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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23:47
1순위가 애들이라 아주 단호해질 것 같음

백호는 어릴 때부터 가정에 대한 갈망이 있긴 했는데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혈연에 대한 집착이 있었을듯. 원래는 안 그랬는데 태웅이가 아이는 지우자고 말하고 미국으로 유학간 뒤로 남친/남편/파트너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게 되었음. 백호의 곁에서 죽음으로서 떠난 존재는 그의 부모 밖에 없었기에 백호는 가정 자체에 대한 갈망을 버리고 아이들에게 집착하기 시작했지.

근데 이게 겉으로는 티가 안 났을거임. 백호가 워낙 모성애가 강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보살피는게 가정에 대한 갈망으로 비춰지기도 했으니까. 대협이는 백호가 아이들을 애지중지하는 걸 알아서 그걸 빌미로 백호를 붙잡았음. 그렇게 좋아하던 농구까지 포기할 정도로 태웅이 애를 지켜낸 백호니까 쟤가 원하는 가정을 만들어주면 자길 떠나기 쉽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했음. 그렇게 대협이는 백호의 옆자리를 꿰찼고 더 확실하게 백호를 잡기 위해 자기 아이들도 임신시켰음. 대협이는 철두철미해서 백호가 셋째까지 낳고 난 뒤에야 조금 안심을 했겠지.

하지만 첫째가 중학생이 되고 mvp까지 따오며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날, 예기치 않은 손님이 대협이와 백호를 찾아왔음. 바로 느바 선수가 된 태웅이었음. 재능기부를 한다고 학교에 일일 코치로 간 태웅이는 그 해 mvp라는 아이를 눈여겨 보았음. 처음에는 순수하게 농구 뉴비에 대한 기대로 다가갔으나 감독에게 저 아이 아버지가 지금 현역인 윤대협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감상이 달라졌음. 유망한 인재를 봐주겠다는 핑계로 아이와 가까워진 태웅이는 얼마 안 가 걔가 제 아이라는 걸 깨달았음.

백호와 헤어지고 후회와 슬픔에 잠겨있던 태웅이는 백호가 제 아이를 낳았다는 말에 눈이 뒤집혔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난 날들을 되찾고야 말겠다고 생각했음. 특히 부쩍 친해진 아이에게서 가끔 엄마가 농구공도 없이 집 근처 코트에 가곤 한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백호와 아이를 데려오겠다는 마음이 더 확고해졌음.

대협이와 백호네를 찾아간 태웅이는 친자확인결과서를 내밀었음. 백호는 하얗게 질렸고 대협이는 무표정이었지만 그 아래가 잔잔하게 끓고 있었지. 태웅이는 대협이를 노려보며 아이와 백호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음. 막는다면 법적으로 다투겠다는 말을 남기고 태웅이가 떠나고 백호와 대협이는 패닉에 빠졌음. 백호는 아이들이 상처받을까봐 걱정했고 대협이는 백호가 떠날까봐 걱정했음. 대협이는 백호가 아직도 농구에 미련이 남았다는 걸 알았음. 걔가 가끔 농구공도 없이 코트를 서성인다는 걸 알았고 그럴 때마다 백호를 집으로 끌고 오고싶었지만 대협이는 백호를 사랑했기에 백호가 농구에 대해 미련을 갖는 시간을 차마 방해할 수 없었음. 어찌되었든 백호는 저녁이 되기 전 집에 왔으니까.

하지만 태웅이가 나타나고 백호와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자 대협이는 그동안 잠잠했던 소유욕이 다시 솟구치는 기분이었음. 백호는 태웅이가 저와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아니었지. 태웅이는 백호와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찾아왔고 대협인 끝까지 싸울 작정이었지만 백호가 어찌 나올지 걱정이었음. 아이를 데리고 가버리면 어떡하지? 대협이가 숨겨둔 질투가 스멀스멀 올라왔음.

대협이는 백호에게 떠나지 말라는 말은 하지않았음. 대신 이전보다 좀 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음. 백호가 원하는 가정의 이상향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음. 백호는 그럴수록 초조해했음. 이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사태를 막고싶었음. 하지만 태웅이는 단호했고 대협이 또한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아니었음.

결국 양육권 소송이 시작되고 먹이를 문 기자들이 알음알음 기삿거리를 퍼다 날랐음. 평화롭던 윤 선수의 가족사가 세상 천지애 까발려지기 일보직전이었지. 이미 첫째는 눈치를 챘나봐. 부활동도 안하고 학교만 다녀온 뒤에 방에만 콕 틀어박혀있으니까. 저녁도 안 먹는 첫째에 백호가 전전긍긍해하자 대협이가 제가 달래보겠다며 방으로 들어갔음. 다행히 문을 잠그진 않아서 대협이는 수월하게 방으로 들어갔지. 백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간단한 식사거리를 가져왔음.

저도 안으로 들어가려고 타이밍을 재려 방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백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음. 대협이는 한껏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속삭이고 있었음.

만약 네가 가고싶다면 가도 돼. 어쨌든 그 사람은 너의 친부니까.. 어쩌면 미국이 너의 진로에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지. ......나는 괜찮아. 백호가 있잖아.

대협이의 말에 백호가 눈을 질끈 감았음. 어디로 가도 낙원은 없구나. 태웅이에게서 날아온 소송 그리고 대협이의 속삭임은 백호가 어떤 결심을 하게 만들었음.

혼란 속에서도 대협이는 선수생활 도중이었고 원정 경기가 잡혀 나흘정도 자리를 비우게 되었음. 대협이는 백호와 아이들에게 굿바이 키스를 받고 경기를 하러 갔음. 하지만 돌아왔을 땐 텅 빈 집만이 대협이를 반겼음. 대협이는 태웅이가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해 태웅이를 찾아갔음. 하지만 정작 태웅이에게 캐물어도 모른다는 답변을 넘어 당황하기까지 해 설마하니 이건 백호의 단독행동이었음.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도망갈 줄은 몰랐는데. 대협이가 헛웃음을 터뜨렸음.

사실 백호는 소송 서류를 받았어도 대협이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음. 지난날의 감정은 차치하고 대협이에겐 받은게 너무 많았거든. 태웅이 아이를 품고 오갈데 없이 헤매고 있던 중에 품을 내어준 대협이였고 아이를 두 명이 더 주었고 백호가 어릴 때부터 꿈꿨던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주었으니까. 그래서 태웅이가 애원을 하든 협박을 하든 대협이를 떠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음. 농구에 미련이 없는 것도 아니고 태웅이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접은 것도 아니었으나 대협이는 아이들의 '아버지' 였거든. 그래서 백호는 대협이를 선택했음.

하지만 대협이는 백호를 믿지 못했고 아이들을 이용해 교묘하게 백호를 옭아매려 했음. 뒤숭숭한 아이들에게 속살거려 불안감을 자극시켜댔고 아이들은 밤마다 백호에게 매달려 어디 가면 안된다고 칭얼거렸음. 첫째는 이미 패닉상태였는데 둘째와 셋째까지 불안함에 잠도 못 이룰 지경이 되자 백호는 태웅이도 백호도 아이들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했고 두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음. 저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백호와 아이들이 사라지고 나서 대협이와 태웅이는 미친듯이 백호를 찾아다녔음. 하지만 어찌나 꽁꽁 숨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자 두 사람은 점차 초조해졌지. 게다가 서태웅이나 윤대협의 꿍꿍이 따위가 아니라 강백호의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었음. 그 사실이 두 사람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좀 더 대범하게 움직일 수 없게끔 만들었음.

백호가 잠적하고 2년, 서태웅과 윤대협이 마쳐가든 말든 세상은 멀쩡히 돌아갔고 정해진 시기에 고교 인터하이가 열렸음. 이번에 오키나와 대표팀이 전국진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로 농구계가 소소하게 들썩거렸으나 대협이와 태웅이가 신경을 쓸 일은 아니었음. 하지만 오키나와 대표팀의 주장이 서태웅과 강백호의 아들이자 윤대협과 강백호의 첫째 라는 소식이 얼마 안 가 두 사람에게 닿았음.

태웅이는 백호에게 있어서 모든 첫남자였고 대협이는 백호가 힘들 때 옆에서 지켜준 남자였음. 두 사람 모두 백호에게 있어서 많이 각별하고 소중한 사람이었음. 하지만 그 두 사람이 제 아이들을 괴롭히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음.

백호는 대협이가 원정경기를 떠난 이후로 아이들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음. 아이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지만 백호의 한 마디가 세 아이들을 진정시켰음.

나는 너희를 절대 떠나지않을거야.

백호가 아이들을 애지중지한 것만큼 아이들도 백호에게 유별나게 애착을 갖고 있었음. 백호가 혈연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도 있었지만 대협이가 아이들을 이용해 백호를 묶어두려고 한 탓도 있었음. 대협이는 아이들이 백호가 없으면 안되게끔 만들었고 백호만큼이나 아이들도 백호에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품게 되었음.

그러니까 같이 떠나자.

함께 하자는 백호의 말에 토를 다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음. 백호가 떠나지않겠다고 했으니까. 아이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했음. 아이들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백호는 무사히 오키나와로 피할 수 있었음. 물론 아이들만 도와준 건 아니고 태섭이의 조력도 있었음. 태섭이는 첫째 조카의 상처를 생각해 태웅이를 뜯어말렸으나 태웅이는 그 말을 듣지 않아 내심 속상하고 화가 난 상황이었음. 그래서 백호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을 때 백호가 도움을 요청하자 태섭은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음.

태섭의 도움을 받아 태섭의 옛 집에 보금자리를 꾸린 백호와 아이들은 각자 농구를 다시 시작했음. 아이들은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백호는 일일 강사로 일하며 농구를 했음. 대협이와 함께 살 때 보다 풍족하진 않았으나 백호와 아이들은 행복했음. 서로가 있었고 농구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2년을 살다가 첫째네 학교가 인터하이에 진출하게 되었음. 백호는 조금 불안하긴 했으나 아이의 진출을 막고싶지 않았음. 이쯤되면 두 사람도 포기했거니 생각했고. 하지만 그 두 사람이 고작 2년으로 포기할 리가 없었다는 건 백호가 알지 못한 사실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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