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철미사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올 것이 왔나보다 하고 눈 질끈감고 혼자 약속장소 나간 이명헌. 남자끼리 결혼도 하는 세상이지만 어른들은 여전히 편견이 있으니까 잔뜩 긴장하고 겁도 남.

자기 집은 너무 보수적이라 부모님과 대립할게 뻔해서, 그러다 마음에 상처줄까봐 남자친구 있다는거 말도 안꺼내고 집에도 거의 안 가고 살고 있었는데.

이명헌은 우성이도 집에 안 알렸을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음. 걔네 집이 자기집보다 오픈된 분위기여도 부모님한테 남자친구 사귄다는거, 그것도 농구 열심히 잘 하라고 보내놓은 학교에서 한 학년 위 선배랑 사귄다고 말하긴 어려웠겠지.

우성이 아직 미국 대학리그에서 뛰고있는 유학생이라 형편 넉넉한 건 아니지만 여름방학때쯤 가끔 한국 오가고 있고 며칠전에도 이명헌 집에서 2주쯤 머물다 갔거든. 그런데 우성이 부모님이 어떻게 아셨는지 이명헌한테 연락해서 한번 만나자고 하시네. 꼭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이명헌 겨우겨우 마음 진정하고 알겠다고 약속장소인 카페로 갔더니 광철미사가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음. 이명헌이랑 인사를 주고받고서 바로 본론 꺼내는 무쇠정

"이명헌 선수, 돌려묻지 않을게요. 혹시 우성이랑... 사귀어요?"

"..네."

"이번 여름에도 같이 있었고요?"

"...네...죄송합니다...."

올것이 왔다는 생각에 잔뜩 땀이 배어난 손바닥을 꾹 말아쥐며 죄송하다고 대답하는 이명헌. 귀한 정씨집안 외동아들 예쁜 밤톨을 꿀꺽한 죄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을듯. 이명헌 대답에 광철미사가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임.

"이명헌 선수, 아니 명헌군, 약소하지만 받아줘요."

미사씨가 핸드백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이명헌 앞에 내밀었음. 이명헌 개충격받음.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일어났다삐뇽... 이거 안받고 못헤어진다고 하면 물싸대기맞는거 맞지삐뇽?

그리운 우성이 얼굴과 똑 닮은 둘의 웃음기없는 얼굴에 눈물이 날 뻔했지만 이명헌은 용기를 내어 단호하게 끼어들었음.

"말씀중에 죄송합니다만, 저 우성이랑 못헤어집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우성이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우성이 오면 이걸로 둘이 맛있는 거 먹어요. 그리고,"

"네?"

"네??"

동시에 말을 하던 둘의 눈이 서로 휘둥그레짐. 옆에서 듣고 있던 광철까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머멋 하고 방청객 소리를 냄.

"아하하하하핫!!"

미사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카페에 퍼지고 곧 광철이 같이 웃음을 터뜨림.

"그러게 내가 카페 말고 고깃집으로 가자고 했잖아요. 명헌군 오해한 거 봐요."

"처음부터 너무 시끄러울거 같아서요."

얼굴이 빨개진 이명헌이 상황파악을 하려고 애쓰는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광철이 말함.

산왕시절에도 우성이가 누굴 좋아하고 있다는건 알고 있었대. 근데 그 사람 얘길 지겹게 하면서도 누군지 말은 안해주더래. 아마 선배들 중 하나지 싶었는데 시합 가서 아들내미 하는 꼴보니 딱 이명헌이더래. 그래놓고 미국 가기 전까지도 고백을 할까말까 고민고민 해놓고서 마지막 농구부 활동 마치고 집에 와서는 전화통만 붙들고 살아서 아, 명헌군이 고백 받아줬구나 했대. 공항 배웅 온 선배들 보니 둘이 사귀는거 완전 백프로야.

그런데 이번 여름에도 한국 들어올 게 뻔한 우성이가 온단 말을 안 해. 장학금 타서 돈도 있을 텐데 계속 못 온다고 어영부영 얼버무리는게 수상하잖아. 혹시 미국에 애인 생겨서 이번 방학은 못 오는거냐고 물어보니 그런 큰일날 소리 하지말라고 버럭 화를 내네. 그럼 몰래 들어와 놀래켜주려나 했는데 학기 시작할 때까지 끝내 안 오는게 영 이상해. 이 자식 내 자식 설마 한국 몰래 들어와서 이명헌만 보고 냉큼 가버린거 아닐까?

어휴 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없구나 싶었는데 둘다 학생이라 무슨 돈이 있을까 싶고... 둘 다 먹성 알아주는데 맛있는거 성에 차게 잘 먹긴 했을까 싶고... 우성이 때문에 명헌군이 돈 많이 썼을 거 같고... 생각을 하다 보니 아니근데...둘이 아직까지 사귀는게 맞긴 맞나 롱디가 2년짼데 그것부터 물어봐야 하는거 아닌가?

"그래서 오늘 명헌군을 만나자고 하게 된 거예요."

이명헌의 얼굴이 벌개짐. 정우성이 집에도 안 가고 저하고만 시간을 보내고 간 줄은 몰랐지. 여름에도 팀 훈련은 가끔 하니까 우성이한테 공항 마중은 못 나간다고 미리 말했고 우성이도 긴 말 않고 바로 명헌이 집으로 찾아왔거든. 당연히 본가에서 며칠 있다 온 줄 알았지. 공항까지 배웅 갈 때 우성 부모님이 안 나오셔서 어쩐지 이상하긴 했었는데 단 둘이 있고 싶어서 미리 인사했나보다 했었어. 생각해보니 우성이가 명헌이 자취집에서 아예 잠까지 자고 가며 머무른건 처음이었지. 한국에 평소보다 오래 있었던 거 같기도 해. 그게 본가를 안 가서 그런거였냐고 이 애새끼가!!!!

이명헌 얼굴이 새빨개지거나 말거나 할 말 끝낸 광철이 아직도 웃긴지 또 푸흡 웃음을 터뜨림.

"그래요, 많이 사랑하니까 미국에 있는 놈을 2년이나 만나주고 있겠죠. 명헌군 정도면 차고 넘치지."

옆에서 우성 닮은 얼굴로 개구지게 웃고 있던 미사씨도 거들었음.

"그래서 말인데요 명헌군, 다음에 우성이 한국 들어오면 집에도 꼭 들러달라 말 좀 전해줘요."

"맞아, 우리가 말하면 부끄러워 죽으려고 할 테니까요."

"이건 우리 성의니까 꼭 좀 받아줘요."

미사씨가 교양떠는 빌런 시어머니 연기톤으로 이명헌 손에 봉투를 쥐어주며 한번쯤 이런 거 해보고 싶었다며 또 웃음을 터뜨림. 이명헌 수치사함


추수감사절 기간에 잠깐 한국 들어온 정우성. 공항에 마중나온 명헌이형 보고 어깨춤 추면서 기쁘게 차에 탔는데 도착한 곳은 정우성 본가임.

"어??? 형?????"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쪽팔려서 못산다삐뇽. 썩 내려라삐뇽!!"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잘만 통화했는데 오랜만에 대면한 형 분위기가 장난아니라 울먹이면서 일단 내린 정우성.

"나만 두고 가요?? 형은 나 안 보고싶었어요??"

"불효자식삐뇽. 부모님은 안 보고 싶었냐삐뇽? 부모님 먼저 뵙고 와라삐뇽!"

몇달만에 얼굴 본 연하애인에게 가운뎃손가락 올려주고 후진해서 나가려는 형 차를 간절히 붙잡는 우성정. 이명헌이 가장 약한 눈물맺힌 얼굴로 애교스럽게 떼 써봄.

"혀어엉.. 그러지 말구 같이 들어갔다 가요, 응?"

할 수 없이 차 주차하고 나오는 이명헌인데 달려나와 둘을 반갑게 맞이하는 광철미사. 이명헌이 정우성 오늘 온다고 연락드렸을 때부터 이미 같이 밥 먹을 준비하고 있었겠지. 같이 인사하고 가족처럼 식사하고 다음날부턴 정우성 이명헌 팔짱끼고 이명헌이 받은 봉투 용돈으로 맛있는거 실컷 먹고 놀러다니는 조금 철없는 우성이랑 명헌이


우성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