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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0 21:27
할 말, 아니 부탁이 있다며 다짜고짜 들이닥친 대만은 권준호가 진료실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같이 밥을 먹는 동안에도, 권준호의 오피스텔로 자리를 옮겨 낮은 도수의 술을 두어잔 털어넣는 동안에도 그 부탁을 꺼내지 못하고 끙끙댔다.

대만의 주변 사람을 통틀어 가장 인내심이 많을 남자인 준호였으나 그런 그조차도 대만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말고 술을 한 잔 더 마시려들자 부드럽게 제지할 수 밖에 없었다.

“대만아 그만 마셔. 곧 시즌이잖아.”

대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한숨을 살짝 내쉰다.

“준호야, 내가 널 진짜 믿고 아끼는 거 알지?”

“...알지. 나도 그만큼 널 아끼고 있고. 근데, 무슨 말을 하려고 서두를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해? 나 좀 겁나는걸-”

“나랑 연애, 아니다. 나랑 약혼하자.”

준호는 헛숨을 들이키다 사레가 거하게 들렸다. 한참을 콜록거리다 붉어진 얼굴로 대만을 바라보니 더할나위없이 진지했다.

“너, 너 갑자기 무슨 그런 말을....”

“아 아니 물론 진짜로 하자는 건 아니고.... 젠장, 집안에서 자꾸 선을 보라고 강요하시잖냐.”

그렇게 시작된 대만의 장황한 이야기는 요컨대 그랬다. 조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집안에서 본격적으로 결혼에 대한 압박을 주고 계시는데, 당연하게도 대만은 눈꼽만큼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대만은 농구 외의 방면에서는 딱히 창의력이 좋지 않았으므로 흔한 방어수단 중 하나인 ‘만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결혼을 원치 않는다’고 답했으며 집안 어른들은 ‘그럼 데려와라’로 끝났다고.

그러니 자기를 잘 알고 자신과 말을 맞춰주다가 헤어질 사람을 데려가야 할 처지여서 권준호를 선택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걸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순수한 첫사랑과 지독한 짝사랑의 상대로부터 듣기에는 썩 즐거운 제안은 아니었다.

“음.... 뭐 사실 그렇게 역할 해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않은데...?”

“너 태섭이는 어쩌고?”

그랬다. 정대만은 미국에서 최근 NBA에 멋지게 진출한 송태섭과 애매한 썸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를 수년째 유지하고 있었다. 송태섭이 당장 귀국할 수 없는데다가 둘다 최근 프로리그에서 갓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기에 혹시 서로를 구속하게 될까봐 구태여 연인관계를 정립하지 않았을 뿐이다.

확실하게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의 친한 사람들은 다 그들이 언젠가 연인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태섭이 몇년 후 귀국하고 대만도 자리를 잡게 되면 둘은 약혼이나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은 권준호가 제일 잘 알았다.

그러니... 정대만이 송태섭이 아닌 자신한테 부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미국에 있긴 해도 집안 어른들에게 송태섭을 들이미는 일은 그닥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결혼을 미룰 수 있는 더 좋은 핑계거리가 될텐데.

그에 대한 대만의 답은, 그러니까 그 침착하고 다정한 준호의 속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 그게.... 태섭이는 알파잖아. 어른들이 알파면 그럼 당장 각인이라도 해오라고 하실 것 같아서. 태섭이한테는 대충 말해놨어. 너 데려갈 거라니까 걔도 안심하던데. 그.. 아무래도 너는 베타니까.“

아, 권준호는 지난 모든 시간 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조금씩 풀리는 걸 느꼈다. 이건 술기운이기도 했고, 긴 시간 참아온 연심의 응어리이기도 했으며, 부정당한 정체성의 발작이기도 했다.

참을 수 없이 비참하고, 속상하고. 와중에 자신을 철썩같이 믿어주는 친구와 후배에게 미안한 감정도 들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서 준호는 안경을 벗어든 채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최대한 다정하고 침착하게 말한다.

“저기 근데 대만아, 괜찮겠어? 나도 알파라서.”







정대만이 이해한 의미: 어차피 나도 알파인데 송태섭 데려가는 거랑 별반 안 다를텐데 괜찮겠어?
(전해들은) 송태섭이 받아들인 의미: 나도알파라서 오메가한테 그런 말 듣고 참기 어려울 것 같은데 괜찮겠어? = 나 이제 안 참고 친구 말고 알파오메가 관계로 직진할거다

당연히 태섭이가 이해한 게 맞음


극우성알파인데 형질에 오히려 거부감 느껴서..자기 형질 전혀 안 드러내고 베타처럼 살아온 권준호
정대만 사랑하는 것도 맞지만 그만큼 송태섭도 어끼고 얘네가 행복하길 바래서 잘 참고 살았는데 갑자기 눈 앞에 성큼 떨어진.. 단순한 친구가 아닌 오메가 정대만의 제안.. 가드해줄 송태섭은 지금 미국에 있고....
참을만큼 참지 않았나 자기 연심과 알파로의 정체성 모두 폭발 직전인 권준호..

아니 뭐 이런 게 보고 싶지 난... 암튼 그렇게 혼파망됐으면 좋겠다...ㅋㅋㅋㅋㅋ



준호대만 준댐
태섭대만 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