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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0 01:59
억지로 정우성 사람이 된 이명헌 언제 안 좋아짐.... 알못ㅈㅇ 정혼자가 있었든 규중에 갇힐 사람이 아니었든 정우성이랑 짝이 될 연이 아니었는데 억지로 혼인하게 된 이명헌.... 혼인 전엔 긴긴밤 지새우기도 하고 남몰래 제 처지에 대한 한탄을 삼키기도 했으면서 혼인 뒤에는 마치 그 자리를 위해 난 사람마냥 제 역할에 충실히 살 것 같은게 좋음. 정우성이 세자라면 세자빈 이명헌 왕실 어른들 깍듯이 모시고 공무수행 성실하고 부부간의 의무도 우성이보다 잘 챙길것같지.. 마치 세자빈이 되기 전의 저는 없었던것처럼.


불과 몇년전만해도 숱하게 전장을 누비느라 정세 돌아가는 흐름이나 국경 동태 살피는거 누구보다 잘 하면서도 지아비가 먼저 청하기 전까지 절대 조언하는 법이 없는 이명헌... 입신과는 멀어진 채 꽃과 나무가 아기자기하게 잘 가꿔진 궁 안에 단정히 앉아 서책 들여다보고 있는 이명헌.... 후사를 위해 길일에 몸 정갈히 단장하고 우성이 받아들이는 이명헌... 간택 절차는 형식이었을 뿐 저를 주저앉힌게 정우성의 뜻임을 알면서도 그에 대한 원망도 분노도 없이 그게 자기 삶의 모든것인양 수용하고 살아가는 이명헌이 좋음. 언젠가 궁중 연회나 어떤 자리에서 소싯적 명헌이 부하였던 장수들이 높은 자리에 앉은 명헌이 보면 낯설겠지. 예전 국경을 함께 누비던 상관과 치장하고 앉아있는 세자빈마마는 너무나도 달라서. 같은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아서....


형을 제 사람으로 만들고 평생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충만했던 우성이는 이명헌이 궁에서의 삶에 잘 적응했다고만 생각했겠지. 우려가 없었던것은 아니었으나..... 형은 제 아내로서 충실했으니까. 저를 지아비로 기꺼이 받아들였으니까. 시간이 흘러 둘 사이에 사내애가 셋이나 태어나고 고명딸까지 얻었을 즈음엔 처음의 그 우려마저도 희미해져있었음.


그렇게 왕자로서 가장 이상적인 길을 밟아 왕위를 물려받고 성군으로 나아가던 정우성이 세월 아래 깊숙이 묻어놓은 형의 어두운 마음을 알게 된건 맏아들의 배필을 들일 때였으면 좋겠다. 간택된 아이는 가장 곱고 영특한 규수였고 세자빈을 맞이하게 된 우성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음. 명헌이 앞에서도 우성은 오랜만에 어릴적으로 돌아가 재잘거렸지. 세자가 벌써 자라 아내를 맞았다니 믿기지가 않아요. 아직도 그 아이 갓 태어났을때가 눈에 선한데. 간택된 아이는 정말 좋은 세자빈이 될 거예요. 형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죠? 들뜬 우성의 말과 달리 미소를 짓고 있는 명헌의 입매는 조금 무거웠고...그것을 우성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저 대사를 앞두고 있는 마음이라 생각했었는데.


국혼을 앞두고 세자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던 우성은 말문이 막히는듯 했음. 명헌이 세자에게 건넸다는 전언 때문이었지.


저와 인연을 맺는 것은 그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로지 제 짝으로만 살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아마 그이는 제 사람으로 살기 위해 무수한 고민과 단념을 해야 할 것이라고. 그러니 저는 그이를 부단히 존중해야 한다고.... 명헌이 국혼을 앞둔 아들에게 전했다는 말 중 우성에게 와 꽂힌 것은 단념이라는 말이었음. 아마도 그것은 명헌 스스로의 경험에 의한 전언일 것이었지. 그렇다는 것은 명헌도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단념했다는 것일 터였음. 우성은 머리를 무엇인가로 얻어맞은 것 같았음. 우습게도, 형이 제 사람으로 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단념했으리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임.


아니. 과연 없었을까?

......

짐작하면서도 애써 외면하진 않았을까.


제가 형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사무치게 깨달은 정우성 그 길로 형한테 달려갔으면 좋겠다. 한밤중 촛불에 기대어 책을 보다 급작스런 들이닥침에 놀란 명헌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다가가 그 무릎에 엎드려 엉엉 울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우성이를 명헌이는 그냥 말없이 도닥여주면 좋겠다...걍....그랬으면 좋겠다







우성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