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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4 14:40

명헌이 뭔가 아래로 동생 둘 셋 정도 있는 장남일 삘.. 근데 그마저도 동생들도 다 똑부러져서 별로 챙길 일 없는데다가 말 몇 마디로도 빠릿하게 상황 파악하고 잘 듣는 애들이라 편했겠지. 그게 쭉 이어져서 산왕에서는 한 술 더 뜸. 뭐 말 하기 전부터 눈치 빠른 성구나 현철이가 알아서 분위기 잡아주니까 애들 통솔하기 더 쉬웠겠다. 워낙에 같이 지낸 애들이 다 엘리트라 1부터 10까지 떠먹여줄 필요가 없었음. 이명헌 인생에 제일 똥강아지라 해봤자 그거 정우성인데 우성이가 농구 외의 일에서나 좀 허술하지 농구 관련해서는 철저하기론 제일가서 굳이 손봐줄 것도 없고.

근데 성인 되고 대학 오고 나서야 세상에는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거 알게 되는 이명헌ㅋㅋㅋ 동댐뿅 같은 대학 다니게 되는데 처음에는 대만이랑 경기도 해봤겠다, 끝나고 짧게 얘기도 나눠 봤겠다, 어차피 같은 신입인데 낯가릴게 뭐가 있나 싶어서 먼저 다가갔음. 그럼 사람자석 정대만 절대 안지고 쾌활한 얼굴로 '여기서 만나니까 반갑다 야! 너네 혹시 자취방은 구했냐?' 하면서 호로록 애들 감아버림ㅋㅋㅋ 명헌이 절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하고 같이 사는 성격 아닌데 정대만은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는건지.

동오가 먼저 '아직 안구했는데.. 너는?' 하고 말 붙이자마자 지금 어디 위치에 있는 어디 매물을 발견했는데 두 번 다신 오지 않을 조건이고 지금 안구하면 평생 후회할거다~~ 어쩌구 입을 너무 잘 터는 바람에 정신 차려보니까 계약서에 사인하고 있음. 근데 대만이 말마따나 진짜 조건 좋은 곳이었고.. 대만이네 부모님이 전세로 구해주신 덕에 경제적으로도 완전 이득이니까 만족하면서 사는 명헌이겠지. 셋 다 심하게 어지르는 편도 아니고 생활 패턴도 거의 비슷하고. 계속 그런 식이었다면 정말 완벽한 룸메이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음.

근데 대만이랑 같이 지낸지 겨우 일주일만에 정대만이란 인간 자체에 회의감이 드는 명헌이ㅋㅋㅋㅋ 걍 정대만의 모든게 명헌이 기준에는 충족이 안될듯. 첫 번째로 애가 뭐 그렇게 비실거리는지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해, 겨우 깨워서 세수 시키고 식탁에 앉히면 밥도 깨작거려.. '정대만 너 5키로 증량 해야 되잖아. 그게 식사하는 꼬라지냐 뿅.' 저도 모르게 잔소리하면 대만이 허업, 바보같은 소리 내면서 눈치는 슬슬 보는데 먹던건 도통 줄어들 생각을 안함. 살면서 식판에 밥 무식하게 쌓아두고 전투적으로 퍼먹던 남고생만 본 이명헌 답지 않게 계속 잔소리 하게 되겠지. '제대로 안먹냐.'

'아 먹어, 먹고 있잖아...'

그럼 대만이 볼멘 소리로 대꾸하는데 거기에 더 어이 터지는 명헌이. 왜냐면 이명헌.. 동생들도 어른스러운 편이라 어릴 때 명헌이가 좀 쓴소리 하면 그냥 고분고분 잘 받아들였음. 산왕에서도 가끔 명헌이가 조언같은거 던져주면 고마워하는 애들만 수두룩빽빽이지 이렇게 툴툴대면서 애같이 구는 놈은 없었단 말야. 거기다 힐끗 눈치 보더니 '동오도 안먹잖아 왜 나한테만 구래..' 하는 정대만은ㅋㅋㅋ 얘 성인 맞아? 대학교 1학년 맞냐고.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한거 아니고?

명허니 표정 미묘하게 썩어들면서 주먹에 힘들어가는거 보고 결국 동오가 먼저 말렸겠지ㅋㅋㅋ 야야야 대만아 그냥 조용히 하고 먹어. 명헌이가 너 생각해서 말하는건데 왜 그러냐... 동오 쩔쩔매는거 보고 나서야 대만이도 부리 입술 삐죽 내민채 밥 꾸역꾸역 밀어넣고, 명헌이는 약간 '얘가 진짜 다 큰 성인인거냐..' 하는 심정으로 조용히 입 다물것임.

학교에서도 연습 경기 하다보면 여전히 남들에 비해서는 체력이슈 있는 대만이 헥헥대면서 파김치 됨ㅋㅋㅋ 그럼 자연스럽게 옆에 어떤 남자애가 포카리 뚜껑 따주고, 누군 수건 가져다 바치고, 누군 '대만아 무릎 괜찮냐. 너무 무리하지 마.' 하면서 무릎 아래에 받칠거 들고 옴. 그럼 정대만은 또 좋다고 하나하나 다 '어어 고마워. 고맙다 야. 너밖에 없다.' 이런식으로 대꾸하면서 유죄짓 하잖아. 처음에는 그냥 팔자려니, 남의 일에 신경 끄자- 하고 넘겼는데 그게 계속되다보니 정대만 하나 파김치돼서 벤치로 빠지면 멀쩡히 연습하던 애들도 우르르 몰려가서 자연스럽게 쉬는 시간 되어벌임ㅋㅋㅋ

'야 너네 누가 쉬랬냐 뿅. 선배님이 쉬는 시간이라고 얘기도 안했는데.'

명헌이 산왕에서 하던 버릇대로 처음엔 약간 강압적으로 말투 나갔다가 자기들이랑 동기인거 기억해내고는 얼른 말투 고치겠지ㅋㅋㅋ 근데 주변 애들 오히려 뭐 그런 얘기를 하냐는 듯이 '대만이 힘들잖아.' 이런 반응이면.. 그럼 명헌이 이제 진짜로 얼탱 터지는 것임.

'정대만이 힘든데 뭐. 너네도 무릎 다쳤어? 체력 운동 잘 안되던?'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

'...........정대만한테 푹 빠졌네 빠졌어 그냥, 뾰옹...'

뭔가 정대만만 얽히면 자기 페이스 잃는 것 같은 명헌이. 자꾸 애들이 정대만화 돼서 흐물거리니까 산왕 군기 잡던 시절 버릇이 나왔음. 살살 표정 굳은 애들 보고 아차 싶어서 마지막에 농담 던지긴 했는데 다른 애들은 와하학 웃었지만 어쩐지 대만이 표정 좋지 않겠지. 대만이 눈치 빠른 편은 아니지만 자기에 대한 대략적인 호감이나 부정적인 감정 정도는 캐치 가능해서 이것만으로도 명헌이가 자기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거 알게 될듯. 그리곤 슬슬 명헌이 눈치 보기 시작할 것 같다.

저혈압이라 아침에 통 정신도 못차리던게 알람 열댓개 맞춰서 기어코 비몽사몽 일어나고. 지딴에는 아침식사 만들어 보겠다고 계란후라이 하다 프라이팬 태워먹기도 하고. 이명헌 눈치 보는게 뻔한 모양새로 억지로 밥 퍼먹길래 '그렇게까지 빨리 안먹어도 될텐데.' 해줬는데 고개 절레절레 젓더니 밥그릇 내밀고 '더 줘.' 하잖아. 너 진짜 더 먹을 수 있어? 의심스러운 얼굴로 묻는데도 끄덕끄덕. '얼른 증량 해야지. 팀에 민폐 끼치면 안되니까.' 나름 듬직하게 말하는데 이미 정대만한테 편견있는 명헌이는 그것도 곧이곧대로 안들음. '그러다 체한다 뿅.' 한마디 해주면 양 뺨 가득 부풀린채 씩 웃는 속 없는 정대만.

근데 대만이 진짜로 체할듯ㅋㅋㅋ 아침에 답지않게 밥을 두그릇은 먹더니 연습 중간부터 더부룩한지 자꾸 가슴팍 쓸어내리면서 호흡 가빠짐. 선수 상태는 칼같이 눈치채는 명헌이 바로 연습 중단하고 '선배님, 정대만 어디 아픈 것 같은데요 뿅.' 하는데 대만이 여기서 더이상 명헌이한테 밉보이기는 싫음.. 대만이가 바보도 아니고 이명헌이 자길 뭔가 한심하게? 바보처럼? 생각한다는거 다 안단 말야. 그래서 대만이 억지로 씩 웃으면서 '괜찮아..' 하는데 거기에 더 울컥하는 이명헌.

명헌이도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모를 일임. 남을 잘 챙기는거랑은 별개로 사실 남한테 별로 관심 없는 성격인데. 그동안 주변을 챙겼던 이유는 농구 해야되니까.. 이겨야 되니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 근데 왜 유독 정대만이 빌빌대는거 보면 이렇게 짜증이 치미는지. 정대만 벤치 보내면 얘 대신 뛸 선수도 많고 자기한테 방해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얘를 이렇게 챙길만한 사이가 아닌데 지금.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냥 룸메이트일 뿐인데.

근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나냐고.

결국 그동안 알 수 없던 감정들 차곡차곡 쌓여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 받던 명헌이, 그대로 대만이 손목 잡고 잡아 끌어버리면 어캄. 대만이가 '어어 야 어디가-' 해도 대답 안하고 그냥 선배들만 보고 '의무실요.' 하고 말음. 그럼 대만이 좀 머쓱한 얼굴로 털레털레 끌려가다가 중간쯤에는 민망한지 '야 손 놔도 돼.' 하겠지. 그것도 싸그리 무시하고 계속 끌고가면 또 꾹 다물리는 입. 비어있는 의무실로 거의 쳐넣듯이 밀어서 앉히고, 약이랑 물 챙겨서 건네고, 눈치보느라 알약도 한 번에 못삼키길래 (평소엔 이정도까진 아녔음..) 한숨 푹 내쉬면 대만이 어깨 흠칫 떨림.

'약도 제대로 못먹네. 할 줄 아는게 뭐냐 정대만.'

애가 좀 위축된게 보이길래 명헌이 그래도 나름 장난이라고 그렇게 말 건넨건데 그 말에 또 어깨 흠칫 떨리더니 이번엔 고개 천천히 내려감. 명헌이 좀 의아한 얼굴로 '왜 그래. 아직도 속 아파?' 하면 대만이 고개 절레절레. '좀 더 쉬어야겠냐 뿅. 선배들한테 얘기해줄까.' 하면 또 말 없이 도리도리. 그 행태에 뭐 어쩌란건지.. 말을 해야 알지. 점점 더 답답해져서 결국 명헌이 한숨 또 푹 내쉬었음. 그리곤 습관처럼 '정대만, 똑바로 말 안할래.' 혼내듯이 말 튀어나갈거야.

그럼 거기에 대만이 고개 번쩍 쳐들리면서 '너 나한테 왜그러냐 이명헌!'

그 반응에 뭐가? 싶은 명헌이. 눈만 살짝 커진 채 별 변화 없이 애가 무슨 말 하는지 들어보는데.. 줄줄 나오는 말 가관임.

너 왜 나 싫어하냐. 내가 그렇게 못미덥냐, 나도 알아 아는데..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 나도 네 덕분에 생활습관 많이 좋아지고 건강해진건 알아. 그치만 네가 귀찮게 손 안써도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계속 그렇게 꼽주는건 아니지 않냐.. 그리고 다른 애들이랑 있는건 왜 그렇게 싫어하는건데? 걔네가 계속 땡땡이 치는 것도 아니고 잠깐 나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잖아. 맨날 나 다른애들이랑 있으면 네 눈빛 때문에 얼마나 눈치 보이는지 알아? 무슨 사람 뚫어 죽일것마냥.. 내가 무슨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도 아니고 (이명헌은 여기서 뭔가 깨달음을 얻음. '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다른 애들은 네가 나 좋아하는거 아니냐고 하는데 솔직히 그건 개소리인 것 같고.. 나도 네가 나 별로 안좋아하는거 알아. 근데 우리 집도 같이 살잖냐. 최대한 신경 쓰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런 점도 좀 봐주면 안돼? 내가 더 잘할게. 응? 명헌아-

중간에 끼어들지도 못하게 말이 줄줄 터져 나오는데 그거 들으면서 명헌이 뭔가 분명해지는 기분. 왜 그렇게 정대만을 신경 썼는지, 쓰면서도 왜 그렇게 짜증이 났는지, 원체 예민했던 감각이 죄다 정대만한테 쏠려서 자극이란 자극엔 죄다 반응하고 있었는데 그게 왜 그랬던건지.. 그게 랩하듯이 마구잡이로 내뱉는 정대만의 문장들 가운데서 정리가 되겠지. 솔직히 그건 개소리라고? 뭐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정대만. 거기서는 무려 이명헌이 심통까지 났음.ㅋㅋㅋ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냐고. 돌아서 생각해보니까 왜 몰랐나 싶을 정도로 이렇게 분명한데.

'왜 개소리라고 생각하는데?'

'거봐 봐, 또 뿅도 안붙이고.. 나도 뿅 좀 제대로 붙여줘 임마..!'

'내가 널 좋아하는게 왜 개소리냐고.'

'..너 화났냐? 내가 애들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 기분 상했다면 미안.'

대만이의 그 반응에 점점 열뻗치는 명헌이ㅋㅋㅋ 자기도 방금 깨달은 감정에 뭐 정대만을 탓할 순 없겠는데 그래도 그 사이에 버릇된건지 저 눈치 없고 유죄스러운 반응에 킹받기만 함. '대만아.' 가만히 이름 부르니까 뭐에 속상한건지 입술 삐죽 내밀고 대답도 안하는데 이제 짜증스러움보다는 귀여운 감정이 더 컸고.

'정대만.'

다시 한 번 불러도 대답 없이 고개만 쪼끔 더 숙임.

'야, 정대만. 대답 안해?'

이번엔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일부러 힘주어 얘기하니까 대만이 씩씩대면서 고개 치켜들더니

'...뿅!'

이러잖아.

명헌이 답지 않게 놀라서 눈 크게 뜨인채 가만히 내려다보면 대만이 그동안 한이 많이 쌓인듯 '뿅뿅뿅!! 삐용 뿅 으아아악!' 하고 제 풀에 지쳐 쓰러짐ㅋㅋㅋ 걍 다 놔버린듯 땡깡 오지게 부리면서 '나한테도 뿅 해달라고! 다른 애들한테 하는 것처럼!!!' 하는데 거기서 명헌이...

'으하하하학 정대만 진짜, 미쳤어?'

하면서 크게 웃으면 좋겠다... 대만이가 놀란 얼굴로 멍하니 굳어서 쳐다보든말든 눈물까지 매달고 웃으면서 '대만아 너 왜 이렇게 귀엽냐...........뿅' 하고 마지막에 얼른 뿅 덧붙이는 명헌이ㅎㅎㅎ

뭐 그러고 나서 둘이 얘기 잘 해서 오해 풀겠지.. 명헌이는 대만이 좋아해서 신경쓰인거란거 깔끔하게 인정할거고. 대만이는 첨에만 어색해했지 나중에는 이명헌 애정이랑 챙김에 익숙해져서 걍 얼레벌레 사귀고 있을듯. 아 몰라 명헌대만 사궈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