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호의 산왕전 활약이 북산 일반학생들에게도 꽤 알려진 덕분에 재활 후 복귀한 1학년 2학기 들어와 강백호 인기 많아짐 서태웅의 새 발의 피였지만 2학년 들어서는 강백호도 이따금 신발장 러브레터까지 받게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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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서태웅과 강백호 등교 시간대가 맞아 교문 앞에서 마주쳤음 같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 서태웅이 자전거 보관소에 통학용 자전거를 매는것까지 강백호가 기다려줬어 강백호가 조잘거리면 서태웅 음 하고 제대로 반응하며 학교로 들어왔음

신발장 앞에서 나란히 신발벗고 실내화로 갈아신는데 강백호 실내화 꺼내다가 바닥에 러브레터가 떨어진거임

"어..!"

강백호 바닥에 떨어진 러브레터를 조심스럽게 줍고 한번 손으로 쓸어봄 그리고 소중히 가방 안에 넣음

그 모습을 옆에서 눈 한번 떼지않고 지켜보던 서태웅은 급격히 기분이 안좋아졌어 자신도 수십개 받는 러브레터가 뭐라고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건지 모르겠어 기쁜듯 쑥스러운듯 볼이 붉게 상기된 강백호를 가만히 쏘아보다가 서태웅 툭 내뱉음


"야."

"누?"

"나도 받았어, 러브레터."

서태웅이 신발장에서 잡히는대로 러브레터 뭉텅이를 꺼내 손에쥐고 강백호 눈 앞에 들어보임 서태웅 생전 처음 하는 짓이야


"??"

뭐 어쩌라는 건지. 여우자식 러브레터 받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잖아

"......"

"......"

멀뚱멀뚱 아무 반응 없는 강백호를 불만스럽게 쳐다보면서 서태웅은 생각했어 나는 쟤가 러브레터 받은 것만 봐도 이렇게 속이 뒤집어지는데 멍청이는 왜 아무렇지 않은거지


"........."

강백호를 한참 쏘아보다가 몸을 휙 돌려 먼저 가버리는 서태웅. 그런 서태웅을 강백호가 "야 여우자식아 같이 가!" 하고 황급히 쫓아갔어


2학년 탱백 같은 반이었고 둘 다 덩치와 키때문에 제일 뒷자리 구석에다 짝궁이어서 서로 꽤 가까워졌음 절친은 아니어도 악우정도는 되었지

그런데 강백호는 도통 이유를 모르겠어 아까 교문 앞에서 만났을때는 아침에 약한 잠탱이 여우답지 않게 자신을 또렷한 눈빛으로 쳐다봤고 꽤 기분 좋아보였는데 학교 들어와서는 내내 기분이 안좋아보이는거야

'이 녀석. 막상 학교 들어오니 수업 들을 생각에 나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나?'

그렇다기엔 서태웅 다른 건 평소같았어 영어수업도 제대로 집중해서 듣고. 딱 한가지 강백호가 말을 걸면 반응을 안하고 쉬는 시간에는 계속 엎어져 잠만 자는거야.. 강백호와 잡담조차 나누기 싫다는 듯이.. 이건 평소의 여우와 너무 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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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너 잘났다 러브레터 나보다 많이 받은거 대단하다 부럽다 됐냐?"

비꼬는거 반 달래려는 의도 반
계속 자신을 무시하는 서태웅에 참다참다 못해 결국 강백호가 백기를 들고 말았음

강백호가 아침 일을 곰곰히 생각해보다 결론내린 건 그 전까지는 기분 좋다가 자신이 러브레터 받은 걸 보고 여우 기분이 나빠진게 확실하다는 거였어

"......!"

점심도 굶고 내내 엎드려있던 서태웅이 러브레터 소리에 벌떡 일어나 옆자리 강백호를 쳐다봤어 좀 더 얘기해보라는 눈빛이었지

"여우자식 못말리겠네. 천재가 러브레터 받은게 그렇게 샘이 나냐! 그러니까 니 녀석은 모든 여성들의 관심을 혼자 독차지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거지? 내가 천재니까 관대하게 봐주는거다. 가진 놈들이 더하다더니만 나 원.. 초딩도 아니고.."

"............"

그런데 정답이 아니었던지, 혼자 투덜거리는 강백호를 뚫어져라 보는 서태웅의 눈에 점점 한기가 서림

"후눗-?! ..왜 그렇게 보는건데..."

"............"

'이..이게 아닌가? 그럼 여우자식.. 왜 이러는거야 대체..'

너무 차가운 서태웅의 눈빛에 강백호는 진땀을 흘리며 깜짝 놀람 얘가 왜이러는지 도통 이해가 안가...

강백호는 그 무더운 여름 날 해안가 자신을 향해 달려온 서태웅을 만나고 해묵었던 감정은 이미 다 사라진지 오래였음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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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묘한 시간이 지나고 부활동 시간.


"서태웅. 공 받아. 내가 상대해주지."

"..너랑 놀아줄 시간 없다고 했잖아, 멍청아."

"아- 그러셔?"

강백호가 눈썹을 움찔하더니 팩 토라져 뒤돌아섰어 아까부터 계속 내가 먼저 손 내밀었는데 건방진 여우자식.. 물론 서태웅이 주기적으로 저 지랄하는게 한 두번이 아니라서 강백호는 이제 신경도 안썼다



대학 생활을 만끽하다가 근처에 볼일이 있어 느긋한 마음으로 북산 농구부에 잠시 놀러온 대만이가 태웅백호 둘이 등 돌리고 내외하고 있는 꼴을 보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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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쟤네 왜 저러고 있냐."

"태웅이 병이 또 도졌나봐요."

태섭이가 평탄한 어조로 말하며 어깨를 한번 으쓱했어

"아아 그런거였어? 난 또."

저 녀석들 여전하구나 껄껄 호탕하게 웃으면서 대만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태섭이를 내려다봤어 우리 송캡틴씨 고생이 많아- 하며 이것저것 말걸음

농구부 그 누구도 냉전중인 탱백에 신경 안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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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웅 겉으로는 무표정했지만 속으로 분통터짐


'...이번엔 진짠데.'

제일 열받는건 강백호가 신경도 안쓴다는거. 그래도 예전에는 내가 이러면 불같이 화내기도 하고 말도 붙여오고 더 관심 가져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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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우. 내가 뭐.. 잘못한거라도 있어?"

강백호가 복도에서 스쳐지나가는 내 팔을 약하게 잡아 나를 멈춰세우고 바로 손을 뗐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데 평소보다 순해진 멍청이의 멍청한 얼굴.

"......"

오직 나만 담겨있는 그 눈을 들여다보니, 아까 같은 반 녀석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친근하게 대화 나누던 강백호를 보고 생겼던 응어리가. 또 매니저에게 헤헤-거리는 강백호를 보고 생긴 검게 뭉친 기분나쁜 응어리들이 저절로 풀어져 버리는걸 느꼈다. 왜 이런 것들이 생긴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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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럴때마다 늘 멍청이쪽에서 더 얽혀오고 말걸고 가까이 다가왔는데

이제는 날 신경도 안쓰는..................

뭐지 멍청이 생각 안해야하는데 오히려 더 하잖아......
저놈은 역시 위험해 놀아주면 안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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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호 완전히 토라져서 그 후로도 연습내내 서태웅 본체만체 함

저녁시간
둘만 남아서 하는 연습도 묵묵히 각자 자신의 골대 앞에서 함


평소에 강백호는 서태웅 슛하는 모습 한순간도 눈을 떼지않고 지켜봤고 서태웅은 그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즐겼음 그리고 서태웅도 강백호 슛 폼보고 이런저런 잔소리하며 참견 했었는데 지금은 등 뒤에서 강백호의 시선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서태웅 일부러 관심 끌려고 세게 덩크슛 함 둘 밖에 없는 코트가 커다란 소음으로 진동하며 크게 울렸어 그러고나서 힐끔 강백호를 봤는데 자신을 쳐다보기는 커녕 자기 골대만 보고있어

'쳇..'

서태웅 금방 시무룩 해짐

강백호 뒤에서 슬쩍 그 모습 보고 속으로 웃었어
강백호는 서태웅이 왜 이렇게 오락가락하는지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돼서(오늘 아침 러브레터 사건처럼) 속상해하고 화도 많이 냈었지만 지금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어렴풋 알 것 같았어

저 녀석의 변덕 얼마든지 어울려주고 받아 줄 수 있었어

왜냐면
서태웅은 강백호에게 특별하니까. 앞이 보이지 않던 긴 터널같던 캄캄한 재활기간 강백호를 향해 해변가로 달려온 여우

나는 계속 앞을 보며 달리겠지만 결국 내 옆에서 나란히 달릴 너를 믿고 기다리고 있다고. 나와 같이 농구하자고. 뚜렷한 목표만을 올곧게 바라보면서 혼자 달리던 서태웅이 뒤를 돌아봐 자신과 함께 달리자고 하니까. 함께 크자고 하니까.

북극성처럼 빛을 내는 서태웅의 존재만으로 강백호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어 엄청난 힘이 돼 이렇게 복귀해서 서태웅과 함께 농구하는 지금 강백호는 무척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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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가 넘어가자 수위 아저씨가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음

뒷정리하며 대걸레로 코트 닦을때도 강백호가 끝까지 자신을 안쳐다보자 서태웅 초조해져서 못참고 말 걸어보려고 시도해봄 그런데 이젠 강백호쪽에서 눈도 안마주치고 외면해버리니 말도 못걸어

부실로 들어와서 서태웅 푹푹 한숨쉬며 라커 문 시끄럽게 여닫고 세게 침 여전히 서태웅을 존재조차 없는 양 구는 강백호에게 무언의 시위함

"......"

그래도 무시당하자 라커에 한쪽 팔을 올려 기대고 옆에서 아예 강백호를 대놓고 노려보는 서태웅에게 강백호 도저히 못참고 푸하하- 하고 배잡고 웃어버림

"여우야 이 천재가 무시하니 기분나쁘냐? 나랑 놀 시간없다고 말한건 너였잖아."

깔깔 대면서 서태웅 어깨를 툭 침


"............"

서태웅이 분한듯 입술을 깨물었어
그때 서태웅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남

"눗.. 그러게 왜 바보같이 점심도 안먹고 시위했냐? 우리집 가자."

약간 가오상해 얼굴을 살짝 붉힌 서태웅을 강백호가 어이없다는 듯 보다가 시원하게 말했어

"배고픈 여우에게 오늘은 무슨 메뉴를 선보여줄까.."

강백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음

"기분이다! 특별히 니가 좋아하는 천재표 오므라이스 해줄께."

"..뭐든 좋지만."

서태웅, 멍청이가 만든건 뭐든 다 좋다면서 눈을 반짝반짝 빛냄 오늘처럼 여우의 병(?)이 도질때마다 집으로 초대해서 먹이를 내어주면 몹시 만족한 서태웅의 병이 치유돼서 한동안 잠잠해졌거든 표정이 확 밝아지는 서태웅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강백호가 씨익- 미소지었어

멍청이의 강렬한 눈매가 웃을 때면 휘어지면서 천진해지는데 지금 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거야 부드러운 강백호의 눈빛에 서태웅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어 너무 좋다 좋아서 미칠 것 같다 아까 멍청이에게 무시 당했을때는 진창에 처박힌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단박에 하늘 높이 뛰어오를 것 같아

강백호를 볼 때마다 가슴이 간질거리고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가도 어떤 때는 너무 괴롭고 아프기도 해 이렇게 흘러 넘치는 이 마음은 대체 뭘까 이런식으로 자꾸 끌려가는게, 이 녀석 눈빛 표정 말 하나하나에 감정이 널뛰는게 도무지 자신같지가 않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낯설기도하고 문득 두려워지는거야


'..오늘까지만 멍청이랑 놀아준다. 내일부터는 진짜 안놀아줄거야.'


또또 또다시 헛된 다짐하는, 15세에 종생의 반려를 만나 첫사랑의 열병을 호되게 앓고 있는 서태웅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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