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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9 04:27



아..이 새벽에 과몰입해서 뒤질거같다





우성이가 미국으로 떠난지도, 지지부진한 롱디를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도, 서로에게 좋을 리 없는 집착에 가까운 관계라는 것을 안 지도 벌써 여러 해 하고도 수 개월이 지났음 그동안 서로가 머무는 땅에 못이라도 박힌 양, 우성은 미국을 벗어나지 못했고 명헌도 여전히 국내에 머물렀음 만남은 커녕 전화도 일주일에 두어번 할까 싶었겠지

더는 산골짜기 고등학교만의 에이스가 아닌 명헌의 연인, 정우성의 얼굴은 심심찮게 신문 제 1면을 장식했어 가장 최근 우성의 얼굴이 인쇄된 신문을 산 게 2주 전이었고, 마지막으로 우성이를 직접 만난게 반년 전이니 이젠 평면에 찍힌 그 애를 보는게 더 눈에 익었음 회색 종이뭉치를 얼마의 돈과 바꿔 들고 가는게 더는 애정인지 의무감인지도 명헌은 잘 구분이 안갔어

캐케묵은 마음이 그 애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지를 알고 있지만, 그저 입을 꾹 닫고 이별을 보류하는 것이 명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우성이를 위해서라도 헤어져야지, 내일은 정말 헤어져야지, 생각하다가도 명헌은 버릇처럼 서점에 들러 우성이가 담긴 잡지와 신문 따위를 집었어 조금은 기계적인 동작으로 종이 더미를 뒤적이고 골랐음 그런데 오늘은 유독 우성이의 이름이 눈에 많이 띄었겠지 명헌은 개중에 스포츠 신문을 책더미 위에 펼쳐 보았어


경기 중에만 보이는 전투적인 우성이의 얼굴 옆으로 스캔들이라는 글씨가 굵게 쓰여 있었어 잠시 굳었던 손이 서둘러 기사 면을 펼쳤어 미국 n,ba에서 활동하는 정우성 선수가 일반인 a씨와 교제중이며, 비밀리에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기사의 내용이었음 옆에는 파파라치인게 분명한 우성의 사진이 붙어 있었어 잘려서 확대된 우성의 왼손에는 흐릿하게 반지 모양까지 보였겠지

명헌은 펼쳐진 신문을 그대로 두고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어 누군지 모를 사람을 다정히 내려다 보고 약지에 반지를 낀 우성은, 명헌이 상상 속에서만 보았던 평생을 약속하는 우성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어 아, 안되겠어 명헌은 집았던 잡지를 모두 한 자리에 내려놓고 재빨리 서점을 벗어났음


한참을 내달렸을까, 명헌은 구역감을 못이기고 길 한복판에 서서 벽을 짚고 섰어 손이 마구잡이로 떨렸어 그저 기사 한 줄 이었으면 이정도로 당황하지는 않았을거야 하지만 그 사진 속 우성이 짓고 있던 표정과 취하던 몸짓, 그리고 아마도 따뜻했을 말투는 전부 이명헌만이 알던 사랑의 신호였어 제 앞에서만 보이던, 하나도 빠짐 없이 명헌의 것이었던 애정표현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없는 미국에서 어떻게….

본격적으로 연락이 줄고 만남이 끊겼던 시기는 우성의 스캔들애 대강 맞아 떨어졌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명헌은 치가 떨려서 헛구역질을 해댔어 우성이 원망스러워서가 아니었어 헤어지려고 마음 먹은 그 순간, 우성을 놓아주지 못한 자신이 징그러워서 였겠지 그간 해주지 못한 표현에 우성이 얼마나 외로워 했을지는 몰랐으면서 이제와서 아까운 마음이 드는지 자리를 박차고 나온 자신이 우스웠어 배신감마저 느껴지지 않는단 사실에 이미 자기만 꽉 붙들고 있던 관계였음이 확실해졌을 뿐이었음


정말 끝이구나,


끝을 생각하자 마자 쓰러지는 모래성처럼 눈물이 쏟아졌어 그것은 습관처럼 되뇌이던 헤어짐이 아니라 긴긴 시간 이어지던 우성이와의 연에 찍히는 마침표였어 겨우 무릎을 감싸쥐고 쓰러지지 않으려 버티자 바닥에 눈물이 떨어져 점선을 그렀어 끝, 정말 끝이구나 우성아 우리의 마지막은 이런 모습이구나


여러 갈래로 갈린 울음소리가 골목에 처절하게 울렸어 끝내 쓰러져 주저 앉은 명헌이 어린 아이처럼 하늘에 고개를 치켜들고 목놓아 울었어 우성이 그렇게 예뻐하던 눈썹도 입꼬리도 전부 일그러졌어 눈 앞이 흐리고 세상이 자꾸 멀어져갔어


하지만 우성아, 난 널 너무 사랑하는데


결국 맺지 못한 문장은 그저 울음으로 터져 나와 우성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에 번지겠지








이명헌도 사랑에는 경험이 모자란 바람에 안정을 닮은 연애에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겠지 연하랑 하는 연애는 늘 불같기만 했으니까.. 근데 동시에 표현하는 법도 몰라서 그저 우성이를 붙잡고만 있다가 외부에서 먼저 일 터지는거.. 이젠 정말 보내야 할 때가 온걸 아는데 터져나오는 사랑을 막을 방법을 못찾아서 맘고생만 하는거임ㅠㅠ

그런데 우성은 그런 형 모르고 있을거임 왜냐면 그 반지는 다음달에 귀국하면 명헌이 형한테 줄 거였고 일반인 a씨는 비밀리에 만나던 웨딩 플래너였으니까.. 형이랑 할 결혼 생각에 들떠서 얼굴에 사랑이 내비쳤을 뿐인데, 명헌이가 그거 보고 오해한거 였겠지 나중에 어떻게든 오해 풀어서 서로 표현하는 방법을 더 배우는 계기가 됐음 좋겠다..ㅠㅠㅠㅠㅠ



우성명헌 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