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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7 01:46

버키샘 샘이 버키랑 함께 했던 기억 잃는 게 보고 싶다 1
버키샘 샘이 버키랑 함께 했던 기억 잃는 게 보고 싶다 2
버키샘 샘이 버키랑 함께 했던 기억 잃는 게 보고 싶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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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방해 때문인지, 덕분에 주의가 환기되기는 했다. 어느새 차분해진 가슴을 슬쩍 쓸어내리던 샘은 버키가 이야기한 대로 저 혼자 남은 집을 천천히 둘러봤다. 같이 사는 건 분명하다. 꼭 짝을 이루고 있는 컵이나 접시뿐만 아니라 너무도 다른 시리얼 두 통 같은 것들이 함께 사는 존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얼마나 오래 산 거지? 여기서 고민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 내가 찾아보든가 해야지. 집주인이 없는 집을 마음껏 헤집어볼 참이었다. 샘은 부엌과 방을 고민하다가 이내 다시 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

 

이건 좀 난감하네

 

옷장을 열면 바로 그와 제 것을 구분하리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무엇이 누구의 옷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이렇게까지 취향이 같다고? 샘은 잠시 눈을 감고는 자신이 기억하는 버키와 지금의 버키를 떠올렸다. 하기는 여기도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모든 걸 내려놓았던 버키와 지금 저와 함께 산다는, 아니 결혼했다는 사내 사이에는 그 어떤 공통점도 없었다. 천장으로 고개를 쳐든 샘은 난처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병실에서 그를 알아보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저를 집어던진 사람에 대한 공포가 고개를 쳐들기 전에, 버키에 대한 샘의 첫인상은 퍽도 잘생긴 남자라는 게 전부였다. 복도에서부터 울리던 구둣소리가 저 남자 때문이었구나. 사뭇 말짱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흐트러진 양복이나 이마를 타고 내려온 긴 머리카락이나 그가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보여주었다. 동그랗게 눈을 뜬 얼굴이 꽤 잘생겼다. 막 일어난 탓에 멍한 머리 때문인지 쓰잘데기 없는 생각만 했던 게 기억난다. 샘은 천장을 올려다보던 눈을 질끈 감았다. 이래서 상념에 빠지면 안 되는데아무 말 없이 저를 쳐다보는 푸른 눈에 느껴지는 기시감을 무시하고 문득 그의 왼손으로 눈을 돌렸던 순간 뒷골을 바짝 세우는 공포감이 순식간에 저를 틀어잡는다.

 

…….”

 

흔적만 남아있는 그의 숙소와 유난히 조용한 남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묻는 노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나, 뛰어난 외모를 칭찬하던 젊은이의 웃음을 떠올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 남아있는 발자국을 보면서 그의 키와 몸무게, 발 크기를 머리로 가늠했던 감각을 떠올리려 애를 쓴다. 유난히 슬픈 눈빛을. 당신을 본 적 있었다는 과일 파는 아이의 목소리를 억지로라도 수면 위로 올린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아니 이다. 과거형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선한 천성을 가졌다는 스티브의 당부를.

또 쓸데없이 눈물이 맺힌다. 공포인가? 샘은 제 감정을 찬찬히 더듬었다. 이쯤되면 이유를 알아내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었다. 뒷목이 저리는 걸 보니 무시할만한 가벼운 감정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또 모르겠다. 무언가 자꾸만 제 머리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는 것만 확실하다. 그게 뭐지? 샘은 몸을 굽혀 무릎을 꿇고는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 머리에 피가 몰리면 생각이 빠르게 돌아간다는 라일리의 조언이 생생하다. 그가 떠난 이후에도 종종 해본 방법이었다.

 

반지.

 

문득 사내가 저에게 건네주려고 했던 반지가 떠올랐다. 받을 걸 그랬나. 저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웃었던 그의 미소를 조심스럽게 수면 위로 올렸다.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긴장이 되지 않는다. 몇 번 본 모습이라 그럴 수도 있다. 아이들이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건 그 미소 때문이었을까? 샘은 2년 동안 그를 쫓았던 순간을 곱씹었다.

 

세뇌.

 

그의 인격을 옥죄고 있는 주문과도 같은 세뇌가 그를 떠난 게 맞을까?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걸 제가 믿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적어도 그건 사실일 게 분명했다. 샘은 문득 그를 의원이라고 부르던 의사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겠지. 그 과정을 알아가는 건 이후에 하면 되는 일이었다. 샘은 귓가가 왱왱 울리는 순간까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어질거리는 감각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잠시 바닥을 짚고 있다가 몸을 일으킨다. 꽤나 효과가 있었다.


 

-


 

그를 볼 때마다 자꾸만 비집고 나오는 눈물의 의미를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그 수수께끼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지금은 그가 돌아오기 전에 집을 모두 둘러보는 게 중요하니까.




-


 

침실과 옷장, 화장실과 부엌 옆 창고 선반까지 둘러본 샘은 이제 식탁에 앉아서 거실을 바라본다. 두 명이 함께 사는 공간이라는 건 충분히 알아냈다. 제 취향이 얼마나 변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와인과 아무래도 제가 선택했을 비누까지 모두 파악한 참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침대 옆 탁자 서랍까지 열어본 샘은 이제 난처해졌다. 성생활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집에 거주하는 인물의 삶을 찾아보고 몇 명이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면서 동태를 살피는 습관을 너무 아무렇게 둔 까닭이다. 작전이 아니라 누군가가 정말로 살아가는 공간을 뒤진다는 것을 명심했어야 하는데. 잠시 회의감을 느낀 샘은 멍하니 거실을 둘러봤다. 성인 남자 넷이 앉아도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을 정도로 큰 소파와 몇 권의 책이 놓인 탁자. 그리고 꽤 커다란 텔레비전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를 봤을까? 샘은 자신의 취향을 조금 돌아본다. 의외로 고전이나 최신을 따져가면서 보는 편은 아니었다. 그와 내가 함께 영화를 봤을까? 생각해보니 결혼을 생각했던 어릴 적에 아내와 주말에 영화를 보는 걸 나름의 로망으로 가졌던 게 떠올랐다. 그걸 이뤘나? 저 남자와?

 

Shit.”

 

순간 눈앞이 검어진다. 갑작스럽게 차단된 감각에 샘은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날 뻔하다가 애써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눈을 아무리 깜짝여도 시력이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식탁을 겨우 잡은 채로 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들이쉬었다. 패닉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고개를 들어 이전까지 보고 있었던 거실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검은 시야에는 변화가 없다.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던 햇빛 한 점도 느껴지질 않는다. 완전한 암흑이다. 문득 장님이어도 빛을 구분한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그러면 지금 제가 보통의 경우에 생각하는장님이 된 건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심리적인 이유일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이렇게나 갑자기? 아무런 조짐도 없이? 식탁을 짚었던 손으로 두 눈을 가린다. 의미가 없는 행위라는 걸 알지만 이상하게 그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생각해보자, 이게 무슨 상황이지? 머리를 굴린다. 두통이 있나? 아니면 다른 증상이라도?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온몸의 감각을 가다듬어본다. 머리에서부터 어깨, 그리고 손가락 끝까지 살핀 샘은 팔꿈치 관절이 조금 저리다는 느낌을 받는다. 긴장했나? 허리나 배는 별일이 없다. 바닥을 버티고 선 두 발은 긴장 때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지만 감각은 여전하다. 그러니까제가 아는 선에서 몸에는 그렇게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안압을 높이기라도 할 작정인지 눈가를 두 손으로 강하게 눌렀다가 땐다. 무의미한 짓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굳이 다시 한번 눈을 누른다. 여전히 시력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다지 변하지 않은 사실에 샘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별일 아니야.


 

-


 

이 순간인 별일인 된 건, ‘일어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어긴 제 몸 탓에 바닥으로 나뒹굴게 된 이후였다.


 

-


 

아파, 머리가 부딪힌 거 같은, 지금 이게 무슨. 어디를 짚고 있는지 모르는 왼손이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힌다. 손날을 타고 오르는 둔통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바닥으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식탁 모서리에 부딪힌 건지 오른쪽 머리가 얼얼해진다. 순식간에 균형을 잃은 몸 때문에 저도 모르게 바닥을 짚었던 팔꿈치가 미끄러지면서 이번에는 옆통수가 바닥에 처박힌다. 고통과 흔들림 때문에 방향 감각이 둔해진다. 그다음 동작을 생각해야 한다. 샘은 차가운 바닥을 짚고 일어나면서 직전까지 봤던 풍경을 빠르게 되짚어본다. 식탁, 의자아마도 싱크대, 냉장고. 식탁에 유리가 있었던가? 잘못해서 유리까지 깨지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때는 정말로 죽겠지? 식탁에 방탄유리를 쓸 리가 없다. 그러면 유리가 미끄러지는 순간 온 피부에 박히는 흉기로 변할 터였다. 옆통수가 얼얼한 와중에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러니까 여기가,

 

? 샘 괜찮아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바닥에 나뒹굴어진 몸이 일으켜진다. 저를 올리는 단단한 팔을 손으로 더듬거리면서 잡는데, 순식간에 시력이 돌아온다.

 

, 이게 무슨 일이에요? 어쩌다가 넘어졌아니 다치신 데는 없어요?”

 

오늘 아침 병실에서 깨어났을 때 제 옆에 있던 청년이다. 부드러운 눈매와 다부진 턱을 가진 청년은 아침에도, 지금도 여전히 저를 살피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거리감이 없는 걸 보니 저와 오래 알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함께 일을 했거나. 가깝지만 깊지는 않은 손길에 샘은 숨을 다가듬는다. 아니, 반즈 씨가 집에 좀 가달라고 해서 온 건데, 문 두드려도 대답도 안 해주시고요, 제가, 그 받아온 열쇠로 열기는 했는데요.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넘어져 계시길래 쓰러진 줄, 아니 쓰러지셨던 거면 제가 지금 바로

 

아뇨, 잠시만요.”

 

여전히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온갖 속단과 가정을 뱉어내는 청년의 말을 멈춘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별일 아니었어요.”

…….”

괜찮아요.”

…….”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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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이제 인정하기로 했다. 너무 빠른 속단과 최악의 결론까지 치달았던 그 순간,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패닉에 빠졌던 스스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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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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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금방 왔네요?”

 

샘은 조금 멀쩡해 보인다. 버키는 조심스럽게 자켓을 벗으며 제 앞에서 빵을 입에 무는 샘을 살폈다. 이전보다는 편해진 몸짓이다. 버키는 식탁에 앉으면서도 여전히 빵을 우물거리는 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샘은 왜 그렇게 쳐다보냐는 듯 눈썹을 까딱인다. 예전에 저에게 괜히 날카롭게 굴었던 때가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배고파? 뭐 찾아먹기 전에 뭐라도 사올 걸 그랬다.”

그건 아니에요. 그냥 속이 헛헛해서.”

그러면 조금 있다가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래?”

 

제가 식탁에 앉는 걸 보면서도 샘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싱크대에 기대 식빵을 먹을 뿐이다. 버키는 여전히 저와 거리를 벌리려는 샘에게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나름 저를 마주보고 있다는 점에서 한시름 내려놓았다. 천천히 가면 되겠지. 말했지만 최근 들어서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긴장을 풀어내는 게 익숙해진 참이었다.

 

그래요.”

뭐 먹을래?”

…….”

아니면 내가 그냥 주문할게. 우리가 자주 먹었던 걸로.”

 

우리라는 단어에 순간 빵을 우물거리던 턱이 멈춘다. 버키는 귀 뒤쪽이 순간 아릿해지는 긴장감을 읽어낸다.

 

그래주면 고맙죠.”

혹시 불편하면,”

아뇨, 같이 먹어요.”

……?”

괜찮아요. 같이 먹자고요.”


 

-


 

토레스는 샘이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 아까 있었던 일반즈 씨한테.’

그건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무언가를 잡으려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헤집던 기묘한 손짓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토레스는 저에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도 여전히 긴장된 등을 이완시키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괜찮아요.’

 

토레스는 열쇠를 돌려받으러 찾아온 버키에게 이전의 일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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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별다른 일은 없었어?’

 

괜찮지 않은 얼굴로 괜찮다고 했던 샘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잔뜩 지쳐있었던 모습도.

 

.’

 

토레스는 샘을 위한 대답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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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보였어요.’

 

그는 잘 해낼 것이다. 그게 토레스의 믿음이었다.



-



샘은 숨기기로 했다. 취약한 부분은 나중에, 조금 더 안전할 때에 꺼낼 예정이다
.





 

버키샘 세즈맥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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