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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5 00:05
양호열은 차갑고 버석했다. 반면에 정대만은 불꽃남자라 그런가 한겨울에도 손이 뜨겁다 싶게 따뜻한데다 슈터답게 손을 관리하는 덕에 공이 닿지 않는 부분은 제법 부드럽기도 했다.

손 잡는 걸 좋아하는 쪽은 정대만이었다. 호열아 넌 손이 왜 이렇게 차냐?손 시리겠다. 하고 호열의 손을 끌어다 잡았다. 햇볕 쨍한 여름에도 그랬고 겨울에는 달라붙어 있는 수준이었다.
갓 태어난 동물처럼 뜨끈한 체온이 갑갑했던 건 처음뿐이었고 정대만이라는 인간의 온도는 금세 녹게 되고 원하게 되고 위하게 되었다. 그게 양호열이 짧지 않은 연애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먼저 손 잡아주지 않은 이유였다.

양호열은 체질이 차가운 제 손이 정대만의 체온을 뺏는 게 싫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대만이 먼저 이별을 고할 때,이유를 물어도 되겠냐는 양호열에게 몇 번이나 할 말을 고르는 듯 망설이던 정대만이 겨우 대답해 주었다.

"너 손이 엄청 차더라. 그게 밉다."

그리고 양호열이 답했다. 그랬구나.고마웠어요.

"다음에는 꼭 대만 군처럼 손 따뜻한 남자 만나요."
그리고 손 잡는 거 좋아하니까 자주 잡아 달라고 해요.그 남자한테는.

정대만은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흰 입김을 길게 불며 떠났다. 오늘 할 일이 없게 된 코트 주머니의 핫팩만이 솔직하지 못한 남자를 조금 데워 주고 있었다.


그리고 십 년 뒤 둘은 우연찮게 같은 길 모퉁이에 다시 섰다. 고향 풍경은 변한 것이 없고 눈이 자박하니 엷게 쌓여 무대는 그 때와 같고 오로지 배우 둘만이 건조하게 나이를 먹었다.

십 년 전에도 또래에 비해서는 상당히 그러한 편이었지만 서른 줄의 양호열은 보다 자기 욕구에 냉정한 남자였다.
왁자지껄하게 간만의 송년회를 즐기고 나서 전 애인과 추억이 남은 장소에 남았으니 그간 어땠느냐고 대사 한 번 띄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지만 그걸 실천하는 건 멋없다고 딱 잘라 입 다물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정대만이라는 사람,멋있게 군 적이 없었지. 한 발짝 앞서 걷던 대만이 혼잣말처럼 말을 걸었다.

와,춥다.
너도 손 시리겠다. 서른 넘으니까 구단 애들이 이젠 나도 손이 차갑대.
학생 때까지는 뜨거울 정도였는데,그렇지?

그러고서는 뒤돌아 봤다. 적절한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내가 스탠바이 될 때까지 지금 여기에 서서 십 년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광장의 시계 소리가 뎅 울리는 순간 호열은 긴 시간을 달려 비로소 맞는 답을 전했다.

온도가 다른 손끝이 맞닿았다가 천천히 깊게 얽혔다. 호열은 대만의 아끼는 캐시미어 스웨터에 얼굴을 묻고 울며 붙잡았다.

나로 해요,대만 군. 내가 할 테니까 나로 해요.

솔직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도 걸렸다. 우는 호열의 머리통을 껴안고 술기운에 피곤한 숨을 내쉰 대만이 마저 대답을 돌려줬다. 빙빙 돌려 가기에 서른 둘과 서른 넷은 바쁜 나이였다.

그래,너로 한다고. 처음부터 계속 너였다고.




십년 동안 말할 수 없는 미련에 눈이오나 비가오나 겉옷 주머니에 핫팩을 챙겨 다닌 남자 양호열의 순정은 돌아돌아 이어졌다고 합니다~
손 차가워서 차이는 양호열이 보고 싶었을 뿐인데......

호열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