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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3 17:55
동양풍 au 살짝 섞은 세계관?으로

나이 조작 해도 태섭이 첫사랑은 대만이겠지.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얼마 있지 않아서 형도 죽고 어두워진 태섭이가 혼자 있을 때 다가와준 다정한 형아 대만이... 두어번 만났는데 그때마다 태섭이는 낯도 가리고 부끄러워서 조용히 있었고, 대만이는 혼자 있는 아이들한테 다가가서 말걸고 노는 게 일상이라 태섭이를 기억도 잘 못할 거야. 기껏해봐야 항상 구석에 있는 작고 조용한 애 정도?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대만이는 항상 나오는 공터 같은데에 잘 나오지도 않겠지.
그렇게 남몰래 자신만의 첫사랑을 앓으며 마음을 키워가던 태섭이... 그런 태섭이에게 어느날 혼담이 들어왔음. 딱 혼인적령기에 발끝 걸칠까 말까한 어린 태섭이지만 지금 집안 남자들 거의 다 죽은 위태로운 상황이라 혼인이라도 해서 집을 일으켜야 해서 어쩔 수 없음. 태섭이도 그걸 아니까 마음을 접으려고 하는데 오잉 혼담 들어온 상대가 그 첫사랑 형아라는 거에요;; 태섭이 입장에선 진짜 개이득임. 그 형은 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다니 이 무슨 기적 같은 일이야. 태섭이는 안그런 척 매일매일 혼인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째 아름아름 들리는 소문이 심상치 않음.

그 성격도 좋고 남녀노수 두루두루 인기도 많던 사람이 낙마 당해 다리를 크게 다친 이후 완전 다른 사람이 됐다, 무뢰배들이랑 어울린다더라, 성격도 괴팍해서 사람을 두들겨 팬다더라, 굳이 정씨 가문이랑 급도 안맞는 가문에 어린 신부한테 장가 보내는 이유가 뭐겠느냐 일부러 치워버리려 그러는거다.... 그 말들의 대상이 대만이라는게 상상도 안갈만큼 온갖 나쁜 소문들이 태섭이 귀에 들리는 거지.
태섭이는 그 소문을 들으면서도 아닐 거다, 그럴 리 없다 하고 기다리는데, 혼인식날 신랑인 대만이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겠지. 소문이 진짜였구나 하고... 짧고 단정하게 손짓되어있던 머리는 어깨까지 길었고 눈도 새까맣게 죽어있고 무엇보다 잔잔하게 웃고 있던 얼굴은 아무 감정도 없다는 듯이 무감각하기만 해. 낙마 당해 다쳤다던 다리를 살짝 절기까지 하고. 자기도 모르게 그쪽 다리를 빤히 본 순간,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겠지. 놀라서 그쪽을 올려다보면 눈알만 굴려 태섭이를 내려다보다 다시 앞을 보는 대만이 얼굴이 보일거야.
태섭이는 순간 세상이 무너진 듯 앞이 깜깜하겠지.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당신 얼굴을 떠올리면서 버텼는데... 당신이 해준 말을 듣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는데... 다시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애써 지우면서 태섭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몸을 바로 세우겠지.

대만이는 그런 태섭이 모습을 다 눈치 채고 있었겠지. 본인딴에는 아닌 척 하려는데 어린 애가 그래봤자지 뭐. 가문에서 자기 처지가 어떤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대만이야. 소문처럼 골칫거리인 자신을 아무데나 장가를 보내 치워둘 셈이겠지. 다리만 다치지 않았어도, 이 빌어먹을 몸뚱이만 아니였어도 이런 곳에 올 일은 있지도 않았을텐데. 키가 제 가슴께에 오는 이런 작은 꼬맹이랑 혼인할 일도 없었을거고. 근데 자신을 보고 겁을 먹어 덜덜 떠는 꼴을 보자니 좀 마음이 이상하긴 했어. 어차피 어른들의 이해 관계에 휘말린 애일테고.
자신 같은 반푼이도 서방이라고 평생 옆에 묶여서 살아야 할 요 꼬마녀석이 조금 불쌍했던 것도 같아. 그러니까 그건 다분히 충동적인 행동이였을거야. 태섭이의 눈꼬리에 맺혀있던 눈물이 흐르던 순간 손을 뻗어 닦아준 건. 그러고선 눈을 마주치고,

울지마, 부인.

하고 속삭인 것도. 대만이는 이게 뭔 짓이냐 싶어 금방 손을 거두고 얼굴을 돌렸지만 태섭이가 자신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건 아주 잘 느낄 수 있었겠지. 하지만 태섭이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는 건 몰랐을거야. 당신에게는 여전히 다정한 면모가 남아있구나. 고개를 푹 숙인 태섭이는 전과는 다른 의미로 떨리는 손을 옷 속에 숨겼어.

그렇게 혼인식이 끝난 이후로 대만이 뒤엔 조막만한 부인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작은 목소리로 부군 부군하고 불러댔을거야. 그게 조금 거슬려서 훅 뒤돌아서 보면, 태섭이는 움찔거리다가도 주춤거리면서 다가와 대만이의 옷자락을 잡는 거지. 손 끝으로 아주 살짝 잡는 모습에 뿌리치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대만이는 그냥 그대로 두었어. 점점 둘 사이는 가까워지고 어느새 태섭이가 양손 가득 대만이의 옷자락을 쥐고 따라다닐 때쯤, 어느날은 밤새 폭우가 쏟아져내렸어.
끙끙 앓던 대만이는 결국 발작하듯 숨을 들이마쉬며 일어났어. 욱씬거리는 무릎에 겨우 손만 대며 고통을 참아내고 있으니 제 옆으로 조심히 기어오는 부인이 보이겠지. 태섭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만이의 무릎을 향해 손을 뻗었어. 지금까지 자신의 무릎에 그 누구도 손을 대지 않게 하던 대만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냥 다 내버려두고 싶었어. 무릎을 더듬는 작은 손은 딱히 대만이의 아픔을 덜거나 없애주진 않았지만, 홀로 뜬눈으로 보냈던 밤보단 나았어.



뭐 여차저차 애기 부인이랑 지내면서 잘 해감된 대만이가 머리도 옛날처럼 짧게 자르고 성격도 많이 밝아지는 것도 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는 거 보고 사람들이 저러다 재혼할 거다 뭐다 수근거리는데, 살짝 부른 배 위에 손 올리고 뒤뚱거리며 걸어오는 태섭이 보자마자 얘기하던 것도 끊고 성큼성큼 다가가 힘들텐데 왜 여기까지 나왔냐고 끌어안는 대만이 때문에 소문도 안 날 듯.


슬램덩크 대만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