
그래도 위무선이 가장 많이 부르는건 강징의 이름이었다. 위무선은 수많은 사람중에서도 강징을 찾아내 눈을 맞춰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참으로 치사하고 혼자 하기도 민망한 생각이었지만, 위무선의 우선순위에 늘 제가 있다는걸 알때마다 강징은 안도했다.
26.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은 점차 안정되어갔다. 애석하게도 위무선을 포기했다거나 마음이 변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끓는점이 높아진 마음을 보글보글한 상태로 유지할 뿐. 별로 뜨겁지 않은가 싶어 손을 대보면 데이는 식이었다. 강징의 마음을 돌아다니고 들쑤시던 위무선은 아예 성을 짓고 살고 있었다. 대신 짝사랑의 고질병인 기대를 멈췄고 그 바보는 다 아는척 하면서 왜 내 마음도 모르냐고 잉잉 우는 일도 없어졌다. 위무선은 다정한 사람이니까. 자신과는 다르게 선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 다정함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위무선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강징의 옆에 있어주겠다는 약속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됐다고 생각했다.
27.
고등학생이 되었다. 거울에 어색하게 새 교복 입은 모습을 비춰보는 강징의 방으로 위무선이 들이닥쳤다. 강징징 오빠 어때?! 초등학생때까지만 해도 강징과 키가 비슷하던 위무선은 어느순간부터 죽순처럼 자라 눈높이가 껑충 높아졌다. 가오가 안산다며 교복을 사자마자 세탁소로 달려가더니 줄인 교복이 몸에 꼭 맞았다. 어떻긴 뭘 어때...입을 삐죽인 강징이 고개를 돌렸다. 쟤는 잘 어울리는데 나는 왜이렇게 어정쩡한것 같지. 품이 낙낙한 교복 조끼가 신경쓰였다. 위무선은 자라는데 나는 아직도 어린애같아. 치마 길이도 애매한 것 같았다. 좀 줄여볼까. 실실 웃으며 강징의 뒤에 선 위무선이 머리카락을 모아 넘겨주었다. 우리 징징이 너무 예뻐서 누가 훔쳐가면 어떡하지? 오빠 긴장해야겠다. 손쓸새도 없이 답싹 끌어안긴 강징의 볼에 입술이 쪽쪽 와닿았다. 미친놈아! 기겁한 강징이 뻗는 발길질을 쏙 피한 위무선이 웃으며 도망쳤다. 너 죽어 진짜!! 쿵쿵 뛰는 심장때문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주저앉았다. 새 교복이 구겨지는 것도 신경쓸 틈이 없었다. 위무선의 입술이 닿은 볼이 간지러웠다. 저 망아지새끼 남의 속도 모르고. 위무선은 갈수록 능글맞아졌다. 도대체 그 순하고 귀엽게 웃던 어린애는 어디갔을까 강징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28.
형 옆 여고에 어떤 애가 형 소개시켜달라던데 만나보실래요? 반 친구가 꺼낸 말에 심장이 순식간에 쿵 떨어졌다. 폰게임을 하던 강징의 손이 멈췄다. 이미 화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으음? 위무선이 고민하는 소리를 내는 시간이 억만년같았다. 아아니~ 왜요 진짜 이뻐요 형! 아이돌 연습생이었다는데! 위무선이 심드렁한 태도로 몸을 구겨 강징의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형아는 싫다구 했어. 아 형 소개시켜준다고 밥까지 얻어먹었는데...너 형을 밥 한끼에 팔았어? 장난으로 투닥대는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 했다. 아이돌 연습생...예뻐요...듣기 싫은 소리는 어찌나 기억에 잘 남는지. 귓속에서 울리는 메아리에 강징의 어깨가 남몰래 축 쳐졌다. 고개 숙인 강징과 책상 사이로 위무선의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오빠랑 매점가자. 괜히 짜증이 나 무시하는 강징을 보는 위무선의 눈꼬리가 불쌍하게 축 쳐졌다. 아징, 웅? 무성의하게 터치하던 스크린에 글자가 떴다. 게임오버. 한숨을 쉰 강징이 위무선을 매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9.
각오했던 일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거지같았다. 위무선은 고등학생이되자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큰 키에 잘생긴 얼굴, 뭐든 잘하는 재능과 서글서글한 성격. 한살 많은 나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동급생들은 그래도 말 놓기가 어렵다며 형오빠 하며 알아서 존대를 했다. 강징은 물론 '오빠' 소리가 매우 거슬렸다) 위무선은 늘 중심에 있었다. 위무선과 늘 붙어다니는 강징에게도 이목이 쏠렸지만 낯가리는 성격과 예민함 때문에 쉽게 치대지는 못했다. 가끔 용감하게 무슨 사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긴 했다. 어렸을때부터 집안이 친해서 같이 자란사이라고 말하는건 이제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강징이 피곤한 얼굴을 하면 위무선은 비밀이라고 윙크하거나 보통 사이는 아니지 따위의 말을 해서 오해를 샀다. 해명과 위무선의 등짝에 꽂히는 손바닥으로 짓는 마무리는 강징의 몫이었다.
30.
깡징깡징 오빠 응원해야해?! 체육대회에서 축구 선수로 뛰게 된 위무선이 체육복 져지를 벗어 강징의 어깨에 둘렀다. 더워 미친놈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은 이미 흘러내리지 않도록 엉겁결에 잡고 있었다. 위무선이 강징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는 뛰어가버렸다. 강징의 몸을 폭 감싼 옷에서 위무선의 향이 났다. 섬유유연제도 같은걸 쓰는데 왜 새삼 이럴까. 전반전이 끝나면 또 달려올 위무선을 위해 챙겨온 시원한 물을 꼭 쥐었다. 위무선에게 물을 건넬 기회를 노리는 경쟁자가 도처에 깔려있었다. 또 까불다가 넘어져서 다치기만 해. 위무선에게 태클이 들어올때마다 강징이 도끼눈을 뜨는통에 상대팀 선수들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31.
망할놈의 화이트데이에 위무선은 자기 몫의 단것들을 쓸어담았다. 화이트데이는 남자가 여자한테 주는거 아니었냐고...아직 3교시인데 아는 얼굴부터 모르는 얼굴, 남자 여자 할것 없이 줄기차게 위무선에게 온갖 간지러운 포장을 내밀었다. 책상 주위에 널린 쇼핑백을 보고 심란한 강징을 전혀 모른채 위무선은 금자헌이 자기보다 많은 양을 받았다며 불평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강징! 말이 돼?! 그 공작새가 나보다 나아?! 강징은 금자헌이 단걸 받던 쓴걸 받던 전혀 관심이 없었고 위무선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위무선에게 누가 뭘 내미는걸 또 본다면 홧병이 날지도 몰랐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징을 본 위무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가게?! 이동수업이야 멍청아. 앗 같이가! 잠깐만! 흥. 위무선을 기다리지 않고 박력있게 뒷문을 열어젖힌 강징이 누군가와 거의 부딪힐뻔 했다. 씩씩대며 비켜서려는데 상대가 머뭇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저, 선배 이거...얼굴이 새빨간 남학생이 내미는 쇼핑백을 받아든 강징이 손에 든걸 한번, 그를 한번 쳐다봤다.
위무선한테 줘?
네?? 아뇨 이거 선배ㄲ
고마워 후배님!! 선배님은 감동했어 잘가!!
위무선이 강징의 어깨를 감싸 뒤로 빼고는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았다. 이자식 기껏 건네주는걸 그따위로 받다니. 휴 하고 이마를 훔치는 위무선이 얄미웠다. 지는 인기 많다 이거지. 사실 어제 위무선에겐 비밀로 하고 염리와 만든 초콜릿이 가방속에 있었지만 휘황찬란한 쇼핑백들을 보고있자니 자신이 없어졌다. 준다한들 위무선이 다른 것들과 구별이나 할수있을까. 언니의 도움을 받았지만 모양이 영 어설프고 직접한 포장도 눈에 띄지 않아 마음에 걸렸다. 눈 딱 감고 태연하게 주면 되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담긴걸 아무렇지않게 건네려니 양심이 쿡쿡 찔렸다. 하루종일 줄것이냐 말것이냐 고민하다가 결국 수업이 끝나버렸다. 종례가 끝나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주번이라 교무실에 들른 위무선을 기다렸다. 지금 못주면 집에서 줘야할텐데 어쩌지. 포장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데 위무선이 소리도 없이 다가와 와락 끌어안았다. 이거 내꺼지? 커다란 손이 초콜릿 박스와 강징의 손을 한꺼번에 감쌌다. 강징이 놓으라며 소리를 질렀지만 위무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내꺼 맞지? 응? 그래! 그러니까 좀 놔! 위무선은 바보같이 눈까지 접어 웃었다. 아징 오빠 너무 기뻐 이잉 안먹고 보존해놓을래! 지랄말고 쳐먹어라...제 손보다 작은 박스를 품에 안은 모습에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그게 뭐라고 받고 그렇게 좋아해. 정말 세살먹은 어린애가 따로 없다. 아깝다며 포장도 못풀고 시무룩해하는걸 또 만들어준다고 성질을 내고 나서야 입안으로 넣었다.
32.
이불에 파묻힌 강징 머리맡에서 위무선이 왔다갔다했다. 정신사나우니까 앉아있어. 응. 착실하게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게 딱 강아지다. 얘는 어쩜 그렇게 싫어하는 개랑 하는 짓이 똑같을까. 축 처진 입꼬리를 보다 강징이 입을 열었다. 그냥 이리 올라와. 응. 냉큼 강징 옆으로 올라가 누운 위무선이 배쯤을 토닥였다. 아픈것도 나쁜것만은 아니네. 위무선이 알면 딱밤 맞을 철없는 생각을 했다. 강징은 생리만 시작하면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바닥을 쳤다. 재수없게 시험기간까지 겹쳐 무리를 했더니 몸살까지 나버렸다. 앓아 누운 강징에게 약을 먹이고 수발을 드는건 위무선의 몫이었다. 늘 틱틱대는 강징이 얌전하게 응석을 부리는걸 받아주는 것도. 입맛이 없어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강징을 보고 위무선이 한숨을 쉬었다. 사실 약 효과가 돌기 시작해 몸이 점차 낫는게 느껴졌지만 모른척 위무선에게 기대버렸다. 아프니까 이정도 욕심은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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