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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6 03:37
산왕 이씨 이명헌.

열둘의 나이에 무관 장원을 대련에서 이긴 이가의 장자. 장군 직을 맡은 제 아버지마저 ‘약관에 이르면 지금의 나를 뛰어넘겠구나.’ 라 평해 최고의 무인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자자했음. 어린 시절부터 그 총명함을 인정받아 태자의 배동을 오래 지냄. 산왕 이씨가 귀족 대신 대다수를 이끌고 있으니 이명헌이 그리 총명하지 않아도 그리 될 터였음. 처음 제 배동을 소개받았을때, 태자는 심히 심기가 불편해보였음. 제 손을 잡은 유모에게 배동 따위 필요없대도. 같은 소리를 몇 번이고 중얼거렸지. 이명헌에게 직접 말할 용기는 없으면서. 국본께선 나보다 일 년이 어리시다 들었는데, 아직 유모의 손을 타시네. 명헌이 무감하게 생각함. 황제고 황태자고 별 관심 없음. 제 아비와 어미는 산왕 이씨의 권세를 유지해야한다며 배동 시절부터 황태자를 꽉 죄이라 당부했지만 이명헌이 바라는 건 거대한 궁과 많은 이를 움직이는 권위가 아니라 넓은 초원과 자유였음. 그래서 유모 뒤에 숨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자길 노려보는 국본 따위 중요치 않았단 소리임. 궁내 화원 산딸기가 진미라던데 어디 있을까. 같은 생각이나하며. 

태자는 좀 빼어나게 생긴 것말고 그저 그랬음. 그게 이명헌의 첫인상이었음. 

근데 대단한 흥미도 열의도 없이 시작한 배동생활이건만 이 국본이, 생각보다 되바라지고 똘똘한 거야. 황태자에게 이런 평을 내리고 있음을 알면 이씨 적자래도 곤장 몇 대는 맞을텐데도. 명헌은 어린 시절부터 남을 재고 평가하길 특출났으며 인재를 보는 혜안이 뛰어났음. 몰락해 밭도지를 얻어 먹고 사는 신씨의 장남이 십년 뒤 무과에 새 기록을 쓸 것도, 몸집이 작고 허약해 스물을 못 넘긴다던 김 상서의 막내가 약관이 되자마자 관직에 등용될 것도 이미 알았지. 그런 명헌의 눈에, 글쎄. 저보다 체는 1년이 어리고 심은 10년은 어린 듯한 이 미래의 국상이 이상하게도 기꺼웠음. 학문이 뛰어나지도 무예가 출중하지도 않았는데. 명헌이 아는 누군가 중 황제의 재목이 있다면 핏줄을 제하고도 단연 태자를 뽑을 정도로. 명헌이 따온 산딸기를 함께 먹다 열매 사이 애벌레에 화들짝 놀라 도망친 태자를 보며 이명헌이 눈을 가늘게 뜸. 우성은 조심스럽게 애벌레가 앉은 딸기를 들어 나무 둥치에 내려놨음. 발작하며 짓뭉갤 줄 알았는데. 

처음엔 낯을 가리듯이 날이 선 채로 굴던 태자도 시간이 흐르고 낯이 익자 금세 마음의 빗장을 풀었지. 너무 쉽지 않으신가. 하면서도 명헌은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별 말 않음. 태자가 또래에 비해 뒤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처음 명헌을 배동으로 삼았을 땐 문무의 차이가 심했음. 그리고 한 달 만에 태자는 이명헌과 검무 대련에서 이길 정도로 따라잡았겠지

그 즈음에 왜 제 부모가 그렇게 황가를 경계하는지도 깨달았지. 하늘이 점지했다는 황제. 그 성를 타고 내려오는 '정'의 피에 정말 무언가 잠재된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아마 이 태자에게서 가장 그 영민함이 눈뜨고 있음을. 

명현한 황제야 말로 산왕 이씨가 가장 경계하는 것일텐데. 어차피 이명헌은 약관이 되자마자 출가해 방랑할 생각이었으니 알 바 아니지. 게다가 배동생활을 하며 이 어린 황제와 좀 친해지기도 했음. 

강산을 반쯤 바꿀 시간동안 우성은 명헌과 함께 지냈음. 산왕 이씨도 황가도 이명헌도 정우성도 예상하지 못한 건 이명헌이 생각보다 정우성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으며, 우성은 명헌을 조금 다른 의미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임. 연모라고 부르던가. 기방 기녀들이 목을 멘다는 그 운우지정에 가까운 마음. 어느 날 수업 이후 화원에 놀러갔다 궁인이 관리하지 않아 난 잡초를 뽑아 가지고 놀았음. 잡초인데도 눈이 가는구나. 그렇습니다. 수수하지만 자세히보니 앙증맞은 태가 있군요. 하던 짧은 대화 끝에 어린 태자는 손 안의 동그란 토끼풀과 맞은 편의 이명헌을 번갈아보더니 볼을 붉게 물들이고 말함. 그러게, 꼭 너를 닮았구나. 그러더니 손을 훽, 들어 이명헌의 귀를 건드리곤 고개를 팩 돌리곤 화원 반대로 멀어져. 당황해 더듬은 귀 위에는 그 눈이 간다는 토끼풀이 걸려있겠지. 짧은 걸음으로 멀어지는 태자의 귀 끝은 새빨갛게 달아올라있고.




그래서 열일곱, 늦은 나이, 치세를 도울 인재라던 이명헌의 아랫도리에 부정의 상징이 나타났을 때. 이명헌이 산들에 바람과 파도를 즐기러 떠나기는 커녕 제 집 문지방도 넘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정우성은 차라리, 이명헌이 그리 된 것을 기뻐했음.

개국부터 공신이었던 산왕 이씨. 최근 이가의 모함에 숙청 당한 노가를 제외하면 근 이십년 궁궐에 들어온 공신이 없으니 쭉정이 황권을 제하고 황가를 휘두를 힘은 당연히 모두 이씨에게 있었음. 그러니 태자비가 이씨에서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임. 문제는 이가에 남는 음인이 없고 그나마 있는 여식이라곤 죄다 양인 혹은 평인 뿐이니 극양인인 태자에게 평인을 들이미는 것 아니냐, 아니다 어디서 음인 하나를 구해와 자식인양 할터다 말이 많았음. 그런데 이명헌이 음인이 된거야. 그것도 뒤늦은 발현을 티라도 내듯이 아주 심한 발현열과 함께. 발현과 동시에 가물가물한 정신으로도 이명헌은 아버지께 빌었음 제발 비밀에 부쳐달라고. 더이상 산왕 이씨의 이름도 명헌이란 이름도 모두 버리고 없는 듯이 살 테니 집 밖에 버려달라고. 제 형의 바짓가랑이까지 잡고 매달렸을 때 이가는 모두 술렁였음. 손 귀한 집에 음인이라니 달가운 일이야 아니지만 써먹을 용도야 많아... 이득을 위해 팔려가듯 보낼 곳이 수두룩 빽빽이니까. 하지만 그 이명헌인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도록 어화둥둥 키워온 그 자식인데. 음인이 되며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더라도 이명헌이 음인이 되어 다른 가문에 팔려갔다는 자체가 이씨에게 수치였음. 또 아무리 음인이라지만 이명헌의 영특함이 자명한데 혼인과 동시에 웬 놈의 가문에 도움이 될 지 어떻게 알아. 그래서... 그래, 차라리 없는 양 치고 귀양지에 버리고 옵시다, 그냥 딸린 규방 하나에 가둬둡시다. 하는 말이 오가는 와중에... 이명헌은 어떻게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음 .

이레만에 이명헌에게 닥친 악재야 그의 천지를 뒤집어놨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가족은 생각보다 이명헌을 아꼈고, 이명헌이 생각보다 더 똑똑했다는 거임.

이명헌의 행처는 대궐 깊은 곳, 손바닥만한 규방으로 정해졌을 때. 이명헌은 이미 도망칠 궁리와 그 준비를 마쳤음. 발현열에 정신도 없이 깨어났을 때는 꼼짝없이 혼인식일 줄 알았는데. 제 가문 죽고 못 사는 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해야할 지. 이틀 뒤 아무 일 없이 규방으로 짐을 나를 때 내다 버릴 '이명헌'의 흔적에 섞여 이명헌은 사라질거야. 이명헌의 인생에 이미 너무 많은 이변이 있었으니 이 계획에는 이변이 없기만을 바랬음. 근데 이런 생각을 한다? 아 복선이라고... 온갖 사용인들이 온갖 보자기에 짐을 싸고 내일 닭이 울자마자 처소를 옮기실 거라며 홑이불 하나에 떨며 잠든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예정대로 옮겨질 짐들은 온데간데 없고, 궁에서 봉황 첩지가 내려옴. 가족이 모두 나와 웃으며 이명헌의 어깨를 두드림. 다행히 네게 쓸모가 생겼구나, 속삭이며.

이게 무슨 일이지. 어안이 벙벙한 채로 하인의 손에 씻겨지고 어색한 분을 바르며 남들 앞에 장식된 이명헌. 내정된 삼간택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아. 

태자가 나를 선택했구나.

그 옛날. 막 우성이 마음을 열었을 때 수업을 땡땡이치고 화원 담을 넘어 들에서 풀피리를 불며 속삭였던 서로의 꿈이 생각나. '저는 전국을 돌아볼 것입니다. 땅끝 해남부터, 우리나라 못지 않게 산맥이 두텁다는 북산. 완전히 다른 복식이라는 상양, 파도와 바람이 사람을 빚었다는 풍전도 모두 제 발로 밟고 눈에 들일 것입니다... 베시' 하고 속삭이면 '그거 정말 멋지구나.' 하고 뺨을 귀엽게 물들이며 응원해주던 어린 태자. 그 후 나는 좋은 황제가 될 거야. 백성을 위한 법도 하나 원하는 대로 만들지 못하고 허수아비처럼 끌려다니는 황제가 아니라. 치세를 할 줄 아는 강한 황제가.' 하는 대답에 흠칫 놀라면서도 그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어 줬음. 그 날의 약속은 서로만의 비밀이겠지. 원래대로라면 이 얘기를, 아버지에게 전해야겠지만... 우성도 내 꿈을 응원했는걸. 

우성이, 나를 궁에 가뒀구나. 내 꿈을 듣고 함께 웃고 응원하던 그 애가 내 팔다리를 잘랐구나.




정우성은 정우성대로 억울해 마음에 둔 정인이 스승이나 다름 없는 이씨 배동이라 해도 구차하게 매달릴 생각 없었음 그럴 힘도 없고. 정우성의 부인이야 산왕 이씨가 정해주는 대로 이뤄질 게 뻔했으니까. 그나마 지금껏 평인은 싫다, 같은 양인이라니 어불성설이다, 하고 퇴짜를 놓았지만 어떻게든 이씨의 입김이 닿은 여인이 될 것이 뻔했음. 마치 목 베일 날을 기다리는 숫퇘지 마냥 힘없이 허우적거릴 뿐이었지. 그런데 어느 날 더이상 찾아오지 않는 이명헌에 무슨 일인지 묻자 저어 그게, 하며 말하길 꺼리던 내관이 음인으로 발현했다 합니다. 하고 귀엣말로 전해주는거야. 
이거다 싶었음 마음이 맞던 이명헌이라면 괴롭고 답답한 황제 생활도 꾸역꾸역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음. 잠시간은 갑작스레 발현한 제 의형제에 대한 측은함이 차올랐지만 이명헌도 웬 외간 양인에게 시집가느니 저와 궁에서 지내는 게 나을 거다 싶었지. 해서 여느 때처럼 처녀 단자를 들고 온 제 스승(그마저 이가에서 붙인)에게 꼭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최근 음인이 되었다는 이가의 적자가 좋겠습니다. 하는 거임. 그러자 스승의 낯에 당황한 낯이 역력했는데 그 즈음엔 정우성도 머리가 커서 황궁을 뒤흔드는 산왕 이씨에 대한 혐오가 스멀스멀 자라던 시기라 그것마저 괜히 즐거웠음. 안될 말씀이라는 완곡한 거절에도 그가 아니면 절대 혼인하지 않겠다, 이복동생을 제위에 올리라 뻗댔겠지. 그렇게 이명헌을 궁으로 불러들여옴.

그렇게 넋이 나간 듯한 이명헌을 삼간택에서 마주하고, 성대한 국혼이 일어날 때. 맞절 이후 고개를 든 순간 화려한 첩지와 장식 사이로 마주한 이명헌의 얼굴은 꾹꾹 씹어 삼키는 분노와 증오 경멸로 점칠되어 있었음. 



그렇게 입궁한 이후 이명헌 배동 시절의 정은 모두 없는 양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굴면서 모든 내정을 산왕 이씨의 이익 위주로 굴리는 거... 태자비까지 이가의 적통으로 세운 이씨가 빠르게 현 황제의 퇴위를 종용하고 막 약관이 지난 정우성을 태위에 올리는데, 그 마저도 이명헌의 주도하에 물흐르듯이 이루어지겠지. 제 아비의 권위를 빼앗는 짓 따위 정우성은 원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정사를 논하려 아니면 길일날 정사를 나누려 얼굴을 마주했을 때도 이명헌은 차갑기 그지 없는 낯으로 딱딱한 말을 뱉으며 은근하게 황권을 조롱하곤 했음. 그 언어가 심히 유려해 정우성 정도로 이명헌에게 익숙하지 않았다면 조롱당한 것조차 몰랐을 거임. 여느 때는 강제로 퇴위된 전황제, 정우성의 부모마저 조롱하겠지. 그에 정우성이 분노하여 벌떡 일어나면 '앉으시지요. 폐하. 제가 내린 차가 식고 있습니다.' 하고 되바라지게 대꾸하는 지어미인 이명헌; 한때 자길 무시하는 이명헌에게 왜 그러시냐 빈 적도 있고 무엇에 화가 나셨냐, 그저 함께 있고 싶었다, 제덕에 가장 높은 음인이 되지 않으셨느냐, 애원하고 빈 적도 있었지만 돌아오는 건 더 더 낮아지는 이명헌의 온도였음. 그리고 날선 태도와 비릿한 조소는 어린 황제의 순정을 뭉개기에 충분했고. 

어느새 정우성의 후궁전은 이명헌이 택한 이가 아래의 가문으로 수두룩하고 모두가 어린 황제보다 황후를 우선시 해. 황후가 아파서 하루 인사를 받지 않은 날, 황궁의 가신들마저 황후께 약재와 선물을 구해 바치느라 조회조차 빠졌다지. 주요 인사가 쏙 빠져 묘하게 허전한 편전을 보며 우성이 실소하곤 했음. 다음날 황후는 일어나자마자 황제에게 귀하디 귀한 서방의 과실을 바침. 백금실이라 칭해진댔나. 황후에게 다섯 개가 갔는데 그 중 가장 크고 단단한 것은 이가로 보내져 이장군에게 닿았다지. 그리고 그 다음은 황후가 아침에 달여먹고, 그 다음이 황제에게. 새 속삭임으로 내막까지 전해들은 정우성이 킥킥 웃음. 아, 귀한 것조차 다음으로 받는 황제라니. 정말 우습기 짝이 없구나... 조소하고 내관 손의 고급스런 상자에 들린 그 과실을 들어 바닥에 던져버림. 모두 놀라서 숨죽인 와중에 한참을 그 뭉그러진 과육을 바라봄. 그리고 그 안의 씨앗을 꺼내 전하겠지. 황후께 전하거라. 역시 귀하여 그런지, 달콤하구려. 나를 생각해주는 것은 황후 뿐이오.

그 씨앗(과 내막)을 전해받은 이명헌도 크게 웃음. 폐하께서 드디어 정신을 차리셨구나. 



본격적으로 혐관 들어가는 우성명헌 ; 어떻게든 충신을 모아 뭍밑에서 황권을 되찾아오려는 정우성과 그를 찾아내 짓밟고 조롱하고 주요 임무를 맡은 사자들을 처리하고 기꺼이 정우성의 앞에 전시해주는 이명헌... 꾸준히 있는 합방날에는 목석마냥 제 위에서 허릿짓하는 황제 지켜보다가 '심귀인이 황제폐하의 건강이 염려된다던데, 오늘 폐하를 뵈니 저또한 그렇군요. 조만간 약을 지어 올리겠습니다.' 하는 이명헌ㅋㅋ 면전에 대고 '너 존나 못한다' 소리 들은 정우성 개빡돌아서 이 아득 물고 '그렇습니까?' 하고 그때부터 상궁들 조언은 개무시하고 거칠게 허릿짓하면서 이명헌 어린 안쪽 희롱하고 짓이겨서 결국 그 눈가에 눈물 맺히고, 손 덜덜 떨며 침구 붙잡게 하겠지. 마지막 쯤엔 씨물 물고 있을 힘도 없어서 줄줄 흘리느라 정우성한테 약은 황후가 드셔야겠소만, 소리 들으면서 한번 더 파고드는 양물에 벌벌 떤 이명헌 그래놓고 다음날 되면 진짜로 양기 복원에 좋다는 약 지어 올려서 정우성 열받게 함ㅋㅋㅋ 

이런 것도 보고 싶다 자국 내 세력으로는 도저히 답이 없어서 외세까지 빌리기로 결정한 황제파... 간신히 이웃국 북산에 손이 닿아 개혁을 논하는데 문서를 통한 논의는 위험이 많으니 그 첩자로 북산의 송태섭을 후궁전에 넣는 거 
원래는 정대만이었는데 정대만 혼약자인 송태섭이 돌았냐고 갔다가 목이 베일 수도 있는 거 어떻게 진짜 음인 정대만을 넣냐고 우겨서 열양인인 송태섭이 대신 들어감. 송태섭이 북산의 특징과 어긋난 편이라 차라리 나았음. 북산인인게 걸리면 눈빛에 설풍이 친다는 황후에게 팔다리 혀가 베여 북산으로 돌려보내질게 뻔했거든. 그렇게 북산의 국경과 닿은 숲에서 사냥 나갔다가 마음에 드는 이를 주웠다며 데려오는 거. 

숨을 죄이는 복식. 고개가 꺾일 듯이 무거운 첩지와 가채. 숨 한번 쉬는 것조차 모두의 눈에게 감시당하는 궁궐 생활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렇지 않은 척 차를 마시며 죽어가는 심정으로 내정을 돌보던 이명헌 갑자기 사냥놀이를 나가셨던 폐하가 금수가 아니라 사람을 데려오셨단 소리에 의아해함. 그 날은 일이 바빠 직접 그 짐승을 볼 일이 없었는데. 다음날 그것과 밤을 보낸 폐하가 어여삐 여겨 바로 귀인의 첩지를 내리겠단 거 아냐. 그 파격적 행보에 궁이 술렁거리는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시종을 시켜 조사하던 황후가 어느 순간 피식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아 다도를 즐김. 아침 인사 후 후궁들이 종알거리며 황후께서는 걱정도 안되십니까? 아무 연고도 없는 계집은 이 후궁전에 처음 아닙니까! 귀한 가문을 타고도 상재, 답응인자가 수두룩한데. 길에서 주워온 잡것에게 귀인이라니요. 하는데 이명헌은 눈을 내리깔더니 잡것이라니. 이제 송귀인인 것을. 하는 거. 하면서도 더 폐하의 뜻대로 되기 전에 한번 찾아뵈어야겠지 생각함. 안 그래도 글피가 합방일이었음. 


그리고 글피날 먼저 침소 준비를 마치고 이명헌이 기다리는데 영 정우성이 소식이 없는 거 
결국 이경이 지나고도 소식이 없자 내관을 불러 무슨 일이냐, 묻는데 우물쭈물대며 폐하께서 옥체가 상하시여... 하는데 내관의 눈에서 읽어내겠지. 그 귀인의 침소에 계시는구나. 이명헌 덤덤하게 아랫것들 불러 다시 차려입고 폐하께서 그리 힘드시다니, 지어미로서 감히 편히 쉴 수가 없구나. 폐하께 가자. 하고. 
찾아간 곳엔 호롱불 비친 문 너머로 얽힌 두 몸과 어설픈 신음이 마구 흘러. 아무리 황후라 해도 황제의 정사 장면에 쳐들어갈 순 없음. 이것도 말리는 내관들을 모두 뿌리치며 들어온 자리임. 음욕이 줄줄 흐르는 광경을 눈에 차곡차곡 담으며 폐하가... 아주 방자해지셨구나... 하고 존나 방자한 생각하는 이명헌. 송태섭 그 와중에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데 가짜 신음 내느라 뒤질 것 같음 그리고 이 황제 놈이 향을 뿌려야한다며 극양인 향 마구 뿌려대서 토할 거 같음 



그 후로도 계속 송귀인만 찾는 정우성임. 할 얘기 많아 죽겠어 송귀인 수족도 정우성이 믿을 수 있는 자들로 붙여야하고 송태섭이 대려온 북산의 인재들도 알음알음 등용해야하고. 합방 하루 퇴짜 맞았을 때는 "되었네, 황상께서 기쁘지 않으시다는데 어찌하겠는가?" 하고 넘겼던 이명헌도 이제 슬슬 열이 받음. 일단 데려온 이후로 정우성이 송태섭을 놔준 적이 없어서 그 귀인 얼굴조차 몰라. 
그러니 아침 문안에도 송귀인이 찾아와 인사한 적이 없어. 결국 어느 날 여봐라! 당장 송귀인을 황후전으로 부르게. 하고 호출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여즉 폐하를 상대하는 중이라 인사가 불가하답니다. 하는 소리 ㅋㅋㅋ 

그거 비식 웃은 이명헌 다음 날 조회 시작도 전에 찾아와 독대하겠지
 
'폐하. 궁에서 정한 길일을 그저 넘기셨더군요. 아직 창창하실 때인데요.'
'그렇소? 내 정사가 바빠 미처 몰랐군.'

당연하게 대답하는 그 뻔뻔함에 구역질을 참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습니까? 걱정이 되어 내의원에 총명탕을 올리라 했는데. 그래도 준비한 것이 있으니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하는 이명헌 ㅋㅋㅋㅋ 어이없어서 바라보는 정우성이랑 잠시 눈 맞추며 웃어주겠지 

'보자한 연유는 그것이 끝이오?'

아, 이명헌이 짐짓 생각났다는 듯이 대답함. 

'궁녀도, 후궁 간택도 아닌 길가의 천것을 데리고 들어오셨다더군요.'

이명헌이 빙긋 웃음.

'아랫것들이 떠드는 헛소리에 경을 치려다, 황상께서 직접 그들의 죄를 내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찾아뵈었나이다.'
'그럴 필요 없소.'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정우성이 이명헌을 쳐다보며 말하겠지.

'나는 이 나라의 황제요. 이 땅에 선 모든 것이 나의 것인데, 내게 대체 금지된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이오!?'

명헌이 짧게 한숨을 쉬며 눈을 내리깜. 떼 쓰는 어린애를 보는 것 같은 태도에 우성이 다시 언성을 높이기도 전에, 이명헌이 입을 염.

'그렇지요. 폐하께서 이 나라의 유일한 천자이시며, 주인이십니다.'

천천히 명헌이 걸음을 옮겨 우성에게 가까이 다가감. 금실로 잔뜩 자수되어 무거운, 하지만 간신히 버틸만한 소매를 들며 찬찬히 침전의 물건을 쓸겠지. 느릿하게 바라보다 시선을 올려 어느새 저보다 한뼘은 커진 황제의 용안을 건방지게 마주함. 하지만 정말로 건방진 것은 나를 내려다보는 이 황제가 아닌가? 하고 몰래 생각함.

'산왕 이씨의 군 없이는 내일 당장이라도 해남에게 멸망할 나라지만, 그래도 그 패국의 황제이시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황후.'
'이런, 신첩이 불경한 말을 하였습니까? 어쩌지요. 제 아비부터 어머니, 친정 가신까지 모두 불러 목을 치시지요.'

명헌이 유난스럽게 허리를 숙이며 말함. 봉황관에 달린 보석이 찰랑이며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음. 명헌이 덧붙이지 않아도 뒤의 말은 뻔했음. 그들이 없으면 이 나라의 골근이 텅텅 비겠지만 말입니다.

우성이 주먹을 꽉 쥠. 이, 건방지기 짝이 없는 행태에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뿐이었음. 그게 이 어린 황제를 길가의 거렁뱅이보다 비참하게 만들었음. 
어느새 굽힌 허리를 들고 고개를 세운 명헌이 부드럽게 탁상 위의 향로를 만지작거렸음. 

'단화향이군요. 북산의 특산품이라 들었습니다.'
'…'
'앞으로는 즐기실 일이 없을테니, 미리 치워두라 이를까요?'

예의 그것은 알아서 치울테니 신경끄라는 뜻이었음. 우성이 이를 아득, 깨뭄. 
그러자 명헌이 손을 올려 그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함. 부드러운 비단옷이 접히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음. 그 듣기 좋은 소리보다 더 상냥하게 웃으며 명헌이 속삭임. 옥체가 상하십니다. 

'이 나라의 깊이 뿌리 내린, 부패와 부정의 온상을 도려내시려면 건강하셔야지요.'

산왕 이씨라는 외척을요.



나중엔 정우성이랑 같이 있다가 '영 심기가 좋지 않아보이십니다. 폐하가 좋아하시는 것을 부를까요?' 하더니 내관 통해서 송귀인 부르는 이명헌 그러면서 덧붙이는거야 '아, 옛식으로 나체에 이불만 입혀 오게.' 하는 거임. 모두 당황해서 명 들은 내관도 쉽사리 허리 못 드는데 '북산의 자이니, 갑자기 폐하를 해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조심하셔야지요.' 하고 웃는 이명헌 ㅋㅋㅋ 하 존나 싸워 우성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