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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8 21:40
챙겨줄 보호자가 사라진 입장에선
다른 애들이 부모님께 실컷 사랑받는 모습도
감사할 보호자가 없다는 것도
고작 십 대 아이에겐 꽤나 힘들 것 같은데.




슬램덩크 태웅백호 루하나




"이게 무슨 일이래..."
"들어가자 일단. 응?"

어린이날 아침.
택배 상자의 러쉬 속에 백호가 호열을 쳐다보자, 호열이 신나게 웃으며 백호의 등을 떠밀어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동준의 이름으로 온 커다란 박스 겉에는 남룡생당의 이름이 크게 박혀 있었고, 각종 약이며 붕대, 파스 등등이 복용법 및 사용법을 수기로 적은 쪽지와 함께 들어 있었다.
정우성이라 적힌 박스엔 해외 유명 선수들의 사인이 적힌 유니폼과 농구공이.
이명헌과 신현철이 같이 보낸 건 올해도 역시나 갓 도정한 최상위급 햅쌀이었다.

그 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네."
[어어, 백호야.]
"오오~ 시골호박!"
[택배 잘 받았어?]
"방금 전 뜯어 봤다."
[네가 보내 준 청소년국대 사인집도 잘 받았어. 고맙다.]

얼마 전 태웅에게 부탁해 받아 온 사인집이 무사히 도착한 모양이다.
백호는 시원하게 웃으며 그래그래, 하고 대답했다.

"부모님한테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라."
[이미 다 했으니 걱정 말고. 너 또 놀러 오래. 형도 너 기다리더라.]
"떡판고릴라가? 의외네."

살가운 통화를 마치고 학교에 도착하니 여기도 만만치 않은 인파가 몰려들어 있다.

"강백호, 받아라!"

매년 포기를 못 하고 유도복을 선물하는 창수.

"엄마가 너 주라고 밤새 만드셨더라고.".
"어, 우리 집도."

수제 케이크와 밑반찬 등을 팔이 아프도록 건네는 태섭과 대만이.
원 플러스 원이라 필요 없는 거 떠넘기는 거라며 새 트레이너 세트를 전해 주는 치수와, 옆에서 직접 구운 쿠키를 한아름 안겨 주는 소연과 한나.
오다 주웠다며 줄 서서야 살 수 있는 베이커리의 케이크 박스를 툭 던진 태섭.
백호가 좋아하던 카페에서도 백호는 차마 시키지 못했던 제일 화려하고 비싼 디저트 세트 쿠폰을 선물한 대만.
준호도, 달재도, 각자 나름대로의 선물 꾸러미를 건네며 쑥스럽게 웃었다.

"백호는 우리 팀 사랑둥이 막내잖아."

준호의 다정한 말에 정작 울음이 터진 건 백호가 아니라 그걸 지켜보던 구식이와 용팔이였다.

"강백호, 농구 하길 잘 했다?"

호열의 말에 백호가 씩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선물 러쉬는 끊기지 않았다.

능남에서는 대협이 대어를 낚았다며 덕규가 식사 초대를 했고, 해남에선 정환이 올해 프로농구 시즌권을 보내 왔다.
상양에서 뭘 좋아하는지 몰라 보낸다며 준 상품권은 금액을 보고 기겁한 백호가 이거 도로 가져가라 이미 준 거 못 무른다 형이 주는 건 그냥 받는 게 예의다 아니 그것도 정도가 있지 하며 수겸과 한바탕 싸움마저 있었다.

혼이 쏙 빠지게 바빴던 어린이날 며칠 뒤.

부모님이 계신 납골당에 인사차 카네이션을 사들고 간 백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뭐야."

백합, 카네이션, 장미, 튤립 등등 색색가지 예쁜 꽃들.
채치수, 권준호, 정대만, 이한나, 이정환, 전호장, 신현필, 성현준, 안영수, 황태산, 남훈.....
주체할 수도 없이 쌓인 꽃다발에 매인 리본에 쓰여진 익숙한 이름들에 눈시울이 화끈해진다.
백호의 손을 잡고 있던 태웅이 백호를 뒤에 두고 한 걸음 나서서 안개꽃에 감싸인 카네이션 한 묶음을 내려놓았다.

"아버지, 어머니. 백호 이만큼 사랑받는 애로 자랐습니다. 걱정 마세요. 앞으로도 제가 잘 지키겠습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툭툭 떨구는 백호 대신 태웅이 두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