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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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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있던 변덕이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기는 있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곳에서 시작되었어도 나중에 보면 다 이유가 있을 때가 있었다. 수화기를 들고 있던 대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집 하나 새로 구해주려고, 주말에 내려갈게. 가서 같이 보자.]

“네, 알았어요.”

윈터컵이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며 겨울이 깊어질 무렵이었다. 그동안 지내고 있던 아버지 회사의 기숙사가 새로 공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능남의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말이 나오기 전에 대협의 성격을 아는 어머니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아무래도 바닷가 쪽이 좋으려나, 전화를 끊고 낚시대를 챙기며 대협은 생각했다. 바닷가 근처에 집 하나 구해서 학교까지는 좀 걸어가고 쉬는 날에는 늘어지게 늦잠 자다가 낚시나 좀 하면 좋겠다고,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다. 아마 그날 낚시를 평소와 다른 쪽 부두로 나가지 않았다면 그 생각대로 됐을 것이다.



“어?”

유달리 시린 날씨에 대협은 오랜만에 목도리까지 했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다. 방한이 될까 싶은 얇은 점퍼에다가 양말은 어디로 갔는지 바짓단 아래로 달랑거리는 발목이 보였다. 물론 가장 먼저 보인 건 새빨간 머리통이었다.

“강백호?”

먼저 이름을 부르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보이니까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뿐. 하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웠고 우두커니 서있던 강백호가 움찔 하는 것도 느껴졌다. 돌아보는 움직임의 속도가 예전보다 조금 느리다는 생각을 했다. 눈이 마주쳤을 때는 잠시 침묵이 있었다. 강백호도 놀란 듯 했다.

“윤대협? 여기 웬일이냐?”

그건 내가 할 말 같은데, 빙긋 웃으며 낚시대를 흔들자 짙게 솟아오른 눈썹이 까딱인다. 삐죽이며 달싹이는 입술이 어린애같다. 영감 같은 취미가 있네, 라고 말하며 히죽대는데 대협도 따라 웃으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는 넌? 몸은 좀 괜찮고?”

“당연하지! 이 천재님께서 그 따위 거에 굴할 것 같냐?”

코를 찌를 듯 삿대질과 여전한 기세에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다행이고.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날 실망시키면 안 되지, 강백호. 안심이 되는 태도에 어깨를 한번 쳐주니 짜식, 하고 답하면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우렁차게 웃는다. 약간은 홀쭉해진 강백호의 볼과 어깨를 힐끗 훑어본 대협도 따라 웃었다.

강백호의 등 부상은 도내 농구부원들 사이에 상당히 큰 뉴스였다. ‘그 산왕’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강백호’ 때문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빨리 성장하던 예측 불허 풋내기의 존재감은 그만큼 상당했다. 재활 때문에 윈터컵 내내 벤치나 관중석에서만 모습을 보이는 녀석을 보면서 대협을 비롯한 다른 팀들도 내심 아쉬워 했었는데 북산에서야 말할 것도 없겠지.

“그럼 언제 돌아오지?”

대협은 궁금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강백호와의 대화는 강백호와의 농구만큼이나 재미있었지만 일단 그게 제일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강백호는 기다렸다는 듯 씩 웃으며 답했다.

“윤대협 딱 기다려라. 올해 춘계대회에서 내가 널 끝장내주마.”

“아, 그래?”

기쁜 소식에 대협은 마음이 좋아졌다. 작은 부상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다행히 빨리 회복된 모양이었다. 하긴, 강백호는 아픈 모습을 상상하는 게 더 힘들었다. 이 녀석은 팔팔하게 날뛰면서 시끄럽게 구는 게 어울렸다. 언제나 기운이 넘치는 어린 아이처럼.

“윈터컵 결과 가지고 기고만장하지 말란 말이다. 윤대협. 이 몸이 들어간 북산은 차원이 다른 팀이라고.”

“그럼. 나도 잘 알지.”

맞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니 꼴에 에이스라고 뭘 좀 아는군, 하며 대협의 어깨에 턱 하니 올린 강백호의 손은 뜨끈뜨근했다. 원래 체온이 높은 편인가, 그래서 이 날씨에 저렇게 얇게 입고도 괜찮은 건가. 대협은 윈터컵을 떠올려 본다. 확실히 윈터컵때의 북산은 강백호가 있을 때와는 달랐다. 결코 만만한 팀은 아니었다만 뭐랄까, 좀 더 변수가 적은 농구를 하는 느낌이랄까. 서태웅과의 대결은 언제나처럼 즐거웠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능남이 진짜 이겼으니 더 그랬다. 그때의 기분이 떠올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대협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 제대로 낚으려면 좀 더 가야 되지만 오늘은 여기서 강백호랑 이야기 나누면서 낚시는 대강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주섬주섬 낚시대를 펼치니 강백호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대협의 낚시대와 찌를 살펴본다.

“너 맨날 여기서 낚시 하냐?”

“가끔?”

“난 여기서 너 처음 보는데.”

“?”

무슨 소린가 싶어서 강백호를 바라보니 삐죽거리는 입술로 미간을 찌뿌리며 하는 말이 여기 바닷가가 자기 재활원 바로 앞이란다, 그래서 재활할 때 자주 나와서 바다를 봤단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이 몸이 열심히 보고 다녔지. 근데 넌 본 적이 없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해변 끝에서 끝을 손으로 휙 그리며 말하는 강백호의 얼굴을 대협은 눈을 껌뻑이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협도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여기에 자주 안 올 뿐이지 안 온 건 아니었으니까. 겨울에는 여기가 좀 더 괜찮아서 종종 오곤 했다.

“그랬구나… 그래도, 오늘 이렇게 만났네.”

“이 천재님을 만나서 기쁘냐?”

“그럼, 반갑지.”

숨길 필요가 없는 마음이라 대협은 일부러 더 나긋하게 답하며 강백호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러니까 약간 당황하며 물러난다. 자기 입으로 천재 천재 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이런 건 쑥스러운가 보다. 귀엽기는.

“오늘도 재활하는 것 때문에 왔나 보지?”

“…어. 그, 그,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약간 애매한 대답이 돌아온다. 자기 마음을 속이는데 능숙하지 못한 사람의 대답이다.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시합에서 얼굴을 못 본지가 거의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재활원을 왔다갔다 한다라, 내년에 나올 수 있는 게 맞는 걸까?

“무리하는 건 아니지?”

낚시대를 던지며 한 말에 이 천재님에게 무리 따위는 없다며 답하는데 어째 아까보다 기운이 좀 빠져있었다. 말하기 곤란한 게 있는 걸까. 알려면 알아낼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슬쩍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 걸 보고 조용히 있어줬더니 야, 윤대협, 하고 먼저 말을 건다. 사실 낚시할 때 옆에서 누가 말 거는 걸 좋아하는 대협은 아니었지만 강백호는 왠지 괜찮았다.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듣도 보도 못한 외모와 언행, 거기서 끝없이 이어지는 돌발적인 기행과 주변의 반응이 대협을 그냥 웃게 만들었다. 뭔가 들뜬 기분이 들게 했다. 세상에 이런 애도 있구나, 싶은 게 가끔씩 자려고 누워서도 생각나서 피식피식 웃고 그랬다. 어려서 그런 걸까? 하긴 대협은 경태를 생각하면서도 웃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경태도 정말 재밌지.

“윈터컵 때 우리랑 했던 경기는 어땠냐?”

하지만 뭐 또 신기한 이야기를 할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강백호는 조금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로 그리 물었다.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 하고 바다만 바라보면서. 하긴 자신들과의 경기엔 벤치에도 관중석에도 강백호는 없었다. 자세한 일정을 알 수야 없지만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그리고 그 사정이 부상이나 재활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아주 높고. 얼마나 나오고 싶었을까. 대협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나게 놀아본 아이에게서 장난감을 뺏어간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 경우에는 농구공이겠지만.

“어땠냐면-”

그래서 대협은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성의껏 말해주었다. 사실 전국대회가 달렸던 북산과의 경기에서 패배가 뼈아팠기에 윈터컵 때는 정말 전력을 다해서 그 느낌만 남아있지 경기 내용은 크게 기억이 안 났다. 띄엄띄엄 순간순간만 남아있는 기억에 어떻게든 살을 붙여가며 전체적인 경기의 흐름을 이야기해줬는데 사실 자신이 들어도 약간 어설펐다. 하지만 강백호는 그 부실한 이야기에 무서울 정도로 집중했다. 그렇게 듣고 있으니 열심히 말을 안 하기도 그래서 대협은 최선을 다했다. 몇번 입질이 온 걸 놓칠 정도로.

“흠. 역시 수비가 문제였네.”

그리곤 턱을 매만지며 말하는 모습이 제법 농구 선수 같아서 묘하게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하니까 다시 벼락같이 덧붙인다.

“여우 새끼가 널 이기지 못한 것도 있고.”

히힛 소리를 내며 어린애처럼 좋아하면서 말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덕분에 대협도 그날 분해하던 서태웅의 얼굴을 떠올리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이기지 못 했다는 표현은 사실 적절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지면 서태웅과 자신은 비겼지만 북산은 능남에게 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전국 대회를 다녀온 서태웅이 슬그머니 패스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의 1학년 때를 보는 것 같았다. 하긴 대협도 그랬다. 패스가 재미 붙이면 또 정신없이 빠져들지. 그 서태웅이라면 그래도 패스보다는 자기가 공격하는 게 취향일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널 쓰러뜨리는 건 이 몸이란 뜻이구나.”

이제 안 들으면 섭섭한 말에 그래, 그래 해주며 웃는다. 하지만 강백호, 그러려면 일단 몸이 나아야지. 그래야 코트 위에서 다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면서 날 즐겁게 해주지 않겠어?

“물고기 좋아해?”

“?”

“좋아하면 오늘 하나 줄게.”

다분히 충동적으로, 대협은 말했다. 취미가 낚시인지는 오래 됐지만 대협은 사실 한번도 자신이 낚은 물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낚시를 하는 이유가 분명했기에 걸린 물고기들을 언제나 다시 바다에 돌려보내주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백호가 자신이 낚은 물고기를 원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대협은 해본적도 없어서 몰랐지만 생선 손질이나 요리가 딱히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이런 강백호를 보고 있으니 뭔가 좋은 걸 먹여주고 싶다는 마음 반, 약간 놀리고 싶은 마음 반에 장난처럼 한 말이었다. 으엑, 뭐야? 그딴 거 필요없어! 하면서 펄쩍 뛰진 않을까 하는 게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 모습도 꽤 재밌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어, 진짜?”

하지만 강백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심지어 좋아했다. 약간 당황한 대협은 집에 들고 가면 요리해주는 사람이 있나보다,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그럼 한번 낚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찌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잘 잡히는 포인트도 아니었는데 그러고 한 30분쯤 있다가 생각보다 큰 게 걸려들었다. 대협은 사실 자기가 잡고도 웬일인가 싶었다.

“우와!”

옆에서 강백호가 탄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니까 좀 신나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러 높이 들어서 강백호 눈 앞에 물고기가 보이게 해줬다. 강백호는 우와 우와를 연발하며 대놓고 신기해했다.

“처음 봐?”

“어, 아니, 무슨- 이 몸도 해봤지!”

음. 처음 보는 구나. 생각하며 대협은 슬쩍 말했다.

“그럼 낚시 바늘 좀 빼줄래?”

“엉?”

“나 들고 있어야 되잖아, 좀 도와줘. 응?”

대협이 눈썹을 떨구며 그리 말하니 거절을 못 한다. 그 어버버버 거리는 모습이, 허세 부려놨으니 빠져나갈 방법을 못 찾아서 손을 파들파들 떨며 뻗었다가 퍼덕임에 흠칫거리는 모습이, 어떻게든 생선을 잡고 오만상을 쓰며 아가리를 벌리고 낚시 바늘을 찾는 강백호의 모습이 재미없을 수가 없었다. 흐억, 으힉, 소리를 내면서 애써 본들 잘 될 리가 없어서 대협은 보고 싶은 만큼 실컷 구경하다가 저러다 다치겠다 싶을 때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잘못 쑤신 생선 아가미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하자 굳어버린 강백호에게 낚시대를 넘기는데 제대로 받지도 못한다. 저런- 하고 한번 혀를 차준 대협은 아주 쉽게 낚시 바늘을 빼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니가 거의 다 해놔서 잘 빠졌네. 고마워.”

그리고는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아 자, 여기. 하고 내밀자 끄악- 하고 터진 비명소리에 결국 대협도 소리내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대협백호 보고 싶다... 보고 싶어서 결국 내가 쓴다... 윤대협이 해줬으면ㅠㅠ

슬덩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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