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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9 14:46
태웅이는 백호 병원에 가는 루틴이 있었겠지. 다른 농구부들이 끝나면 바로 백호한테 들르곤 한다면 집으로 먼저가서 자전거를 바꾸고 병원으로 향했음. 그 시간쯤이 되면 엄마에게 저녁도시락을 잊지않고 싸주시니까 그것도 좋았지. 처음에 도시락을 갖다줬을때 멍청이는 그걸 한참 보고있다가 볼을 긁적이더니 "아까워서 안먹으면 엄마가 더 슬퍼하시겠지?"하더니 싹싹 비우고 설거지를 해서 메모지에 [태웅이네 어머님, 저는 천재 강백호입니다. 보내주신 도시락을 먹고 벌써 등이 많이 나았습니다.]라고 써서 엄마가 보시고 우셨던가, 냉장고자석으로 잘 보이게 고정시켜놓으시곤 재활하는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찾아보시고는 만들어주곤 하셨지. 백호의 메모도 차곡차곡 쌓였지. [덕분에 키가 컸고, 늘 배가 든든해요, 어머님.]



도착하면 농구부 선배들이랑 1학년들이 가져온 비디오나 잡지가 여기저기 쌓여있고, 가끔 고급과일바구니가 있는데 이정환이 전호장이랑 왔다간 것도 같고, 윤대협이 변덕규네서 초밥을 사왔더라고도 하고 그런 말을 하면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더랬지. 태웅이는 일부러 늦게 가니까 다 가고 나서도 조금 더 있어도 되고, 멍청이를 독점할 수 있으니까 자기 루틴이 좋았음. 그날은 양호열이 같은 반 친구들이 보내는 선물을 들고 와 있었는데 예쁘게 포장된 컵케이크나 순정만화같은 것도 있고, 멍청이가 좋아하는 로맨스영화를 녹화한 비디오도 있고 그랬지. 반 친구들은 하나밋짱을 진짜로 좋아했는데 백호가 평소에 동요를 부르고 다니니까 한 친구가 고민 끝에 동시집을 사서 선물로 보냈더니 호열이 편에 백호 편지를 받았지.


[보내준 동시집이 너무 재미있어서 병원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읽어드렸다. 다들 재미있게 들으시고 나를 복복 쓰다듬어주셨어. 선물 고마워. 내가 아끼는 책이야.]



순정만화를 보낸 친구가 받은 편지는

[주인공이 나쁜놈한테 끌리는걸 보고 내가 그 나쁜놈처럼 살았어서 조금 울었다. 여성분들은 좋은 사람만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중에 착해져서 안심했어. 다행이야ㅠㅠㅠㅠ]


오만과 편견 드라마를 녹화해서 보내니 친구는 이런 감상문을 받았지.

[엄마랑 리디아가 나오면 혈압이 오르지만 주인공은 좋으니까 참고 보라고 그랬지? 근데 나는 엄마도 좋았어. 다들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안해서 속상했어. 리디아도 내가 따라다니면서 지켜주고 싶었어. 위컴 이 나쁜놈아, 옥상으로 나와!하고 싶어서 화가 났어.

이렇게 좋은 드라마를 보내줘서 고마워. 다아시씨가 리지를 위해서 몰래 한 일들이 로맨틱해서 어제는 자다가도 생각났어. 좋아하는 로맨스가 뭐냐고 물어보면 오만과 편견이라고 할래!]


호열이가 백호한테 어떤 애가 네가 학교에 나오면 고백한다고 했다니까 여자애들이 우리 하나밋짱은 좋은 애라서 넌 안된다고 화를 내더란 얘기를 하니까 백호가 얼굴이 빨개졌었지. 태웅이 혼자 언짢아져서 자판기 음료를 뽑으러 나갔다가 집에 가던 호열이를 보고 눈인사를 하는데 호열이가 그랬을거야.

"백호는... 누가 좋아한다고 하면 진심으로 생각해보고 다 받아줄 얘야. 자기 마음보다 자기를 좋아해주는 마음에 더 끌리는 애니까. 상대에게 표현하는걸 엄청 좋아하는 애고. 그래서 난 백호가 퍼붓는 애정에 쉽게 질리지않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어. 너는 어떤데? 망설이면 선착순 마감이야."

태웅이가 스포츠음료를 구겨버렸지. 자기보다 먼저 고백할 누군가가 멍청이의 진가도 모르면서 멍청이의 애정을 받고 그걸 당연시 여긴다고??

"누구한테든 안 뺏겨. 내가 더 좋아해."

호열이가 백호 학교 가면 진짜 고백한다는 애들이 있다고, 내가 그 편지를 전해줘야할 일을 만들던가 거절하게 하던가 하라고 했겠지. 너 근데 로맨스가 있긴 하냐, 서태웅?

"...연습한다."

















"뭐하냐, 멍청아."

"슬리퍼랑 옷이랑 빨려고."

"등도 아프면서 미쳤어?"

병실로 돌아와서 백호가 빨래하려는걸 뺏어서 자기가 빨래를 하는 태웅이었음.

"눗... 너 이런거 하는거 집에서 알면 안좋아하실텐데..."

"나는 중학교때부터 합숙가면 빨래했어. 잘하는건 아니어도 할 수 있어. 등 아픈 애 빨래하는거 보기만 했다고 하면 엄마가 더 싫어하실걸?"

"슬리퍼 그렇게 빠는거 아닌데."

"무..."


백호가 이렇게 해야지, 그거 아니야, 거기다 세제 풀어서 담가놓으라고, 솔로 빡빡 문질러야지.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태웅이가 그걸 다 해서 잘 널어놓고 왔겠지. 백호가 과일바구니에서 제일 예쁜 사과를 여우 모양으로 깎아놓은걸 태웅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지. 포크로 찍어서 쥐어주니까 백호 손 닿은데만 쳐다보고 있겠지. "으이그... 손도 많이 가는 여우."하면서 먹여주려고 하니까 그제서야 작은 입으로 받아먹는 태웅이.



"...멍청이, 너 보다가 운 그 로맨스가 뭐였지?"

"응? 오만과 편견?"

"어... 그 오만원인가에서 여주인공을 전담마크하는 남자가 로맨틱해?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같이 봐."

"전담마크 아니고 마크 다아시... NBA나 보자. 너랑 무슨 로맨스야..."

"나랑도 봐! 튼다!"


태웅이가 비디오를 넣고 백호 옆 의자에 털썩 앉아서 사과를 베어먹다가 곧 잠들었지. 백호가 끝나고 깨우니까 "...그래서 전담마크해서 득점을 막았어?"하니까 백호가 "으이구... 집에 가서 자, 인마."했겠지.


"...망했네. 나는 로맨스도 모르고, 슬리퍼도 잘 못 빨고, 순정만화도 안 읽었봤는데 그럼 이제 고백하면 망하나?"

"...이 새끼가 너는 청대였으면서 뭘 또 하려고. 그냥 거기 그대로 있어. 내가 곧 따라잡을테니까."

"죽은 힘으로 쫓아와라. 근데 로맨스도 연습하면 느냐? 너는 나랑 농구만하고 다른 애를 좋아할거야?"

"눗... 누가 고백하면 생각해보겠지..."

"좋아해. 널 좋아한다는 애들이랑 싸워도 내가 이겨. 내가 제일 좋아할거니까 나로 해. 멍청이지만 네가 좋아."

"...막말처럼 고백하는건 마크 다아시같다. 근데 너 꽤 로맨틱하다고 생각해..."

"...내가? 멍청이 너 다른 놈이랑 착각한거면 죽인다."

"너 요즘 카레에 당근도 안 빼고 먹는다며?"



ㅡ어머니가 저번 도시락에 오늘 카레를 했는데 싸주질 못하니까 퇴원하고 먹으러 오라고 써주셨더라. 너 예전엔 당근 빼고 먹었는데 이제는 "빨개서 예쁘고 기특하다"고 먹는다고 하시더라.

너 오늘 내 슬리퍼 빨아주고, 저번에 이불빨래도 밟아서 해줬잖아. 빨래 안좋아하면서 내가 할까봐 너 오기 전에 빨래하면 되게 싫어하지?

너 원래 애들 다 가면 나한테 오는데 물리치료하는 날엔 일찍 오잖아. 선생님이 하는거 보고 배워서 등 마사지 해 줄거라고.

여우 너 내가 농구용어 모르는거 신경써준다고 애들이 빌려준 만화책에다 어린이용 농구책 끼워놨잖아. 못생긴 글씨로 "멍청이도 이해할 수 있는 농구책"이라고 써놔서 화났지만.(무...!)

어머니가 저번에 사과바구니 보내주셨는데 여우 네가 집에다 자기는 여우모양으로 사과 깎을 줄 아는 사람 아니면 평생 혼자 살거라고 했다고 나한테 잘 부탁한다고 카드 써주셨어.


"너는 손이 많이 가긴하는데 나름 로맨틱한 여우라고 생각해."




태웅이가 벅차올라서 의자가 넘어지도록 일어나 백호한테 키스하려고 하니까 백호가 얼른 사과 조각을 넣어주면서 입을 막았지.

"나도 남자라서 좋아하는 애랑 뽀뽀하고 싶은데 참는거야. 퇴원하고 뽀뽀해도 등 안 아플때 해. 너 뽀뽀하다가 내가 등이라도 아프면 놀랄거잖아. 니가 나쁜놈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참아."

"....어. 그래도 손... 손은 잡을래."


백호가 태웅이 손을 깎지낀 채로 사과를 먹여줬지. 백호의 분홍빛 얼굴이 붉어진걸 보고 태웅이의 하얀 피부도 백호색으로 물들었지. 농구도 있고, 로맨스도 있고, 너와의 미래도 있는 시간이 병실을 사랑으로 물들였지. 하나밋짱은 품절입니다.




루하나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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