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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1 13:28




곧 있을 재계약 논의를 위해 구단 사무실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 대만은 우연히 태섭을 만났다. 수트를 빼어 입은 태섭은 똑같이 수트를 입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대만은 순간 제 눈앞에 있는 것이 송태섭이 맞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 선배."


태섭이 먼저 대만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태섭은 얼마 전 미국에서 돌아왔다고 했다. 북산 OB끼리 모여 환영회를 해준다고는 들었지만, 대만은 당장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참석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태섭을 볼 면목이 없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예 모른 척할 수는 없어, 다음 날 울며 겨자 먹기로 권준호가 알려준 번호로 잠깐 통화를 했었다.


"..오랜만이다."


대만은 태섭에게 손을 내밀었다. 태섭이 웃으며 대만의 손을 맞잡았다. 태섭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꽤 다부진 몸을 하고 있었다. 증량하는 거 힘들어했었는데, 유지 잘하고 있는 모양이네.


"여긴 어쩐 일이야?"


태섭은 어깨를 으쓱였다. 


"선배는요?"
"아, 난 곧 재계약이라 잠깐 이야기 좀 나누느라.."


태섭과 대화하는 잠깐새 몸이 뜨끈해졌다.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자, 민망함과 어색함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 대만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빙긋 웃었다. 그랬구나, 상대도 마찬가지였는지 어색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전화 통화를 할 때도 그랬다. 잘 지냈냐, 언제 왔냐, 잘 지낸다, 일주일 전에 왔다, 따위의 대화를 나누면서도 종종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었다. 통화는 5분 만에 마무리되었었다. 태섭이 볼을 긁적였다.


"..혹시 오늘 시간 어때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대만이 숨을 멈췄다.


"그, 저번에 선배가.. 다음에 보자고 했었잖아요."


했었지, 인사치레로. 대답하지 못하고 대만은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지금 태섭이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대만은 난감했다. 곧 5시,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엄마 오늘 뭐 한다고 했지. 그런데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태섭과 저녁을 먹어도 괜찮은 건가. 우리가 그래도 되는 사이인가.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태섭의 제안이 반갑기는 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말도 안 되었다.

그는 태섭을 볼 낯이 없었다. 물론 지금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있기는 하지만. 게다가 다른 사람과 낳은 아이를 내심 태섭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태섭과는 평생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태섭 또한 저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 당연하게 여겼다. 대만이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태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 아들도 보고 싶고.."


태섭의 손은 수트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꽤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같이, 저녁 먹을래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태섭에게 대만은 거절할 수 없었다. 


"아, 응."


줄곧 무표정이던 태섭이 미소 지었다. 대만은 순간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개운해짐을 느꼈다. 모르겠다. 송태섭이 제 아들을 보고 싶다고 했고,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겠지. 대만은 태섭을 주차장으로 이끌었다. 다행히 그는 아직 차가 없어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가야 하는데 괜찮은지 묻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후, 대만은 목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불편하지 않겠어?"
"뭐가요?"


대만은 멋쩍게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그.. 같이 밥 먹는 거 말야."
"뭐.."


태섭은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창을 보았다. 대만은 태섭도 저처럼 마음이 복잡하리라 짐작해본다. 반대쪽 창을 보며 대만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이가 아직 어리고, 그 나이대 아이들이 아주 많이 산만하며 짓궂다는 말을 마치 변명처럼 주절댔다.


"어린애를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닌데, 괜찮아요. 동생 있거든요."
"아, 그랬지."
"네, 결혼을 빨리 해서 조카도 있어요."


정말? 네, 정말요. 잠시 후 신호에 차가 멈춘 사이 태섭이 수트 안쪽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사진 하나를 건넸다. 사진 속에는 태섭을 쏙 빼닮은 통통한 여자 아기가 있었다. 귀엽다. 대만은 웃음을 터뜨렸다.


"너랑 진짜 똑같이 생겼는데?"
"뭔 소리예요. 동생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그럼 동생이랑 너랑 닮았나 보다."


닮았다는 말이 반갑지 않은지 태섭은 한쪽 눈썹을 한껏 올리고 지갑에 다시 사진을 넣었다.


"닮은 게 뭐 어때서. 조카가 널 닮으면 좋지 않아?"
"..닮아서가 아니라 얘는 진짜 예뻐요. 똑똑하구."
"그래, 그래."
"선배도 아들 있어서 알겠지만요."


그렇지, 대만은 조금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손가락으로 턱을 쓸었다.


"선배 아들 보고 싶었어요."


대만은 붉은빛이 감도는 태섭의 갈색 눈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태섭은 고저 없이 말했지만, 대만은 그의 말에 가시가 있는지 아닌지 생각해야만 했다. 지은 죄가 있으니. 그러나 워낙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섭이기에, 짐작하기엔 어려웠다. 

구단에 들렀다고는 하지만 수트를 입은 것은 아니었는데도 괜히 목이 죄어오는 느낌이 들어 대만은 손바닥으로 목을 한 번 쓸었다. 아들은 저에게 둘도 없이 아끼는 존재였지만, 태섭과 같은 선상에 두면 불편해졌다. 아이에겐 미안하게도 마치 목안에 가시처럼 느껴졌다. 


"완전 똑같이 생겼다면서요?"
"..어, 응."


태섭이 얼마전 북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들었다며 조잘댔다. 정대만 미니미라고 하던데. 엄청 궁금하더라구요. 대만은 도톰한 입술이 움직이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며, 여전히 그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조금 뻔뻔하게도.

어린이집 앞에 도착해 대만은 태섭에게 기다리라고 하고 아이를 데려왔다. 태섭은 대만이 그의 무릎을 훌쩍 넘는 꽤 키가 커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모습에, 얼른 차에서 내렸다. 언젠가 태섭이 농구장에서 만났던 그 정대만을 그대로 축소해 둔 것 같이 생긴 아이가, 토끼같이 동그란 눈으로 태섭을 올려다보았다. 태섭은 아이에게 시선을 맞춰 몸을 숙였다.


"안녕."


아이는 낯을 가리지도 않는지 방긋 웃으며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대꾸했다. 태섭은 조용히 대만에게 속삭였다.


"선배랑 진짜 많이 닮았네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대만은 괜히 가슴이 뛰었다.


"너 진짜 잘생겼다. 나는 송태섭이라고 하는데, 이름이 뭐야?"
"정ㅌ.. 소만이! 다섯 살!"
"소만이?"


손바닥을 펼쳐 묻지 않은 나이까지 이야기한 아이는 활짝 웃었다. 아이의 이름을 들은 태섭은 순간 웃음이 나올 뻔한 걸 참고,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우와, 진짜 멋있는 이름이네."
"삼촌은 미국에서 왔어?"
"응, 맞아. 어떻게 알았어?"
"아빠가 알려줬어요."
"그래도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소만이는 진짜 똑똑하구나."


펌을 한 것처럼 곱슬곱슬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아이가 자랑스럽게 턱을 치켜들었다.


"삼촌 그러면 배코 삼촌도 알아요? 미국사는 삼촌인데. 어, 그리구 서태웅 삼촌도 있어요."


아이가 태연하게 잡고 있던 대만의 손을 놓고 태섭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태섭도 자연스럽게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럼, 알지. 가끔 만나서 놀았었어."
"우와!!"
"아빠한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거든."
"어!! 맞아, ㅌ.. 소만이도 알아!"
"진짜 똑똑하다."


아이는 또 자연스럽게 태섭을 차로 이끌었고, 대만이 얼른 두 사람을 따라가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카시트에 앉으면서도 아이는 입을 쉬지 않았다. 아빠, 난 언제 미국 가? 다음에 가자. 대만을 쏙 빼닮은 얼굴에, 머리칼은 갈색 곱슬머리, 통통한 볼에 토끼처럼 귀여운 얼굴로 아이는 쉴 새 없이 조잘댔다. 태섭은 금세 오늘 처음 보는 대만의 아이가 못 견디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이 뒷좌석 문을 닫자, 태섭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대만이 아들 소만이? 누가 애 이름을 그렇게 장난처럼 지어요? 그럼 소만이 동생은 중만인가?"
"...우리 엄마가 지었어. 나랑 닮았다구."


푸하하, 태섭이 웃음을 터뜨렸다. 똑같이 생기긴 했죠. 호탕하게 웃는 소리를 들으며 대만은 부끄러운듯 태섭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운전석에 올랐다. 


"어디로 갈까?"
"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선배가 맛있는 데로 골라봐요."
"입맛 안 맞을 수도 있는데?"
"..소만이 좋아하는 데로 가요."
"쟤 나랑 입맛도 똑같은데."


뒤를 돌아보니 아이는 어느새 고개를 꼬닥이며 졸고 있었다.


"우와, 좀 전까지는 종알대더니 어떻게 저렇게 빨리 잠이 들어요?"
"멀미를 하나 봐. 차를 타면 금방 잠들더라구."


그렇구나, 태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만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이제야 묻는다.


"넌 그럼 완전히 돌아온 거야?"
"네, 구단이랑 계약도 했어요."
"어디랑?"
"맞춰봐요."
"..우리?"


태섭은 한쪽 눈썹과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선배가 다른 팀이랑 계약하는 거 아니면 다음 시즌부터는 같이 뛰겠네요. 북산 졸업하고 처음이니까, 한 7년 되나요?"
"..그쯤되나."
"우리 잘해봐요, 다시."


태섭이 조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농구 코트 위에서 잘해보자는 말일텐데, 그게 꼭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그런 뜻이 아닐 텐데도. 농구가 아닌 다른 것도, 다시 잘해볼 수 있을까. 대만은 속으로 말도 안 된다고 되뇌고는 태섭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대만의 아들이 좋아한다는 경양식 돈가스집을 갔다. 주문한 돈가스가 나오자마자 대만은 돈가스를 전부 잘게 썰어 아이의 앞에 놓아주었다. 태섭은 잠깐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만을 보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저 사람은 늘 다정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서툴긴 해도 저에게도 늘, 신경을 써주었었다. 그러니 아이를 돌보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아이는 한 부모에게서 자랐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늘이라곤 한 점 없이 자란 티가 났다. 잘 먹고 잘 웃었다. 낯도 가리지 않아 처음 보는 태섭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했다. 태섭 또한 아이를 불편해할 이유가 없었기에 둘은 오래 보았던 사이처럼 금세 친밀해졌다. 아이는 어린애답게 칭찬에 매우 약했고 몇 번 칭찬을 해주었더니, 태섭에게로의 호의를 더 숨기지 않았다. 

대만은 저를 빼고도 제법 친해진 두 사람을 내내 따라가느라 바빴다. 간혹 맞장구를 쳐주거나, 두 사람에게 놀림을 당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아이는 원래도 붙임성이 있었지만, 식사가 끝날 무렵엔 태섭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다시피 했다. 식당을 나설 때가 되자 태섭에게 안아달라고 손을 뻗었다. 뒤에서 대만이 쓰읍- 하면서 삼촌 힘들어. 이리와 라고 하기에 태섭이 얼른 아이를 안아 들었다.


"미안."
"괜찮아요."


아이는 제 아빠를 쳐다보며 입술을 삐죽대더니 곧 태섭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졸려? 태섭이 묻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대만이 태섭의 옆으로 나란히 붙었다.


"아빠 근데 삼촌 몸이 딴딴해."


작은 손이 태섭의 몸을 주물럭댔다. 태섭이 간지러워 작게 웃었다. 괜히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대만이 장난스럽게 아이에게 팔을 내밀었다.


"봐봐, 소만아. 아빠보다 딴딴한가 봐봐."


밝게 웃으며 아이가 이번에는 대만의 팔을 주물댔다. 까르륵 웃더니,


"아빠는 딱딱하고 삼촌은 포근해."


애교 있게 태섭의 품을 파고들었다. 제게 안겨드는 아이를 태섭도 더 꽉 끌어안았다.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 게 사랑스러웠다. 안 무거워? 대만의 물음에 태섭이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안 무거워요."


칭찬이라 느낀 아이가 쑥스러운지 헤헤 웃었다.


"삼촌, 근데 있자나."
"응?"
"우리 집에 주머니괴물 마니 있는데 보러 갈래?"
"그럴까?"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솔직히 조금 난감하기는 했지만, 대만은 저를 닮은 제 아들과 태섭에게 쉽게 거절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태섭의 손을 잡아끌어 놀이방으로 향했다. 보여주기로 했던 주머니괴물과 미니카 컬렉션들을 자랑하듯 쭉 바닥에 늘어놓았다. 태섭은 아이에게 연달아 감탄사를 들려주거나 손뼉을 치는 등 꽤 호응을 잘해주었다. 

대만은 안에 함께 들어가는 게 왠지 어색해 놀이방 입구에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섰다. 아이와 만난 뒤 내내 잘 놀아주는 태섭의 모습이 조금 의외로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타고났을지도 모르겠다. 북산 농구부 시절에도 아래 학년들을 제법 잘 챙겼었다. 강백호와 쿵짝을 맞춰 놀던 것도 그렇고. 물론 저도 함께였지만.

태섭은 문 앞을 지키고 선 대만에게 편하게 할 일을 해도 된다고 말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할 일 많을 텐데, 제가 소만이랑 같이 있을게요. 몇 번 사양하던 대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승낙하고 방을 벗어났다. 아이는 제 아빠가 그러든 말든 태섭에게 장난감을 보여주느라 정신이 없다.

집에 들어온 지 두어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말소리와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태섭이 졸려? 물었더니 쌍꺼풀이 더 깊어진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가 아니!! 목청껏 대답했다. 태섭이 웃자, 웃지 말라고 아이가 안겨들었다. 하여간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붙임성도 좋다.

한 번 안긴 아이는 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목을 꼭 끌어안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태섭은 조금 난처한듯 아이를 안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졸음을 이기지 못한듯 아이의 눈이 감겼다. 놀이방을 나서자 거실을 치우는 대만이 보였다. 조금 전에는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거실에도 사방에 널려있는 장난감을 정리 중이었다. 인기척에 대만이 뒤돌았다.


"..자?"


작은 물음에 태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만이 얼른 다가가 아이를 받아서 안으려 했다. 으으응,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이가 태섭의 목을 꽉 붙들었다. 두 사람은 난처하게 눈을 마주쳤다.


"소만아, 삼촌 이제 집에 가야지. 아빠랑 같이 코- 자자."
"..시러."


굳게 감겨있던 아이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삼촌 안 돼애. 가지 마아!"


제법 단호한 말투는 잠이 잔뜩 묻어있다. 태섭의 목을 끌어안고 칭얼거린다. 태섭과 더 놀고 싶기는 한데 잠이 오니 붙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대만은 난처한 표정을 했다. 태섭도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겠다. 조금 더 아이와 태섭을 떼어내려 노력하던 대만은 결국 태섭을 집에 데려다주겠다 나섰다. 어차피 차에 타면 잠이 들 거고, 깊이 잠이 들면 괜찮을 거라고 태섭에게 속삭였다.

잠깐새 태섭의 품에서 곤히 잠들었던 아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눈을 뜨지 않았지만, 카시트에 앉히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태섭의 손을 잡고 삼촌 가지 마, 울먹이고는 몇초 되지 않아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금방 잠이 드는 아이를 보고 태섭과 대만은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귀엽네요."
"원래는 억지를 부리는 애가 아닌데.."


대만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타, 데려다줄게."
"잠들었는데 그냥 데리고 집에 가서 재우는 게 낫지 않아요?"
"그러다 깨어나면 골치 아파. 고집이 꽤 세거든."
"그건 선배 닮았네요."
"내가?"


태섭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정 씨 고집에 손발 다 들었잖아요, 내가."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랬나. 대만이 멋쩍게 웃는다. 태섭은 대만과의 어색한 분위기가 낯설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이런 적은 별로 없었는데. 태섭을 집에 바래다주며 대만은 태섭에게 덕분에 오랜만에 거실을 깨끗이 치울 수 있었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어차피 곧 똑같아지겠지만.


"애 키우는 게 쉽지 않네요."
"남자애라서 더 극성이지, 뭐."


선배 아들이라 그런 듯, 태섭은 말 대신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아, 저기 신호등 앞에서 세워주세요."
"집 앞까지 가도 돼."
"괜찮아요, 집 가는 길에 편의점도 좀 들러야 하고요."
"그래."

태섭이 조수석 문을 열었다.

"잘 가, 오늘 고마웠어."
"..선배."


태섭이 다시 뒤돌아 수첩과 펜을 꺼내 무언가를 적더니, 종이를 찢어 대만에게 건넸다.


"저번에 번호는 동생 거 잠깐 빌렸던 거고, 이거 제 새 PCS 번호예요."


대만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이걸 정말로 받아도 되는 건가, 잠시 생각해 본다.


"선배 번호는 안 줘요?"
"아.. 잠깐만."


대만은 태섭이 건넨 수첩에 제 PCS 번호를 적었다. 태섭이 활짝 웃었다.


"다음에 또 봐요."
"..어, 응."









슬램덩크
대만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