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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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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





모 회사 n년차 주임인 준호명헌 둘이 부서는 다르지만 동갑에다 입사 3개월밖에 차이 안나서 빠르게 친해졌겠지 무엇보다 둘다 흡연자인게 컸음 이명헌 신입때 윗사람한테 좆같이 깨진날 일부러 옥상 후미진데서 혼자 담배 좀 물려는데 거기에 딱 봐도 처지가 똑같은게 분명한 준호가 있었고 그날부터 둘이 친해졌을거임

일하는 중간중간 옥상에 올라와서 자연스럽게 담뱃불 빌리는 사이가 된 준호명헌 주로 빌리는 쪽이 명헌 빌려주는 쪽이 준호겠지 장난으로 빌려달라고 했던 돛대마저 망설임 없이 건내는 권준호를 이명헌은 회사 일이 힘들어서 넹글 돌아버린 친절또라이쯤으로 봤음 가끔 흰 셔츠 안에 받쳐입는 존나 이상한 티셔츠도 그렇고..(지는 사석에선 뿅쟁이면서) 여튼 그때까지만 해도 준명 사이에 텐션같은건 없었겠지

그렇게 말 놓은지는 한참, 알음알음 사연 알게 된지는 어느정도, 회사 밖에서 만난건 예닐곱번이 될 쯤에 사내 체육대회 마치고 있던 전체 회식에서 준호네 부서 대리가 청첩장을 돌렸겠지 권준호가 오랫동안 선망하던 구김살 없고 쾌활한 성격의 헤테로 남성이었음 그사람의 약혼자 취향일게 분명한 연분홍색 봉투를 든 명헌이 힐끔 준호쪽을 돌아봤음 웃는척 하는 표정이 꽤 봐줄만 했어 씨발..근데 왜이리 배알이 꼴리지

회식을 마치고 저마다 엉망이 되어 돌아가는 사람들을 뒤로 한 준호와 명헌은 약속한 마냥 골목에서 담배를 태웠어 눈치 빠른 둘이라 서로 상황 파악은 다 끝낸지 오래였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

다음날, 눈 뜨자마자 바로 좆같아진 이명헌은 틈나는대로 옥상을 오르내렸음 갈 때마다 준호가 없어서 그냥 내려온게 벌써 세번째였음 근무태만이라고 욕하던지 말던지, 그냥 얼른 권준호를 마주치고 싶은 마음 뿐이었겠지 그렇게 몇번 들락거린 끝에 퇴근시간에야 권준호를 볼 수 있었음

이명헌은 뻔히 있는 담배를 주머니에 도로 구겨넣고 준호에게 담배를 빌렸음 속상해 보이는게 뻔한데도 또 빌려주겠지 준호 담배를 문 명헌이 말없이 입술을 쭉 내밀자 익숙하게 불도 붙여줬음 이새낀 등신인가 싶어 명헌이 빤히 바라보다 결국 한마디 하겠지

너 그사람 좋아하지

물음표 없는 질문은 확신을 내포하고 있었어 준호는 깜짝 놀랐다가 이내 아, 하고 짦은 탄식을 뱉었음 놀랐다는거 자체가 명헌이 말한 그 사람이 누군지, 단정짓는 물음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이었음 그럴줄 알았다, 명헌이 가볍게 말을 덧붙이자 그제야 준호는 가볍게 웃었음

너 게이인거 존나 티나용

그런가..처음 듣는 말인데

내가 감이 좀 좋아야지뿅

준호는 들이마시지도 못한 연기가 허공으로 퍼지는걸 구경하고 이명헌은 그런 준호를 구경했음 씁쓸한 얼굴이 한두달 된 감정이 아니란걸 말해주고 있었음 어쩌면 약혼자보다 더 오래된 감정일지도 몰랐음

..신입때부터 날 많이 챙겨줬거든 나도 참..취향이 뻔한 편이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네 안될거 알면서도

응, 약혼자보다 먼저 좋아한거 확정 둘이 사귄지 5개월만에 아이가 들어서서 결혼한거라 들었거든 준호는 n년차니까 뭐..비교할 것도 못됐음 아~..명헌은 또 다시 장이 꼬이는 기분이 들었음 그러면서도 지는 노을에 비쳐 말갛게 빛나는 준호한테선 눈을 뗄 줄 몰랐겠지 충동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어

대신 난 어때뿅

안쓰러워 해주는건 고마운데, 농담할 기분이 아니라..미안해, 명헌아

농담 아닌데 나도 너한테 꽤 잘해주잖아

그제야 권준호가 이명헌을 돌아봤음 여느때와 똑같이 웃음기 하나 없어서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되지 않는 표정 준호는 이 타이밍에 웃으면 되나, 고민했지만 선뜻 웃음이 나오질 않았어 이번엔 왠지 웃어선 안될 것만 같았거든

솔직히 이명헌이 준호한테 잘해준 적이 있던가? 글쎄, 툭하면 뭘 빌려달라고 하던건 명헌인데 그걸 잘해준다고 표현할 수 있는게 맞음? 대외적으로 더 친절하고 유들한 것도 준호였고 처음 말을 붙인 것도 준호였음 준호는 이 상황이 어이없거나 짜증스럽기보단 조금..낯익었어 듣자하니 낮에 자꾸 자리를 비웠다던데, 그것도 그렇고 지금 하는것도 평소와는 달랐음 나름의 논리에 맞지 않는건 못참는 이명헌이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린다는건, 안하던 짓을 한다는건 어쩌면….

그게 무슨 뜻이야, 명헌아

나도 게이라 그 기분 존나 잘알거든, 난 좋아하는데 상대는 절대 모르는거

뭐..?

내가 왜 네걸 빌리고싶어하는지 넌 진짜 끝까지 모르더라 밤새 개빡쳐서 잠이 안왔네

난간에 버려진 장초에서 어느새 길어진 담뱃재가 흩날렸음 아~권준호 담배 맛있는데 날렸어용 일부러 직접 사다 피우기 싫어서 이름도 묻지 않았던 담배는 훌훌 날아서 옆 건물 옥상으로 사라지고 있었어 권준호의 이성도 아마 그걸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음 그래서 명헌이 준호의 팔뚝을 덥썩 붙잡고 다시 말했어

그래서, 나 어때





준호명헌 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