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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성호가 막 다른 산의 어떤 더 대단한 산신들만큼 시대가 몇번바뀌고 했을 그정도씩이나 오래산것은 아니지만 너붕붕 태어나기 이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전쟁은 몇번 겪은일이 있고.
빈 가마만 남겨두고 도망간 여자들이 너붕 이전에 몇 있었고, 도망친 여자들의 머릿수만큼 몇해가 흘렀으니 인간들 기준으로 하면 혼기를 꽉 채우고도 더 지났을 정도로는 어른인거지.



이번에도 숲 한가운데 가마가 덩그러니 놓여있는게 매년 그랬듯 모양새 참 흉흉하긴 했다만.

처음으로 안에서 사람기척이 느껴져 조금 흠칫하면서 바로 걷어보니, 평소와는 달리 겁에 잔뜩 질린 멀건한 산사람 얼굴이랑 딱 마주친거임.



버림받은 기분. 그것도 호랑이 밥그릇에 던져지는 수준으로 버림받은 기분을 요 작은, 그것도 지금왕의 공주라는 여자가 홀로 가마에서 견디다. 그냥 죽어버릴까 하고 끝내 스스로를 향해 비녀를 겨누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매년 누가 어거지로 갖다바치는 신부와 드디어 산 상태로 마주친 성호도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겠다.
호랑이라는 남자랑 뻔히 눈이 마주치고도 제 살을 결코 요만큼 찌르지도 못하는걸 보니, 지랄병이 나서 지독하게도 말을 하기 싫어하는 고집불통이라는 해괴한 소문과는 영...달리 보여 더 안쓰러웠겠다.

그러니, 그거 이리주고 나오라고.

비녀 억지로 건네받아 반대손에 쥔 성호가 다시 내밀어준 손을 얘가 두번인가 꾹 꾹 두드려 눌러보더니, 마치 사람 손인것이 확인이 된듯. 머리를 죄 풀어헤친 공주님이 드디어 그 손잡고 가마 바깥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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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호랑이의 모습이 아니지만 자신을 ‘부인’이라 불러준 성호 얼굴을 나와서도 제대로 보려면. 너붕붕정도 키를 하고서는 고개 꽤 바짝 들어 바라봐야 할일인거면 좋겠다.
하지만 너붕 아직은 다정히 말붙여오는 기골장대한 이 남자가 미심쩍어. 가마에서 눈이 똑바로 마주친 이후로는 쭉 곁눈질만 흘끗대며 성호가 대신 짐 챙겨 드는걸 보겠지. 근데 그나마 공주님 짐인건데도 헤아려보면 몇개 없다. 산신제 지내 신부를 보내는 길이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 여겨 저승길에 떠맡겼을 패물들이 다라서.




차라리 산에서 죽었다 여기는게 낫지. 이전에 가마만 두고 다시 마을 아래로 도망친여자들은, 산군께 화를 입기 싫다는 무지한 마을놈들에게 더 험한 죽임을 당했을것.

제를 지내며 보낸 신부가 산신 맘에 들지 못해 죽어도 그곳에서 죽지못하고 곧장 산에서 쫓겨내려오는 그런 부정을 탔다 여겼을거다 그 무지한 종자들은.

다른집 여식들과는 달리 매일을 소리없는 전쟁터같은 궐에서 쫓겨난 너붕붕은. 공주신분에 어디로 그렇게 도망을 칠수도 없었고 그래서 차라리 두려움 꾹꾹누르며 비녀와 싸우는 중이였으니. 덕분에 아까 너붕붕 얼굴을 마주한 성호는, 이번엔 빈가마를 치우는 대신 차라리 그걸 말릴수 있었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겠다.
다람쥐만큼이라던 공주님은 소문대로 입을 내내 꾹 닫은채였지만. 물기가 잔뜩 어려 겁을 집어먹고 연신 빠르게 깜빡이는 눈이 예뻐 그거 가만 보고있자니 괜히 더 가엾다 싶을거 같다.







몇해전 너붕붕 열댓살쯤 되던 해에 아직 정정하다못해 힘이 뻗치는 수준의 왕이 다소 남사스럽게도, 너붕보다도 더더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아버지한테만 간신히 작은목소리를 속닥거릴수 있었을 말소리를 내는것 어려웠던 막내공주는, 바로 그 즈음부터 말할 수 있으면서 말하기 싫어하는 까탈스레 못된공주로 탈바꿈 되기 시작했을거 같다.


사실은 조금 아픈건데. 어린 궁녀 셋이 모여, 깍쟁이 공주님을 상궁마마들이 들들들들 볶아대더니 결국엔 지랄병이 났다... 얘기한걸 계기로 이 병은 궁궐 뒷소문으로 지랄병이 되었다.




이게 궐 바깥으로까지 새어나와 하다하다 산군 귀에 들어왔을 정도지만. 짐을 대신 들고 조금 앞서서 걸으며 제 집으로 향하는 성호 뒤에서 망설임없이 이내 발소리 작게 자박거리고 곧잘 따라오는걸 보니, 어린 부인께서 딱히 뭔 지랄이 났다는건지 성호는 당췌 모를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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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 왕이라면 마땅히 지내야한다는 대단히 큰 산신제를 지내고. 그 공주를 강제로 혼례를 치르게끔 겹겹이 입혀 데리고 나온 옷이니. 이 진짜, 옷이 이렇게 거추장스러울수가 없는데.

이미 산중턱인 곳에서 말그대로 첩첩산중을 더 올라가야 하는 상황에 이런 산 생전 타본일이 없을 헌이가.

이건 뭐, 기절할거 같이 더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로 몇걸음 뒤쳐져 따르다 흙 아닌 돌바닥에 발을 잘못딛고 미끄러져 너무 놀라 아무데나 붙든게 하필 억센 나뭇가지였음.



그걸 움켜쥐고도 악 하는 소리가 선뜻 안나오는데, 손을 놓으면 발이 미끄러질거같고 발로 힘을 줘 버티기도 녹록찮아 혼자 어쩔줄을 모르고 뒤에서 잠깐 혼자서만 끙끙 앓았다. 금새 눈치를 채고 돌아본 성호가 “진작 업을것을 그랬다” 하는 소리를 하며 제 팔을 뻗어 너붕붕 손목을 낚아채듯 꽉 붙잡아 저보다 위쪽으로 끌어올려 줬음.



호환이 두려워 산아래서 이리로 바치는 재물을 헤아릴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러니 너붕 몫이라고 성호가 다 챙겨 메고 가는 중이던 이 패물은 사실 거추장스러울뿐 산군께서 사시는 이 산에서 별 대단치도 못한거면 좋겠다.


기여코 피를 본 손바닥이 너무아려 성호가 붙들어 올려준 자리에서 얼굴을 조금 찡그리고 아픔을 참고 있으니까. 뒤이어 한발짝 다시 가까이 와서 선 성호가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툭 떨궈 내려놓고 그 옆에 쭈그려앉아 안을 이리저리 뒤적여


“...이중에 부인께서 특별히 아끼는 것이 있습니까?”


대답이 소리로 들리지 않으니 응? 하고 다시 다정스런 미성으로 물으며 고개들어 올려보는데, 그럼 그때까지 아픈 손바닥에만 온 신경이 쏠려 인상을 쓰고 있던 너붕붕이 세차게 도리질을 치겠지. 아비가 버린 마당에 아끼는건 무슨... 저승길 노잣돈으로도 과할만치 들려보낸 짐이다


아, 없다고...


이 많은 귀한 패물들 중에 아끼는게 아예 하나도 없대니까 조금 당황을 해서 혼자서 짐을 몇번더 뒤적인 성호가. 비단옷 두어벌에 노리개따위를 몇개만 간추려담아 나머지는 이리로 저리로 팽개쳐 내버리더니. 등을 돌리고 앉아 업히라는 표시를 해보이는게 보고싶다.



여태 가마에서 무던히 내리고 무던히 따라오고 하기에 이번에도 그냥 무던히 툭 업힐줄 알고 좀 기다렸는데 묵묵부답이라. 쭈그려앉은 그대로 고개만 휙하니 돌려 너붕 쳐다봤다.

근데 참나..무슨 끽 소리 한번을 못내고 이렇게 서럽게 우는 사람은 성호가 그동안에 전쟁터에서도 못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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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엉엉우는 얼굴인데 목에서는 아무소리가 나지를 않아. 혹시 부인께서 벙어리인가 하고 놀란 얼굴로 쑥 일어나. 손이 아파서 우나... 싶어, 피나고 까진 손 들여다보며 나무껍데기 묻은것 떼어내주는동안 흘끗흘끗 부인 얼굴 살피는거 보고싶다.

아파요? 아파서 울어요? 묻는데 아니아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너붕붕이 간신히 목소리 끌어올려서 뭐라고 되게 작은 소리로 속닥거리길래 성호가 허리숙여 귀를 갖다대보면 “...무서워요” 하는 말이 간신히 속닥속닥 숨소리랑 섞여서 작게 들릴듯.








재업ㅁㅇ
성강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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