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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6 23:04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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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세요."


간결하지만 묵직한 목소리에 권준호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본부장실로 들어섰다. 자문을 맡고 있는 회사의 본부장 이정환은 제법 이른 시간에, 긴히 부탁할 건이 있다며 권준호를 본사로 불러 들였다.


"본부장님, 오랜만입니다."

"바쁜데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

"클라이언트사 호출인데 당연히 와야죠. 괜찮습니다."

"둘만 있는데 그냥 좀 편하게 부르자."

"뭘 또 부탁할려고 그럴까?"


진즉에 의도를 눈치채고 빙긋이 웃어 보이는 권준호를 마주하며 이정환은 마른 세수를 했다. 깊게 터져나오는 한숨에 권준호는 이번에도 이정환이 수임료를 넉넉하다 못해 넘치게 넣어줄만한 건이라 짐작을 했다. 넉넉한 수임료는 반가웠지만 이정환이 주는 돈은 그냥 주는 법이 없어 수임료 이상의 품이 드는 일들이었다.


"괜찮으니까 말해 봐. 구단에 무슨 일 있어?"

"하아...진짜 너한테 이런거 까지 시키고 싶진 않았는데 먼저 사과부터 할게 준호야. 미안하다 이런 거 까지 시켜서."

"변호사 일이란게 뭐 그렇게 고상한 일만 있는 거 아니니까 괜찮아.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말을 못 꺼내는 걸까?"


좀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정환이 권준호를 저토록 긴밀히 불러다 친밀히 부르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난 몇 년 간의 경험으로 권준호는 이정환이 단순한 회사일로 부른 것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분위기와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이라 권준호는 돌려 말하지 않았고, 그 간결함과 통찰력이 이정환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왕자 이정환의 최종 종착지가 농구가 아니었던것 처럼, 권준호에게 있어 농구는 첫사랑과 같이 가슴 뛰게 만드는 이름이고 청춘의 여름을 바칠 만한 것이었지만 종착지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것은 타고난 능력과 재능과는 거리가 먼 일방의 짝사랑과 같은 것이어서 권준호의 열렬한 사랑에 살풋 미소지어줄 뿐, 그 손을 잡아주지는 않았다. 6년의 열정적인 헌신이 헛되지는 않아 감히 꿈꿔보지도 못한 한여름밤의 꿈과 같은 승리와 강렬한 추억이 권준호에게 선물 같이 남았다. 기대 이상의 황홀한 기억을 안고 권준호는 얌전히 주어진 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할아버지 때 부터 법조인으로 일해온 권준호의 집안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가 직함별로 나이별로 분포해 있었다. 권준호의 아버지도 별반 다를 바 없었으나 장남 아닌 차남은 무언의 반항처럼 정치로 나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법조계 권력의 중추로 나가지도 않았다. 성품이 단정하고 점잖은 권준호의 아버지는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더 흥미가 있었다. 지방 법원장 임기가 끝나자 로펌의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연수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둘 있는 아들들도 호화롭지는 않지만 정성스럽게 잘 키워냈다.


준호의 형은 법조계는 숨막힌다며 의사의 길로 갔고, 권준호는 이과 머리보단 문과 머리가 더 좋았다. 하지만 숨막힐 정도로 보수적인 법원과 검찰은 6년동안 나름 하고픈 것 하며 소박하고 자유롭게 살아온 권준호에게 가혹하도록 갑갑한 공간이었다.

연수원 성적이 차고 넘치게 여유가 있었지만 권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빅5 로펌 중 가장 분위기가 자유롭다는 평을 받는 곳에 입사했다. 이제는 변호사 배지를 달고 법원을 집처럼 드나드는 권준호지만 심장 속 한켠에는 뜨거운 스포츠맨의 피가 남아 있었다. 완전히 그 때와 같을 순 없지만 최소한 그 관심과 열정을 다 죽이지 않아도 되는 삶에 만족하며 권준호는 변호사 생활을 해나갔다.


오랜 기간동안 법률 자문을 맡고 있던 그룹 농구단 법률 자문에 저경력이면서 스포츠를 좋아하는 권준호가 배당되었다. 사실 구단 법률 자문에서 가장 큰 몫은 계약서와 채용 관련 사항이라 크게 어려울 일은 없었고 오히려 개개인의 관심사 문제가 컸다. 크게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농구를 사랑하는 권준호는 내심 기뻐하며 일을 맡았다. 들뜬 기색을 감추며 문을 열어 젖히자 뜻밖에도 아는 얼굴이 앉아 있었다. 해남고 주장이었던 본부장 이정환이었다.

뜻밖의 만남에 이정환과 권준호 모두 아연해 하다 이내 웃으며 악수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몇 번의 법률 자문과 개인적인 상담 요청을 거치고 난 후, 이정환에게 있어 권준호는 신경쓰이는 일도 믿고 편히 맡길 수 있는 몇 안되는 존재가 되었다.


명문대 출신이면서 집안도 좋은 엘리트 변호사들은 사적인 영역이 크거나 다소 소소해 보이는 일에 약간은 시큰둥해 하거나 자존심 상해 하기도 했다. 중산층 출신의 수재 타입들은 이 바닥 생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이정환 입장에서 다 터놓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이정환의 앞에 3대가 법조인을 해온 명문가 출신이면서 사고는 유연하고 입도 무거우며 눈치껏 사적인 영역의 일도 처리해 줄 수 있는 권준호가 나타났다. 이런 사람이 얻기 어렵다는 걸 경영 감각이 뛰어난 이정환은 진즉 알아챘다.

권준호는 영리하지만 선은 넘지 않았고, 필요한 일은 잘 처리해주면서도 껄끄러운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필요한 부분에서 할 말은 다 했고 남들이 이정환 눈치보며 꺼리는 말도 때로는 과감히 했다. 무엇보다도 망아지 같아 보이는 철딱서니 없는 선수들 상태도 잘 알고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시전하며 다룰 줄도 알았다.

이런 탓에 남들 앞에서 말하기 조금 껄끄러운 선수 관련된 부분의 일이나 구단, 협회 일도 자연스레 권준호의 몫으로 넘어갔다. 잘난 얼굴값 하느라 온갖 곳에 연애사를 뿌리고 다니는 마성지가 터뜨린 폭탄을 어떻게 수습할까 머리를 쥐어싸매던 이정환이 자연스레 떠올린 것도 권준호였다.

시즌 개막전 앞두고 가십성 스캔들로 신문 기사를 장식하는 건 이정환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코트 위에선 누구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지만 코트 밖에서는 나사 하나빠진 마성지를 다루며 일을 처리하기에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 머리 싸매고 고민을 거듭하던 이정환은 결국 전화를 들었다.


이정환에게서 전해들은 마성지의 연애사는 대강 짐작은 했지만 실체가 짐작을 넘어섰다. 이정환이 왜 그리도 말하기 껄끄러워 했는지 알만했다. 시즌 개막전에 이러한 내용이 기사로 실린다면 선수와 구단 이미지가 말도 못하게 저급해질 것이다. 특히나 가십지가 좋아하는 자극적인 내용이 많아 시즌 시작도 전에 마성지와 구단이 시달릴 그림이 너무 뻔히 그려졌다. 이정환의 고충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농구팬의 한 사람인 권준호 입장에서도 그냥 두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 입 타고 말 전해지는 것보단 내 선에서 마무리 하는 게 너나 나나 마성지 프로나 편하겠지?

하아...그게 제일 크다. 미안하다 부탁 좀 하자 준호야. 수임료는 섭섭치 않게 넣을게.

하하. 나야 수임료 잘 받으면 회사에 면도 서고 좋지.




인터하이에서 산왕을 상대하느라 기운이 다 빠진 북산을 처참하리만치 밟고 올라간 것은 지학이었다. 권준호는 그 날 비참할 정도로 스코어를 벌리던 마성지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한다. 식스맨에게 할애할 노력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는 듯 손쉽게 자신을 뚫고 나가 그림 같은 3점을 쏘아넣던 폼이 여지껏 생생했다. 북산의 명줄을 끊으러 온 저승사자 같던 마성지.

그 마성지가 지금 이렇게 어디 나사하나 빠진 듯한 얼굴로 쭈뼛쭈뼛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는 체를 해볼까 하다 일부러 격식을 갖춰 불러 한 번 떠보니, 상대는 전혀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었다. 혹시나 하던 기대가 역시나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뚫어질 듯 얼굴을 살피는 태가 기억을 더듬는 듯 했지만 굳이 일로 만난 사이에 사적인 영역을 추가할 필요는 못 느껴 권준호는 더 이상의 신상명세 교환은 생략했다. 어차피 이번 일 끝나면 딱히 더 볼 일 없는 사이이기도 했다.

아, 재계약 시즌에는 한 번 보려나?



대략적인 내용은 이정환에게 들어 알고 있지만 성품 점잖은 이정환이 친우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는 건 권준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권준호가 대형 로펌에서 금방 자리 잡게 된 데는 몇 가지 무기가 있었다. 무장해제 시키는 웃는 얼굴과 잘 듣고 놓치지 않는 기억력,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해주는 경청 자세, 조각조각 뒤섞인 tmi의 향연에서 이길 길을 모색하는 뛰어난 리걸 마인드. 이 모든 것이 총 동원되어 절박한 마성지를 맞이했다.

안그래도 심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코너에 몰린 마성지는 상담을 빙자한 하소연 할 곳이 필요랬다. 애초에 집에서 반대하는 걸 억지로 밀어붙인 약혼이라 집에다 하소연 하기는 커녕 절연당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수준이었다. 전 애인이 원하지 않아 언론엔 비밀로 한 결혼 준비라 당연히 주변 지인들도 아는 이는 극소수였던지라 거기에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사정 훤히 아는 이정환은 이야기 들어주다 꼭 한방씩 먹였고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 본디 상냥한 성정에 직업 의식까지 갖춘 권준호는 마성지가 속 얘기를 술술 불어놓게 잘도 판을 깔았다. 애초에 그러지 않아도 이야기 다 했겠지만.


듣다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억울한 면도 있어 동정이 일기도 했다.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아니 그런데 그렇게 뒤통수 맞고 위자료 청구는 커녕 예물에 혼수에 집까지 사줘놓고 돌려받을 생각을 못했다. 이정환이 왜 자신을 붙들고 욕과 부탁을 같이 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점잖고 감정에 잘 휘둘리지 않는 권준호도 열이 받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농구, 응원하는 구단의 에이스. 근데 그 에이스가 몸 갈아 벌며 일한 돈이 같잖은 인간 불륜 비용으로 신나게 들어갔다? 근데 그걸 찾아오지도 않아?



이 인간이 복에 겨워 미쳤나.

남들 평생에 걸쳐 손도 못 닿아볼 재능에 배경에 외모까지 가졌으면서. 코트에서 반짝거리며 뛰라고 올려놨더니 뒤에서 이런 헛발질을 해? 안그래도 허슬 플레이 좋아하고 속공 좋아해서 무릎이며 팔다리며 멀쩡한 날이 드물게 구르며 번 돈을 그딴 놈한테 쥐어준다고? 그걸 그냥 두라고? 내가 이정환 같아도 머리채 잡았다 정말. 마성지 그렇게 안 봤는데 순 헛똑똑이네 이거.


직업 의식 투철하고 점잖은 권준호의 속에서 불길이 일었다. 맘 같아선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걸 겨우 참으며(그 정대만, 송태섭, 강백호도 견뎌낸 권준호다. 북산 농구부 부주장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권준호와 채치수 인생 스펙이다.) 권준호는 특기인 말로 쥐어패기를 시전했다. 이미 새파랗게 어린 고등학교 시절부터 천하의 정대만을 말로 쥐어팬 경험이 있는 권준호에게 있어 마성지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곤 조곤 팩트로 쥐어패는 몇 마디에 안그래도 팬들과 구단에 대한 애정이 깊은 마성지가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권준호가 가볍게 몸푸는 몇 마디에 너덜해진 마성지가 순한 양이 되어 하는대로 따랐고 그 다음부터는 권준호의 몫이었다.

마성지를 대신해서 파렴치와 몰상식으로 빚어놓은 듯한 전 애인이자 귀책사유자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돌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심력을 다 소모해 너덜해진 마성지가 유독 눈에 밟혔다. 집중도 못하면서 데스크 너머에 앉아 있는 것이 신경쓰여 권준호는 결국 차키를 들었다.

집 앞에 데려다주자 밀려든 자괴감과 탈력감에 별처럼 반짝이던 지학의 별, 이제는 진천의 별이라까지 불리는 마성지가 빛을 잃고 괴로워했다. 그 모습이 눈에 걸린 권준호가 장난스레 볼을 꼬집으며 한 마디를 날렸다. 마성지 입장에선 본 지 얼마 안된 변호사가 이러는 게 당혹스러워서라도, 아님 이 상황이 웃겨서라도, 그게 아니면 권준호에게 욕이 나와서라도 정신이 조금 들 것이다. 뭐가 되든 빨리 떨쳐내는 게 좋았다 지금으로선.




전 애인을 마주한 지 사흘 후, 권준호는 법적인 절차 마무리를 위해 본인 확인과 서명이 팔요하다며 연락을 해왔다. 이래저래 신세 진 기분이 든 마성지가 쇼핑백 가득 디저트를 사들고 로펌을 방문했다. 기억한 방 앞에서 문을 두드리니 첫만남 때 처럼 서면과 법률 서적, 로 저널 등으로 가득찬 벽면과 책상위가 마성지를 맞이했다. 서류 속에서 파묻히다 시피 일을 보던 권준호가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다. 일이 많아 바쁜지 노타이에 셔츠는 걷어 올린 상태였다.


대강 전 애인에게서 받아온 각종 예물 혼수 등의 유가물들과 부동산, 차와 같이 굵직한 요소들까지 놀랍도록 신속한 속도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일이 처리되어 가는 속도에 내심 감탄하며 마성지가 서명을 하고 서류를 넘겼다. 마성지는 자신의 몫이 끝나자 확인을 위해 서류를 뒤적이는 권준호를 응시했다.


변호사 직함에 어울리는 지적인 용모지만 마냥 책상 물림 같지 않은 면이 있었다. 키도 컸고 어깨도 벌어졌으며 무엇보다도 몸 자체가 운동을 한 몸이었다. 그것도 제법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꾸준히. 서류 볼 것이 많아 팔을 쉽게 걷기 위해 착용한 슬리브 가터가 팽팽할 정도로 당겨진 상태였다. 적당한 근육의 상완이나 근육이 섬세하게 돋은 드러난 팔뚝만 봐도 그러했다. 손마디에 살은 별로 없지만 크고 마디가 선명한 것이 농구공을 잡아도 한 손으로 여유있게 잡을 법 했다. 구단 법률 자문을 하는 것이 마냥 일적인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농구와 인연이 있을 것 같은 사람인데. 아니 근데 암만 봐도 기억은 안나는데 어디서 봤지? 정말 초면인가?


첫만남부터 꼬리표처럼 달라붙은 의문에 마성지가 노골적으로 권준호의 얼굴을 살폈다. 따라붙는 시선에 권준호가 설핏 웃으며 시선을 받았다. 조금 무안해진 마성지가 시선을 잠시 돌렸다 결국 궁금증을 던지고 말았다.


"저기 변호사님,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없나요?"

"작업치고는 꽤 고전적인 멘트 아닌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오해 마시고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호사님 묘하게 낯이 익어서-"


손사레치며 부정하는 모습에 권준호가 서류를 내려 놓으며 미소지었다. 안경을 잠시 벗으며 피로한 눈을 쉬게한 권준호가 데스크에서 일어나 마성지의 옆 자리에 앉았다. 좀 더 자세히 보라는 듯 다가 앉은 권준호가 웃으며 뼈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이제 알았어요? 생각보다 늦게 알아보네?"

"역시...! 아니 근데 그렇게 처음 본 것 처럼 굴어요?"

"난 초면이라고 하지 않았는데요?"

"아 뭐야! 알고 있었으면서 그러기에요?!"


시종일관 여유롭게 웃는 권준호와 대비되게 마성지는 아이처럼 투덜거렸다. 그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권준호가 목을 울리며 즐겁게 웃었다. 웃음을 그친 권준호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냥 알려주면 재미 없으니까 내기 하나 할까요?"

"아니 그냥 말하면 될 걸 내기까지...그래서 내기가 뭔데요? 나 승부는 안 지는 편인데?"

"마성지 프로가 이기면, 그러니까 맞히면 서비스 좀 해드릴게요. 대신에 못 맞히면 내 부탁 하나 들어주는 걸로."

"아 뭐에요, 그냥 가르쳐줘도 될 걸."

"사람을 이렇게 감정 노동 시켜놓은데다 얼굴도 못 알아보고 할 말은 아니지 않나요?"

"...죄송합니다아아."

"맞혀봐요, 맞히면 다음에 마성지 프로 필요할 때 법률 상담 서비스로 하나 해드리고, 못 맞히면 내가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는 걸로."


마성지는 눈을 돌려 주변을 훑었다. 지난번부터 묘하게 들었던 느낌, 농구부 못지 않게 법대도 유명한 모교가 떠올랐다. 마침 책상 너머 벽에 붙은 졸업장에서 모교의 마크가 선명히 보였다. 확실하다, 이거네.


"변호사님, 혹시 대학 Y대 나오셨어요?"

"맞아요, Y대 법학과."

"아, 그럼 혹시 우리 학교에서 만난 건가요? 교양? 아님 YK전?"

"음...추측 방향은 나쁘지 않지만 애석하게도 답은 아니에요."

"정말요?"

"자, 틀렸으니까 내 부탁 하나 들어주는 거에요?"

"하아...뭐 그거 아니라도 이 건으로 신세는 이미 넘치도록 잔뜩 졌으니까 말해보세요. 원하는게 뭐에요? 뭘로 갚으면 돼요? 아님 성공 수당 더 쳐드려요?"

"글쎄요. 마성지 프로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돈이나 물질적인게 아쉬운 사람은 아니라서."

"그럼 뭐가 필요해요?"


마성지의 옆자리에 자리하고 앉은 권준호가 앉은 몸을 살짝 일으켜 거리를 더 좁혀 고쳐 앉았다. 가까워진 거리에 순간 마성지의 낯에 긴장감이 내려 앉았다.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지만 도통 속이 읽히지 않는 표정으로 권준호가 마성지를 응시하다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들려진 손이 마성지의 무릎 위를 가만히 잡아 왔다. 지난번에 이은 갑작스런 스킨십에 마성지가 반응할 타이밍을 놓치고 하염없이 쳐다만 보았다.




"돈은 됐고, 시간과 몸으로 갚아요."


시발 이 인간 생긴 것만 얌전하고 순 변태 아냐!!!!!!



"토요일 괜찮아요?"


아니 근데 잠시만, 이 얼굴이면 뭐...한 번 정도는 괜찮을지도?


"데리러 갈게요."


엄마야 진짜네. 진짠가보네.



'이번 시즌엔 닥치고 자숙해라'

'아니 내가 죄 지었냐 뭔 자숙을 해!'

'그 난리 쳐놓고 또 스캔들 일으키고 다니면 담 시즌 전에 확 잘라 버린다'



하, 정환이가 알면 죽일려고 들텐데. 이정환 한테는 절대 비밀로 해야겠다.



슬램덩크 성지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