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2747680
view 4045
2023.05.14 02:42

혐생살다 늦었조.. 사랑에 한해서는 판단 미스하는 명헌이 보고싶음.
현대 AU? 각종 날조주의 농알못주의
전편: https://hygall.com/533305670




8. 
정우성이 국내리그로 온 이상 이명헌은 정우성과 계속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항상 평정을 유지하던 이명헌이라도 정우성의 싸늘한 눈동자에는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업보지용. 명헌은 스스로에게 차가운 조소를 지었다. 

정우성 역시 이명헌이 자꾸만 신경쓰였다. 자신이 내내 이명헌을 그리워하는 동안 다른 남자를 만난 것에 머리가 돌아 그의 라이벌 팀으로 왔지만, 자꾸만 마주치는 것이 영 걸렸다. 이제 이명헌은 내 적이야. 정우성이 세뇌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무의식 중에 이명헌을 쫓아간다.

처음에는 산왕 시절처럼 맨 몸에 유니폼만 입었던 이명헌이 오늘은 몸을 완전히 꽁꽁 싸매고 있다. 평생 이명헌이 아대하는 것을 본 적도 없는데, 무릎이며 손목이며 아대를 추가한 것도 확대되듯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 경기에서 마주칠 때마다 하나씩 추가되고 있는 것이 신경쓰였다.

거추장스러운게 싫다던 형이 짧은 새 바뀌었을리가 없는데.

어쩐지 마른 것 같은 몸. 오늘따라 더 희멀건한 안색. 잔뜩 터서 핏기가 비치는 입술. 달라붙는게 기분 나쁘다며 절대 입지 않았던 팔토시와 레깅스. 모든 것이 거슬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진짜 난 왜 이런거나 보고 있는거냐고~~~~!

정우성이 속으로 머리를 쥐어 뜯었다. 

정우성은 말 없이 이명헌을 쏘아보았다. 더 올라갈 곳도 없어보이는 팔토시를 더 올려보려고 애쓰는 이명헌이 너무나도 짜증났다. 정우성과 흘긋 눈이 마주친 이명헌이 모른척 시선을 돌린다. 짜증나. 다 짜증나. 정우성이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착실하게 웜업을 위해 볼을 던져넣었다. 던지는 족족 공이 림을 통과해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우성이 흘긋 스타디움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경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젠 집중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9. 
경기는 함성 속에 마지막 쿼터로 달려나갔다. 라이벌 팀 경기인데다 점수가 연신 엎치락뒤치락하는지라 분위기가 잔뜩 달아올랐다.

이명헌은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눈가를 찌푸렸다. 아까부터 숨을 쉴 때마다 가슴께에서 찌르르한 고통이 올라왔다. 웜업 때부터 어쩐지 뻑적지근하더라니. 이명헌이 숨을 최대한 작게 쉬려고 노력하며 돌아가고 있는 판을 훑었다. 지금은 아플 때가 아니었다. 또한 아파서도 안됐다. 명헌이 입 안쪽의 살을 질끈 물며 애써 평정을 가정했다.

정우성은 코트를 진두지휘하며 공을 손 안에서 굴리고 있는 이명헌에게 시선을 못박았다. 안색이 너무 안 좋은 것 아닌가?

생각하기가 무섭게 이명헌이 곧바로 매섭게 치고 들어오는 통에 우성은 쓸데없는 생각을 흐트러뜨리고 경기에 집중했다. 이명헌이 안색이 안 좋든 말든 무슨 상관. 상대에게서 공을 빼앗아낸 우성이 발악하듯 림에 공을 쑤셔넣었다.

빠르게 공수가 오가고 다시 이명헌이 공을 잡았다. 이명헌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가며 코트를 스캔했다. 비슷한 점수차,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접전을 펼치던 이명헌이 스스로 공을 처리하려는 듯 슈팅폼을 잡았다. 이를 저지하려던 수비수가 명헌과 거세게 부딪혔다. 쿠당탕. 큰 소리가 나며 명헌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날카로운 휘슬 소리가 울리고 파울이 선언되었다.

파울을 범한 선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올려 항의하는 모습 뒤로 이명헌이 바르작거리는 것이 보였다. 우성이 턱끝에서 떨어지는 땀을 닦아내며 이명헌을 응시했다. 왜 안 일어나? 정우성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떴다. 이명헌이 정우성보다 작기는 해도, 다른 선수와의 경쟁에서 밀려 쓰러질 체급은 아니었다. 우성은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저가 이명헌에게 다가가있음을 깨달았다. 

명헌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키려다 바닥으로 다시 고꾸라졌다. 처음 겪는 고통이 가슴팍을 강타했다. 숨을 도무지 쉴 수가 없어 명헌은 드물게 패닉에 빠졌다.

명헌의 상태가 영 이상하자 명헌의 팀 선수며 팀닥터가 명헌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헐떡헐떡 얕은 숨을 내쉬던 명헌이 이내 축 늘어졌다. 

"이명헌!"

우성의 심장이 쿵 추락했다. 정우성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처치받는 이명헌의 주변에서 서성였다. 상황이 긴급하게 흘러가는 듯 하더니 명헌은 이내 들것에 실려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졌다. 

우성은 그 후로 경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중력 이슈는 극복해낸지 오래였음에도 이렇게 집중할 수 없는 경기는 처음이었다.


이명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에 실려졌다. 처치를 위해 상의를 벗겨낸 팀닥터는 명헌의 드러난 몸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가혹행위라도 당한 것인지 이명헌의 몸이 엉망이었다.

명헌의 몸은 멍으로 온통 울긋불긋한데다, 오래된 것인지 누렇게 올라오는 부분도 눈에 띄었다. 지속적으로 가해진 폭력의 흔적임이 명백했다. 이게 드러나면 팀이 뒤집어질 것이 분명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명헌은 갈비뼈에 실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깨어난 명헌은 몸에 남은 흔적에 대해 입을 닫았다. 한참을 추궁하는 말에 겨우 돌아온 대답은 허탈할 정도였다. 팀 내 가혹 행위는 아닙니다. 싸움을 말리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강경한 명헌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어 다들 한숨을 푹푹 쉬며 돌아섰다. 




10. 
정우성은 놀랍도록 쉽게 이명헌의 거취를 알아냈다. 산왕과 NBA의 이름 값 덕분일까? 우성은 손쉽게 이명헌의 병실에 침입할 수 있었다. 이명헌의 병실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명헌과 눈이 마주쳤다. 고요한 눈이 정우성을 바라본다. 우성은 흠칫했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들어갔다. 

"괜찮은지 보러왔어요."
"니가 왜..."
"우리 팀 선수 때문에 다쳤잖아요. "

어제 형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형이 괜찮은지 당장 확인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괜찮은거죠? 

우성이 무심코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눌러참으며 시끄러운 속을 달랬다. 한참 침묵을 지킨 명헌이 대답을 툭 던져놓았다.

"...너희 팀 때문은 아냐."

우성이 눈썹을 들어올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더 설명해달라는 표정이네용. 이명헌은 모른체 고개를 돌렸다.

"그만 가라, 정우성. 우리 이러고 있을 사이 아니잖아."
"아니긴요. 당신 내 선배잖아."

명헌은 대답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린 채 대꾸하지 않았다. 우성은 말 없이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숨 막히는 대치 상황은 우성이 침묵을 깨며 끝이 났다. 

"다음에 또 올게요. 푹 쉬어요."


정우성은 그 말을 지키기라도 하는 듯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명헌은 우성을 모른체하고, 우성도 굳이 말을 붙이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사흘 간 반복되었다.



명헌의 남자친구와 우성이 마주친 것은 명헌의 시나리오에 없는 상황이었다. 늘 같은 시간에 찾아오던 정우성이 밀린 훈련으로 인해 평소보다 늦게 도착했고, 하필 그 시각에 명헌의 연인이 병실에 방문해있었다. 평소처럼 여상히 문을 열고 인사한 정우성은 낯선 인물과 시선이 마주쳤다. 

"저 왔어요."
"정우성?"

누구지? 정우성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누군지 생각하던 정우성이 이윽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먼젓번에 주차장에서 마주쳤던 치였다. 정우성이 애써 여상한 목소리를 꾸며내 인사했다.

"또 뵙네요."
"이명헌."

우성을 무시하고 명헌의 이름을 부른 남자가 언짢은 티를 애써 감추며 명헌을 흘겨보았다. 남자가 이명헌의 손목을 잡아채자 뭐라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던 이명헌이 입을 다물었다. 우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뭔데 이명헌한테 저렇게 대하지? 

"이 사람 누구에요?"
"나 이명헌 남자친군데.
"정우성. 돌아가."
"이 사람 당신한테 태도가 왜 이래요? 가정교육 독학하셨나?"
"이 새끼가."

남자가 기어코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주먹을 들어올리려는 것을 이명헌이 잡아챘다. 병원복 소매가 흘러내리며 시퍼런 멍 자욱이 드러나자 지레 놀란 남자가 반사적으로 이명헌의 손을 뿌리쳤다. 정우성의 눈이 짧은 순간 용케 그것을 잡아냈다. 

"뭐야, 그거 왜 그래요?"

"애새끼가 간섭질하고 있어. 니 새끼 알바 아니야."
"시끄러워 죽겠네. 너 말고 이명헌한테 물었어."

정우성의 눈이 새파랗게 타올랐다. 당장이라도 주먹질이 오가도 이상하지 않을 듯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둘 다 그만."

이명헌이 상황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명헌은 이제 막 국내로 돌아온 정우성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혹여나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가는 정우성이 언론에 휩쓸려 또 상처받게 될 것이 뻔했다. 

"형, 정우성. 둘 다 나가요. 형은 나중에 얘기해요. 그리고 정우성 너는 다시는 안 찾아와줬으면 좋겠다."

이명헌에게 정우성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이명헌이라고 정우성이 보고 싶지 않았을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얼굴이었으니. 하지만 명헌에게는 자신의 마음보다 정우성을 완전무결한 선수로서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명헌은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또 한 번 정우성을 끊어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우성이 더 이상 울기만 하는 소년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순순히 물러나는 듯 했던 정우성은 시계의 긴 바늘이 한 바퀴를 채 돌기도 전에 돌아왔다. 문이 달칵 열리자 명헌이 고개를 돌렸다. 상대를 확인한 명헌이 입술을 감쳐물었다.

"나, 손목 왜 그런건지 알아야겠어요."


명헌은 피곤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진통제가 돌고있음에도 가슴께가 욱신거리는 듯 했다. 

"정우성, 우리 아무 사이도 아냐. 너가 이렇게 간섭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고."
"선후배잖아요, 우리. 후배가 선배 일 좀 궁금해 할 수도 있는거 아니에요?"

정우성이 성큼 다가와 이명헌의 팔목을 붙잡았다. 명헌이 깜짝 놀라 팔을 뒤로 빼자 정우성이 손에 힘을 주어 당겼다. 아, 가만히 좀 있어봐요. 손을 내빼려하면 강한 악력이 멍 자욱을 눌러와 명헌은 체념한채 팔목을 맡겼다. 

"이게 무슨,"

병원복 소매를 위로 쭉 걷어낸 우성의 표정이 굳었다. 드러난 팔목에 보라빛에서 노란빛으로 변해가는 손자국이 찍혀있었다. 우성이 명헌의 팔목을 부드럽게 잡고 살폈다. 어딘가 넘어져서 생긴듯 팔목 바깥쪽에 쓸린 상처, 겉으로 보이지 않는 팔뚝 안쪽에 난 손톱 자국. 우성이 홀린듯 병원복 단추에 손을 가져다댔다.

"하지마, 놔!"
"가만히 좀 있어요. 다쳐요."

필사적으로 우성을 막던 명헌은 저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신음하며 몸을 어정쩡하게 옹송그렸다. 우성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명헌의 상태를 살폈다. 미안하면 하지나 말지. 명헌이 고개를 떨구고 통증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괜찮아요?"
"아니."


정우성이 이명헌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입술을 삐죽이며 손을 움직였다. 이명헌은 정우성이 관심있는 것에 한해 집착이 심하다는 것을 잊고있었다. 정우성은 결국 이명헌의 상의를 홀라당 벗겨내고야 말았다.


드디어 드러난 상체에 정우성은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정우성이 기억하는 한 더 없이 깨끗했던 몸은 본래의 색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여기저기 멍이 든 듯 시퍼렇고 꺼멓게 변한데다, 오래된 상처는 짙은 갈색빛 흉터로 변한채 여기저기에 자리 잡아 있었다. 정우성의 턱이 벌벌 떨리는 것을 본 이명헌이 한숨을 내쉬며 뒤로 기댔다.   

정우성이 떨리는 손으로 이명헌의 상처를 더듬어 올라갔다. 이건 모서리에 찍힌 것 같고, 이건 뭘로 맞은거지? 막대기? 이건 발로 차인건가? 몸통에 빼곡하게도 찍혀있는 폭력적인 흔적에 우성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우성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이명헌의 상체를 집요하게 관찰했다. 마지막으로 가슴팍에 있는 보라빛으로 변한 커다란 멍자국까지 조심스레 매만진 정우성은 어느샌가 숨을 헐떡이며 울고 있었다.

"그 새끼에요, 형 이 꼴로 만든거?"
"신경쓰지마 정우성."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정우성이 눈물을 뚝뚝 흘려내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명헌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안 쓰면 되지."
"하, 명헌이 형. 형은 프로고, 몸 관리는 선수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알려준 것도 형이었어요. 근데 이게 뭐에요 지금. 설명해봐요, 형. 설명하라고요!"
"정우성 조용히 해. 여기 병원이야."


우성은 속상해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강하던 이명헌이 이딴 몰골로 제 앞에 있는 것도, 이 와중에 저를 매몰차게 밀어내는 것도 모두 서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왜 나한텐 다 숨겨요? 왜 혼자만 알아요? 내가 못 미더웠어요? 이거 한두 번 있었던 일 아니잖아."
"정우성, 너 뭐 착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야. 너 지금 무례하다. 돌아가."
"아니요. 나 이거 누가 이런건지 알기 전엔 안 돌아가요."

정우성의 눈에서 기묘한 안광이 번뜩였다. 이명헌 또한 물러서지 않고 정우성을 노려보았다. 한참 말없이 대치하던 정우성은 기어코 불편한 자세로 이명헌의 옆에 엎드린채 잠에 들었다. 명헌은 잠든 우성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손을 들어 여전히 까슬하게 깎인 우성의 머리 근처를 맴돌다가 손을 거뒀다. 눈으로 밤톨같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명헌이 착잡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내주려는데 왜 가지를 않니 우성아..."



우성명헌
약모브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