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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1 03:29
보고싶다
대충 우성 25세 명헌 17세로 설정함




오랜 시간 모국을 떠나 집사가 되기 위한 수행을 마친 우성이 이씨 가문의 집사인 광철의 자리를 잇기 위해 돌아오겠지 아무리 유학을 몇년이나 다녀왔다지만 아직은 아기 집사인 우성이라 인적이 드문 별채를 담당하게 됐음

저택 뒷편에 놓인 작은 별채는 조형을 무시하고 지은 것처럼 외떨어져 해가 잘 들지 않았음 최소한의 인력만 그곳을 오갔고 늘 쥐죽은듯이 조용했겠지 게다가 어린 우성이 기억하기론 그곳은 원래 비어있던 공간이었음 우성이 없던 몇년새 뭔가 변한 것인지 별채를 가꾸고 사용인을 들이기 시작한 거겠지


그 이유를 우성은 첫 업무 일과를 시작하려 별채 문을 열어 젖히고서야 알게 되었음 대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아 등을 켜고 다녀야 하는 별채 복도 중앙에서 속옷에 가까운 흰 린넨 잠옷을 입고 선 명헌 도련님을 마주쳤거든


- 문 닫아.


분명 우성보다 한참 어린 아이의 목소리인데 압도될 수밖에 없는 기세를 띄고 있었어 우성은 급히 등 뒤로 열려 햇빛을 들이던 문을 닫아 빛을 차단했음 그제야 멀리 선 도련님이 한 손에 아직 켜지 않은 램프를 들고 우성에게 다가왔음 그걸 우성에게 쥐어주고는 켜진 등의 불꽃을 나누어 주었겠지

아른거리는 촛불 너머로 보인 도련님은 갓 십대의 중반을 넘겼는지 젖살이 가시지 않은 뺨과 손등이 눈밭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능선을 그렸음 판판하고 곧은 이마와 눈썹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짧게 자른 머리 아래로 목선이 숨을 따라 오르내리지 않았더라면 인형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음

명헌은 열살 무렵, 별채로 거처를 옮겼음 저주라도 걸렸는지 햇빛을 보면 불에 닿은 마냥 고통스러워 해서 였겠지 언젠간 나아질거라 낙관한 것도 잠시, 더는 평범한 삶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비어있던 별채를 새로 가꾸어 명헌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준 거였어 그러니 그 때부터 지금까지 도련님이 만난 사람이라곤 사용인들 뿐이었겠지


- 이름이 뭐니?


- 우성입니다, 도련님. 본채 집사 정광철의 아들입니다.


젖은 동굴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여리지만 존재가 확실한 목소리였어 어린 도련님은 등을 돌려 손짓으로 우성에게 따라오라 일렀음 찬 대리석 바닥에 맨발이 닿으며 작은 마찰음이 울렸겠지 우성의 이름을 입술로 덧그리는지 정우성, 정우성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음


- 목욕할래. 방으로 따뜻한 물을 가져다줘, 정우성.


우성은 놀란 얼굴을 감추고 예 하고 답했어 해가 쨍쨍한 대낮까지 잠옷 차림에 방에서 목욕이라니, 제멋대로인 도련님인게 틀림없었음 이유야 무엇이든 우성은 도련님의 뜻대로 시종들에게 목욕물을 준비하라 일렀고 다들 그게 익숙한지 목욕할 채비가 빠르게 마쳐졌겠지 값진 향유와 비누가 욕조 근처로 줄을 지어서 향수가게에 온 마냥 온갖 향이 가득찼어 따끈한 물 위로 그것들이 풀어지는 동안, 방 한 켠에서 도련님이 시종의 손에 나신이 되어갔음 애써 눈을 돌린 우성이 조용히 방을 빠져나오려 하자 도련님은 또 한번 손짓으로 우성을 불렀겠지


- 목욕 시중은 우성이 들도록 하렴. 모두 나가줘.


우성이 당황한 잠시동안 사용인들은 빠르게 방을 비웠음 욕조 앞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도련님이 추위에 몸을 살짝 떨고 나서야 우성은 정신을 다잡고 도련님을 부축해서 욕조 안에 눕혀주었겠지 첫 출근에 편한 옷차림이 아니라 우성은 셔츠 위에 베스트까지 걸치고 있었어 물에 젖지 않으려 자켓은 벗어서 의자 위에 걸어두고 셔츠 소매를 두터운 팔뚝 위까지 말아 올렸겠지 명헌은 흥미로운듯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어

아무리 집사도 사용인 중 하나라지만 주로 인력 관리와 행정이나 사무를 맡았지 이런 일까지 하진 않았음 그러니 우성이 별채에 들어서자마자 물에 젖은 도련님의 나체를 만지게 된 상황은 적잖이 놀랄만한 일이었겠지 하지만 그런 관행이야 어찌되든 좋단 식으로 구는 명헌 도련님 탓에 우성은 입을 꾹 다물고 시키는 일을 했음

셔츠를 걷어올린 우성의 손이 목욕물을 저어 온도를 확인했어 기분 좋게 뜨뜻한 물이 명헌의 피부를 녹여 어깨와 뺨에 홍조가 올랐음 내리깔은 긴 속눈썹에 습기가 맺혔고 그새 몸이 데워졌는지 따듯한 한숨을 내쉬었어 붉어진 몸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우성은 개중 가장 비싸보이는 아로마를 집었음


- 그거 말고.


욕조 모서리에 걸쳐 삐딱하게 허공을 가르는 손끝은 어떤 것도 가리키고 있지 않아서 명헌이 무엇을 원하는지 우성이 알 길이 없었음 공허한 눈동자를 읽으려 몇 번을 헤아린 끝에 자스민과 바닐라가 섞인 향유를 집었고 명헌이 만족한듯 입꼬리를 올렸어 물 위로 불그스름한 액체가 몇 방울 희석되었고 이내 방 구석구석이 그 향으로 가득했음


향에 취한 명헌이 눈을 감고 물 안에 잠시 누워 있었을까, 이번에도 뜻 모를 손짓을 해대었겠지 그저 손바닥을 펼친채 뻗은 모양새는 꼭 손을 잡아달라는 것처럼 보였어 우성은 영문을 몰라 잠시 망설이다 깨끗한 향이 나는 비누를 집어 명헌의 뻗은 팔을 닦아 주었음 별다른 불만 없이 도련님은 집사의 손길을 그대로 받고 있겠지

명헌의 뒤로 선 우성이 이번엔 어깨를 주물렀음 비누 거품이 섞여 미끄러운 손 끝이 여린 살을 문지르고 누르자 명헌은 피로가 풀리는지 으음, 하고 신음을 내뱉겠지 고개를 꺾고 그 손길을 느끼는 명헌의 감은 눈이 꽤 즐거워 보였어 하얀 어깨를 따라서 우성이 만지는 대로 불그스름한 손자국이 생기다 사라지길 반복했음


한동안 상체를 오가는 우성의 손길을 받다가도 몸을 일으켜주지 않던 명헌은 이번엔 욕조 끄트머리에 발꿈치를 올렸음 살면서 단 한번도 흙밭을 뛰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고운 발바닥이 갓 도축한 송아지의 살처럼 여리고 붉었어 우성은 살며시 그걸 집어 비누를 칠하고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꾹꾹 눌러주었음

다리를 씻기려 종아리를 들자 물에 젖은 허벅지 안쪽 살갗이 보일듯 말듯 아른거렸음 우성은 애써 시선을 피하며 제것보다 한참 작은 종아리를 쓰다듬었겠지 비누거품이 묻어 자꾸 미끄러지느라 다리가 조금씩 벌어졌음 불경한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 싶은 것을 눌러 참는 우성을 명헌은 고개를 젖히고 비뚤게 내려다 보았겠지 그리고 한 쪽 종아리를 채 씻기기도 전에 도로 다리를 휙 욕조로 집어 넣었음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우성의 셔츠에 거품과 물방울이 튀었음


- 이제 됐어. 바깥에 시종을 불러줘. 아, 그리고..


어느새 도련님을 따라 뺨을 붉게 물들인 우성의 얼굴을 명헌이 보더니 씩 웃었어 숨이 가빠진 것을 저는 모르는 모양이었겠지


- 오늘부터 내 목욕 시중은 네가 들거야, 정우성.






우성명헌 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