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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01:25
고등학교 때도 고백은 많이 받았지만 그때는 뒤늦은 농구 따라잡기+인터하이 준비+윈터컵 준비라는 굵직한 일이 많았어서 전부 거절했는데 무사히 대학교까지 와서는 굳이 안 그래도 되니까 보기에 괜찮은 사람이랑 만나봤단 말이야? 근데 사람들은 연애하면 설레고 행복하다는데 대만이는 그런 느낌 없이 무덤덤함. 이 애랑은 안 맞는건가 싶어서 다른 사람들도 만나봤는데 잘 모르겠음.... 차라리 농구하는게 설레고 행복함..... 잘해주긴 하는데 어쩐지 공허해보이는게 여자친구들이 모를리가 없겠지. 그래서 맨날 차이는데 차여도 슬프지도 않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마는 정대만... 이 짓도 반년하고 그만 둘 듯. 그래도 인기는 계속 많아서 사람들이 과팅이나 소개팅 하자는 것도 다 거절함. 대신 한살 어린 고등학교 후배랑 전화하는 일이 더 늘어남.

역시 너랑 얘기하는게 더 재밌다ㅋㅋ 정대만 통화하면서 이런 말 자주 하는데 타국에서 유학중인 송태섭은 심란하기 그지 없음. 당연함. 정대만은 송태섭의 짝사랑 상대임... 물론 설레는 것도 있지만 태섭이는 심란함이 더 컸음. 자기랑 뭘 해보려는 것도 아니면서 이딴 유죄멘트 존나 날려대니까.....

“그런 말은 여자친구분한테 실례 아닌가요.”
-나 이제 여친 없어.
“또 차였어요?”
-응.
“이정도면 인성에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가?
“뭔소리야. 사람 패고 다니는 건 아니죠?”
-야 너는 사람을-! 아무튼 나 이제 여친 안 만들라고.
“왜요.”
-말했잖아, 너랑 통화하는게 더 재미있다고.

심지어 이제 여자친구도 안 만든다고 함..... 미친 거 아님? 심장 터뜨리려고 작정한 것 같음. 근데 태섭인 이제 정대만한테 더 휘둘리고 싶지 않았음. 아무 의미 없는 말 하나하나에 뜻을 부여하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고 순식간에 다시 가라앉고. 진짜 못해먹겠음. 그래서 의도적으로 정대만의 연락을 모두 끊어버렸음. 처음엔 괴로웠지만 그래도 안 보고 안 들으니 점점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음. 아 이제 정대만 잊을 수 있겠다. 감히 이런 생각도 했는데.

“선...배?”

다짜고짜 자기 집에, 그것도 미국 집 앞에 정대만이 찾아와 자기를 다짜고짜 껴안을 확률은? 누가 봐도 0% 아니야? 그러나 정대만은 그걸 100%로 해내고 마는 남자였던 거였음.

“내가 너 멀쩡해서 봐준다. 아니었으면 진짜....”
“아니 여기는 어떻게 온 거에요? 잠깐만, 선배 학교는요?”
“너랑 연락이 안되는데 지금 학교가 중요해?!”

중요하죠 그럼! 내가 어떻게 선배를 대학에 보냈는데요! 그러기엔 정대만의 얼굴이 너무 말이 아니라서 일단 들어오라고 해야했음. 뭘 믿고 온 건지 어깨에 맨 짐도 더플백 하나인데 그마저도 원정용으로 들고다니는 것 같아 보였지. 아까 다 죽어가는 얼굴은 어디 가고 신기한 듯이 태섭이 집을 기웃거리는 187cm(대학 가서도 키가 더 컸다고 함)이 꽤나 이질적이었음.

“잘 살고 있는 것 같네.”
“네. 보시다시피 잘 살고 있구요. 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건데요.”

태섭이가 먼저 거실의 소파에 앉으면 가져온 더플백도 던져두고 기다렸다는듯 냉큼 태섭이 옆자리에 앉는 대만이었음. 너무 빈틈없이 앉아서 슬쩍 엉덩이를 내뺐는데 그러자마자 다시 붙어오는 탓에 소용없었지.

“여기까지 와서 멀어지려고 하지마라.”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인식은 하고 있는 걸까.... 태섭이 심장은 미친듯이 뛰고 있으면서도 들키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리는데 그마저도 정대만이 허리에 팔을 감싸안아서 자신의 쪽으로 당겨버렸음. 이러다 잘못하면 입술까지 닿을 것 같아서 태섭이가 대만이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 밀어내면 선배라는 자식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눈썹을 꿈틀대다가 남은 팔도 태섭이 허리에 감아버리더니 태섭이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은 한숨을 쉬었음.

“너랑 연락 안 되서 나 엄청 불안했거든? 그만 좀 밀어내.”
“...선배, 그 말 좀 이상한 거 알죠.”

누가 고등학교 후배한테 그런 소리를 해요. 태섭이가 애써 농담으로 무마하려는데 대만인 오히려 더욱 세게 끌어안더니 마치 태섭이 체향을 모두 들이마시려는 듯이 목덜미에 코를 묻고 크게 숨을 쉬었음. 그 행동에 태섭이의 몸이 굳어버리고 태섭이의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뛰어댔지.

“연락 안 되니까 미치겠어서 여권도 만들고 있는 돈 털어서 비행기표까지 끊고 어떻게든 훈련도 빼서 왔단 말이야....”
“그러니까 선배가 왜 나를 그렇게까지-”

거기까지 말하던 태섭이는 문득 여태 정대만 가슴팍에 얹어진 제 손바닥 아래 세차게 움직이는 진동을 느꼈음. 저와 다를 것 없는 정대만의 심장고동이라는 걸 알자마자 설마설마 싶어진 태섭이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려 왼손을 꽉 주먹쥐었음. 아니지. 아니겠지. 설마. 아닐거야. 그럴 리가 없어. 정신차려, 송태섭.

“내가 너 좋아하는 걸 이제 알았으니까.”

정신차려.

“좋아해....”

그럴 리가 없단 말이야....

“태섭아, 좋아해...”

대만이의 고개가 어깨에서 떨어지고 다시 태섭이를 마주 보는데 정말 바보 같을 정도로 올곧은 진심이 눈에 보여서 더 이상 태섭이도 외면할 수 없었지. 어떡하지, 진짜 날 좋아하나봐. 그렇게 생각하니 귀가 홧홧하게 붉어져선 눈을 아래로 떨어뜨리는데 금세 따라와선 태섭아 나 좀 봐줘... 응? 하는 걸 어떻게 밀어낼 수가 있겠음. 애타게 저를 바라는 정대만과 겨우 다시 눈을 맞추면 고작 저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금방 환하게 웃어버려서 아무래도 오래 감춰둔 마음을 꺼내야 될 때가 온 것 같았지.

“저도 선배 좋아해요.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비록 긴장되서 토할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소리도 형편없이 떨렸지만 정대만의 기쁜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음.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에 떨리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지. 바야흐로 정대만과 송태섭의 첫 키스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