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그렇게 보내고, 후회되는 게 한 두 개가 아니라 미칠 지경이었거든? 그런데,"

"...태섭아?"

"형 힘들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거. 형 기쁠 때 그 기쁨에 같이 취해주지 못한 거. 하루하루 성장하는 내 모습 보여주지 못한 거. 눈부시게 활약하는 코트 위의 형을 맨 눈으로 보지 못한 거... 씨발 진짜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만큼 후회되는 거 천진데,"

"야 잠깐만;; 송태섭 너 우냐??"

"그중에서도 가장 속상한 게 뭐였냐면. 아무도 선배랑 내가 연인 사이인 줄 모르게 연애했던 거. 그게 제일 화가 났어. 형과 내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은, 우리밖에 모르는데. 형이랑 나. 단 둘만 알고 있는 건데 형이 그렇게 가 버리면 어떡해. 그러면 나 혼자 남잖아."

"어..? ㅁ, 뭐???"

"그래서 이번엔 절대 그렇게 안 두려고. 정대만과 송태섭이 어떤 사랑을 하는지 지나가는 강아지 한 마리까지도 알 수밖에 없도록. 온 세상에 다 알리려고."

"????? 아니, 얌마 잠ㅡㄲ,"
악!!! 악 태섭아 나 허리, 허리...! 살살 껴안으라고 임마...!!






정대만 고교 졸업을 기점으로 사귀는 사이 됐었던 태대. 아직 태섭이가 국내에 있었던 때는 물론이고 쌀국 유학가서 롱디하던 기간 동안도 굳이 주변에 연애 소식 안 알리고 조용히 애정 쌓아왔었는데... 정도 송도 주변에서 누가 들이댈 때마다 아 ㅋㅋ 저 애인 있어요~ 정도로만 떨쳐내지 바로 !! 이 아이가!! 제 애인이랍니다?!?!? 하고 자랑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ㅠ... 송태섭도 정대만도 연인이 있지만 설마 그 연인이 저렇게 둘일 거라고는 북산즈조차도 몰랐던,, 고런... ,,

그런데 대학농구 거치고 이제 프로생활 시작한 지 한 삼 년 정도 된 시점에 정대만이 모종의 불운한 사고로 명을 달리한 거 보고싶다 ㅠㅠ.... 훈련 중이던 실내 체육관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난 거였는데 그 소식을, 쌀국에 있었던 태섭이는 누구보다도 늦게 알게 된 거지....

사실 당연함. 둘이 뭐 가족 사이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절절하게 죽고 못사는 연인 관계란 걸 주위에서 알았던 것도 아니고 ㅠ... 남들 눈의 태대는 딱 고교 선후배 사이. 현재는 각자의 자리에서 농구 열심히 하는 동종 업계인. 그 정도였을 거 아냐... 심시어 시차도 열댓시간씩 차이나고 무엇보다 사건 발생 당시 한국도 미국도 시즌기였음.

사고 수습 관계자들은 정대만의 사고 소식을 일차적으로는 소속 구단, 그리고 그의 직계 가족들에게 먼저 알릴 수밖에 없었고 이후 조금씩 조금씩 사고 소식이 퍼져나가봤자 같이 국내 리그에서 프로로 뛰는 선수들 위주였음. 물론 개중에선 북산 출신이거나 북산과 승부했던 적이 있는.. 따라서 정대만과 송태섭 양 쪽 모두와 연이 있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 비극적 참사를 '굳이' 먼 타지에서 시즌에 집중하고 있는 '사고 피해자의 고교 후배'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음.


따라서 [오늘 경기는 어땠어요? 끝나면 연락 남겨줘요.] 같은 문자를 보내놓고 본인 경기에 집중하며 하루하루 충실히 살던 송태섭이, 며칠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문자와 받지 않는 전화에 선배.. 많이 바쁜 걸까. 하는 걱정을 씹어삼키며
아직 초창기 발전 속도 수준인 웹 검색창에 한국 프로 농구 관련 기사를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연관 기사로 등록된 건물 붕괴 사고 뉴스를 발견한 후 멘탈이 터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지


설마.. 아니겠지. 선배가 요즘 연락이 안되는 건, 그저 시즌기라 바빠서. 몸이 지치고 힘들어서. 아니면, 아니면 차라리 내가 꼴보기 싫어져서. 내 목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런거겠지. 그래야, 그래야만.. 하는데,


반드시 그런거여야 하는데
왜 항상 이런 예감은 내 편이 아닌걸까.



덜덜 떨리는 손이 미끄러져 몇번이고 잘못된 번호를 누른 끝에 겨우 겨우 연결된 치수와의 통화에서 태섭은 세상이 무너지는 감각을 느꼈음. 왜..? 왜 나한텐 안알렸어요? 정대만한테 그런 끔찍한 사고가 있었는데 왜 저에겐 연락 안했냐고요..!!!

잘못된 번지에 부당하게 쏟아내는 울분도 잠시. 송태섭은 가만 무너져 있을 수만은 없었어. 태섭은 남은 출전 경기고 추가 계약이고 다 뒤로 한 채 무단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가 모국의 공항에 도착했을 무렵엔 이미 엠바고도 다 풀려 프로 농구 선수 정대만의 사망 소식이 온 나라에 속보로 퍼지고 있었지.


분명 아직 경기 진행중일게 분명한 후배선수가, 요절한 선배 선수의 활짝 웃는 영정 앞에서 한참을 눈물 흘리는 모습은 금새 '보도할 만한 그림'이 되어 퍼졌고... '고교 선배'의 이른 죽음에 충격이 크시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기어코 무너진 태섭은,
눈을 뜨자 제가 회귀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음. 아니 회귀가 아니라 평행 세계거나 아니면 제 멋대로 망상 가득한 꿈을 꾸는 중인 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게 회귀한 현실이든 꿈 속 세계이든 그딴 건 태섭에게 중요하지 않았어.


중요한 건 제게 다시 살아있는 정대만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고,
이번 기회는 절대로 멍청하게 허비하지 않을 거란 거였지.



그래서 이번 생에는 유학 가지 않고 정댐 옆에 딱 붙어서 온 세상에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고 소주질 하며 살아가는 송태섭 보고싶다 ㅠㅠ....
비록 이번엔 느바 진출은 못하겠지만 지난 생애에서 본토 농구 배웠던 폼은 어디 간 게 아니라서, 수치스러운 줄 모르고 역겹게 호모질이나 한다는 시선 정도는 실력으로 다 눌러버리는 크블 태섭,,,,


정대만 입장에선 어제까지만 해도 아직 첫 연애의 단꿈에 젖어 그저 귀엽기만 했던 후배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어른 남자의 눈을 하고 나타나서 당혹스러웠을듯. 무슨 일이 있었구나.
그러나 저를 보자마자 눈물 펑펑 흘리며 뜻모를 소리를 내뱉는 태섭을 밀어내지 않았던 까닭은
저 아이의 눈에 정말이지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 깊은 상처가 새겨진 게 보여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런 송태섭을 가만히 껴안아주는 형아 정댐 보고싶어








슬램덩크
태섭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