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65472210
view 2212
2023.09.24 21:22
https://hygall.com/564477112

식사를 마친 태섭과 명헌은 식당을 나왔음. 태섭은 편안하게 기분 좋은 표정이었고, 명헌은 어딘가 불편해보였음. 아마도 식사 중간에 했던 이야기들 때문이었겠지.

여기서부턴 저 혼자 가도 돼요.

또. 송태섭은 제 도움따윈 필요없단 듯 명헌의 차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였음. 그러거나 말거나 차 문을 연 명헌이 태섭에게 턱짓했음.

여기서 어떻게 가려고, 무거운 몸으로.
버스 타고...

명헌의 미간이 살짝 좁아들었음. 그걸 보던 태섭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결국 차에 올라탔음. 또 내가 귀찮게 만든다고 생각했을까... 차 안은 정적이 맴돌았음. 태섭도 할 게 없어 몇 번이다 들여다 본, 자신의 산모수첩만 이리저리 넘겨보며 시간을 떼웠음. 명헌은 그런 태섭을 흘끔 쳐다 볼 뿐이었음.
이젠 차가 익숙하게 태섭의 집 앞에 섰음. 태섭이 차 문을 열기도 전에 먼저 내린 명헌이 일어나기 편하도록 태섭에게 손을 건넸음. 제게 내밀어진 손을 보며 잡아도 될까 고민하던 태섭은, 명헌의 손을 잡은 채 차에서 내렸음. 

그, 오늘... 감사했어요. 저녁도 잘 먹었어요.

따끈한 손의 온기가 아직도 남은 것 같아 이상했던 태섭이 손을 뒤로 감췄음. 명헌에게서 돌아오는 답이 없자, 태섭이 천천히 걸음을 뗐음. 오랜만에 몸이 닿은 탓에 괜시리 이상한 기분이 들어, 붕 뜨는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꾸욱 누르며 걸음을 재촉했음.

잠깐만.

뒤에서 들리는 명헌의 목소리에 돌아 본 태섭이, 할 말 있냐는 듯 명헌을 쳐다봤음.

이제 곧, 당신 출산 준비도 해야 하지 않나?
...
아기 용품, 같은 거나... 조리원 같은 거.
어... 네. 해야죠.

본인 아기를 아무데나 맡기는 게 꺼림칙한가. 태섭은 생각했음. 

엄청 좋은 곳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곳이라 미리 예약해뒀어요. 아기 용품은... 이제 슬슬 사야 하고요. 몇 개 미리 봐둔 건 있어요.
당신이 양육비로 준 돈, 허투루 안 써요. 걱정 마세요.

그 말에 대답을 잃은 명헌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태섭을 보낼 수밖에 없었음. 그런 의도로 꺼낸 말이 아닌데. 좋은 곳으로 예약해주고, 좋은 것으로 사주려고 한 건데. 태섭은 여전히 을의 위치에서, 자신을 갑으로 보고 있었음. 우린 이미 이혼까지 한 사인데도 불구하고. 조금은 허탈했음. 내가 여태껏 했던 말들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닿았으면. 고작 이 한마디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걸까.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더 신중했어야 하는 걸까.


-


집으로 돌아 온 태섭은 소파에 앉아 멍하니 배를 쓰다듬었음. 명헌과 닿았던 손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던 태섭은, 다시 자신을 채찍질했음. 몸이 불편해서, 그래서 도와준 건데 또. 쿠션을 껴안고 축 늘어져 누운 태섭은, 다시 한 번 밀려오는 생각들에 기분이 울적해졌음.

분명히 아이를 위해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고 이혼했는데. 이혼하기 전보다 명헌을 자주 만나고, 전보다 더 깊은 감정을 공유하는 기분이었음.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제 더 가면 안 되는데. 어차피 그 사람은 전부 내가 그 사람의 '전 아내'였기 때문에 해주는 것일텐데. '자신의 아이'이기 때문에 신경쓰는 것일 텐데. 함께 있을 땐 그런 생각이 안 들다가, 헤어지고 난 후 혼자 남으면 짙게 밀려오는 감정들이 태섭은 힘겨웠음. 사실은 함께 한 외출이 즐거웠는데, 아기를 보며 행복했는데. 이게 모두 혼자만의 감정들일 거라고 생각하니 그랬음.

그리고 또 밀려오는 한심함. 아직도 그 사람이 좋아서 이렇게. 술마시고 나를 찾아오고, 아이에겐 관심도 안 두고, 내 감정을 다 알면서도 장난치는. 그런 사람이 아직도 좋아서 꼬리 흔드는 꼴이라니...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멍청하게 굴까. 

독하게 마음 한 번 못 먹는 본인이 한심해 미칠 것 같았음. 우울한 감정들이 밀려들고, 태섭은 애써 생각을 지우려 퉁퉁 부어 지끈대는 다리를 마사지했음. 그 때, 울리는 문자 알림음.

[검사하려고 꺼낸 이야기 아니야.]

태섭은 순간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음. 그러다 명헌이 했던 질문, 준비는 잘 하고 있냐는 투의 질문에 자신이 대답했던 걸 떠올리곤 뒷목을 긁적였음. 그럼 뭐 때문에 물어봤단 거지. 본인 귀찮게 만들까 그런 건가.

[나 귀찮게 만들지 말라고 그런 것도 아니고.]

태섭은 순간 소름이 돋았음. 옆에서 보고 있나...

[너 걱정돼서 한 말이라고, 송태섭.]

그 말에 푹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들뜨기 시작했음.

명헌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