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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5 04:54
의식의 흐름 ㅈㅇ



그도 그럴게 사귀는 기간은 길어봤자 한달이고 그 사이에 고백은 또 여러번 받으니까 좀 뭐랄까 가벼운 관계를 추구하는 듯 했지. 물론 사귈 당시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항상 끝은 넌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로 끝나는 걸 보면..... 태섭이가 몇 번 목격하기도 했고 대만이가 대체 다들 왜 그런 말을 하고 헤어지자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린 적도 있어서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연인으로서는 별로일지도.... 라는 생각도 들었음.

그런데 바꿔서 생각해보면 제 마음을 전하기엔 의외로 괜찮은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거였지. 어차피 떠날 사람인데다 남녀 가릴 것 없이 고백도 많이 받아봤으니 거절도 알아서 잘해줄 것 같고 정말, 혹시, 만약, 만에 하나 고백을 받아준다고 해도 얼마 못 갈테니까 이거 나한테 괜찮은 거 아닌가? 중학생 때부터 품었던 마음을 꺼내보이고 깨끗하게 차인 뒤 정리한다! 이런 생각 과정을 거친 태섭이는 대만이 졸업식에 고백하기로 마음 먹었음.

아쉽게 윈터컵은 4강에서 떨어졌으나 대만이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음. 그리고 졸업식날, 태섭이는 대만이를 따로 불러서 얘기했지.

“저 사실 선배를 오랫동안 좋아했어요.”

이러면 정대만은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너한테 나는 후배일 뿐이야. 미안해. 라는 말을 할 거라고 예상했음. 그러면 그저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며 대신 대학 보내준 후배를 향한 감사함만큼은 간직해달라는 농담까지 준비해둔 태섭이는 제게 떨어질 거절을 기다리고 있었지.

“.....이거였구나.”

그런데 거절 대신 알 수 없는 말이 정대만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나도 좋아해, 태섭아. 우리 사귀자.”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정말 조금은 상상했지만 그래도 너무 놀랄만한 일이라 네? 지금 뭐라고? 하고 몇번을 되물어야했지. 그 사이 태섭이의 한 손에 대만이의 손이 겹쳐고 무언가 전달됐음. 태섭이가 손바닥을 펼쳐보니 교복 단추가, 그것도 두번째 단추가 태섭이의 손에 떨어지게 됨.

“왠지 아무한테도 주고싶지 않더라니 내가 널 좋아해서 그랬나봐. 넌 언제나 나한테 답을 주는 것 같다.”

내가 언제요?????? 그렇게 묻고싶었는데 눈 앞의 남자가 한 눈빛을 보고 말문이 턱 막혔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얼굴. 근데 갑자기 이럴수가 있어?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이 통했다는 사실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과는 별개로 태섭이는 자신이 이렇게 눈치가 없었나 싶었음.

“그러니까 사귀자, 태섭아.”
“좋아요.”

하지만 사귄다고 해도 이 인간이랑은 한달밖에 못 간다. 이 인간은 여길 떠나 대학으로 간다. 그러니 진정해, 송태섭 심장. 시한부일 관계를 생각하며 세차게 뛰는 마음에 자꾸 찬물을 붓는 태섭이었지. 그렇게 아마도 한달짜리 관계가 시작됨.

항상 함께 했었던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대학생과 고등학생은 겹치는 동선도 없고 환경도 달라져 만나기도 힘들겠지. 아무래도 더 빨리 헤어질지도? 태섭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며칠 전 태섭이 집 근처 어두운 골목에서 했던 첫 키스를 떠올렸음.

대만이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 남은 2주의 시간을 모두 태섭이와 보냈고 마지막으로 만난 날에는 키스했음. 처음인 태섭이도 알아차릴 정도로 정대만은 키스를 잘했고 잊을수도 없을 것 같았음. 그 증거로 태섭이는 대만이와 했던 키스를 열흘동안 생각하고 있었지. 그 말은 곧 정대만을 못 본지 열흘째라는 말과 같기도 했음. 근데 어차피 헤어질 관계니까 서운한 건 아니고.... 한달 같은 2주를 보내고 이대로 끝난다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음.

그런데 훈련을 마치고 모두 돌아가고 태섭이가 마지막으로 강당의 문단속을 하고 나오자 조금 떨어진 곳 노을이 내린 하늘 아래에 거짓말처럼 정대만이 서있었음. 태섭아. 부르는 목소리가 꼭 꿈 같아서 멍하니 쳐다보는데 꿈이 아니라는 듯 대만이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태섭이 바로 앞에 서겠지.

“왜 그런 귀여운 얼굴 하고있어.”

그리고 가볍게 붙었다 떨어지는 입술. 태섭이는 뒤늦게 파드득거리며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요...! 하지만 아무도 없어. 라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뺨을 감싸고 깊게 입을 맞춰오는 대만이를, 태섭이는 밀어낼 수는 없었지. 그 때 골목에서 했던 그 키스만큼 좋았기도 했음. 촉-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의 거리는 그렇게 멀어지지 않았음. 태섭이의 얼굴을 훑던 올리브빛 눈은 곧 태섭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지.

“보고싶었어.”

그 말에 태섭이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더니 고개가 살짝 아래로 떨어졌음. 계속 끝날 거라는 생각만 했어서 그런가 뭐라고 해야할 지 몰랐거든. 대답하지 못하고 애꿎은 자신의 곱슬머리만 손으로 잡아당기다가 그 손도 정대만에게 붙잡혔지.

“너는?”
“...꼭 말해야해요?”

대답을 종용하는 말에 태섭이는 도망치고 싶었음.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바라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나오면 태섭이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거든. 그래서 그런건데....

“응. 너도 날 보고싶어했으면 했으니까.”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게 낫겠다 싶은 태섭이었지.

“....보고싶었어요. 나도.”

근데 이게 맞는 말이었나봐. 말로 꺼내니 그제야 알겠는 거야. 여태 저도 모르게 강당문을 수십번 봤던 게 왠지 정대만이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서 였는데, 그게 보고싶었던 거였구나. 태섭이가 다시 고개를 드니 대만이는 환한 얼굴로 태섭이를 보고 있었지.

“그렇게 웃지마요.”

선배가 더 좋아질 것 같아. 뒷말은 간신히 삼켰지.

“싫어. 네가 더 좋아졌는데 어떡하냐.”

근데 귀신 같이 정대만이 삼킨 줄 알았던 얘기를 하니까 어쩔 줄을 모르겠는 거야. 그러니 또 그런 생각을 해. 이건 한달짜리라고. 그러니 들뜨지 말라고. 그렇게 그날은 지나갔어. 아, 몇 번의 키스가 더해진 채로 말임.

그리고 또 열흘을 못 봄. 그러면 한달이 조금 넘었겠지. 이제 태섭이는 끝이라고 생각했음. 이별을 고하지 않는 건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었지. 근데 또 온 거야, 정대만이. 저번처럼 훈련이 끝나고 이번엔 뛰어왔는지 숨이 찬 채로 말이야. 태섭아!! 오자마자 너른 품 안에 끌어안더니 아 살 것 같다.... 라고 하는 사람한테 우리 헤어진 거 아니었어요? 라는 말은 도저히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마주 안아주었음. 오늘은 오래 못 있는다고, 다음부턴 더 자주 오겠다는 말에 선배 신경쓰게 하고싶지 않다고, 애써 대학 보내놨는데 놀지 말라며 짓궂게 말했지. 그 속에는 더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함유됐지만 대만이는 싫다고, 난 너 보고싶으니까 자주 올 거라는 말로 흐뜨려버림.

“그리고 네 집 전화번호 알려줘.”
“왜요?”
“네 목소리 듣고 싶을 때 전화할 거야. 여태 애인 전화번호 몰랐던 게 말이 되냐? 너도 내 목소리 듣고싶을 때 전화해.”

그렇게 전화번호도 교환해버린 태섭이는 종이에 적힌 7개의 숫자를 쳐다보았지.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우리는 곧 끌날텐데. 늘 하던 생각이 들었음. 하지만 정대만과 자주 전화하는 건 막을 수 없었지. 태섭이네 전화번호 받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거의 매일 전화하는 사람을 어떻게 막겠음. 아라의 눈치가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자주 전화를 하니 태섭이가 강당문을 보던 횟수는 확연히 줄었음. 이러다 익숙해져버리면 어쩌지. 이미 대만이와의 전화에 익숙해져버렸으면서 아닌 척 걱정도 했지만 뾰족한 수도 나오지 않았음. 이 관계가 끝나기 전에 즐기자. 끝나면 이런 것도 못할테니까. 그게 태섭이의 결론이었음.

그런데 문득 한가지 궁금증이 떠올랐지. 연인끼리는 키스 이상도 한다는데 왜 대만이는 자신과 그 이상까지 가지 않는지 궁금했음. 끝이 상정된 관계라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지. 아무래도 남자랑은 그렇겠지. 혼자 멋대로 답을 냈다가 대만이와의 전화에서 직접 묻기도 했음.

“선배는 저랑 하고싶어요?”

그러자 건너편에선 침묵이 이어짐. 역시 선배는 남자랑은 별로구나. 또 마음대로 판결을 내리는데

- .........송태섭, 나 진짜 많이 참고 있거든?

처음 듣는, 꼭 목 깊은 곳에서 낮게 울리는 목소리라 태섭이는 놀랐겠지.

- 너랑 하고싶은데 네가 아직 성인이 아니니까 안 건드리고 있는거야.

대만이가 키스 이상 진도를 나가지 않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되자 이번엔 태섭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음. 그러면서 바보 같은 딸꾹질도 나와서 대만이가 크게 웃었지.

- 너는 진짜....... 귀여워죽겠다, 태섭아.

이 날의 통화는 이렇게 마쳤지만 성인이 된 자신을 상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정대만도 따라왔고 그 다음 일도 상상하다보면 얼굴도 빨개져 며칠동안 고생한 태섭이었지. 아니야, 그 전에 나랑 선배는 끝날거야. 끝!

그치만 태섭이가 그렇게 말하는 끝은 나지 않았어. 여전히 대만이는 태섭이를 만나러왔고 키스를 했고 전화를 걸어왔지. 벌써 세달째 이어지고 있었음. 사실대로 말하면 태섭이는 혼란스러웠지. 저 인간 사귀면 한달만에 끝내지 않았나? 왜 나랑은? 어째서? 그래서 여느 때처럼 대만이가 학교로 온 날, 태섭이는 다짜고짜 물었음.

“선배, 저 좋아해요?”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야.”
“왜 나랑은 한 달을 넘게 만나요?”
“뭐?”
“선배 고등학생 때 사귄 사람들, 전부 한 달도 못 만나고 헤어졌잖아요. 왜 나는 아니에요?”
“내가 지금, 아니 잠깐만, 태섭아. 혹시 내가 너 불안하게 했어?”
“음... 아니요.”
“그럼 뭔데, 왜 그렇게 물어? 나랑 헤어지고 싶어?”
“아.......”
“진짜 헤어지고 싶은거야?”
“그게....”
“너 나 좋아하긴 했어!?”

아니 이런 말을 들으려는게 아니었는데!

“좋아해요! 좋아하니까 사귀지!”
“근데 왜 그런 말을 해!!”
“아니 나는 선배가 한 달 지나면 헤어지길래 나랑도 그럴 줄 알았다고!”
“아니 그 때는 내가 좋아서 사귄 게 아니라 상대방이 나 좋다고 하니까 그래서 그랬던 거고!”
“나는 뭔데요?!”
“너는 내가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지!! 네가 나한테 고백했을 때 알았어, 내가 너 좋아하는지! 왜 그렇게 네가 자꾸 거슬리고 신경쓰이나 했는데 내가 너 좋아해서 그런 거였다고!”

와 미친...... 생각지도 못 한 말에 태섭이는 이마를 짚었음. 그니까 그 전 사람들은 좋아하지도 않고 사귄거고 (아니 근데 이거 졸라 나쁜놈 아냐?) 난 좋아해서 여태 계속 이러고 있는 거라고? 어떻게 저런 말을?????? 혼란 속에 빠진 태섭이 얼굴을 보고 한숨을 푹 쉰 대만이는 태섭이 손목을 잡아당겨 꼭 안았음.

“야, 내 심장소리 들리냐?”

대만이 말에 태섭이가 귀를 기울여보니 아주 세차게 뛰고 있었음.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태섭이가 놀란 눈으로 대만이를 올려다보면 대만이가 고개를 내려 이마를 꿍 맞댔지.

“이걸로 됐지? 내가 너 좋아하는거 확실히 알겠지?”
“........네.”
“누구는 결혼도 생각했는데 어디서 헤어지자는 거야.”
“결혼?”
“그래, 결혼. 난 결혼 생각할 정도로 네가 좋으니까 나랑 결혼까지 각오해야될 거다.”

와 미친 거 아닐까? 우리 아직 한참 어린데? 근데 저 얼굴로 말하니까 꽤 설득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 좀 열 받네..... 근데 좋네..... 태섭이는 맞댄 이마를 떨어뜨리고 다시 대만이의 가슴에 귀를 기울였음. 여전히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들렸음. 선배 진짜 나 좋아하는구나. 이제야 대만이의 마음이 와닿아서 태섭이는 웃음이 났음. 결혼은 먼 미래 같지만 만약 한다면 정대만이 좋겠다고, 어느새 그렇게 생각하는 태섭이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