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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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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만군을 좋아한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야. 괜히 송태섭한테 열받아서 이상한 생각이 났을 뿐이라고.

호열이 애써 복잡한 머릿속 털어내고 보건실 안으로 들어가겠지. 어찌됐든 대만이가 걱정돼서 온 거니까 일단 얼굴이라도 봐야할 것 같았음. 들어왔더니 방과후여서 그런가 선생님도 학생도 없어서 조용하기만 했음. 그리고 호열이 시선엔 금방 침대에 누워 자고있는 대만이가 눈에 띄었음. 작은 침대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운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워 보여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음.

으음....

웃음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는지 대만이가 몸을 뒤척였음. 아. 내가 깨운건가. 아픈 사람 제대로 못 쉬게한 거 같아서 미안하긴 한데, 대만이가 정신이 들어서 기쁜 호열이겠지.

깼어요?
태섭아. 아직 안갔냐? 나 진짜 괜찮다니까.....
저예요. 대만군.
어... 양호열? 네가 여기 왜 있어...?
내가 뭐 못 올 데 왔어요?

호열이가 장난스럽게 맞받아친 말에 대만이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보기만 하겠지.

아니...그런 건 아닌데....

대만이는 혼란스러운 듯 눈동자만 연신 굴렸음. 호열이는 의아한 얼굴로 대만이를 바라보고는 물어보겠지.

몸은 괜찮아요?
어...응...

나 대만군이랑 평소에 무슨 대화를 했더라? 대만군이 원래 이렇게 조용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많이 아픈건가?

대만군.
어?

혹시 열이라도 나는 건가 싶어서 대만이 이마에 손 대보려고 한 호열이임. 근데 호열이 손이 이마에 닿기도 전에 대만이가 먼저 몸을 움찔 떨었음. 덕분에 호열이 손은 허공에서 멈춰버렸겠지. 

...대만군. 아무리 나라도 학교에선 안 해요. 방금 야한 상상 했죠? 엉큼하긴.
아....

...농담한 건데. 아무 반응이 없네. 진짜 아프긴 한가보다. 호열이 약간 머쓱해서 이만 가봐야 하나 하는데 왠지 모르게 가기 싫어서 그냥 옆에 의자 두고 앉겠지. 근데 진짜 할 말이 생각 안 나서 멍하니 앉아만 있는거... 그리고 먼저 침묵을 깬 건 대만이 쪽이었음.

...호열아. 넌 나랑 자는 게 좋냐.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뭐... 나쁘진 않죠.
그래...?

대만이 대답하면서 씁쓸하게 웃음. 호열이는 좀 놀랍겠지. 대만이가 그렇게 웃는 걸 본적은 처음이라서. 항상 웃을 때는 쾌남처럼 활짝 웃는 대만이만 보다가 힘 하나 없이 쓸쓸해 보이는 웃음을 보는 건 낯설기만 했음. 그 미소마저도 금방 사라져서 이상하게 심장이 덜컥이는 호열이겠지. 대만이는 몇번 입을 달싹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음.

...우리, 만나는 횟수를 좀 줄이는 건 어때?
나랑 자기 싫어졌어요?
그게 아니라... 시간이 부족해서 그래. 너도 알잖아. 난 대학도 가야하고...

호열이도 대만이 사정 모르는 건 아니지만, 대만이가 태섭이랑 같이 있는 거 생각하면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음. 그래서 억지 부리면서 대만이 몰아세우겠지.

...대만군은 내가 대만군 말고 다른 사람이랑 자도 상관 없어요?
......
얼른 나아요. 나랑 자고 싶으면.
...미안. 나 좀 쉬고 싶어...
알았어요. 쉬어요.

호열이 대답없이 옆으로 돌아누운 대만이 바라보다가 조용히 보건실을 나옴. 대만이는 호열이가 간 거 확인하고는 눈 뜨겠지. 그리고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대충 입고 있던 옷으로 문질러 닦았음.



**

대만군. 좀 이따 올 거죠?
어.... 응.

호열이 일부러 옆에 있는 태섭이 보란듯이 대만이에게 말하겠지. 태섭이 눈썹이 잠깐 꿈틀거리는 걸 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이따 봐요. 하고 대만이 옆을 지나쳐가는 호열이... 근데 그날 대만이 호열이한테 안 찾아왔을 것 같다. 호열이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송태섭과 끈적하게 붙어있는 정대만의 모습이 떠오르겠지. 양호열한테 가지 말고 나랑 있어요, 하고 정대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송태섭...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둘... 으득, 하고 이빨 갈다가 대만군이 좋아하는 사람은 나잖아. 하고 생각하는 호열이....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불안해져서 대만이 찾아나서겠지. 자기가 얼른 대만이 보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도 모르고... 암튼 그렇게 동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대만이 발견하겠지. 그것도 야외코트에서 송태섭과 같이 농구하고 있는 대만이를 말야. 그렇게 아닐 거라고 부정했는데 정대만은 진짜로 송태섭하고 붙어있는 거야. 호열이 태섭이한테 주먹 날리고 싶은 걸 꾹 참고 둘한테 가까이 다가감. 먼저 발견한 쪽은 태섭이였음. 하지만 호열이는 낮은 목소리로 대만군. 하고 대만이를 불렀지. 대만이는 눈에 띄게 몸을 흠칫거리면서 놀랐음.

오늘 나랑 만나기로 했잖아요. 근데 여기서 뭐해요?
...태섭아. 나 잠깐 호열이랑 얘기 좀 하고 올게.

호열이 이끌고 좀 구석진 곳으로 간 대만이는 한참 망설이다가 입을 열겠지.

...호열아. 나 이제 너랑 못 할 것 같다.
네?
너랑 잘 때마다 솔직히... 농구에 지장이 안 간다곤 못하겠더라고. 내 체력이 아직 부족한 탓도 있긴 한데... 어쨌든 대학은 가야하니까... 지금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아서...이해해 줄 거지?
힘들었어요? 내가 거칠게 안아서?
아니라곤 못하겠다. 미안.
나랑 할 때마다 아파서 울었던 거예요? 좋아서 운 게 아니라?
......
근데 왜 바보처럼 말을 안 했어요?
말하면 네가 나랑 안 해줄 거잖아.
그렇게 내 몸이 좋아요?
난 그냥 너랑 같이 있고 싶었던 것 뿐이야!

...넌 그런 거 원하지 않겠지만. 작은 목소리였지만 호열이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음.

미안하다. 나 혼자 멋대로 착각해서... 넌 그런 마음으로 날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는 거... 처음부터 말해주지 그랬어.
....대만군.
주제 넘는 소리겠지만, 앞으론 네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잤으면 좋겠다.
대만군, 내 말 좀 들어봐요.

호열이는 불안하기만 하겠지. 지금 대만이를 놓치면 다신 못 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으니까.

호열아. 마지막까지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주라.
..비참했어요? 지금까지?
몸 뿐인 관계지만... 좋아하는 사람하고 자는 거니까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
...근데 아니더라.
대만군... 인정할게요. 내가 대만군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게 재밌어서 만나자고 했어요. 대만군이랑 잔 것도 다른 남자가 내 걸 가로챘다고 하니까 열받아서 그랬어... 근데 지금은...
됐어. 다 용서할게. 너랑 있을 때 즐거웠던 적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니까...

아..안 돼... 어떻게든...어떻게든 붙잡아야만.... 호열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맴도는 말이 있긴 한데 쉽사리 입밖으로 나오진 않겠지. 이 말을 하면 대만군이 믿어주긴 할까? 이제와서....

...호열아. 태섭이가 기다리니까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대만이 말에 호열이는 멀리 서있는 태섭이를 보겠지. 송태섭은 다가오진 않지만 눈을 빛내며 이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음.

나랑 안 자면... 송태섭하고는 잘 거예요?

...최악이다. 방금 건 진짜 실수야. 대만군, 그렇게 싸늘하게 바라보지 마.

미안..대만군...그런 게 아니라....
양호열.
......
난 앞으론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자려고.

그게 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신이 송태섭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는 소리야? 아니면 이제 나 따윈 안 좋아한다는 소리야? 대만군. 대답해. 가지 말고 대답하란 말이야. 호열이가 아무리 뒤에서 대만이 불러도 대만이는 뒤돌아 보지 않겠지. 하염없이 대만이 등만 바라보던 호열이 눈에서 무언가 후두둑 떨어졌음.

이게 뭐지? 

호열이 눈에서 흐른 물 닦아내고 나서야 그게 눈물이라는 거 알아챘겠지.

대만군, 내가 우는 거 안 보여? 이제껏 다정하게 대해줬으면서 왜 지금은 뒤돌아 보지도 않아? 얼른 돌아와서 품에 안아줘야지. 난 대만군을 좋아한단 말야... 지금은 좋아한다고.

호열이 드디어 자기 마음 인정했지만 너무 늦어버렸겠지.



농구대만은 못이긴다 호열아...
호열대만 태섭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