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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 18:06
“크로커다일 경이라면 이해해줄 거야. 굳이 우리 진실을 파헤치지도 않을 거고. 그렇죠?”
“그래.”
나미의 물음에 크로커다일이 진한 씁쓸함을 삼키며 답한 다음이었다. 비비를 걱정한 페루가 난리통을 뚫고 나타난 건. 하늘을 점령한 마물 사이를 능숙하게 비행하던 팔콘 한 마리는 이들 앞에서 순식간에 체격 건장한 남성으로 변했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문양이 들어간 흰색 도포 차림을 한 남성은 새새 열매 모델 팔콘의 능력자였다.
“공주님! 무사하십니까?”
“페루? 여기 왜 온 거야? 난 걱정 말고 벙커로 들어가랬잖아!”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단정한 이목구비와 안정정인 음색이 듣기 좋은 남자는 차분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비비는 페루의 얼굴에 난 생채기를 보고 두 눈이 동그래졌다. 오랜만에 그를 본 나미 역시 손인사를 하면서도 페루의 얼굴 상처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물한테 당한 거야?”
“조금 스친 것뿐입니다. 공주님이 신경쓰실만 한 일이…….”
“대체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야, 페루는?! 나는 여기 레이주 왕세녀님도 있고 크로커다일 경도 있고 또 나미랑 로빈 같은 친구들도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다고 했잖아! 본인 몸을 소중히 할 줄 알아야지!”
“공주님…….”
비비는 일이 터지자마자 전보벌레로 지시를 내렸었다. 그런데 페루만이 말을 듣지 않고 찾아온 거였다. 그것도 마물이 점령한 하늘을 무리해 날아오면서. 그러느라 몸 곳곳에도 자잘한 생채기가 즐비했으니 비비는 제 말을 듣지 않은 페루에게 화가 났고 또 속상했다. 백성을 긍휼이 여길 줄 아는 공주는 십년 내란 동안 너무 많은 아픔과 죽음을 목도했다. 특히 가족이나 다름없던 사람들이 당한 고통은 은연중에 비비의 내면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때문에 비비는 페루의 자잘한 상처에 큰일이라도 난 얼굴이었고 이를 지켜보던 상디의 낯빛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이에 역시 비비를 잘 알고 있던 나미가 나선 것도 당연했다.
“몇년만에 보는데도 잘생긴 건 여전하네, 페루. 그래도 이번엔 페루가 잘못한 거야. 예쁜 얼굴에 생채기가 났으니 비비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간만에 보는 나도 이렇게 안타까운데. 그렇지, 비비?”
“뭐?! 아니, 난…!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뭔데? 설마 페루가 미남이 아니라고?”
“으응? 아니, 페루가 잘생긴 건 맞지만……! 이제 화 안 낼 테니까 그만 놀려, 나미. 부탁이야.”
나미의 환한 미소에는 한여름, 푸르른 바닷가와 같은 청량함이 있었다. 더불어 청산유수의 언변을 더하니 비비의 불안정해지던 마음이 순식간에 차분해진다. 이 또한 그만의 장점으로 내란 종결 직후 코브라 국왕이나 이가람은 나미의 부재를 무척 아쉬워했다. 단순히 곁붙이로서가 아닌 차기 알라바스타를 이끌 공주의 정치적 파트너로서도 손색없는 인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고작 열 너댓이나 됐을 법한 소녀는 로빈을 지켜주기로 먼저 약속했다며 시원하게 어른들의 제의를 거절했었다. 끝으로 비비는 제 선택을 이해해줄 거라는 말도 남기고. 나중에야 사정을 들은 비비는 어른들이 왜 한심한 짓을 했느냐 제 아비와 아저씨들을 나무랐으니 이 둘은 지금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단짝이었다. 때문에 페루 역시 나미의 노고를 감사히 여기면서도 주제가 주제니만큼 얼굴이 붉어지는 건 별수 없었다. 그리고 제일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던 크로커다일이 이틈에 자리를 피하려던 순간이었다. 비비 공주를 걱정해 달려온 건 페루만이 아니었다.
빈스모크가 머물던 건물 밑 벙커에는 시중들과 이곳을 경호하던 해병이 들어가 만석이었다. 오직 귀빈만을 위한 공간이었으니 사치스럽게 꾸며진 내부 공간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비비는 병사 하나라도 더 들이고자 제 자리를 거절한 거였다. 그러나 전세가 변화를 보이려 함을 눈치챈 나미는 더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피력했고 일행은 찢어졌다. 내심은 나미들과 함께 모험하고픈 피가 들끓는 비비였지만 그녀는 한 나랑디 공주였다. 때문에 짧은 인사를 끝으로 헤어질 때 레이주는 비비를 호위하라며 이치디, 니디를 남게 했다. 크로커다일이 겨우 그들에게서 떨어져 마물만 덩그러니 침대에 묶인 건물로 돌아온 게 이때였다. 그렇게 남은 일행이 추적기의 온점을 쫓아 이동하던 중 상디가 오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건물 사이로 사라지던 두 사람을 발견한 게 일행이 또 한번 나뉘는 계기가 됐다.
‘찾았다! 마리모랑 …가 저쪽으로 갔어!’
사방에 해병이 깔린 마당에 상디는 루피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걸 피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약 한 시간 전 본섬 내 쩌렁쩌렁하게 루피의 탈옥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잖은가. 이를 의식한 외침에 추적기를 주시하느라 한박자 늦게 머리를 든 나미의 표정은 의아함이 가득했다. 물음은 로빈에게서 나왔다.
‘마리모라니?’
또 다른 존재가 루피라는 건 모두 눈치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나온 ‘마리모’는 분명한 실책이었다. 상디가 뜨끔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릴 때 나미, 로빈의 시선은 뚫어질 듯 그를 보고 있었다. 이 둘과 조로에 대해 얘기나눌 당시의 상디는 전부 그를 그녀로 인지했을 때다. 그러니 바로 눈치채는 건 무리라는 걸 알지만 상디는 여성에게 무한정으로 약했다. 그는 두 사람이 조금만 추궁해도 술술 불어댈 걸 알고 있었다.
‘흐음….’
실제는 일초쯤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영겁같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미의 미묘한 숨소리가 들려온 건. 상디로부터 진작 조로의 존재도 상태도 들어 알고 있던 레이주는 동생을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미가 다시 입을 여는 시간이 일초만 늦었어도 상디가 알아서 인실직고했으리라 확신했다.
‘지금은 우선순위부터 해결하자. 그래서 둘이라고, 상디군? 우솝은 없었어?’
‘네에~ 나미씨이~! 확실히 둘이었답니다!’
‘이상하네. 이미 탈출한 애를 우솝이 못 찾았을 리가 없는데.’
나미는 확신했다. 그렇다면 우솝에게 문제가 생긴 거라고. 루피가 옥살이를 하며 곤욕을 치렀을지언정 우솝은 녀석의 물리적 강함과 견줄 바가 못 된다. 그 외적의 거의 전반적인 부분에서는 우솝이 루피를 훨씬 웃돌았고. 때문에 지금 같은 전장터라면 나미는 홀로 떨어진 우솝이 더 걱정됐다. 그 심중을 헤아린 상디가 제안한 결과가 지금이었고.
“헤… 이런 걸 나미씨는 어떻게 알아보고 찾았던 거지?”
나미에게서 추적기를 받은 상디는 홀로 루피와 조로를 찾는 중이었다. 이미 어디로 모일지 얘기를 들은데다 우솝도 추적기를 가지고 있으니 여차하면 이것이 일행이 모일 장소의 지표가 돼주지 않은가. 다만 문제는 손바닥만 한 발신기 위 온점이 하나라는 것뿐이었다. 발신기 화면은 덧그려진 지형은 커녕 흑색이 전부였는데 그 위에 뜬 온점은 거리가 가까워지면 커지고 멀어지면 작아졌다. 오직 이것만으로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이 자아낸 미로같은 골목길을 헤치고 루피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나미는 이것을 보고 거침없이 쭉쭉 나갔지 않은가. 이는 우솝 역시 마찬가지로 길눈이 밝은 축에 속하던 상디는 이 두 사람의 머리속이 신기하기만 했다.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머리속에 공간을 구성하는 능력의 천재성 때문이었다. 그런고로 상디도 루피를 찾는 건 제게 맡기고 우솝을 찾으라 자신있게 말한 것치고 난항 중이었다.
상디가 두 사람을 찾아 헤매던 그때 블루노는 지진이라도 난 듯 깨진 암반 위에 있었다. 소문으로 들었지만 몸으로 직접 느껴본 강함은 차원이 달랐다. 젊은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블루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이제 끝이다. 점멸하는 시야 사이로 젊은 왕의 다리가 긴 호선을 그리는 것을 보며 블루노는 생각했다. 도피 역시 이렇게 된 마당에 로우를 애먹인 놈을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그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던 순간이었다.
“모래폭풍!”
“으악!!”
“ㅡ!!!”
도플라밍고가 날아갔다. 본능적으로 몸을 한껏 움츠려 불상사를 피한 블루노의 정면에 자리한 이층 건물은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콜록!”
사방에 모래먼지가 자욱하니 기침이 나오는 그때 너머로 보이기 시작한 인영은 블루노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안도감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
“루피는 건드리지 마, 크로커다일! 당신 상대는 나라고 했잖아!!”
‘롤로노아? 어째서……?’
블루노가 젊은 왕을 상대한 게 못해도 삼사십분은 족히 됐으리라. 그 시간이면 못해도 본섬 중간쯤에는 갔어야지 않을까. 한데 왜 건물 하나 너머에서 나타났을까. 머리속에 의문이 가득할 때였다.
“쟤 길치다. 으… 망할 고무 같으니.”
블루노의 생각을 읽은 양 루피의 쿠션이 돼 함께 건물에 처박혔던 도피가 걸어나오며 말했다. 한 손에는 기절한 밀짚모자를 질질 끌고서. 블루노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조금 전 자신과의 전투에서 젊은 왕은 여유가 넘쳤더랬다. 이를 단순히 힘의 차이 때문이라 봤던 블루노는 이제야 언제든 롤로노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더해져서였음을 깨닫는다. 저렇게 심각한 길치라면 블루노와 밤새 놀아주고도 찾았을 터다, 젊은 왕은. 그러나 어느새 블루노 옆으로 온 그는 밀짚모자를 바닥에 떨궈놓으면서도 심기 불편한 얼굴이었다. 아직 날리는 뿌연 모래먼지 사이로 건물 너머의 말다툼이 계속되고 있었다.
“너야말로 두 발로 서있는 게 고작인 놈이 입만 살았구나. 대체 네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지?”
“그 얘기 좀 안 할 수 없습니까?? 나는 멀쩡해! 그러니까 어차피 칠 거면 나부터 하라고!!”
“약한 녀석은 어찌 죽을지도 고르지 못하는 법이다, 롤로노아. 그러니 넌 놈이 죽는 걸 지켜보기나 해라! 사막의 보검!”
“루피!!”
모래가 순식간에 땅을 길게 가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블루노가 몸을 굴러 회피했을 때 대지를 가르는 절삭력의 모래줄기는 정확히 루피를 노리고 들어왔다. 그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있던 도피는 혀를 차더니 기절한 루피를 발로 굴렸다. 찰나에 루피가 블루노 쪽으로 구르고 모래줄기가 바로 옆을 스친다. 그 뒤로 건물이 종이처럼 잘리는 스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때만큼은 누구라도 사방을 에워싼 포탄 소리와 마물의 괴성보다 크로커다일이 더 공포로 느껴질 터였다. 유일하게 이를 아랑곳 않은 것은 루피를 살리는데 급급한 한 녀석일지도. 도피는 창백하게 핏기 가싯 얼굴로 벌써 근처까지 달려온 조로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놈은 온몸으로 크로커다일의 기술을 막았을 것이다. 조로는 도피를 보고서도 무시한 채 루피를 살피기 바빴다. 지금껏 누적된 피로와 해루석을 차고 있는 한계, 그리고 크로커다일에게 당한 상처까지 더하니 만신창이가 따로없었다. 그럼에도 녀석을 다시 짊어지고 벗어나려는 조로는 처절함마저 느껴졌다. 블루노 역시 조로의 목에 자리한 카쿠의 손수건이 영 마음에 걸렸고. CP9인 그들은 암약첩보원으로 임무라면 살인도 불사했다. 여기에는 타고난 기질도 있었지만 그러하도록 훈련받은 것 또한 있지 않았나. 이러다 보니 연애니 가정을 꾸리니 하는 것에 관심도 인연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다고 해서 동료에게 생긴 소중한 인연을 함부로 여기고 싶지는 않은 게 블루노의 마음이었다. 그는 그린비트에 이어 오늘날 카쿠가 조로의 목에 둘러준 손수건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죽는 날까지 밀짚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내가 도와주지.”
조로를 보고만 있던 도피가 말했다. 루피의 팔을 붙들고 일으키던 조로가 멈칫했다. 마물이 내지르는 괴성이 지척까지 근접했지만 느낌은 사뭇 달랐다. 해군에서 전세를 잡은 모양이다. 이말인즉 루피의 탈출문도 좁아졌다는 뜻이니 조로는 마음이 급했다. 축 늘어진 루피를 한쪽 어깨에 둘러멘 그가 고개만 반쯤 돌아보며 말했다. 루피가 또 위험에 처한다면 구하러 가겠다고 약속했으니 조로는 이마저 저버릴 수는 없었다.
“루피만 탈출시키고 나면 돌아와 죄값은 치루겠습니다, 폐하. 그 뒤에 날 구워먹든 삶아먹든 알아서 하십쇼.”
“훗…. 로우를 믿고 배짱인 거냐? 설마 내가 너 하나 죽이지 못할까봐?”
도피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는 조로가 로우의 진심을 방패로 도발한다 생각했다. 막상 언급된 이름에 정 많고 여린 녀석이 떠오른 조로는 죄책감이 들었다지만 그뿐이었다. 루피를 구하기로 했을 때 그가 로우의 상냥함에 바란 건 알라바스타의 안녕이었다. 이것만 해도 로우는 충분히 관용을 베푼 것 아닐까. 때문에 조로는 도피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침묵했다. 입씨름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빨리 우솝을 찾아 루피를 넘기는 게 시급했으니. 제게 남아있는 시간도 부족하다. 한계점에 다다른 몸상태를 예측하며 조로가 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헉!”
“롤로노아!”
소리 없이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가 등을 깊숙이 파고든다. 블루노가 부르는 제 이름이 불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오고 시야에 들어찬 금빛 갈고리는 피를 머금은 선명한 붉은빛이다. 조로가 아주 잠깐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생각하는 동안 곁으로 다가온 블루노와 눈이 마주쳤다.
“젠장! 악어자식! 기어코 사고를 치는 거냐?!”
“방해된다. 비켜라!”
“커헉!”
도피의 방해로 몸에 박힌 갈고리가 빠져나가고 조로의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피를 한움큼 토하면서도 꿋꿋이 서있던 그는 블루노를 어깨로 들이받으며 루피를 넘겼다. 얼결에 받아든 블루노가 평소의 덤덤함과 다른 당황스런 얼굴을 할 때 또 한번 크게 휘청한 조로가 말했다.
“가! 루피를 부탁해!”
“어림없다!”
“큽!”
그순간 모래로 변한 크로커다일이 날아왔다. 바로 뒤에서 들린 음성에 조로가 검을 발도하며 돌아섰다. 흑색의 패기를 두른 검이었다. 자연계 능력자도 벨 수 있는 검. 위험을 감지한 크로커다일이 순식간에 형상을 갖추고 갈고리로 검을 부딪히니 불꽃이 튀었다. 그 뒤로 크로커다일의 공격에 저만치 멀어졌던 도피가 하늘에서 나타나더니 한 팔을 펼쳤다. 그물을 펼치듯 손에서 뻗어나온 실은 조로의 등 뒤로 거대한 거미집을 만들었다. 실로 촘촘히 짜인 벽은 본능적으로 조로를 돕고자 했던 블루노의 의도를 완전히 차단했다. 직후 바로 크로커다일을 저지하는데 동참한 젊은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뜻은 분명했음이다. 여기서 데리고 가는 건 밀짚모자까지라는. 물론 블루노는 조로의 말을 들어줄 의무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의 목에 메인 손수건과 제 품에 안긴 밀짚모자를 번갈아본 그는 결국 남은 힘을 짜내 그곳을 벗어났다. 이를 눈치챈 크로커다일의 공세가 더욱 격렬해지니 처음의 일격을 막아낸 게 전부인 조로를 지키면서 홀로 그를 상대해야 되는 입장의 도피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크로커다일은 죽는 날까지 밀짚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도와주겠다는 도피의 말을 조로가 거부했을 때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유일하게 이것을 눈치챈 도피는 제 뒤에서 무너지듯 무릎 꿇던 조로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밀짚모자는 이제 여기 없다! 그러니 두번 다시 놈을 보지 않겠다고 맹세해라!”
“그런 거… 큭!”
“그냥 하라면 좀 해! 벽창호냐?!”
지금은 거짓말이라도 필요했다. 악어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라도. 현재 도피는 요령 좋게 공격을 피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놈을 상처 없이 제압하기란 도피도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너 진짜 죽일 생각이야?!”
“마침 미스터 투도 여기 와 있으니 잘됐지! 롤로노아의 대체재는 준비돼 있다! 도피, 너도 해본 일이니 잘 알테지?!”
왜 이리 눈이 돌았나 싶더라니 도피는 악어를 설득하려다 도리어 말로 역공을 당하고 말았다. 지난날 알라바스타에서 그가 미스터 투, 벤담을 욘디에게 보냈던 걸 크로커다일이 알아버린 모양이다. 애당초 도피는 이 일을 비밀에 붙인 적이 없다.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싫은 사람들이 크로커다일 앞에서 입을 다문 게 화근이었다. 그도 다른 때라면 넘어갔을 텐데 시기가 좋지 못했다. 하필 오늘, 페루가 비비를 데리러왔을 때 지상에서 뛰어오느라 조금 늦은 미스터 투, 벤담이 합류했으니. 생각도 못한 장소에서 친구를 본 욘디의 반가움이 어떠했으랴. 물론 벤담도 막역지우가 반갑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아무리 눈치를 줘도 얼싸안기 바빴던 욘디는 비비의 궁금증에 이야기를 죄 풀어버리기까지 했다. 이로써 여전히 저희 넘버들의 진짜 사장인 크로커다일과 맞딱트린 벤담은 식은땀이 줄줄 흐른 시간이었다. 그러니 지금 순간 크로커다일의 분노에는 도피의 지분 또한 상당함이다. 말이 통하는 녀석이라 생각한 조로의 배신은 지금껏 도피가 아슬아슬하게 깔짝이는 선에서 끝난 도화선을 확실히 터뜨린 꼴이었다.
“새대가리 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코라손이 살아있을 때도 너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었으니까!”
“언제적 코라손이냐, 악어자식! 녀석이 죽은 게 언젠데 갑자기 로시 얘기를 꺼낸다고?!”
“너희 무늬만 부자인 놈들이 여태 내가 말할 기회나 준 적 있던가?! 항상 너희 두 놈 상처가 먼저였지! 정작 둘 다 녀석을 울리기만 했으면서!! 로시가 살아생전 울었던 이유는 전부 다 징글징글한 너희 두 놈 때문이다!!”
“하?! 그렇게 내 동생을 아꼈다면 너야말로 어째서 로시가 죽도록 방관한 거지?! 네놈이 소인족 공주를 써먹었다면 로시는 지금도 살아있을 거다! 로시의 죽음에 네 책임이 얼마나 큰 지 알고 있는가?! 나는 그럼에도 관대히 너를 살려줬다, 악어자식!!”
“그거야 네가 아직도 코라손의 유언을 듣지 못했으니까지!! 유언을 들은 즉시 날 죽일 생각이었다는 걸 모를 거라 생각하나?!”
“키에엑!!”
“저리 꺼져!!”
두 사람의 격투에 건물이 죄 휩쓸려나간 주변은 공터를 연상케 했다. 소란에 이끌려 날아온 마물은 삼미터를 넘는 거구였음에도 도피와 크로커다일의 합동 공격에 벌집이 돼 널브러졌다. 놈들에게 악마의 능력이 반감된다 해도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만큼 놈들을 능력으로 처리할 때의 체력 소모가 심하므로 무기를 드는 것일 뿐. 하지만 눈이 홧홧할 정도로 열 받은 상황이라면 역시 능력이 편했다. 마물이 순식간에 다짐육처럼 변한 처참한 장면을 목도한 조로는 아무리 그라도 비위가 상함을 느꼈다. 동시에 오래전 마물의 목이 썰린 걸 보고 토했던 로우가 떠오름에 녀석이 더 안쓰러워진다. 마물을 처리하고 또다시 세상의 종말을 고하듯 싸우는 두 사람을 보자니 로우가 바르게 자란 것이 용할 정도였다. 이렇게 조로가 가물거리는 정신을 겨우 다잡을 때였다.
“핑계대지 마라, 악어자식! 너야말로 로시의 유언을 혼자 간직하고 싶어서 입을 다문 거면서!! 내가 널 모를까?!”
“닥쳐라, 새대가리!!”
“큭!”
또 한번 대지를 가르고 직선으로 날아오던 모래 칼날에 도피는 피하지 않았다. 그 뒤쪽에 조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실로 그물을 펼쳐 방어했지만 이럴 줄 알았다는 양 모래먼지에 숨어 날아온 크로커다일이 있었다. 그는 그물을 간단히 뚫고 도피에게 상처를 냈다. 목줄기를 따라 길게 덧그려진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문제는 크로커다일이 금빛 갈고리를 벗겨냈다는 데 있었다. 그 안에는 전갈 독이 뚝뚝 흐르는 갈고리가 자리했다. 하지만 도피는 진작 이 전갈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운 상태다. 그러므로 살짝 베인 상처에 위험할 일은 없지만 독이 중화될 때까지 퉁퉁 붓는 것은 당연하며 매우 성가시고 기분 나쁜 통증을 동반한다는 게 문제였다. 크로커다일도 의도하고 부러 상처를 낸 것 아닌가. 이를 모를 리 없던 도피가 신경질적으로 노려보니 그는 금빛 갈고리를 불러들인 뒤 덮어씌우며 한결 후련한 얼굴을 했다.
“너 이자식!”
“됐으니까 조로의 상처 봉합이나 해라, 도피.”
이젠 또 제 기분 좀 풀렸다고 조로라 부르는 녀석에 도피는 기가 찼다. 크로커다일도 어떤 의미로는 뻔뻔하기가 매한가지였다. 그는 도피의 능력이라면 조로의 몸에 난 구멍도 바로 처치 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이후 상처를 완전히 아물게 하는 건 로우에게 데려가면 될 일이고. 때문에 조로의 배를 뚫었지만 미안한 감정은 없었다. 조로가 돌연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까 크로커다일은 마약성 진정제를 맞은 조로가 멀쩡히 돌아다니기까지 제 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긴 밤이 지나고 어둠이 걷힌다. 여명이 밝아오듯 해를 되찾은 낮섬의 민낯은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마젤란과 뒤늦게 합류한 루치가 선봉에서 승기를 이끌었지만 오천 이상의 병사를 잃었다. 고작 수백의 마물에게 철옹성 중 하나인 사법 섬이 당한 것이다. 그것도 세계 각국의 귀빈들을 모셔놓고서. 이는 상처뿐인 승리가 아닐 수 없으니 루치는 시체가 산을 이룬 본섬을 돌아다니며 끓는 속을 애써 다스렸다. 와중에도 숨이 붙은 놈들은 시체를 파먹고서라도 살 궁리를 했으니 루치는 일일이 숨통을 끊기 위해 쉬지 않고 발품을 팔았다. 모든 일이 끝나고서야 안전한 벙커에서 나온 귀빈들은 서로 먼저 돌아가겠다며 아우성이었으니 뒤쪽 작은섬에 연결된 정박지는 진작 인산인해를 이루고도 남았다. 그 직전에 빈스모크에서 연락을 받고 왔다던 양머리 선수상의 캐러벨급 함선이 제일 먼저 도착해 그 일행이 첫번째로 빠져나갔다. 이는 레이주를 비롯한 빈스모크 왕실이 전부 지상에서 직접 전투를 치른 덕이었다. 루치도 마물에게 습격당할 뻔한 칼리파 등을 구해줬다는 말을 듣지 않았나. 때문에 아직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틈에 빠져나가던 그들을 제대로 확인할 만한 인력은 없었다. 직후 두 번째로 도착한 건 홍학 선수상의 플라밍고 호였으니 밀짚모자 탈옥 사태까지 포함해 제대로 확인하라는 루치의 지시를 무시한 건 스팬담이다. 젊은 왕이 두꺼비처럼 부풀어오른 목 전체에 부목을 대고 실려왔으니. 크로커다일의 능력으로 모래 침대에 둥둥 떠받쳐서 오던 삼미터 거구는 얼굴빛도 보라색으로 변해 곧 죽을 둥 말 둥했다. 그리고 지난밤 젊은 왕의 목이 뜯긴 걸 기억했던 스팬담은 행여 의식이라도 돌아온 이가 저를 문책할까 루치의 명령을 이행하려는 병사들을 다그쳤다. 덕분에 수월하게 배로 돌아온 크로커다일은 올 때와 같이 분홍 깃털 코트에 폭 감싸인 조로를 안고 있었다. 그렇게 예정보다 이른 귀항에 이르러 미리 연락을 받고 달려나온 로우는 다 죽어가는 정인을 품에 안은 채 무너져내렸다.
‘조로야…….’
그것은 깊은 탄식과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한조각
“그래.”
나미의 물음에 크로커다일이 진한 씁쓸함을 삼키며 답한 다음이었다. 비비를 걱정한 페루가 난리통을 뚫고 나타난 건. 하늘을 점령한 마물 사이를 능숙하게 비행하던 팔콘 한 마리는 이들 앞에서 순식간에 체격 건장한 남성으로 변했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문양이 들어간 흰색 도포 차림을 한 남성은 새새 열매 모델 팔콘의 능력자였다.
“공주님! 무사하십니까?”
“페루? 여기 왜 온 거야? 난 걱정 말고 벙커로 들어가랬잖아!”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단정한 이목구비와 안정정인 음색이 듣기 좋은 남자는 차분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비비는 페루의 얼굴에 난 생채기를 보고 두 눈이 동그래졌다. 오랜만에 그를 본 나미 역시 손인사를 하면서도 페루의 얼굴 상처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물한테 당한 거야?”
“조금 스친 것뿐입니다. 공주님이 신경쓰실만 한 일이…….”
“대체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야, 페루는?! 나는 여기 레이주 왕세녀님도 있고 크로커다일 경도 있고 또 나미랑 로빈 같은 친구들도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다고 했잖아! 본인 몸을 소중히 할 줄 알아야지!”
“공주님…….”
비비는 일이 터지자마자 전보벌레로 지시를 내렸었다. 그런데 페루만이 말을 듣지 않고 찾아온 거였다. 그것도 마물이 점령한 하늘을 무리해 날아오면서. 그러느라 몸 곳곳에도 자잘한 생채기가 즐비했으니 비비는 제 말을 듣지 않은 페루에게 화가 났고 또 속상했다. 백성을 긍휼이 여길 줄 아는 공주는 십년 내란 동안 너무 많은 아픔과 죽음을 목도했다. 특히 가족이나 다름없던 사람들이 당한 고통은 은연중에 비비의 내면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때문에 비비는 페루의 자잘한 상처에 큰일이라도 난 얼굴이었고 이를 지켜보던 상디의 낯빛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이에 역시 비비를 잘 알고 있던 나미가 나선 것도 당연했다.
“몇년만에 보는데도 잘생긴 건 여전하네, 페루. 그래도 이번엔 페루가 잘못한 거야. 예쁜 얼굴에 생채기가 났으니 비비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간만에 보는 나도 이렇게 안타까운데. 그렇지, 비비?”
“뭐?! 아니, 난…!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뭔데? 설마 페루가 미남이 아니라고?”
“으응? 아니, 페루가 잘생긴 건 맞지만……! 이제 화 안 낼 테니까 그만 놀려, 나미. 부탁이야.”
나미의 환한 미소에는 한여름, 푸르른 바닷가와 같은 청량함이 있었다. 더불어 청산유수의 언변을 더하니 비비의 불안정해지던 마음이 순식간에 차분해진다. 이 또한 그만의 장점으로 내란 종결 직후 코브라 국왕이나 이가람은 나미의 부재를 무척 아쉬워했다. 단순히 곁붙이로서가 아닌 차기 알라바스타를 이끌 공주의 정치적 파트너로서도 손색없는 인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고작 열 너댓이나 됐을 법한 소녀는 로빈을 지켜주기로 먼저 약속했다며 시원하게 어른들의 제의를 거절했었다. 끝으로 비비는 제 선택을 이해해줄 거라는 말도 남기고. 나중에야 사정을 들은 비비는 어른들이 왜 한심한 짓을 했느냐 제 아비와 아저씨들을 나무랐으니 이 둘은 지금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단짝이었다. 때문에 페루 역시 나미의 노고를 감사히 여기면서도 주제가 주제니만큼 얼굴이 붉어지는 건 별수 없었다. 그리고 제일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던 크로커다일이 이틈에 자리를 피하려던 순간이었다. 비비 공주를 걱정해 달려온 건 페루만이 아니었다.
빈스모크가 머물던 건물 밑 벙커에는 시중들과 이곳을 경호하던 해병이 들어가 만석이었다. 오직 귀빈만을 위한 공간이었으니 사치스럽게 꾸며진 내부 공간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비비는 병사 하나라도 더 들이고자 제 자리를 거절한 거였다. 그러나 전세가 변화를 보이려 함을 눈치챈 나미는 더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피력했고 일행은 찢어졌다. 내심은 나미들과 함께 모험하고픈 피가 들끓는 비비였지만 그녀는 한 나랑디 공주였다. 때문에 짧은 인사를 끝으로 헤어질 때 레이주는 비비를 호위하라며 이치디, 니디를 남게 했다. 크로커다일이 겨우 그들에게서 떨어져 마물만 덩그러니 침대에 묶인 건물로 돌아온 게 이때였다. 그렇게 남은 일행이 추적기의 온점을 쫓아 이동하던 중 상디가 오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건물 사이로 사라지던 두 사람을 발견한 게 일행이 또 한번 나뉘는 계기가 됐다.
‘찾았다! 마리모랑 …가 저쪽으로 갔어!’
사방에 해병이 깔린 마당에 상디는 루피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걸 피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약 한 시간 전 본섬 내 쩌렁쩌렁하게 루피의 탈옥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잖은가. 이를 의식한 외침에 추적기를 주시하느라 한박자 늦게 머리를 든 나미의 표정은 의아함이 가득했다. 물음은 로빈에게서 나왔다.
‘마리모라니?’
또 다른 존재가 루피라는 건 모두 눈치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나온 ‘마리모’는 분명한 실책이었다. 상디가 뜨끔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릴 때 나미, 로빈의 시선은 뚫어질 듯 그를 보고 있었다. 이 둘과 조로에 대해 얘기나눌 당시의 상디는 전부 그를 그녀로 인지했을 때다. 그러니 바로 눈치채는 건 무리라는 걸 알지만 상디는 여성에게 무한정으로 약했다. 그는 두 사람이 조금만 추궁해도 술술 불어댈 걸 알고 있었다.
‘흐음….’
실제는 일초쯤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영겁같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미의 미묘한 숨소리가 들려온 건. 상디로부터 진작 조로의 존재도 상태도 들어 알고 있던 레이주는 동생을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미가 다시 입을 여는 시간이 일초만 늦었어도 상디가 알아서 인실직고했으리라 확신했다.
‘지금은 우선순위부터 해결하자. 그래서 둘이라고, 상디군? 우솝은 없었어?’
‘네에~ 나미씨이~! 확실히 둘이었답니다!’
‘이상하네. 이미 탈출한 애를 우솝이 못 찾았을 리가 없는데.’
나미는 확신했다. 그렇다면 우솝에게 문제가 생긴 거라고. 루피가 옥살이를 하며 곤욕을 치렀을지언정 우솝은 녀석의 물리적 강함과 견줄 바가 못 된다. 그 외적의 거의 전반적인 부분에서는 우솝이 루피를 훨씬 웃돌았고. 때문에 지금 같은 전장터라면 나미는 홀로 떨어진 우솝이 더 걱정됐다. 그 심중을 헤아린 상디가 제안한 결과가 지금이었고.
“헤… 이런 걸 나미씨는 어떻게 알아보고 찾았던 거지?”
나미에게서 추적기를 받은 상디는 홀로 루피와 조로를 찾는 중이었다. 이미 어디로 모일지 얘기를 들은데다 우솝도 추적기를 가지고 있으니 여차하면 이것이 일행이 모일 장소의 지표가 돼주지 않은가. 다만 문제는 손바닥만 한 발신기 위 온점이 하나라는 것뿐이었다. 발신기 화면은 덧그려진 지형은 커녕 흑색이 전부였는데 그 위에 뜬 온점은 거리가 가까워지면 커지고 멀어지면 작아졌다. 오직 이것만으로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이 자아낸 미로같은 골목길을 헤치고 루피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나미는 이것을 보고 거침없이 쭉쭉 나갔지 않은가. 이는 우솝 역시 마찬가지로 길눈이 밝은 축에 속하던 상디는 이 두 사람의 머리속이 신기하기만 했다.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머리속에 공간을 구성하는 능력의 천재성 때문이었다. 그런고로 상디도 루피를 찾는 건 제게 맡기고 우솝을 찾으라 자신있게 말한 것치고 난항 중이었다.
상디가 두 사람을 찾아 헤매던 그때 블루노는 지진이라도 난 듯 깨진 암반 위에 있었다. 소문으로 들었지만 몸으로 직접 느껴본 강함은 차원이 달랐다. 젊은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블루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이제 끝이다. 점멸하는 시야 사이로 젊은 왕의 다리가 긴 호선을 그리는 것을 보며 블루노는 생각했다. 도피 역시 이렇게 된 마당에 로우를 애먹인 놈을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그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던 순간이었다.
“모래폭풍!”
“으악!!”
“ㅡ!!!”
도플라밍고가 날아갔다. 본능적으로 몸을 한껏 움츠려 불상사를 피한 블루노의 정면에 자리한 이층 건물은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콜록!”
사방에 모래먼지가 자욱하니 기침이 나오는 그때 너머로 보이기 시작한 인영은 블루노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안도감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
“루피는 건드리지 마, 크로커다일! 당신 상대는 나라고 했잖아!!”
‘롤로노아? 어째서……?’
블루노가 젊은 왕을 상대한 게 못해도 삼사십분은 족히 됐으리라. 그 시간이면 못해도 본섬 중간쯤에는 갔어야지 않을까. 한데 왜 건물 하나 너머에서 나타났을까. 머리속에 의문이 가득할 때였다.
“쟤 길치다. 으… 망할 고무 같으니.”
블루노의 생각을 읽은 양 루피의 쿠션이 돼 함께 건물에 처박혔던 도피가 걸어나오며 말했다. 한 손에는 기절한 밀짚모자를 질질 끌고서. 블루노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조금 전 자신과의 전투에서 젊은 왕은 여유가 넘쳤더랬다. 이를 단순히 힘의 차이 때문이라 봤던 블루노는 이제야 언제든 롤로노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더해져서였음을 깨닫는다. 저렇게 심각한 길치라면 블루노와 밤새 놀아주고도 찾았을 터다, 젊은 왕은. 그러나 어느새 블루노 옆으로 온 그는 밀짚모자를 바닥에 떨궈놓으면서도 심기 불편한 얼굴이었다. 아직 날리는 뿌연 모래먼지 사이로 건물 너머의 말다툼이 계속되고 있었다.
“너야말로 두 발로 서있는 게 고작인 놈이 입만 살았구나. 대체 네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지?”
“그 얘기 좀 안 할 수 없습니까?? 나는 멀쩡해! 그러니까 어차피 칠 거면 나부터 하라고!!”
“약한 녀석은 어찌 죽을지도 고르지 못하는 법이다, 롤로노아. 그러니 넌 놈이 죽는 걸 지켜보기나 해라! 사막의 보검!”
“루피!!”
모래가 순식간에 땅을 길게 가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블루노가 몸을 굴러 회피했을 때 대지를 가르는 절삭력의 모래줄기는 정확히 루피를 노리고 들어왔다. 그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있던 도피는 혀를 차더니 기절한 루피를 발로 굴렸다. 찰나에 루피가 블루노 쪽으로 구르고 모래줄기가 바로 옆을 스친다. 그 뒤로 건물이 종이처럼 잘리는 스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때만큼은 누구라도 사방을 에워싼 포탄 소리와 마물의 괴성보다 크로커다일이 더 공포로 느껴질 터였다. 유일하게 이를 아랑곳 않은 것은 루피를 살리는데 급급한 한 녀석일지도. 도피는 창백하게 핏기 가싯 얼굴로 벌써 근처까지 달려온 조로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놈은 온몸으로 크로커다일의 기술을 막았을 것이다. 조로는 도피를 보고서도 무시한 채 루피를 살피기 바빴다. 지금껏 누적된 피로와 해루석을 차고 있는 한계, 그리고 크로커다일에게 당한 상처까지 더하니 만신창이가 따로없었다. 그럼에도 녀석을 다시 짊어지고 벗어나려는 조로는 처절함마저 느껴졌다. 블루노 역시 조로의 목에 자리한 카쿠의 손수건이 영 마음에 걸렸고. CP9인 그들은 암약첩보원으로 임무라면 살인도 불사했다. 여기에는 타고난 기질도 있었지만 그러하도록 훈련받은 것 또한 있지 않았나. 이러다 보니 연애니 가정을 꾸리니 하는 것에 관심도 인연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다고 해서 동료에게 생긴 소중한 인연을 함부로 여기고 싶지는 않은 게 블루노의 마음이었다. 그는 그린비트에 이어 오늘날 카쿠가 조로의 목에 둘러준 손수건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죽는 날까지 밀짚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내가 도와주지.”
조로를 보고만 있던 도피가 말했다. 루피의 팔을 붙들고 일으키던 조로가 멈칫했다. 마물이 내지르는 괴성이 지척까지 근접했지만 느낌은 사뭇 달랐다. 해군에서 전세를 잡은 모양이다. 이말인즉 루피의 탈출문도 좁아졌다는 뜻이니 조로는 마음이 급했다. 축 늘어진 루피를 한쪽 어깨에 둘러멘 그가 고개만 반쯤 돌아보며 말했다. 루피가 또 위험에 처한다면 구하러 가겠다고 약속했으니 조로는 이마저 저버릴 수는 없었다.
“루피만 탈출시키고 나면 돌아와 죄값은 치루겠습니다, 폐하. 그 뒤에 날 구워먹든 삶아먹든 알아서 하십쇼.”
“훗…. 로우를 믿고 배짱인 거냐? 설마 내가 너 하나 죽이지 못할까봐?”
도피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는 조로가 로우의 진심을 방패로 도발한다 생각했다. 막상 언급된 이름에 정 많고 여린 녀석이 떠오른 조로는 죄책감이 들었다지만 그뿐이었다. 루피를 구하기로 했을 때 그가 로우의 상냥함에 바란 건 알라바스타의 안녕이었다. 이것만 해도 로우는 충분히 관용을 베푼 것 아닐까. 때문에 조로는 도피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침묵했다. 입씨름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빨리 우솝을 찾아 루피를 넘기는 게 시급했으니. 제게 남아있는 시간도 부족하다. 한계점에 다다른 몸상태를 예측하며 조로가 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헉!”
“롤로노아!”
소리 없이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가 등을 깊숙이 파고든다. 블루노가 부르는 제 이름이 불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오고 시야에 들어찬 금빛 갈고리는 피를 머금은 선명한 붉은빛이다. 조로가 아주 잠깐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생각하는 동안 곁으로 다가온 블루노와 눈이 마주쳤다.
“젠장! 악어자식! 기어코 사고를 치는 거냐?!”
“방해된다. 비켜라!”
“커헉!”
도피의 방해로 몸에 박힌 갈고리가 빠져나가고 조로의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피를 한움큼 토하면서도 꿋꿋이 서있던 그는 블루노를 어깨로 들이받으며 루피를 넘겼다. 얼결에 받아든 블루노가 평소의 덤덤함과 다른 당황스런 얼굴을 할 때 또 한번 크게 휘청한 조로가 말했다.
“가! 루피를 부탁해!”
“어림없다!”
“큽!”
그순간 모래로 변한 크로커다일이 날아왔다. 바로 뒤에서 들린 음성에 조로가 검을 발도하며 돌아섰다. 흑색의 패기를 두른 검이었다. 자연계 능력자도 벨 수 있는 검. 위험을 감지한 크로커다일이 순식간에 형상을 갖추고 갈고리로 검을 부딪히니 불꽃이 튀었다. 그 뒤로 크로커다일의 공격에 저만치 멀어졌던 도피가 하늘에서 나타나더니 한 팔을 펼쳤다. 그물을 펼치듯 손에서 뻗어나온 실은 조로의 등 뒤로 거대한 거미집을 만들었다. 실로 촘촘히 짜인 벽은 본능적으로 조로를 돕고자 했던 블루노의 의도를 완전히 차단했다. 직후 바로 크로커다일을 저지하는데 동참한 젊은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뜻은 분명했음이다. 여기서 데리고 가는 건 밀짚모자까지라는. 물론 블루노는 조로의 말을 들어줄 의무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의 목에 메인 손수건과 제 품에 안긴 밀짚모자를 번갈아본 그는 결국 남은 힘을 짜내 그곳을 벗어났다. 이를 눈치챈 크로커다일의 공세가 더욱 격렬해지니 처음의 일격을 막아낸 게 전부인 조로를 지키면서 홀로 그를 상대해야 되는 입장의 도피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크로커다일은 죽는 날까지 밀짚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도와주겠다는 도피의 말을 조로가 거부했을 때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유일하게 이것을 눈치챈 도피는 제 뒤에서 무너지듯 무릎 꿇던 조로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밀짚모자는 이제 여기 없다! 그러니 두번 다시 놈을 보지 않겠다고 맹세해라!”
“그런 거… 큭!”
“그냥 하라면 좀 해! 벽창호냐?!”
지금은 거짓말이라도 필요했다. 악어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라도. 현재 도피는 요령 좋게 공격을 피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놈을 상처 없이 제압하기란 도피도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너 진짜 죽일 생각이야?!”
“마침 미스터 투도 여기 와 있으니 잘됐지! 롤로노아의 대체재는 준비돼 있다! 도피, 너도 해본 일이니 잘 알테지?!”
왜 이리 눈이 돌았나 싶더라니 도피는 악어를 설득하려다 도리어 말로 역공을 당하고 말았다. 지난날 알라바스타에서 그가 미스터 투, 벤담을 욘디에게 보냈던 걸 크로커다일이 알아버린 모양이다. 애당초 도피는 이 일을 비밀에 붙인 적이 없다.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싫은 사람들이 크로커다일 앞에서 입을 다문 게 화근이었다. 그도 다른 때라면 넘어갔을 텐데 시기가 좋지 못했다. 하필 오늘, 페루가 비비를 데리러왔을 때 지상에서 뛰어오느라 조금 늦은 미스터 투, 벤담이 합류했으니. 생각도 못한 장소에서 친구를 본 욘디의 반가움이 어떠했으랴. 물론 벤담도 막역지우가 반갑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아무리 눈치를 줘도 얼싸안기 바빴던 욘디는 비비의 궁금증에 이야기를 죄 풀어버리기까지 했다. 이로써 여전히 저희 넘버들의 진짜 사장인 크로커다일과 맞딱트린 벤담은 식은땀이 줄줄 흐른 시간이었다. 그러니 지금 순간 크로커다일의 분노에는 도피의 지분 또한 상당함이다. 말이 통하는 녀석이라 생각한 조로의 배신은 지금껏 도피가 아슬아슬하게 깔짝이는 선에서 끝난 도화선을 확실히 터뜨린 꼴이었다.
“새대가리 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코라손이 살아있을 때도 너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었으니까!”
“언제적 코라손이냐, 악어자식! 녀석이 죽은 게 언젠데 갑자기 로시 얘기를 꺼낸다고?!”
“너희 무늬만 부자인 놈들이 여태 내가 말할 기회나 준 적 있던가?! 항상 너희 두 놈 상처가 먼저였지! 정작 둘 다 녀석을 울리기만 했으면서!! 로시가 살아생전 울었던 이유는 전부 다 징글징글한 너희 두 놈 때문이다!!”
“하?! 그렇게 내 동생을 아꼈다면 너야말로 어째서 로시가 죽도록 방관한 거지?! 네놈이 소인족 공주를 써먹었다면 로시는 지금도 살아있을 거다! 로시의 죽음에 네 책임이 얼마나 큰 지 알고 있는가?! 나는 그럼에도 관대히 너를 살려줬다, 악어자식!!”
“그거야 네가 아직도 코라손의 유언을 듣지 못했으니까지!! 유언을 들은 즉시 날 죽일 생각이었다는 걸 모를 거라 생각하나?!”
“키에엑!!”
“저리 꺼져!!”
두 사람의 격투에 건물이 죄 휩쓸려나간 주변은 공터를 연상케 했다. 소란에 이끌려 날아온 마물은 삼미터를 넘는 거구였음에도 도피와 크로커다일의 합동 공격에 벌집이 돼 널브러졌다. 놈들에게 악마의 능력이 반감된다 해도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만큼 놈들을 능력으로 처리할 때의 체력 소모가 심하므로 무기를 드는 것일 뿐. 하지만 눈이 홧홧할 정도로 열 받은 상황이라면 역시 능력이 편했다. 마물이 순식간에 다짐육처럼 변한 처참한 장면을 목도한 조로는 아무리 그라도 비위가 상함을 느꼈다. 동시에 오래전 마물의 목이 썰린 걸 보고 토했던 로우가 떠오름에 녀석이 더 안쓰러워진다. 마물을 처리하고 또다시 세상의 종말을 고하듯 싸우는 두 사람을 보자니 로우가 바르게 자란 것이 용할 정도였다. 이렇게 조로가 가물거리는 정신을 겨우 다잡을 때였다.
“핑계대지 마라, 악어자식! 너야말로 로시의 유언을 혼자 간직하고 싶어서 입을 다문 거면서!! 내가 널 모를까?!”
“닥쳐라, 새대가리!!”
“큭!”
또 한번 대지를 가르고 직선으로 날아오던 모래 칼날에 도피는 피하지 않았다. 그 뒤쪽에 조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실로 그물을 펼쳐 방어했지만 이럴 줄 알았다는 양 모래먼지에 숨어 날아온 크로커다일이 있었다. 그는 그물을 간단히 뚫고 도피에게 상처를 냈다. 목줄기를 따라 길게 덧그려진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문제는 크로커다일이 금빛 갈고리를 벗겨냈다는 데 있었다. 그 안에는 전갈 독이 뚝뚝 흐르는 갈고리가 자리했다. 하지만 도피는 진작 이 전갈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운 상태다. 그러므로 살짝 베인 상처에 위험할 일은 없지만 독이 중화될 때까지 퉁퉁 붓는 것은 당연하며 매우 성가시고 기분 나쁜 통증을 동반한다는 게 문제였다. 크로커다일도 의도하고 부러 상처를 낸 것 아닌가. 이를 모를 리 없던 도피가 신경질적으로 노려보니 그는 금빛 갈고리를 불러들인 뒤 덮어씌우며 한결 후련한 얼굴을 했다.
“너 이자식!”
“됐으니까 조로의 상처 봉합이나 해라, 도피.”
이젠 또 제 기분 좀 풀렸다고 조로라 부르는 녀석에 도피는 기가 찼다. 크로커다일도 어떤 의미로는 뻔뻔하기가 매한가지였다. 그는 도피의 능력이라면 조로의 몸에 난 구멍도 바로 처치 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이후 상처를 완전히 아물게 하는 건 로우에게 데려가면 될 일이고. 때문에 조로의 배를 뚫었지만 미안한 감정은 없었다. 조로가 돌연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까 크로커다일은 마약성 진정제를 맞은 조로가 멀쩡히 돌아다니기까지 제 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긴 밤이 지나고 어둠이 걷힌다. 여명이 밝아오듯 해를 되찾은 낮섬의 민낯은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마젤란과 뒤늦게 합류한 루치가 선봉에서 승기를 이끌었지만 오천 이상의 병사를 잃었다. 고작 수백의 마물에게 철옹성 중 하나인 사법 섬이 당한 것이다. 그것도 세계 각국의 귀빈들을 모셔놓고서. 이는 상처뿐인 승리가 아닐 수 없으니 루치는 시체가 산을 이룬 본섬을 돌아다니며 끓는 속을 애써 다스렸다. 와중에도 숨이 붙은 놈들은 시체를 파먹고서라도 살 궁리를 했으니 루치는 일일이 숨통을 끊기 위해 쉬지 않고 발품을 팔았다. 모든 일이 끝나고서야 안전한 벙커에서 나온 귀빈들은 서로 먼저 돌아가겠다며 아우성이었으니 뒤쪽 작은섬에 연결된 정박지는 진작 인산인해를 이루고도 남았다. 그 직전에 빈스모크에서 연락을 받고 왔다던 양머리 선수상의 캐러벨급 함선이 제일 먼저 도착해 그 일행이 첫번째로 빠져나갔다. 이는 레이주를 비롯한 빈스모크 왕실이 전부 지상에서 직접 전투를 치른 덕이었다. 루치도 마물에게 습격당할 뻔한 칼리파 등을 구해줬다는 말을 듣지 않았나. 때문에 아직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틈에 빠져나가던 그들을 제대로 확인할 만한 인력은 없었다. 직후 두 번째로 도착한 건 홍학 선수상의 플라밍고 호였으니 밀짚모자 탈옥 사태까지 포함해 제대로 확인하라는 루치의 지시를 무시한 건 스팬담이다. 젊은 왕이 두꺼비처럼 부풀어오른 목 전체에 부목을 대고 실려왔으니. 크로커다일의 능력으로 모래 침대에 둥둥 떠받쳐서 오던 삼미터 거구는 얼굴빛도 보라색으로 변해 곧 죽을 둥 말 둥했다. 그리고 지난밤 젊은 왕의 목이 뜯긴 걸 기억했던 스팬담은 행여 의식이라도 돌아온 이가 저를 문책할까 루치의 명령을 이행하려는 병사들을 다그쳤다. 덕분에 수월하게 배로 돌아온 크로커다일은 올 때와 같이 분홍 깃털 코트에 폭 감싸인 조로를 안고 있었다. 그렇게 예정보다 이른 귀항에 이르러 미리 연락을 받고 달려나온 로우는 다 죽어가는 정인을 품에 안은 채 무너져내렸다.
‘조로야…….’
그것은 깊은 탄식과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한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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