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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1 23:33
태초에 가장 먼저 태어난 겨울(水) 현무 이명헌
겨울로부터 창조된 봄(木) 청룡 정우성
봄에서 피어난 여름(火) 주작 정대만
여름을 뚫고 제련된 가을(金) 백호 송태섭








1. 수생목(水生木)



현천상제는 그의 새끼 용을 지극히 사랑했다.


현무는 처음부터 물이었기에 태곳적부터 속절없는 용의 짝이었다. 물이 나무를 살리는 것은 알에서 새끼가 태어나듯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 나무의 생은 곧 봄의 흐름에 순응하니, 산천초목이 기지개를 켜고 천지가 개화하는 입춘은 물로부터 움튼다. 대지를 덮은 얼음이 부서지며 봄의 탄생을 알리고 물은 땅으로 스며들어 그의 작고 어린 나무를 거목으로 자라게 한다.


그리하여 청룡은 생명을 관했다. 푸른 용의 가호 아래 삶은 찰나의 시간을 반짝이다 검은 뱀의 품 안에서 다시 눈을 감는다. 봄에 태어난 생명은 메아리치고 노래하며 눈이 덮이면 사라져 간다. 그리고 또다시 겨울이 지나고 얼음이 녹아 바위 위로 폭포수가 흐르면 잠들었던 씨앗은 싹을 틔운다.


명헌은 삶을 수호하는 우성을 수호했다. 그리고 사랑했다. 깊은 물을 안고 생의 감각을 갈급하는 나무처럼 우성은 명헌을 품고 또 품었다. 겨울과 봄이 등나무처럼 서로를 얽고 사바세계를 뒹군 흔적마다 꽃이 피고 풀이 자라고 다람쥐가 뛰놀고 삶이 명멸했다.







2. 화극금(火克金)



반면 주작은 처음부터 오로지 불이었다.


태산에 깃을 꽂은 주나라의 임금이 그 고귀한 새를 가리켜 저것이 곧 나이니라 했을 적에 다리 세 개 달린 가마귀는 한 입으로 태양을 삼켜 먹었다. 온 몸에서 작열하는 불길을 느끼며 주작은 이미 그가 불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신조(神鳥)의 날개란 바람이라, 한 번 펼치고 휘두를 때마다 아름다운 화염이 언덕을 덮었다. 오직 활활 타오름으로 이 광활한 대지 위에서 붉게 너울지는 불꽃, 노을, 여름.


불은 파괴가 아닌 창조로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싶었다. 만물을 새카만 잿더미로 뒤덮는 잔인한 일면 뒤에 곡식을 여물고 고기를 익혀 삶을 잇게 하는 뜨겁고 자애로운 여름이여. 그리하여 여름은 저를 헤치고 자라나는 수확의 가을을 질투하고 또 동경했던 것이다.


백호는 변화무쌍한 계절을 두른다. 여름의 화마를 뚫고 청명한 공기를 이끄는 가을에게는 여름처럼 분명한 성질이 없었다. 그는 땅 속에 묻힌 암석이기도 했고 무섭게 몰아치는 돌풍이기도 했으며 강철 같은 쇠로서 비바람을 굳건히 버티기도 했다. 그 굳건함과 꿋꿋함으로 풍요의 열매를 주고 겨울을 날 용기와 희망을 심어 품는 온화한 가을. 단단한 돌. 우직한 짐승.


제 스스로의 열조차 외로워하는 불에게 불변의 형체를 지닌 금은 자신이 되지 못한 무언가를 뜻했다. 불은 금을 갈망했다. 갈망하기에 불은 금을 상처입히고 부술 수밖에 없었다. 금의 단단한 형체는 불이 닿는 곳마다 녹아내렸다. 태섭이 대만을 사랑해온 만큼 상처는 깊었다.

왜 나를 사랑하느냐고 주작이 물었다. 너를 보고 있으면 내가 갖지 못한 심지가 부러워 너를 부숴버리고 싶다고. 백호는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나를 부숴버릴 정도로 뜨거운 존재라서 사랑했다고. 당신이 나를 극하는 기운이 너무나 아파도 놓을 수 없는 건 당신을 처음 보았던 날 불타는 태양을 한 입에 삼켜버리던 봉황새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라. 쇠는 본디 생명이 아니매 차가운 심장뿐인데 그대는 내가 본 그 어떤 광경보다도 뜨겁고 아름다워서.

주작은 후회했다. 불붙은 날개를 펴고 부리를 쪼아 백호를 밀어냈다. 내게 닿으면 너는 네 형체를 모두 잃고 사라지고 말 것인즉 내가 동경한 너의 단단함을 나 때문에 잃지 말아다오. 나는 너를 다치게 한다.








3. 목생화(木生火)



금은 사랑의 열병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불에게 닿고 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그 열기를 버티지 못하는 제 주성을 끝없이 미워했다. 불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함에 슬퍼했다. 불이 바꾸어버리는 금의 형체는 사랑에 상흔처럼 굳었다.

그런 이유로 불은 물을 찾아갔다. 물은 불의 오랜 친구였다. 사신의 우두머리인 현무에게는 불과 금의 사연에 속 깊은 부채감이 있었다. 여름은 본디 따스한 기운을 가져오기 시작하는 봄에 그 뿌리를 둔다. 타오르는 불은 잘 자란 나무로부터 피어나는 까닭이었다. 물이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가 불을 살려, 너무나 기가 세어진 불이 금을 녹이는 것이라고. 물은 말했다.

현천상제는 용을 잠시 태백산으로 보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라면서. 명헌은 우성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약천의 깨끗한 이슬을 발라 주었다.
우성은 불안해했다.

제가 불안한 건 불이 아니라 쇠입니다.
나무는 간접적으로 금을 누를 수 있어요. 제가 있어야 해요.

안 돼. 우리 중 그 누구도 흙을 갖지 못했으며...나는 물이라 너의 기운을 누르지도 못하고, 난 네가 다칠까 봐 두렵단다.








주작은 현무에게 부탁했다. 그대의 물로 나의 불을 다스려 달라고.



너무 강한 불은 쇠를 녹이지만,
좋은 온도의 불은 쇠를 달구어 더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

나의 극의(克意)가 반드시 상대를 해하는 것은 아니야. 




대만은 이것이 사랑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만 태섭에게, 아니 자기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4. 수극화(水克火)





물에 닿은 순간 불은 꺼져버리고 말았다.









우성명헌
태섭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