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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5 02:55
진짜 백날천날 개똑같은 통넓은 카고바지만 입고 다닐 거 같음

원래 학교 다닐 땐 맨날 똑같은 교복 체육복만 입기도 하고 산왕 운동부 애들은 자기네들 유니폼도 있는 데다가 머리도 다 빡빡이라 사복 입는 거 보는 게 특히나 흔하지 않기도 해서 약간 미니 이벤트 같은 느낌이겄지
그리고 이명헌 그 중에서도 특히 뭐 입고 다닐지 상상 안 되는 1인일 거 같음

이명헌 옷에 딱히 관심 있는 것도 아니고 기숙학교에 있으면서 사복 입을 일도 없어서 걍 중학교 때도 입던 작아져서 핏 애매한 티셔츠랑 통넓고 주머니 많은 카고바지 입고 있을 거 같음
분명 이상한데 어차피 산왕 농구부 애들 다 구리게 입을 거 같아서 특이점은 오지 않은

이명헌이 맨날 입는 카고바지에는 크게 네 개의 주머니가 있는데 각 주머니 하나에 빵이랑 새콤달콤 같은 간식거리 넣고 다님 가방은 귀찮아서 안 들고 다니고 그냥 바지에다가

가만 보면 위에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거 같은데 밑에 바지는 봄에도 카고바지 여름에도 카고바지 가을 겨울에도 카고바지라 저 형은 바지가 저거밖에 없나 생각할 듯 근데 정우성 지도 맨날 검정 나이키 흰색 나이키 티셔츠 돌려입기 중임

그리고 그렇게 들고다니는 빵은 이명헌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탄수화물이나 당 떨어져서 땡길 때 주머니에서 하나씩 쏙 빼서 먹음

그래서 수학여행 가서 사진사 아저씨가 애들 몰래 찍은 사진에 이명헌 빵쪼가리 입에 물고 있는 사진만 남아 있음

묘하게 심기불편해 보이는 사진은 이명헌 들고다니던 빵 다 먹었는데 아직 밥 먹거나 숙소 돌아가려면 한참 남아서 배고파서 불만밍힝된 사진들임

이명헌의 카고바지와 빵들의 전말을 알게 된 정우성 첨에는 아 진짜 형 사차원 ㅋㅋ 완전 웃기다 ㅋㅋ 하고 있다가 사실 바지에 넣고 다니는 빵들은 위로의 목적으로도 쓰인다는 거 뒤늦게 알게 됨

인터하이 끝나고 다시 학교 돌아가는 길에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시간도 남았겠다 하루 정도는 애들한테 자유시간 주는데 사실 어디 싸돌아다닐 기분도 아니고... 정우성 숙소 근처에서 훌쩍거리고 있으면 이명헌 소리도 없이 슥 다가올 거 같음 울어서 들썩거리는 어깨 가만히 툭툭 쳐주다가 맨날 입던 그 바지 왼쪽 주머니에서 스윽 빵 꺼내주는데 대빵 큰 맘모스 빵일 거 같음
맛있는 거 먹고 배부르면 기분이 나아진다를 스스로 실천 중이던 이명헌이 양도 많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빵 건네준 거.
근데 우성은 주머니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맘모스 빵 꺼내 준 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피식피식 웃음 새어나오고 평소에 자기도 달라 해도 절대 안 줬던 거 기억나서 목이 막혀도 그냥 그 자리에서 눈물 젖은 빵 먹음.

형도 머거요...
우성 다 먹어라뿅

그렇게 말해도 빵 쭉 찢어서 형 손에 쥐어주고 둘이 나란히 앉아 큰 빵을 음료수도 없이 다 먹고 들어감. 숙소 돌아오면 이명헌 위로 방법을 다 한 번씩은 겪어 봤던 주전멤들이 저마다 한 번씩 정우성 어깨 쳐주면서 위로해 주겄지 참고로 이명헌 빵 가장 많이 받았던 사람은 신장이랑 성장통으로 고생했던 현철이었음. 이명헌 빵 두 개는 들고 있어야 하나 다 주는데 말이지...

그러다 나아아중에 우성은 미국에 가고 명헌은 국내에 남아서 시차며 거리, 각자 사는 일 바빠서 연락 뜨문뜨문해지는데 우성은 종종 명헌을 떠올렸으면 좋겠음 위로한답시고 바지에 들고다니던 빵 주던 형이 웃겨서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거. 그래서 그때 먹었던 맘모스 빵은 미국에서 못 구하지만 그냥 동네 빵집에서 그나마 비슷해 보이는 빵 골라서 그거 먹으면서 버텼다고 하는 거 나중에 산왕 모임 겸 등으로 형 만나서 얘기했으면 좋겠음. 그냥 눈물이 나도 눈물로 적시면서 빵 다 먹으면 그냥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고.

그거 그리웠는데. 형 이젠 그 바지도 안 입었네요. 양복 입어서 빵 못 들고 다니겠다.

하고 뭔가 아련한 눈빛으로 말하는데 이명헌 피식 웃더니 자켓 안주머니에서 자두 사탕 두 개 꺼냈으면 좋겠음 하나는 우성 주고 하나는 자기가 바로 까먹고.

빵 없어도 위로해 줄 수 있다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