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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7 01:01
시작은 리그 끝에 오랜만에 시간이 길게 비워져 태섭의 작은 자취방에서 영화를 보며 식어빠진 피자를 씹고 있을 때 즈임이었음
오전 일찍 태섭을 깨워서 원온원 두 시간 하고 가까운 샐러드 가게를 가서 잔뜩 먹고 한 시간 러닝 같이 한 후에 태섭이 자주 마시는 프로틴 음료와 탄산수, 우성이 좋아하는 제로 콜라와 프로틴 바를 넉넉하게 사와서 매번 보던 영화를 또 보고 있는 그런 똑같은 하루였음
이제 곧 항상 봐도 똑같은 부분에서 우는 그 장면을 앞두고 있는데

" 헐, 맞다. 나 오늘 약속 있었는데. "

태섭이 갑작스럽게 일어나 씻어야한다며 욕실로 들어가고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으로 눈물은 커녕 어리둥절한 표정인 우성은 내가 울고 싶은데 뭔 소리야 같은 생각만 지나감

" 뭐야. 이중약속이야? "
" 선약이라면 여기가 먼저야. "
" 누군데? "
" 유학생들 모임. "
" 나도 유학생이니까 껴줘. "
" 그런 유학생 아니야. "

그럼 뭐 난 저런 유학생이냐? 아니면 대학리그 1부에서 뛰는 슈퍼 에이스에 포지션 변경을 해도 날아다니는 잘생긴 농구 선수인 유학생은 안 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태섭이 외출을 하면서 본인 역시 내보낼 것 같아 입을 꾸욱 닫고 누가봐도 나 지금 존나게 삐졌어요 하는 표정으로 소파에 부루퉁하게 앉아있으니까 그 꼴을 본 태섭은 한숨을 푹 쉬고 우성에게 다가와서 말걸겠지

" 두 시간이면 온다니까? "
" 그럼 나도 데리고 가라고! 막 이상하고 문란한 모임이라 나 안 데리고 가는 거지? "
" 그런 거 아니라니까. "
" 그럼 뭔데! "
" 짝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이야. "
" 짝사랑? "
" 어. "
" 너 짝사랑 중이야? "

부정도 긍정도 없이 다시 그루밍하러 가는 태섭을 쫓는 우성은 꼭 외출 준비하는 주인 쫓아다니는 강아지마냥 옆에서 계속 서성임
귀찮으니까 좀 꺼지라는 말에도 짝사랑? 짝사라앙? 송태섭이 짝사랑? 거리며 목소리를 내니까 결국 큰 소리 내는 태섭이 보고 깨깽하는 우성일듯

" 몇 번을 물어 짝사랑 맞고. 짝사랑 중이고. 거기에 그런 사람들 밖에 없다고!! "
" 야, 나도 데리고 가. "
" 내가 널 왜. "
" 나도 짝사랑 중이니까. "

태섭의 표정은 금새 짜증에서 네가? 같은 표정으로 변했음 알기 쉬워서 좋다니까. 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사실 우성의 짝사랑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데 나간다는 태섭의 말이 서운해서 그냥 무심코 던진말이라 눈치빠른 태섭이 웃기고 있네 라며 본인을 안 데리고 간다면 나는 짝사랑을 좇으러 간 친구를 기다리며 친구의 자취방에서 홀로 외로이 있는 가련한 슈퍼 에이스가 되겠지.. 같은 생각을 계속 할 때 즈음

" 그럼 같이 가던지. "

허락 받았음



모임이라는 이름이 어색하게 단촐한 인원수 였음 우성을 제외하고 셋이었는데 한 명은 로봇 공학을 공부하는 태섭과 동갑의 남자였고 한 명은 디자인을 전공하는 태섭보다 한 살 어린 여자였는데 남자가 짝사랑에 대한 글을 유학하는 사람들이 많은 커뮤에 올리고 셋이서 열심히 댓글을 주고 받으며 알아온 결과 셋이 거주하는 도시가 생각보다 가까워 한두 달에 한 번 짝사랑 모임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도 알게 됨

" 정우성 선수,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요. "
" 아, 그런가요? "
" 그런 정우성 선수도 짝사랑 상대가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네요. "

사실 없으니까요. 라고 말하기엔 이 사람들은 진심인 사람들이라 그렇게 말할 순 없었지 그래도 뭐 돈 주고 남의 연애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예능도 보는데 농구를 제외한 도파민이 부족한 우성에게 남의 연애 근데 심지어 그게 짝사랑? 얼마나 재밌게요 같은 마음으로 듣기로 함

앞선 오늘 처음보는 남자와 여자의 짝사랑 이야기는 그냥 소소하고 누가 봐도 짝사랑 이야기였어서 흥미가 팍 죽긴 함 그래도 여긴 나온 이유는 심심하니까 혼자 있기 싫으니까 그리고 또... 지금 제 옆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는 친구의 짝사랑이 궁금하긴 하니까라서 태섭의 차례까지 기다림

" 항상 이야기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다정해서 좋아요. "

송태섭한테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가 있었나 싶은 우성은 앞선 둘의 이야기를 들을 때보다 더 몰입하게 됨

" 차라리 유학온 게 다행이라고 느꼈는데 그 사람이 요즘 제가 없는 우리 집까지 신경 쓰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제 동생이 고등학생인데 기 살려준다고 학교에 찾아가서 동생이랑 동생 친구들한테 밥도 사 주고, 운동화도 사 주고, 엄마 챙겨드리라고 건강식품도 챙기고. "

송태섭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서 우성이는 자기가 느끼는 이 감정이 흥미로움이라고 칭하고 싶기는 한데 뭔가 찝찝한 느낌이 더 강하다고 느낄듯

" 그 사람이랑 평생 가고 싶어서 연애하자는 말은 죽어도 못 꺼내는 것도 있지만... 그 사람이 저를 연애 상대보다는 친한 동생으로 보는 게 더 커서 연애 쪽은 진짜 생각도 못 하겠어요. "

도대체 누구지. 송태섭 주변 사람들 내가 다 아는데.

" 며칠 전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더라구요.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고. 근데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너무 다정하고 따뜻해서 더 힘들었어요. "
" 그래도 그 사람이 행복하면 전 좋아요. "

우성은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그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우는 태섭을 보고 갑자기 많은 감정이 지나감

부러움, 안타까움 그리고 질투. 친구가 짝사랑을 함이 안타까운 건지, 저렇게 큰 애정을 받고 있다는 게 부러운 건지, 아니면 '송태섭'의 애정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는 질투인건지 머리가 아파오는 우성


" 우성 선수는요? "
" 저, 저요? "

안 그래도 태섭의 이야기에 머리에 과부하가 왔는데 구라까지 쳐야한다니 우성은 환장할 노릇일 듯 하필이면 유학 오기 전에 좋아한 사람도 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떤 대상을 두고 해야해 하고 고민하다가 스쳐지나간 몇 명
산왕 형들

그럼 이제 저 중에서 누구를 해야하나 성구 형? 에피소드가 거의 형제 급임. 낙수 형? 알게 되면 욕으로 도배된 메세지가 날라 올 것. 현철이 형? 알게 되면 날 죽이러 여기로 날아 올 것. 동오 형? 동오 형은 착하고 잘생겨서 이야깃거리가 좀 많을 것 같기는 한데.. 우선 킵. 명헌이 형? 아, 나 명헌이 형이랑 친해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 그, 고등학교 선배였는데. 농구를 굉장히 잘하는 선배였어요. 농구로는 최고의 학교인데 삼 년 내내 스타팅 멤버였으니까. "

우성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있던 여자와 남자는 역시 농구 선수는 농구로 통하는 게 있나봐요. 같은 말을 하는데 우성의 말을 들은 태섭의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함

" 원래 고등학교 들어오기 전에는 농구는 좋은데 재밌다고 생각은 안 했거든요, 제가. 근데 그 형이랑 농구하면서 재미도 있는 거구나 느꼈죠. "
" 성격으로도 실력으로도 동경 많이 했어요. "

아 뭔가 말을 더 해야하는데 아닌 사람을 상대로 짝사랑 썰을 풀어내기엔 어려움이 더 큰 우성은 말을 아꼈고 오늘 처음이라 말씀하기 힘드신가보다 하는 둘은 그럼 우리 다음에 더 이야기 할까요?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하고 사라지고 묘하게 우성의 이야기를 듣고 표정이 더욱 안 좋아진 태섭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다 우성과 둘이 남자 아예 표정에 먹구름이 지겠지

" 정우성. "
" 왜, 송. "
" 너 좋아하는 사람 이명헌이야? "
" 어, 어, 어떻게 알았어? "
" 네가 말했잖아. 너희 학교 삼년 내내 주전. "
" 아. "

하... 하며 본인의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리는 태섭을 보고 머리 위에 물음표만 잔뜩 띄우는 우성은 결국 태섭이 옆에 붙음

" 왜, 뭔데. "
" 야, 잘 들어. "
" 뭘. "
" 이명헌, 정대만이랑 사귄대. "
" 뭐????? 명헌이 형이 누구랑? "
" 정대만이라고. "
" 뭐, 뭐?? "
" 미친 놈아. 니 짝사랑 상대랑 내 짝사랑 상대가 사귄다고. "

송태섭 짝사랑 상대가 북산 14번 그 슈터 정대만이라고?
그 구구절절하고 순애에 가까운 누가 들어도 가슴이 절절해지는 송태섭의 목소리 주인공이 정대만이라고?
여기까지 생각한 우성의 표정은 태섭의 표정보다 더 어두워짐

" 야, 괜찮냐? "
" 어, 뭐... "
" 우리는 뭐 엮여도 이렇게 엮이냐. "
" 아니, 머리가 좀 아프네. "

태섭은 그럴 줄 알았다며 우성의 어깨를 툭툭 치는데 우성이는 생각이 많고 깊어지다 못해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딱 한 생각만 들게 될 듯

좆됐다 짝사랑 해 본 적 없는 줄 알았는데 나 지금 송태섭 짝사랑 중이네.




우성태섭 약 명헌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