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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3:30
센티넬버스au 판석백호 백호른ㅈㅇ
괴물들이 삼켜버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자신도 괴물이 되어야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얄팍하기 짝이 없어 선을 밟고서 발을 내딛을 때 어느쪽이 삶이고 죽음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내딛은 이 첫발이 과연 삶인가. 아니면 죽음인가. 선에 멈춰선 채 고민하고 되뇌인다. 정답은 없으므로 결국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운명은 잔인하게 선택의 순간 눈을 가린다. 한치도 보이지 않은 어둠 속에서 운명에 몸을 맡겨야 한다.
시끄러운 경고음이 건물 전체에 울려퍼졌다. 사지가 포박된채 이동형 들것으로 이송되며 시야로 휙휙 지나가는 백열등이 정신을 사납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는 화를 냈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토하고 싶었으나 혀를 짓누른 재갈이 방해했다. 웅성되는 소음 속에 폭주라는 단어가 귀에 박혔다. 아프다. 온몸이 아팠다. 피부가 칼로 저며지는 끔찍한 아픔이 뇌를 흔들었다. 울음을 쏟아내고 싶어도 눈이 아파 할 수 없었다. 이명에 귀가 아팠고 숨 쉬는 것 조차 괴로웠다. 아파. 아파. 길 잃은 어린애처럼 울부짖고 싶었다.
백호야, 정신 차려. 버텨야 해. 지금 정신을 놔버리면 정말 끝이야. 절박하게 몸을 붙들고 누군가 소리쳤다. 익숙한 목소리, 기억에 남아있는 체온이다. 허나 백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통제 없이 마구 날뛰는 감각들이 그를 죽이고 있는 중이다. 싫다. 죽고 싶지 않아. 아파. 너무 아파. 백호는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니까 자신은 지금 환각을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습지도 않지. 전쟁통같은 혼돈속에서 그는 이질적으로 고요하고 서늘히 백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순이지. 괴물을 맨손으로 찢어죽일순 있어도 저 자신도 같이 망가져버린다니.
그 말은 사실이다. 감히 반박할수 없는 진실이 고통에 깊이를 더했다. 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화나보이기도 했고 슬퍼보이기도 했다. 전혀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크고 흰손이 백호의 얼굴을 덮었다. 울음에 짓무른 뺨을 쓰다듬다 입안을 메우던 재갈을 풀어냈다. 타액에 절어 풀려버린 혀끝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그가 웃었다. 시간낭비는 이제 지겨워. 어차피 넌 선택을 해야 해. 이해 할수 없다. 백호는 코를 훌쩍이며 눈을 감았다.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뱀처럼 서늘한 손이 다물리는 입을 강제로 벌렸다. 날 너무 기다리게 하지마. 그는 고개를 숙여 입안으로 혀를 비집어 넣었다.
묵직한 두통이 알람처럼 머리 전체를 울렸다. 백호는 머리를 감싸쥐며 신음을 흘렸다. 눈도 채 뜨질 못하고 끙끙대고 있으니 벗은 상체위로 휘둘러져있던 팔이 스물스물 움직여 등허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두통이 사라졌다. 그제야 백호는 찌푸렸던 얼굴을 펴고 다시 배개에 머리를 푹 뉘었다. 악몽이라도 꿨어? 곁에서 다정한 물음이 들렸다. 백호는 사지가 누슨한채로 눈을 깜빡였다. 악몽을 꿨었나. 가만히 눈을 굴려보았지만 끈 조각으로라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백호는 그저 크게 하품을 했고 여전히 등허리에 머무는 손길을 얌전히 받았다. 지금 몇 시?
악몽을 물었던 이의 반대쪽에서 잠에 푹 절여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불을 푹 뒤집어쓴채 정수리만 보여주던 이는 느릿느릿하게 시트를 걷어냈다. 그는 백호와 같이 크게 하품을 하며 부스스한 곱슬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훈련있지 않아? 태섭의 말에 늘어져있던 대만과 백호가 놀란 얼굴로 시계를 찾았다. 이번에도 지각하면 대장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었지. 태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계를 확인한 대만과 백호가 사색이 되어 허둥지둥 침대를 벗어났다. 알몸둥이로 굴러떨어지듯 침대를 벗어나 서로 먼저 씻겠다고 샤워실 입구서부터 투닥대는 둘을 지켜보며 태섭이 짧게 혀를 찼다.
샤워는 꿈도 못꾸고 거진 물칠만 한 수준으로 잽싸게 씻고 나왔지만 대만과 백호는 훈련시간에 늦어버렸고 덕분에 소대장에게 단단히 찍혀 기합을 받았다. 억울한 부분은 늦게 일어나긴 사이좋게 늦게 일어나 놓고 태섭이 깔끔하게 치장한 상태로 먼저 도착해있던 부분이다. 둘이 욕실에서 물줄기 하나를 놓고 싸울동안 태섭은 급하지도 않게 공용샤워실에서 여유롭게 머리세팅까지 마치고 뻔뻔한 표정으로 기합받는 둘을 구경했다. 대만과 백호는 공공의 적이 생겼고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태섭은 콧방귀만 뀔뿐이었다. 상습지각범인 골칫덩어리들에게 가차없는 소대장의 괘씸죄가 추가되어 아침 훈련은 곡소리가 절로 나올정도로 고되기 짝이 없었다.
정부에 소속된 군인신분으로 쉘터 생활은 거진 훈련과 잠, 식사로 단순했지만 백호는 적응력이 빠른 편이었고 식사 부분에 있어 몹시 만족했다. 쉘터를 감싸고 있는 인공 결계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면 방사능과 데브리로 잔뜩 오염된 땅과 맞딱드린다. 생존자는 극히 적었고 설사 있다한들 평범한 인간이라면 온갖 질병에 노출되어 있을 것이고 거기서 한번더 살아남았다 한들 사방천지에 있는 괴물들이 있었다. 백호는 바깥의 척박한 환경도 괴물도 무섭지 않았으나 굶주린은 두려웠다. 백호는 공복의 괴로움을 잘 알았다. 풀한포기 제대로 나지 않는 외부완 달리 푸른 채소와 육류반찬으로 가득한 식판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백호는 합장을 했다.
천천히 먹어. 양볼 가득히 밥을 우겨먹는 백호를 보며 대만이 타박했다. 말은 그렇게해도 대만은 자신의 반찬을 덜어 백호에게 양보했다. 옆에서 일찍히 식사를 마친 태섭이 턱을 괸채로 백호를 구경하다 눈썹을 들어올렸다. 신입들이네. 태섭의 말에 대만과 백호의 시선이 돌아갔다. 딱 보기에도 어깨에 긴장을 단채 빠짝 굳어있는 신병들이 구석 한켠에 자리잡고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애기들이구만, 애기들이야. 태섭이 노인네같은 소릴하자 대만이 맞장구를 쳤다. 백호는 그보단 눈앞의 식사에 더 관심이 쏠려있었기에 시큰둥하게 수저를 들어올렸다. 그러다 한 신병하고 눈이 마주쳤다. 주위의 바짝 긴장한 신병들과 달리 그는 기이할 정도로 느긋하고 느슨해 보였다.
앉아있었지만 흘려보아도 덩치가 좋았기에 대만과 태섭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백호보다 훌쩍 크겠는데? 다 재수 없어. 대만이 말하자 태섭이 짜증을 부렸다. 백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덩치 좋은 신병은 여전히 백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언뜻 반가움에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럴리 없었다. 백호는 저 신병을 오늘 처음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배부르게 식사를 마쳐가는데도 미묘한 허기가 위장을 간질였다. 아이고, 우리 백호 뚫리겠다. 쟤 왜저래? 첫눈에 반했나. 선배, 주책맞아요. 태섭의 타박에 대만이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이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늘상 투닥대기 바쁜 대만과 태섭을 번갈아보던 백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때 저를 빤히 쳐다보던 신병은 떠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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