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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8 23:35


대협이랑 태웅이가 원온원을 하게 된 게 태웅이가 능남 가는 길로 대협이 찾아오면서 시작된 것처럼, 이후의 둘의 만남도 항상 우연에 기반해 있었겠지. 날짜도, 시간도, 장소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우연에 기대서 만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만남에도 주기가 생김. 일주일에 두 번, 그리고 평일. 늘 하교길.

그런데 이 만남이 일상에 자리 잡을 때 즈음, 대협이와 평일에 두번씩 만나는 것도 부족하다 느끼기 시작하는 태웅이겠지. 윤대협 주말에는 뭐하지? 낚시 좋아한다고 했으니 낚시하러 갔으려나? 하루 종일 낚시를 하진 않을텐데... 능남은 주말에도 연습을 하던가? 괜히 집에 있으니 코트 위에서 땀을 흘리며 탐색하듯 저를 고요히 노려보던 눈이 생각나 태웅이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농구공 챙겨 밖으로 나감.

항상 대협이와 원온원하던 코트에서 혼자 농구공을 튕기다가 림을 향해 재차 슛을 쏘는데 머릿 속 한 켠에는 윤대협이 오늘, 여기로 지나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빙빙 돌겠지. 집중이 현저히 떨어지는 느낌이라 허리를 숙여 숨을 훅 들여쉬며 코트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익숙했던 정적이 낯설게 느껴지겠지. 결국 혼자하던 농구는 예상보다 일찍 접고 괜히 능남고까지 슬슬 걷기 시작함. 자전거도 안 타고와서 꽤 먼 거리를 걸어야하는데도 귀찮다거나 헛짓거리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서 스스로도 오늘 좀 이상하다 생각함. 

그러다 코 위로 물이 한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짐. 아, 오늘 일진이 사납네. 그나마 후드티를 입고 와서 뒤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쓰지만 뭐 비가 워낙 많이 내려 방수의 기능은 전혀 안되고 홀딱 젖는 태웅이겠지. 이쯤이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는 신호라고 생각해 발걸음을 돌리는 태웅이겠지. 철철 비 맞고 옆구리에는 농구공 끼고 걸어가고 있는데 운동화 안으로 빗물이 들어가서 잔뜩 젖은 양말처럼 뭔가 기분이 축 가라앉음.

그때 도로가에 차의 헤드라이트가 켜지더니 택시에서 파라솔만한 우산이 쫙 펴지더니 장신의 남자가 내림. 횡단보도는 앞으로 더 걸어가야 있는데 거기까지 가지도 못할 정도로 급한지 '서태웅!' 하고 크게 제 이름을 부르며 다급한 걸음으로 도로를 가로지르는 인영이 보임. 

덩치에 맞는 커다란 우산이 바람에 살짝 들리면서 그 인영의 정체를 알게 되자 뭔가 태웅이는 몸은 빗물에 다 젖어 슬슬 한기가 듦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부터 퍼져가는 안도감인지 반가움인지 알 수 없는 따뜻함에 빗물로 인한 찝찝함에 찌푸려져있던 미간이 펴지겠지.

- 너 우산 없어? 비 다 맞고 어딜 가.

처음보는 표정. 뭔가 초조하고 걱정스러워보이는 대협이의 표정에 태웅이는 괜히 대협이 뚫어져라 쳐다보다 입 떼겠지.

- 그냥... 네가 생각나서.

빗물에 묻혀 안 들릴 수도 있을 정도로 웅얼거리는 태웅이 목소리를 용케 캐치한 대협이가 우산을 들지 않은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겠지. 뭔가 짜증난 건가 하고 태웅이가 대협이 관찰하는데 얘 귀 끝이 약간 붉게 물들어져 있고 어느 새 그 큰 우산을 태웅이 쪽으로 기울이고 있어서 어깨와 등 부분이 빗물로 젖어가고 있었음.

- 우리 집 가서 씻고 가. 너 이대로 가면 감기 걸려.
- ...응




그렇게 대협이 자취방 가서 욕실 빌리고 속옷, 상의, 하의 다 빌리고 대협이 자취방 열쇠까지 받게 되는 태웅이.... 대협이 주말에는 보통 도쿄 본가에 갔다오는데 그 날은 날씨가 궂다고 하니깐 부모님께서 좀 일찍 가서 집에서 쉬라해 택시타고 집 가는 중이었겠지. 자기가 늦게 돌아왔으면 태웅이 비에 쫄딱 젖어서 집에 털레털레 돌아갔을 거 생각하니 가슴이 찌르르해서 딱 1개 복사해둔 열쇠 망설임 없이 넘겨줬을 듯. 

그 이후 자기 자취방 열쇠까지 줬는데 태웅이는 그 열쇠 한 번도 써먹질 않아서 대협이가 괜히 조급해지는 마음에 '태웅아 왜 열쇠 안 써? 주말에 나 없어도 우선 들어와 있어.'하는데 부모님한테 교육 잘 받은 태웅이는 '집주인도 없는데 내가 막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하겠지.
태웅이 말에 대협이는 '집주인이 허락했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냥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어. 그 때처럼 너 비 맞는 건 싫다' 하겠지. 그제서야 태웅이 웃쓰-하면서 바로 그 주 주말에 대협이가 준 자취방 열쇠 처음으로 쓰겠지. 

뭔가 주인 없는 집에서 이것저것 헤집고 다니는 것도 이상해서 딱 대협이 침대 앞 테이블에 가부좌 틀고 앉아서 농구 잡지만 보다가 쿨쿨 자겠지. 곧 집에 도착한 대협이는 태웅이가 있어서 너무 반가운데 얘가 또 침대에 안 눕고 테이블에 기대서 불편하게 자고 있는게 마음 쓰이겠지.

이쯤되면 서태웅이 뭘해도 안쓰럽고 마음 쓰이고 신경 쓰이고 눈에 밟히는 걸 보면 사랑이라고 인지해야되는데... 대협이도 은근히 자기가 태웅이 좋아한다는 감정 자각하는데 좀 시간이 걸릴 듯. 태웅이도 그렇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만 보면 유난스럽게 굴어서 마음 자각 못했어도 이미 주변에서는 둘이 사귀는 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대협태웅 센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