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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2 22:41

어느 순간 깨달은 거지 

기억이 흐릿하고 드문드문 존재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가족이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없으면서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농구와 관련된 기억만 선명함

공부도 잘하고 교우관계도 좋은 것 같은데 구체적인 뭐가 없음
친구라고는 치수밖에 기억이 안나

준호는 감이 좋아서 그냥 어느 순간 깨달아버렸으면 좋겠다
자기는 어느 농구만화의 조연이구나

엄청 슬프거나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냥 좀 씁쓸했을 것 같음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실력은 주연 급으로 올라가지 않겠구나,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치수가 기대하는 만큼 잘하게 되진 못하겠구나 하는 그런 체념이 생겼을 듯
몇 번 벗어나려고 해봤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눈 깜박했다 뜨면 장소가 바뀌어있고 날짜가 바뀌어있고 그런 것들... 
결국은 그냥 수긍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았겠지
다행히 자기의 설정이라고 해야하나 캐릭터의 특징이 대체로 무난한 것들이라 편하다고 생각도 했을 것 같음

그리고 궁금해졌음 주인공은 누구일까

내심 고2까지는 대만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실패를 겪고 다시 돌아와 성공하는 캐릭터는 주인공의 클리셰잖아
그래서 묘하게 더 믿음이 있었던 것도 좋겠다... 주인공이라고 믿어서 얘는
돌아와서 농구를 할 거라고 믿은...


근데 백호가 들어오고 깨달은 거지 아 얘가 주인공인가보다
그냥 깨달은 거임 보는 순간... 
애초에 태생부터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열등감 이런 것도 없었음
그냥 애가 잘 성장해서 뛸 수 있게 격려를 아끼지 않고 연습도 도와주고..

그러다 산왕전에서 백호가 다쳤을 때 심장이 덜컥하면서도 또다시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만이의 부상에 그러했듯이, 백호도 당연히 부상을 딛고 회복해서 더 멋지게 코트 위를 누빌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
그래서 공부로 바쁜 와중에도 백호를 계속 찾아가고 틈틈히 편지도 써주고...

그렇게 백호가 재활을 끝내고 뛴 윈터컵의 어느 경기가 끝나고 찾아가 웃으며 등을 두드려주는데 갑자기 눈 앞이 새하얘짐




그러고 눈을 떴는데 
눈 앞에 새파랗게 질린 대만이랑 눈이 엄청 커진 백호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대학생이 된 권준호 북산 애들이랑 모여서 저녁 먹고 들어가는 길에 교통사고 당했던거지

눈을 뜨고 나니까 갑자기 기억나지 않던 그 모든 조각들이 다 기억났으면 좋겠다. 

자기 이름 부르면서 괜찮냐고 소리치는 애들 앞에 두고 준호 그냥 자기 손 멍하니 쳐다보다가 울면서 웃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자기가 했던 그 모든 농구 그거 누가 정해준 그런 거 아니고 자기가 직접 피땀흘리며 노력해서 했던 거고, 그게 최선의 최대의 결과였다는 걸 기억하니까 후련해져서

또 자기가 꿈속에서 주인공이라고 믿었던 대만이나 백호가 있는 걸 보니 더 확실히 이게 현실이구나 생생히 느껴지기도 했을듯
거기선 조연이었으니 자기가 주인공처럼 이렇게 주목받으며 입원해있고 이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눈물 흘리다가 링거 꽂힌 손으로 쓱쓱 문질러 닦고 애들 보면서 괜찮다고 웃어주는 권준호가 보고 싶다...



쓰다보니 뭔 내용이 산으로 갔네 이게 아닌데...
그냥.. 어느 만화에선 조연이었을지 몰라도 준호의 삶 속에선 준호가 주인공이었던 뭐 그런 게 보고 싶었음
나도 내가 뭔 말하는 지 모르겠지만 대충 이해해주라ㅋㅋㅋㅋ...

약대만준호 약백호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