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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4 17:11
만나는게 보고싶어

열심히 장에 내다 팔 나무 물색하던 명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깊고 깊은 골짜기로 자꾸만 들어갔을 듯
산에서 길 잃는건 대낮에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인거 아는데 요새 장에서 향 좋은 나무가 꽤 비싸게 팔리니까 어쩔 수 없이 조금만 더, 조금만....하다가 진짜 길도 끊긴 그런 골짜기까지 스스로 들어가게 됨


들어오고 나서야 아 좆됐뿅;; 하면서 나갈 길 찾는데 어디서 물줄기 소리가 들림 마침 목도 좀 마르겠다 그 소리를 따라가보니 적당한 폭포에 샘이 나오는데 거기가 사람사는 땅 같지 않고 신묘한 곳이었겠지 겨울인데 딸기같은게 자라고 있다던가 흰 털로만 이루어진 노루무리가 명헌을 발견하고 도망가버리는 등
명헌이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샘 근처에 누가 쓰러져있는거 발견함


다가가보니 흠씬 두들겨 맞은 어린애였는데 그게 선녀(?)우성이어라

옥황상제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다른 선배선녀(?)들이 시기질투하는 바람에 선녀탕까지 끌려와서 집단 린치 당하고 날개옷도 찢어지고 그렇게 버림받았는데

뭐...뭐지뿅? 하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들여다보는 명헌이 보고 다 지겨워! 이러고 픽 기절함

어린애가 옷은 넝마같지 어디서 맞았는지 얼굴은 울퉁불퉁하지 말라붙은 눈물자국에 기절까지하니까 명헌이가 한참 쓰러진 우성이 건드려도보고 기다려도 봤는데 안 일어남

하아....귀찮게 됐다뿅 이러면서 마른세수함
오늘치 나무도 다 못한 지게에 우성이 번쩍 안아들고 싣는데 낭창하니 가벼워서 헛웃음 났을 듯

그렇게 아침에 산에 들어가 어둑어둑해진 밤이 다 되서야 집에 돌아온 명헌이는 곧장 우성이 눕히고 돌보기 시작함


근데 나무꾼의 허름한 초가집에 뭐가 있나.. 상처 연고 하나 사러면 지게 한가득 세번이나 옮겨야 겨우 삼. 게다가 맞을 때 잘못 맞았는지 데려온 뒤 애가 열이 펄펄 나기 시작함 방에 불 안 꺼지도록 계속 불씨 봐주면서 죽 먹이려고 하는데 우성이는 정신이 혼몽한 와중에도 반항함

줘터진 주제에 주먹이나 발길질이 매서워서 복부 잘못 걷어차인 명헌이는 아니! 왜 날 때려용!!! 때리려면 걔넬 때려야죵!! 하고 버럭 성냄

우성이 열 올라서 벌겋게 된 얼굴로 선배선녀들 나이대랑 비슷한 명헌이가 화내니까 놀라서 멈춤



딸꾹

얼씨구

딸꾹딸꾹딸꾹딸꾹


이러면서 기껏 하나뿐인 이부자리도 내준거 마다하고 구석으로 가버림

명헌이 본능적으로 쟤의 뭔가를 건드려버렸다는건 아는데 좋은 사람처럼 어르고 달래줄 방법을 모르겠지
그냥 앉아서 머리만 긁적긁적하다가 우성이가 엎은 죽부터 치움


울던가
차라리 악을 쓰고 떼를 쓰면서 울면 좀 나을거 같은데 우성이는 구석으로 가서 몸을 움크리고 공허한 눈으로 닫힌 장지문 너머만 바라보고 있겠지

결국 한입도 못 먹이고 좀 누워서 쉬어용 이러고 나가버리는 명헌

그 뒤부터 억지로 뭘 먹이려든다거나 하지는 않을듯

한편 우성이는 모든 상황이 다 지겹고 귀찮았음 몸이 괜찮으면 당장 나가버릴 초라한 초가집도 막상 나가면 어딜가고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나가려는 시도조차 안함

화를 내던 나무꾼도 마찬가지로 귀찮았음 자신이 싫어지면 내쫒거나 하겠지 싶은 마음에 두고보니 정말 그 뒤로 우성을 보러온다거나 하지 않아서 방 한 켠에 천장 보는게 하는 일의 전부였을듯

항상 따뜻하게 불이 들어와있는 구들장 위에서 누워있거나 간혹 앉아있거나 하는데 어느날은 벌컥 눈이 열리니까 반자동적으로 고개가 돌아감


눈이 미친듯이 많이오는 날이었는데 아침부터 함박눈이 내리고 쌓이고를 반복해서 눈이 허벅다리까지 왔음 명헌이는 대충 천으로 하관을 둘러맸는데 그래도 바람이 매서워 얼어붙을듯 추웠을듯

변변치않은 장갑같은 것도 없어서 방에 들어오자마자
눅눅한 천을 벗어내는데 손가락이 곱아들정도로 벌겋게 변해있어서 우성이는 눈이 크게 뜸

아 미친 춥다뿅

명헌이는 곧장 깔아둔 이부자리 밑으로 손을 쑥 넣음
그러다가 우성이랑 눈이 마주치는데 아, 하고 명헌이가 품 안에서 뭘 꺼냄

집에 존재하는 천 중에서 보기 드물게 좋은 비단이었는데 보자기보다는 면적이 적고 손수건보다는 컸음 쨌든 한눈에 봐도 좋은 비단이라는건 우성이조차 알 수 있었음

명헌이 품에서 그걸 꺼내더니 우성이에게 넘겨줌
불신 가득 담은 눈이 한참을 비단만 노려보듯이 보니까 명헌이가 억지로 품에 안겨줌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우성이가 묶은걸 풀어보는데

딸기

날이 추워서 제대로 못 큰 딸기가 그래도 과실을 맺긴 했는지 겨울과는 어울리지 않게 붉었음 우성이가 그걸 한참을 들야다보고 있다가 다시 명헌을 보니 옷이 눈 때문에 온통 젖어있고 코도 벌겋고 귀도 벌겋고

그건 먹을 수 있겠나용?

명헌이가 물어보면 우성이가 다시 딸기를 보다가 명헌이를 번갈아 보더니

왜.....

앗 뿅발이게 아닌가. 별로 안 좋아하는거 같아서 명헌이는 또 괜한짓했나 싶어짐 처음 만난곳에 온갖 과실이 있길래 선녀들은 이런걸 먹고사나 싶어서 산을 뒤져본 거였음 왜인지 우성을 처음 만난 선녀탕을 다시 찾을 수가 없어서 하루 종일 산을 뒤지고 다니다가 겨우 찾은거였는데 아니었나봄

명헌이 힝되서 울상되니까 우성이가 본능적으로 딸기 안 뺏기려고 자기쪽으로 꼭 끌어당기면서 다시 왜? 하고 물어봄

그제야 알아듣고 명헌이가 살아용 이럼
밥 꼭꼭 먹고 쑥쑥 크고 그렇게 살아용
그래서 너 팬 애들 다시 만나면 패버려용

난 그렇게 살았어용

그러면 우성이가 그 말 듣더니 고개 푹 숙이고 손가락 꼼지락 댐.
슬슬 딸기 안 먹을거면 다른걸 찾아야하나.... 고민하는데 갑자기 우성이가 딸기를 집어서 먹기 시작함

아이구

울지마용
아니다 더 울어용

훌쩓훌쩍

하면서 울면서 딸기 씹어먹는 우성이를 보면서 명헌이가 손으로 뺨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데 닿는 살이 너무 차가워서 흐어어엉 울다가 명헌이 품에 덥석 달려들어 엉엉 우는 우성이. 닿는 모든 자리마다 차갑고 시린데 오히려 너무 따뜻해서 뜨거워서 놓을 수가 없었음


그렇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 선녀 우성이는 날개옷이 찢어져 인간세상에 주져앉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선녀를 어쩌다 주워버린 나무꾼 명헌이

우성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