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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9 11:30
운동부 남고생 둘을 가리기엔 우산 안의 공간이 넉넉치 않아서 서로의 어깨가 닿을 거고 그게 미친듯이 불편한 송태섭... 비 오길래 뛰어가려고 했던 태섭이를 붙잡은 정대만은 자신의 우산 아래에 송태섭을 초대했음. 게다가 집까지 데려다준다고까지 함. 괜찮다며 거절해도 정대만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고 그 결과, 송태섭은 맨정신에 좋아하는 사람이랑 한 뼘보다 더 가깝게 집까지 걸어야하는 상황이 되었지. 슬금슬금 도망가보려고 해도 기껏 선배가 우산도 들어주는데 너무하네, 송태섭. 하며 정대만이 어깨 끌어안는 바람에 도망도 못 감.

아씨....
아씨? 나 좀 서운하려고 그런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

당신 때문에 심장 터질 것 같다는 소리는 못하겠으니까 저 앞에 편의점에나 가자고 하겠지. 그러나 그 목적이 우산 사기인 걸 알고 바로 정대만에 의해 묵살됨. 난 괜찮으니까 데려다줄게. 그 말에 내가 안 괜찮다고요!!! 하고싶은 태섭이..... 그치만 꾹 참고 얼른 집이 보이길 바라면서 숨도 못 쉬고 걷겠지.

대만이가 뭐라고 말 걸면 대답은 하는데 사실 대답도 제대로 하고있는지 모르겠음. 으 진짜 미치겠다... 못 견디고 우산 밖으로 뛰쳐나가기 직전에 집이 보였고 겨우 한숨 돌리겠지. 대만이는 태섭이가 더 이상 비를 맞지 않아도 되는 아파트 공동현관까지 데려다주었음.

내일 보자. 산뜻한 인사와 함께 짓궂게 태섭이 머리칼을 헤집고 - 아 선배! / 하하하 - 가는 대만이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대만이의 한쪽 어깨가 유독 축축하게 젖어든 게 눈에 보였지. 뭐지 그렇게 붙어서 왔는데...? 자신의 옷을 확인해보니 어깨는 커녕 바짓단이 조금 젖은 건 말고는 말짱했음. 순간 대만이의 젖은 어깨가 우산의 바깥쪽 어깨라는 걸 깨닫고 태섭이는 거짓말. 하고 혼자 중얼거렸음. 아니야. 착각이야. 착각이라고, 송태섭. 허튼 짓 하지 말고 이대로 집으로 가. 하지만 발은 멋대로 빗속으로 뛰어들어가 대만이에게 달려갔음. 그새 빠르게 걸어간 건지 생각보다 꽤 달려야했지. 우산을 쓴 대만이를 보자마자 소리쳤음.

선배!

태섭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대만이는 바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고 빗속을 뛰어오는 후배를 보자마자 얼른 달려가 우산을 씌워주었음.

야 너는! 내가 우산도 씌워줬는데!
선배... 헉... 어깨....
어깨? 내 어깨가 왜?
어깨 젖었잖아....
어?
그렇게 붙어왔는데 나는 멀쩡하고 선배 어깨는 왜 젖었냐구요.
그거야, 그건,
뭔데 진짜.
그건...

이런 질문은 예상치 못한 듯 대만이는 대답을 못하고 버벅대자 태섭이는 순간 자신이 지나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음. 갑자기 이성이 돌아온 것처럼 정신이 들어서 얼른 수습해야겠다 싶었지.

아니에요. 내가 괜한 걸 물었어요.
뭐?
얼른 가요, 비도 오는데.
잠깐만, 송태섭.
내일 봐요.

미친 그러니까 그냥 집으로 가랬잖아! 본능만 따르고 행동한 자신을 원망하며 다시 빗속으로 뛰어가려는 그 때, 대만이가 태섭이를 잡아당겨 가지 못하게 했음.

왜, 왜요?
비오잖아. 데려다줄게.
뛰면 금방이에요.
데려다준다고.
됐다니까요?
말 들어.

지금은 정말 몸을 맞댈 자신이 없었는데 정대만은 아까처럼 너무 쉽게 태섭이의 어깨를 감싸안아 다시 태섭이의 집으로 향했음. 아 진짜....... 이성을 배신하고 멋대로 행동한 업보는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한치의 틈도 없는 정대만과의 거리를 또 한 번 감당해야하는 거였음. 그래도 학교에서 올 때보다는 거리가 짧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 그런데 대만이가 말을 걸어왔음.

송태섭.
...네?
넌 좋아하는 사람이 비 맞으면 어떡할거냐.
네?
난 같이 우산 쓰고 싶거든.
......
그럼 걔랑 가까이 붙어서 갈 수 있으니까.
......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핑계로 더 같이 있을 수 있고.
......
그리고 가면서 걔 옷이 괜히 젖는 일은 없게 하고싶어.
......
이러면 대답이 됐냐.

태섭이는 대만이의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고 대만이도 역시 함께 멈췄음. 자신의 나쁜 머리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

.......그거 되게 이상하게 들려요.
뭐가.
되게.... 나를.....
어.
나를......
......
좋아...하는 것 같잖아요.
좋아하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좋아해.

그 말에 앞만 보던 송태섭이 얼굴을 들어 정대만을 쳐다보니 정대만도 똑바로 송태섭을 보고있었음.

내가 뭐 때문에 이 비 오는 날 굳이 널 데려다준다고 했겠냐.
.....친한 후배니까?
하 너는 대체.... 나는 너 좋아해서 그랬는데.
.....거짓말.
이제 와서 이런 말하는 거 이상한 거 알아. 그치만 네가 좋아, 태섭아. 정말이야. 네가 날 보며 웃을 때가 제일 좋아. 네가 나만 보고 나한테만 웃어주면 좋겠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널 좋아하는 거잖아.

아까부터 끝을 모르고 흘러나오는 대만이의 진심이 태섭이한테는 너무 갑작스럽고 벅차서 목구멍이 콱 막힌 것만 같았음. 어쩐지 뜨끈해지는 것 같기도 한데 애써 삼켜내며 입술을 깨물었지.

이거 고백 받아달라는 얘기 아니다.
......
네가 물어서 대답한 거야. 그것 뿐이니까 긴장 안 해도 돼.

근데 왜 그런 얼굴을 하는데요. 씁쓸해보이는 대만이를 보고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마치 목소리를 잃은 것처럼 말이 나오질 않아 계속 대만이를 쳐다보기만 했음. 가자, 데려다준다고 했잖아. 대만이가 어깨를 안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지만 태섭이는 움직이질 않았음.

송태섭?

너 안 갈 거야? 대만이의 다음 말은 곧 태섭이의 입술에 삼켜졌음. 잡았던 우산이 떨어졌지만 주울 생각도 없었지. 비를 맞아도 상관없었음. 이미 젖은 옷이 조금 더 젖어봤자잖아. 그보단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멱살을 잡고 서툴게 전하는 후배의 진심이 한톨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그 애의 얼굴을 감싸는게 먼저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