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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7 23:06
ㅂㄱㅅㄷ
1-https://hygall.com/611531887
암것도모름ㅈㅇ
자신의 시종을 볼모삼아 제 지아비가 전쟁터로 돌아간지 근 1년째가 되는 날이었음. 버티고 버텨보라고 했지만 허니는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갔음. 로마의 황제는 신의 사랑을 받아 이해심이 끝없는 바다같고 지혜가 푸른 하늘처럼 광활하다는데 순 거짓말이었음. 욕심이 가득하고 겁이 많으며 술과 아편에 취해 제정신이었던 적은 아주 오래전이며 제정신으로 돌아올 일도 없어보였음. 더군다나 그는 아카시우스 장군에 대해 자격지심이 굉장히 심해보였음.
아카시우스의 승전보가 로마의 역사에 새겨질 때마다 괴로워하는 것 처럼 보였음. 그리고 그가 전쟁터에서 돌아올 때마다 황제는 황실궁에서 패악을 부렸다는 소문도 자자했지. 허니의 귀에 들릴 정도면 이 황실에서 일하는 제일 밑바닥 신분도 알고있을게 분명했음. 허니는 이제 아카시우스의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인지 마주칠 때마다 노골적으로 괴롭히고 험담을 하며 숨통을 틀어막았음.
황제가 대놓고 모멸감을 주는데 허니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음. 황제의 손가락질 한 번에 제 목숨이 입김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워질수도 있었음. 그래서 허니는 웬만하면 납작하게 엎어져서 지냈음. 허니는 이곳에서 살아남아 티모시를 꼭 보고싶었거든.
그리고 반란을 진압하러 떠난 해안도시는 점차 정리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조만간 그를 볼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음. 그리고 허니의 바람은 다음날 새벽에 이뤄지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리마치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음. 해가 뜨지도 않아 밖은 어두웠지만 허니는 능숙하게 홀로 몸을 씻고 머리를 따고 옷을 입었지. 장군이 떠난 뒤로 이 저택의 그 누구도 허니를 신경쓰거나 케어하지 않았으니 이렇게 홀로 준비하는건 익숙해졌음. (다만 로마의 예법이나 상황에 따른 의복을 갖춰입는 걸 알려주지 않아 수치나 모욕감도 꽤나 느꼈겠다.)
고국이라면 이리 일찍 일어나 옷을 다 갖춰입어도 어디든 가서 제 할 일을 찾겠지만 이곳에서는 어디든 갈 수 없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음. 허니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겠지. 표면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다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비비적거리며 반지를 돌려보기도 하겠지.
그러다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반지 위로 떨어지겠다. 그리고 문이 열리겠지. 문이 열리는 순간 허니는 티모시를 떠올렸음. 말도 안되지만 그런 상상이라도 해야 허니는 숨통이 틔였음.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건 장군이었겠지.
"지아비가 그리도 그리웠나봅니다."
"........"
장군을 뒤늦게 따라온 시종은 안절부절하지 못했음.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갑자기 돌아오셔서 놀랐다고, 아무리 그래도 부인이 자고 계실지도 모르는데 이리 예고도 없이 방문을 하는건... 이라며 말꼬리를 흘렸음. 허니는 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게 눈에 보였음.
장군의 부인이 잠들어있는 침실 앞에 그녀를 지키고 있는 군사도 없고 시종도 없는게 사실 말이 안되는 거임. 그래서 본인은 죽었구나 싶은거지. 더군다나 허니는 시종의 도움도 없이 치장이 되어있는 상태였음. 제 주인인 아카시우스는 눈치가 빠르니 허니가 대충 이 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차릴게 분명했음.
"왜 부인을 지키는 병사가 없는거지."
아카시우스가 제 시종에게 물었음. 그가 머뭇거리자 허니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그 대신 대꾸하겠지. 자신이 물렸다고. 시종들도 병사들도 다. 그 말을 들은 아카시우스는 망토를 스르륵 벗으며 의아한 표정으로 허니를 보겠지.
"공주라면 시종의 손길을 받는게 익숙할텐데요."
"그들은 내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병사를 물리는 건 위험합니다."
그의 말에 허니는 마치 연극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다소 표독스럽게 보일 정도로 미소를 흘렸음. 그런 허니의 모습을 장군은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겠지.
"로마 장군의 아내인 내가 이 저택에서 위험을 느낄정도면..."
"........"
"로마의 종말도 머지않겠네요."
평소라면 시종이 저 미친 여자가 드디어 정신을 놨나? 하며 놀란 눈으로 쳐다봤을테지만 그녀가 제 목숨을 구제해줬다는 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 그냥 고개만 푹 숙인 채 서 있겠지. 아카시우스는 시종을 뒤로 물리고 문을 닫았음. 그리고 소파에 편히 앉아 테이블 위로 두 발을 쭉 뻗은 채 고개를 뒤로 천천히 젖히며 눈을 감겠지.
그의 배 위로 나란히 포개어 올려진 손에 허니와 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음. 허니는 당연히 이 사람이 반지를 빼고 다닐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조금 의아했겠다. 허니는 그에게 티모시 얘기를 묻고싶지만 꽤나 지쳐보여서 물어도 제대로 된 답은 못 듣겠다 생각했는지 피곤하면 방으로 돌아가서 자라, 하고 말하려고 입을 떼는데 아카시우스가 눈을 뜨고 허니를 바라보며 묻겠지.
"벌벌 떨고 있었으면서...시종 앞에서 연기를 잘 하시더군요."
"........"
"어쩌면 부인은 공주가 아니라 희극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카시우스가 낮게 웃었음. 내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그 말을 들은 허니는 주먹을 움켜쥐겠지. 그 말은 허니를 모욕하는 것 같았음. 미치지 않고서야 제 고국을 멸망시킨 이 나라에서 어떻게 잘 지내겠음? 빨간색만 봐도 흠칫거리고 어디선가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면 패닉상태에 빠져 어깨를 움츠리는데. 잠을 제대로 자본적도 이젠 기억도 안 날테지. 꿈을 꿀 때마다 악몽이니깐.
"이른 아침을 하러 가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음. 엄밀히 따지자면 안 한거겠지.
"당신이 아끼는 그 아이 얘기는 식사 후에 해드겠습니다."
허니는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뻗는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 본 뒤 그의 손을 맞잡았음. 허니는 이럴 수 밖에 없었음. 그에게 허니가 원하는 모든게 있으니깐.
/
식사시간 동안 아카시우스는 허니의 손을 식탁 위에 올려 붙잡고 놓지 않았음. 불편해 뒤질것 같아 눈치를 줬지만 그는 가뿐히 무시했지. 식사가 끝나고 티타임 시간을 보내는 아카시우스는 달달한 멘트를 장전해 시종들에게 말하겠지.
"오랜만에 어여쁜 내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다들 물러가거라."
그 말을 들은 허니는 하마터면 마시던 차를 내뱉을 뻔 했음. 어이 털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장난스럽게 웃겠지. 시종은 저 멀리, 그 둘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졌고 아카시우스는 조금 더 허니에게 가까이 다가갔음. 여전히 손을 붙잡은 채로. 허니는 걍 존나 당황스럽기만 하겠지.
"손이 거치십니다. 원래도 이랬나?"
그 말에 허니는 흠칫 놀라며 손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딱히 소용은 없었음. 아카시우스는 공주라고 하기에는 굳은살의 흔적들이 만연한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렸지. 결혼식을 할 땐 장갑을 끼고 있어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작지만 의외로 다부져보였음. 새하얀 흉터들도 보였고. 이 손은 마치...
"검투사 손처럼 보이는데."
"...내 나라는 여자도 검술을 배웁니다."
"노련한 검투사였나봅니다."
"누굴...이겨야 했거든."
허니는 마른 입술 위로 찻잔을 갖다댔음.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행동으로 보였지. 방 밖의 병사를 물린 이유가 납득이 가는 군요. 그가 말했음.
"희극인이었다가...검투사였다가... 다음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지 기대가 되네요."
"할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1년 전 거래를 기억하실 텐데요."
여유를 부리는 그의 모습이 괘씸해 허니는 대뜸 본론을 꺼냈음. 아카시우스는 그 얘기를 하기 전에 공주에게 알려줄게 먼저 있다고 말하겠지. 허니는 뭐냐는 듯 찻잔을 내려놓고 그가 잡고 있던 손도 뒤로 빼내겠지. 아카시우스는 이번에는 손을 놔주었고 조금 더 그녀에게 다가가 앉아 말했음.
"제 손길이 불쾌하신가 봅니다."
"...아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뭐, 나랑 있을 땐 상관없지만 보는이가 있을 땐 이러지 말아줬으면 좋겠군요."
"장군의 인형이 되라는 말입니까?"
인형이라니. 아카시우스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가 뭐가 웃긴지는 모른지 웃음을 내뱉었음. 그러자 저 멀리 서있던 시종들이 움찔거렸지. 그는 꽤 오랫동안 홀로 웃다가 허니를 바라봤음. 그리고 허니의 손등을 엄지 손가락으로 슬슬 쓰담겠지.
"부부사이에 스킨십은 당연한거 아닌가?"
"평범한 부부들이야 그렇겠죠. 하지만 나와 장군은 특수한,"
"마르쿠스."
설마 지아비 이름도 모르진 않겠지? 아카시우스가 허리를 살짝 숙여 허니의 눈을 마주했음. 그와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허니는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물리겠지.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훽 돌릴거임.
"뭐...부인이 원하는대로 부르는게 좋겠군요."
"나한테 원하는게 뭡니까. 아카시우스..."
"그대는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
"........."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이룬 후의 상황을 도와줄 수는 있겠지."
"무엇을...원합니까? 당신은."
아카시우스는 소파에 기댔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잔머리가 삐져나온 허니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사뭇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정하지 않았음.
"부인, 난 로마의 몰락을 원합니다."
그의 말에 허니는 저도 모르게 시종들이 서 있는 곳을 보게되겠지. 혹여 이 사람이 하는 말을 그들이 듣고있을까봐 두려워져서. 그러면 아카시우스는 손을 뻗어올려 허니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제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게 만들거임. 허니의 눈동자는 힘없이 휘청거리고 있었고 저도 놀란 나머지 아카시우스의 손을 붙잡고 말겠지. 아카시우스는 허니가 붙잡은 제 손을 힐끗 보다가 이어 말하겠지. 이 나라는 폭군에 의해 침몰하고 있다고.
"난 이 나라를 바로 세울 겁니다."
"전쟁을...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아카시우스는 고개를 돌리며 그 말에 답하지 않았음. 대신 나라를 바로 세우면 허니를 고국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하겠지.
"지금은 사절단을 보내 복원 작업을 하고 있지만 곧 의회가 다시 구성 될거고...후에 그들은 당신이 필요할겁니다."
허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음. 처음부터 그걸 생각하고 자신을 이 곳으로 데려온거냐고. 아카시우스는 정확히 답하긴 어렵지만 비슷하다며 고개를 끄덕였지. 허니는 이 사실을 듣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음. 존나 혼란스러워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그녀에게 아카시우스가 말했음.
"당신은 신임을 얻어야 합니다."
"........."
"적어도 이 저택에서 일하는 시종들이 당신을 따르게 해야되죠. 내가 없을 때 이곳의 주인은 당신이니깐."
"하지만...난..."
"내가 당신을 존중하고, 당신도 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됩니다."
찬 바람이 불었고 아카시우스는 제 망토를 벗어 허니 어깨에 걸쳐주겠지. 바람이 차다며 들어가자고 손을 뻗자 허니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음. 그리고 그의 팔을 붙잡겠지. 그들이 정원 입구로 걸어가자 시종 하나가 다가와 허니를 바라보며 물었음. 안색이 좋지 않다고, 의원을 부를까요? 평소에는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던 시종이었음.
허니가 괜찮다고 말하려고 하자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쇳소리를 내뱉겠다. 로마에 와서 오늘만큼 말을 많이 한 적이 없으니깐 목에 무리가 간거임. 허니가 콜록거리자 아카시우스는 어깨를 끌어안으며 의원을 부르라고 말한 뒤 침실로 향하겠다.
거의 아카시우스에게 안기다시피 침대에 놓여진 허니는 또 아카시우스의 손길에 의해 이불이 덮어졌음. 그때 시종이 아카시우스를 찾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허니가 다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겠지.
"할 말이..."
애처롭게 쉰 목소리에 아카시우스는 낮은 숨을 내쉬고 시종에게 나가라고 손짓하겠지. 그는 허니가 무슨 말을 할 지 이미 다 아는 얼굴이었음. 허니의 손을 붙잡고 말해주겠지. 그 애는 지금 해안도시에 있다고. 나 대신 그곳을 지켜봐야 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말에 허니는 울음을 터트리겠지. 그의 손을 꼬집듯이 힘을 세게 쥐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음.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선은 허니가 슬퍼할 수록 점점 차갑게 굳어가겠다.
"나한테 약속했잖아요...약속 했잖아...같이 돌아오겠다고..."
"그깟 남자애 때문에 이리 우시는 겁니까?"
"그깟 남자애가 아니야! 그 애는 내 가족같은,"
"아니. 그 애는 당신 가족이 아니지. 당신이 아끼던 시종에 불과해."
아카시우스는 붙잡은 허니의 손을 들어올렸음. 허니는 그 손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허니의 손을 강하게 쥐었음. 아카시우스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그 손등에 입을 맞췄음. 차가운 손등 위로 뜨거운 입술이 닿으니 허니는 눈을 질끈 감겠지. 그리고 문 밖에서는 의원이 도착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음. 하지만 의원은 들어오기를 머뭇거렸음. 아카시우스가 허니가 누워있는 침대 헤드를 붙잡고 그녀의 몸 위로 반 쯤 올라타 있었으니깐. 아카시우스가 허리를 숙여 고개를 내리자 의원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고 시종들도 시선을 돌렸음. 주인의 노골적인 스킨십을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으니깐.
하지만 아카시우스는 그저 허니의 귓가에 속삭일 뿐이었음.
"내가 당신 가족이지."
허니는 작게 울음소리를 내뱉었음.
"로마는 그 어느 곳보다 소문이 빨리 돕니다, 공주. 목소리를 낮추세요."
"......."
"우는 것도, 화내는 것도 오직 내 앞에서만 하셔야 됩니다."
아카시우스는 허니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며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고 의원에게 몸을 돌려 말했음.
"오랜만에 보는 내 아내가 이리 고통스러워 하시니 보는 내가 힘들군."
"아, 예예... 바로 진찰해 드리겠습니다!"
허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문 뒤로 사라지는 아카시우스의 붉은 망토를 쳐다봤음.
페드로너붕붕
1-https://hygall.com/611531887
암것도모름ㅈㅇ
자신의 시종을 볼모삼아 제 지아비가 전쟁터로 돌아간지 근 1년째가 되는 날이었음. 버티고 버텨보라고 했지만 허니는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갔음. 로마의 황제는 신의 사랑을 받아 이해심이 끝없는 바다같고 지혜가 푸른 하늘처럼 광활하다는데 순 거짓말이었음. 욕심이 가득하고 겁이 많으며 술과 아편에 취해 제정신이었던 적은 아주 오래전이며 제정신으로 돌아올 일도 없어보였음. 더군다나 그는 아카시우스 장군에 대해 자격지심이 굉장히 심해보였음.
아카시우스의 승전보가 로마의 역사에 새겨질 때마다 괴로워하는 것 처럼 보였음. 그리고 그가 전쟁터에서 돌아올 때마다 황제는 황실궁에서 패악을 부렸다는 소문도 자자했지. 허니의 귀에 들릴 정도면 이 황실에서 일하는 제일 밑바닥 신분도 알고있을게 분명했음. 허니는 이제 아카시우스의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인지 마주칠 때마다 노골적으로 괴롭히고 험담을 하며 숨통을 틀어막았음.
황제가 대놓고 모멸감을 주는데 허니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음. 황제의 손가락질 한 번에 제 목숨이 입김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워질수도 있었음. 그래서 허니는 웬만하면 납작하게 엎어져서 지냈음. 허니는 이곳에서 살아남아 티모시를 꼭 보고싶었거든.
그리고 반란을 진압하러 떠난 해안도시는 점차 정리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조만간 그를 볼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음. 그리고 허니의 바람은 다음날 새벽에 이뤄지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리마치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음. 해가 뜨지도 않아 밖은 어두웠지만 허니는 능숙하게 홀로 몸을 씻고 머리를 따고 옷을 입었지. 장군이 떠난 뒤로 이 저택의 그 누구도 허니를 신경쓰거나 케어하지 않았으니 이렇게 홀로 준비하는건 익숙해졌음. (다만 로마의 예법이나 상황에 따른 의복을 갖춰입는 걸 알려주지 않아 수치나 모욕감도 꽤나 느꼈겠다.)
고국이라면 이리 일찍 일어나 옷을 다 갖춰입어도 어디든 가서 제 할 일을 찾겠지만 이곳에서는 어디든 갈 수 없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음. 허니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겠지. 표면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다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비비적거리며 반지를 돌려보기도 하겠지.
그러다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반지 위로 떨어지겠다. 그리고 문이 열리겠지. 문이 열리는 순간 허니는 티모시를 떠올렸음. 말도 안되지만 그런 상상이라도 해야 허니는 숨통이 틔였음.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건 장군이었겠지.
"지아비가 그리도 그리웠나봅니다."
"........"
장군을 뒤늦게 따라온 시종은 안절부절하지 못했음.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갑자기 돌아오셔서 놀랐다고, 아무리 그래도 부인이 자고 계실지도 모르는데 이리 예고도 없이 방문을 하는건... 이라며 말꼬리를 흘렸음. 허니는 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게 눈에 보였음.
장군의 부인이 잠들어있는 침실 앞에 그녀를 지키고 있는 군사도 없고 시종도 없는게 사실 말이 안되는 거임. 그래서 본인은 죽었구나 싶은거지. 더군다나 허니는 시종의 도움도 없이 치장이 되어있는 상태였음. 제 주인인 아카시우스는 눈치가 빠르니 허니가 대충 이 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차릴게 분명했음.
"왜 부인을 지키는 병사가 없는거지."
아카시우스가 제 시종에게 물었음. 그가 머뭇거리자 허니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그 대신 대꾸하겠지. 자신이 물렸다고. 시종들도 병사들도 다. 그 말을 들은 아카시우스는 망토를 스르륵 벗으며 의아한 표정으로 허니를 보겠지.
"공주라면 시종의 손길을 받는게 익숙할텐데요."
"그들은 내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병사를 물리는 건 위험합니다."
그의 말에 허니는 마치 연극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다소 표독스럽게 보일 정도로 미소를 흘렸음. 그런 허니의 모습을 장군은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겠지.
"로마 장군의 아내인 내가 이 저택에서 위험을 느낄정도면..."
"........"
"로마의 종말도 머지않겠네요."
평소라면 시종이 저 미친 여자가 드디어 정신을 놨나? 하며 놀란 눈으로 쳐다봤을테지만 그녀가 제 목숨을 구제해줬다는 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 그냥 고개만 푹 숙인 채 서 있겠지. 아카시우스는 시종을 뒤로 물리고 문을 닫았음. 그리고 소파에 편히 앉아 테이블 위로 두 발을 쭉 뻗은 채 고개를 뒤로 천천히 젖히며 눈을 감겠지.
그의 배 위로 나란히 포개어 올려진 손에 허니와 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음. 허니는 당연히 이 사람이 반지를 빼고 다닐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조금 의아했겠다. 허니는 그에게 티모시 얘기를 묻고싶지만 꽤나 지쳐보여서 물어도 제대로 된 답은 못 듣겠다 생각했는지 피곤하면 방으로 돌아가서 자라, 하고 말하려고 입을 떼는데 아카시우스가 눈을 뜨고 허니를 바라보며 묻겠지.
"벌벌 떨고 있었으면서...시종 앞에서 연기를 잘 하시더군요."
"........"
"어쩌면 부인은 공주가 아니라 희극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카시우스가 낮게 웃었음. 내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그 말을 들은 허니는 주먹을 움켜쥐겠지. 그 말은 허니를 모욕하는 것 같았음. 미치지 않고서야 제 고국을 멸망시킨 이 나라에서 어떻게 잘 지내겠음? 빨간색만 봐도 흠칫거리고 어디선가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면 패닉상태에 빠져 어깨를 움츠리는데. 잠을 제대로 자본적도 이젠 기억도 안 날테지. 꿈을 꿀 때마다 악몽이니깐.
"이른 아침을 하러 가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음. 엄밀히 따지자면 안 한거겠지.
"당신이 아끼는 그 아이 얘기는 식사 후에 해드겠습니다."
허니는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뻗는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 본 뒤 그의 손을 맞잡았음. 허니는 이럴 수 밖에 없었음. 그에게 허니가 원하는 모든게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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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시간 동안 아카시우스는 허니의 손을 식탁 위에 올려 붙잡고 놓지 않았음. 불편해 뒤질것 같아 눈치를 줬지만 그는 가뿐히 무시했지. 식사가 끝나고 티타임 시간을 보내는 아카시우스는 달달한 멘트를 장전해 시종들에게 말하겠지.
"오랜만에 어여쁜 내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다들 물러가거라."
그 말을 들은 허니는 하마터면 마시던 차를 내뱉을 뻔 했음. 어이 털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장난스럽게 웃겠지. 시종은 저 멀리, 그 둘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졌고 아카시우스는 조금 더 허니에게 가까이 다가갔음. 여전히 손을 붙잡은 채로. 허니는 걍 존나 당황스럽기만 하겠지.
"손이 거치십니다. 원래도 이랬나?"
그 말에 허니는 흠칫 놀라며 손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딱히 소용은 없었음. 아카시우스는 공주라고 하기에는 굳은살의 흔적들이 만연한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렸지. 결혼식을 할 땐 장갑을 끼고 있어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작지만 의외로 다부져보였음. 새하얀 흉터들도 보였고. 이 손은 마치...
"검투사 손처럼 보이는데."
"...내 나라는 여자도 검술을 배웁니다."
"노련한 검투사였나봅니다."
"누굴...이겨야 했거든."
허니는 마른 입술 위로 찻잔을 갖다댔음.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행동으로 보였지. 방 밖의 병사를 물린 이유가 납득이 가는 군요. 그가 말했음.
"희극인이었다가...검투사였다가... 다음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지 기대가 되네요."
"할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1년 전 거래를 기억하실 텐데요."
여유를 부리는 그의 모습이 괘씸해 허니는 대뜸 본론을 꺼냈음. 아카시우스는 그 얘기를 하기 전에 공주에게 알려줄게 먼저 있다고 말하겠지. 허니는 뭐냐는 듯 찻잔을 내려놓고 그가 잡고 있던 손도 뒤로 빼내겠지. 아카시우스는 이번에는 손을 놔주었고 조금 더 그녀에게 다가가 앉아 말했음.
"제 손길이 불쾌하신가 봅니다."
"...아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뭐, 나랑 있을 땐 상관없지만 보는이가 있을 땐 이러지 말아줬으면 좋겠군요."
"장군의 인형이 되라는 말입니까?"
인형이라니. 아카시우스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가 뭐가 웃긴지는 모른지 웃음을 내뱉었음. 그러자 저 멀리 서있던 시종들이 움찔거렸지. 그는 꽤 오랫동안 홀로 웃다가 허니를 바라봤음. 그리고 허니의 손등을 엄지 손가락으로 슬슬 쓰담겠지.
"부부사이에 스킨십은 당연한거 아닌가?"
"평범한 부부들이야 그렇겠죠. 하지만 나와 장군은 특수한,"
"마르쿠스."
설마 지아비 이름도 모르진 않겠지? 아카시우스가 허리를 살짝 숙여 허니의 눈을 마주했음. 그와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허니는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물리겠지.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훽 돌릴거임.
"뭐...부인이 원하는대로 부르는게 좋겠군요."
"나한테 원하는게 뭡니까. 아카시우스..."
"그대는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
"........."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이룬 후의 상황을 도와줄 수는 있겠지."
"무엇을...원합니까? 당신은."
아카시우스는 소파에 기댔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잔머리가 삐져나온 허니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사뭇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정하지 않았음.
"부인, 난 로마의 몰락을 원합니다."
그의 말에 허니는 저도 모르게 시종들이 서 있는 곳을 보게되겠지. 혹여 이 사람이 하는 말을 그들이 듣고있을까봐 두려워져서. 그러면 아카시우스는 손을 뻗어올려 허니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제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게 만들거임. 허니의 눈동자는 힘없이 휘청거리고 있었고 저도 놀란 나머지 아카시우스의 손을 붙잡고 말겠지. 아카시우스는 허니가 붙잡은 제 손을 힐끗 보다가 이어 말하겠지. 이 나라는 폭군에 의해 침몰하고 있다고.
"난 이 나라를 바로 세울 겁니다."
"전쟁을...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아카시우스는 고개를 돌리며 그 말에 답하지 않았음. 대신 나라를 바로 세우면 허니를 고국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하겠지.
"지금은 사절단을 보내 복원 작업을 하고 있지만 곧 의회가 다시 구성 될거고...후에 그들은 당신이 필요할겁니다."
허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음. 처음부터 그걸 생각하고 자신을 이 곳으로 데려온거냐고. 아카시우스는 정확히 답하긴 어렵지만 비슷하다며 고개를 끄덕였지. 허니는 이 사실을 듣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음. 존나 혼란스러워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그녀에게 아카시우스가 말했음.
"당신은 신임을 얻어야 합니다."
"........."
"적어도 이 저택에서 일하는 시종들이 당신을 따르게 해야되죠. 내가 없을 때 이곳의 주인은 당신이니깐."
"하지만...난..."
"내가 당신을 존중하고, 당신도 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됩니다."
찬 바람이 불었고 아카시우스는 제 망토를 벗어 허니 어깨에 걸쳐주겠지. 바람이 차다며 들어가자고 손을 뻗자 허니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음. 그리고 그의 팔을 붙잡겠지. 그들이 정원 입구로 걸어가자 시종 하나가 다가와 허니를 바라보며 물었음. 안색이 좋지 않다고, 의원을 부를까요? 평소에는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던 시종이었음.
허니가 괜찮다고 말하려고 하자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쇳소리를 내뱉겠다. 로마에 와서 오늘만큼 말을 많이 한 적이 없으니깐 목에 무리가 간거임. 허니가 콜록거리자 아카시우스는 어깨를 끌어안으며 의원을 부르라고 말한 뒤 침실로 향하겠다.
거의 아카시우스에게 안기다시피 침대에 놓여진 허니는 또 아카시우스의 손길에 의해 이불이 덮어졌음. 그때 시종이 아카시우스를 찾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허니가 다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겠지.
"할 말이..."
애처롭게 쉰 목소리에 아카시우스는 낮은 숨을 내쉬고 시종에게 나가라고 손짓하겠지. 그는 허니가 무슨 말을 할 지 이미 다 아는 얼굴이었음. 허니의 손을 붙잡고 말해주겠지. 그 애는 지금 해안도시에 있다고. 나 대신 그곳을 지켜봐야 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말에 허니는 울음을 터트리겠지. 그의 손을 꼬집듯이 힘을 세게 쥐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음.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선은 허니가 슬퍼할 수록 점점 차갑게 굳어가겠다.
"나한테 약속했잖아요...약속 했잖아...같이 돌아오겠다고..."
"그깟 남자애 때문에 이리 우시는 겁니까?"
"그깟 남자애가 아니야! 그 애는 내 가족같은,"
"아니. 그 애는 당신 가족이 아니지. 당신이 아끼던 시종에 불과해."
아카시우스는 붙잡은 허니의 손을 들어올렸음. 허니는 그 손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허니의 손을 강하게 쥐었음. 아카시우스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그 손등에 입을 맞췄음. 차가운 손등 위로 뜨거운 입술이 닿으니 허니는 눈을 질끈 감겠지. 그리고 문 밖에서는 의원이 도착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음. 하지만 의원은 들어오기를 머뭇거렸음. 아카시우스가 허니가 누워있는 침대 헤드를 붙잡고 그녀의 몸 위로 반 쯤 올라타 있었으니깐. 아카시우스가 허리를 숙여 고개를 내리자 의원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고 시종들도 시선을 돌렸음. 주인의 노골적인 스킨십을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으니깐.
하지만 아카시우스는 그저 허니의 귓가에 속삭일 뿐이었음.
"내가 당신 가족이지."
허니는 작게 울음소리를 내뱉었음.
"로마는 그 어느 곳보다 소문이 빨리 돕니다, 공주. 목소리를 낮추세요."
"......."
"우는 것도, 화내는 것도 오직 내 앞에서만 하셔야 됩니다."
아카시우스는 허니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며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고 의원에게 몸을 돌려 말했음.
"오랜만에 보는 내 아내가 이리 고통스러워 하시니 보는 내가 힘들군."
"아, 예예... 바로 진찰해 드리겠습니다!"
허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문 뒤로 사라지는 아카시우스의 붉은 망토를 쳐다봤음.
페드로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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