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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9 17:21
동오가 보고싶다.

동오 사고 쳐가지고 벌로 부둣가 밀수 컨테이너 관리 보러 내려왔는데 밤 늦은 퇴근길, 어둡고 오래된 골목길에 애 한 명 쭈구리고 앉아서 울고 있는 거 딱 본거지

야 너 여기서 뭐 하냐 늦었는데 집에 안 가?
오지랖 발동한 동오가 슬쩍 말 걸어보는데
무릎 사이에 얼굴 파묻고 있던 애 고개 살짝 들면 쪼끄만 얼굴은 얻어터져서 곳곳이 상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팔 다리에 매 자국에 멍 자국까지 
어휴

누가 이랬어... 집에서?
지도 사람 패고 다니는 주제에 요새 펜 좀 잡고 일했다고 매 맞은 애 보니까 마음 쓰여서
꽤나 다정하게 묻는데 
그럼 그 애 눈에 눈물 머금고 고개 끄덕이겠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으려고 
쪼끔 있으면... 아빠 자용... 그때 몰래 들어가면 돼용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웅얼거리는 아이

밥은 먹었냐? 형 아직 못 먹었는데 저 앞에 포장마차에서 라면 같이 먹을까? 형 혼자 밥 먹는 거 싫어해서 하고 동오가 손 내밀면 쪼끔 고민하다가 내민 손잡아 주겠지

애 손 잡고 포장마차가서 소주 하나 라면 둘이여~ 아 잠시만요
아가 딴 거 먹어도 돼 하니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우동 먹어도 돼용? 하는 애
그래 우동 먹어라
라면 하나 우동하나요! 하고 우동 시켜주고
소주는 제 컵에 콸콸 따르고 애 앞에는 물 따라서 놔주면 목말랐는지 꼴깍꼴깍 한 번에 원샷

별 대화도 없이 늦은 저녁 먹고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가 다시 본인 집으로 데려가서 상처에 약도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주고

아가 이름이 뭐야?
이명헌이용 12살
형은 최동오야 동오형이라고 불러줘 


형 집에서 자고 갈래? 물으니
또 혼나면 어떡해요오... 하고 집에 보내달란다
그럼 무슨 일 있으면 여기 형 집 이제 아니까 이쪽으로 와
네에

불 꺼진 명헌이네로 찝찝한 마음 안고 데려다주는 동오

며칠 뒤에 짠 내 나는 바닷가에 일수가방 들고 거닐고 있는데
저 멀리서 자기 향해 흔드는 빼짝 마른 팔

어?
명헌이구나 안녕~
학교 마치고 나온 건지 가방 메고 자기 쪽으로 달려오는데 그때 맞은편에서 오는 오토바이
오토바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명헌이

얼른 뛰어가보니 애 주변에 사람은 오만상 있는데 오토바이는 없고
피 흘리는 애 업고 병원 뛰어가서 입원시키고

보호자라고 하나 있는 애비새끼 오더니 병원비 많이 든다고 대충 퇴원시키라고 지랄 하는 거 보고
최동오 눈 돌아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꺼지라고 서울 깡패 새끼 패악질이 뭔지 단단히 보여줌
왜 저 새끼 기둥서방이라도 해줄라고? 술이 떡이 돼서 할 말 못 할 말 구분도 못하는 놈 다리 분질러 놓고 깽값이라고 수표 몇 장 던지고 명헌이한테 온다

병원은 딴데 알아보시고

똑똑 떨어지는 링거 바라보고 있는 명헌이 한테가서

아프지...
괜찮아용 형 봐서 좋았는데 부딪히는 순간 이제 못 보는 줄 알고 그건 쪼끔 무서웠어용
...

지새끼 입원했는데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는 아빠 대신 매일 와서 옆에 있고
지나가다 문구점에서 인형하나 사와서 안겨주고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형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용... 자기가 말하고도 화들짝 놀래서 입 가리는 명헌이 보고
형도 그랬으면 좋겠다 웃으면서 답하는 동오

명헌이 퇴원할 즘에 서울에서 올라오라는 연락받고
명헌이한테 형이랑 같이 서울 가서 살까?
우리 중학교는 서울에서 다닐까? 얘기 꺼내는 동오

그래도...돼용?

어차피 술 처먹고 오래 못 살 거 같은 놈한테서 명헌이 빼와가지고
서울에서 우리 애기 잘 키워야지!
자기도 사랑이라곤 하나도 못 받고 자라서 자기가 어렸을 때 나도 이랬으면 좋겠다...생각 든 거 명헌이한테 다 쏟아부을 준비 됐겠지

서울 올라와서 명헌이 교복 따악 맞춰주고 중학생 학부모 노릇이나 하고 있는 최실장
처음으로 사는 게 재밌다고 느낌
사무실에서 부하 놈한테 저 형님 웃는 거 일 시작하고 처음 봤습니다! 소리도 듣고

시험 기간이라고 머리 싸매고 있는 애 옆에서 문제집도 매겨주고 
어휴! 야 이게.. 맞는 거보다 틀린 게 더 많다 
색연필로 애 머리 톡 때리면 아 머리 나빠진다구용! 까불기도 하는 꼬맹이

그러다 동오 오랜만에 회식해가지고 술 거하게 취해서 들어오는데
도어락 삐끗거리면서 못 열 때부터 명헌이 덜덜 떨고 있음
방에 후다닥 숨고 현관 열고 동오가 응 .... 아직 애 잘 시간 아닌데 하며 들어오는데
목소리가 누가 봐도 술 취한 목소리라 방 안 구석 박혀서 못 나오는 명헌이

자나...? 하고 명헌이 방 문 딱 열고 문에 비스듬히 기대서 안쪽 보는데
자기 보고 인사도 안 하는 명헌이랑 눈 마주치고
으응... 하면서 이리 오라고 
손 까딱 까딱
그 모든 행동에 겁먹은 명헌이 덜덜 떨면서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가는데
동오가 명헌이 안고 싶어서 팔 뻗으면 자기 때리려는 건 줄 알고 얼굴 가리고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잘못했어요 잘못...해써여 하고 우는데 그 순간 동오 술 확 깨고 한 손에 들고 있던 가방 툭 떨어뜨리는데 그럼 그 가방 안에서 낙수한테 꼽 먹어가면서 인형 뽑기 기계에 7만 원 쓰고 겨우 하나 뽑아온 명헌이가 젤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 떼구르르르 굴러 가겠지

명헌이 그것도 못 보고 잘못했어여 때리지 마세요 하고 우는데 
동오 덜덜 떠는 명헌이 꼭 끌어안고 괜찮아... 형이 널 왜 때려 명헌이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하면서 토닥토닥
조금씩 진정되는 명헌이 등 위로도 뜨거운 눈물 뚝 뚝 떨어지고 있겠지
방 문 앞에서 부둥켜안고 울다가 동오가 인형 줍고 명헌이 안아서 쇼파로 가는데
운 동오 얼굴 보고 명헌이가 손으로 형 울지마용 하고 눈물 슥슥 닦아주면 최동오 눈물 또 터져서 펑펑 울어버림
으아...
형이 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
이제 명헌이가 동오 달래준다
나는 형 웃는 게 젤 좋아용...

동오 이제 좀 민망해져서 뚝 그치고 아까 뽑아온 인형 명헌이 쥐여주고
짠.... 형이 이거 뽑는다고 김낙수한테 을마나 혼났는데
우와아! 
손에 잡힌 작은 선물에 해맑게 웃어주는 아이 보고 최동오 가슴 뭉클함

그날 이후로 술 딱 끊고 사무실 일만 보는 동오
낙수야 오빠 앞으로 착하게 살 거야
지랄

산왕물산이 양지로 올라오게 된 일등공신이 이명헌이라는 사실은 믿거나 말거나~

동오명헌
산왕 느와르

이런 게 왜 이렇게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