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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7 01:27
ㄱㅍㅁㅇ 루스터행맨으로 연애환승에서 아무도 모르던 7번째 X커플 보고싶다
루스터행맨 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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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한 커플들의 환승 정거장. 연애-환승>
요란한 광고문구가 스치듯 지나간다. 오래만에 전화가 온 옛 인연은 웃으며 말한다.
"그러니까~ 너만큼 잘생긴 애랑 사겨본 적이 있어야지... 같이 나가자, 솔직히 네가 방송 안하면 진짜 국가적 손해야."
"하하하, 역시 그런가? 그런 말, 립서비스라도 좋은데? 작가님께 말씀드려, 나 나간다고"
"헉, 진짜지? 말 바꾸는 거 없다? 와아-!"
전화를 끊은 행맨은 물끄러미 자신의 핸드폰을 내려다본다. 여전히 연락없는 다른 사람을 기다리다, 결국 먼저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흥, 내가 그리워할 줄 알고? 나 잘 산다고.
그러나 발없는 말이 천리가듯, 최근 가장 핫했던 프로그램에 행맨이 나온다는 소식은 군대 내에 쫙 퍼졌다. 어쩌면 행맨이 원했을 그 사람에게까지도.
"....어딜 나간다고?"
루스터가 불편하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왜, 최근에 인기많았던 연애 프로그램 있잖아~ 옛날 연인이랑 같이 합숙하면서..."
쾅, 루스터가 입술을 꽉 깨물고 책상을 내리쳤다. 거길 왜 나가.
"...너네 헤어졌다며?"
"....다시 만날거야."
씹어먹듯이 대답한 루스터는 핸드폰을 들었다. 몇번 신호음이 가더니 상대방은 금방 전화를 받는다.
"나 그거 할게."
"....정말로?"
상대방은 기쁘다는 듯이 웃었지만, 루스터는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근데 너 보러 가는 건 아니야. 그건... 이해해줘."
"....뭐?"
"하, 얘기하자면 길어.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일단 그쪽에 얘기부터 전해줘."
뚝, 전화를 끊은 루스터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마침 퇴근 시간이길 다행이다. 짐을 챙기던 루스터에게 동료가 묻는다.
"방금 그 전화 뭐냐?"
"아, 나도 나간다. 거기, 이름이 뭐라고? 아무튼."
"....엥...? 뭐?"
"그렇게 됐으니까 군대에 널리널리 퍼뜨려. 나도 나간다고, 걔 때문에 별 미친 짓을 다하네..."
어휴, 한숨 쉬는 루스터를 바라보는 동료의 눈은 짜게 식었다. 뭐래, 둘 다 똑같이 미쳤구만...
그러나 루스터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인간관계 탓에 행맨에게까지 그의 소식이 들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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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환승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앞에 계신 분들의 자기소개를 듣고 첫인상 투표를 진행해주세요]
첫날부터 투입된 행맨은 맑게 빛나는 미소로 힘차게 자기 소개를 했다. 직업은 못 밝히지만, 꽤나 건강해보이는 몸에 선홍빛 잇몸을 드러내며 웃는 호감형 미남에 여성들에게 많은 표를 얻었다. 그 표는 여성들에게만 얻은 것은 아니었다.
🔥연애-환승 실시간 불판 깐다🔥
ㄴ헉 저 분 뭐냐, 진짜 개호감
ㄴㄴ와 이번 시즌 미쳤네, 아 벌써 도파민 돈다...
ㄴㄴㄴ아악, 금발 미남이 막 나 꼬신다!!! 이거 범죄 아니냐고!!
시청자들의 압도적인 호감표 이래 1화의 스타는 단연 행맨이었다. 이름만 밝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인별까지 알아내 행맨의 팔로워는 급격하게 늘었다. 행맨은 뿌듯한 얼굴로, 암... 이래야지! 웃을 뿐이다. 방영분은 1회만 나갔지만, 오늘은 12부작 중 6회를 촬영하고 있었다. 꽤나 빠듯한 일정임에도 제작진은 결코 스포는 없다며 무리한 일정을 이어왔던 것이다.
오늘까지 하면 벌써 4주째였으나 행맨의 표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에 이를러서는 아무도 행맨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잘생겨서 다가갔더니 꽤나 독설가였던 행맨 덕에 점점 인기가 바닥을 쳤던 것이다. 여성들에게야 아무렇지 않게 대하지만, 웃는 낯으로 남성들에게 툭툭 던지는 독설은 X인 본인들이 보기도 그랬는지 말이다. 뭐, 이정도면 할일은 다한거 아닌가, 어차피 환승이라기보다는 출연이 목적이었던 그는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그 순간, 부르르- 행맨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어라, 투표는 끝난거 아닌가. 하던 찰나.
[행이, 나 문 좀 열어줘.]
그 문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다. 그 사람만 아는 별명, 여기 있는 사람들에겐 아무도 직업과 콜사인을 알린 적이 없다. 그리고 있는 콜사인을 이렇게까지 제멋대로 부를 사람은... 한명밖에 없는데. 말이 안되는 걸 알면서도 걸음을 옮겼다. 진짜, 진짜야? 진짜로? 미처 걸음이 닿기 전에 초인종이 울린다. 벌컥-, 행맨이 문을 열자 아는 사람이 모르는 웃음을 짓고 서있다.
"안녕하세요,"
어째서, 네가 여기에. 루스터는 그저 존댓말로 말을 건네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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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온 루스터는 당분간 홀로 방을 쓰게 되었다. 안절부절 못하던 내가 루스터에게 눈을 떼지 못하던 사이, Y가 루스터의 방을 안내한다. 자연스러운 몸짓과 눈으로 나누는 대화는 어쩐지 둘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아, 그럼 그렇지. 설마 내가 있는 걸 알고 왔을까, 부풀었던 기대가 가라앉고 괜스레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그렇다면 이 문자는 뭐였는데, 왜 너는 날 이렇게 혼란스럽게만 만드는지.
이윽고 Y가 방에서 나오고, 루스터는 집을 구경하겠다며 홀로 집을 나선다. 마당에 있는 정원으로 향하는 루스터를 행맨은 오기가 생겨 몰래 따라간다. 자박거리는 발걸음만이 울리는 그때, 행맨은 루스터를 붙잡는다.
"...안녕하세요?"
어색한 존댓말이 튀어나오자 되려 행맨이 날카롭게 질문한다.
"이거 뭔데, 너 왜 여기있는데."
"......그러는 너는?"
"..... 나? 연애도 환승해보려고. 나 환승 잘하잖아."
"..아, 그러셨지."
아, 그러셨지? 심기가 불편해진 행맨의 입이 부르퉁해진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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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가 메기로 투입되던 그날, 제작진은 메기로서 누구에게 호감문자를 어떻게 보낼지 물어본다. 하지만 루스터의 생각은 여전히 한명 뿐인지라, 그가 알아챌 수 있게 작은 힌트를 넣어 문자를 보낸다. 덕택에 가장 먼저, 그리고 오랜만에 행맨과 얼굴을 마주했다. 뿌듯해진 마음으로 일일히 출연자들과 인사하고, 이 프로그램을 소개해준 Y가 나에게 방을 안내해준다. 그녀는 나와 오랜시간 함께했던 롱디이자, 행맨을 만나기 바로 전의 인연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녀에게 미안할 수밖에. 좋은 사람인 그녀와 헤어졌던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내가 행맨을 처음 보았던 그날, 행맨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며 이별을 고했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길 간절히 바라면서 미련없이 뒤돌았다.
"...오랜만이네"
"이 방 쓰면 돼?"
"....넌 여전히 날 쌀쌀맞게 대하고."
"말했잖아, 난 여기 다른 사람 보러왔어. Y, 넌 좋은 사람이야. 나같은 애한테 매여 있지 말고 더 좋은 사람을 찾아봐."
"....이미 그러고 있어"
"난 진심으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응, 알아."
Y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었기에 마음은 배로 무거워졌다. Y와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집을 둘러보러 밖으로 향했다. 오, 장원이 제법 멋지네. 하는 사이 뒤로 행맨이 다가왔다. 대뜸 눈을 부릅뜨고 날 취조하려는 행맨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넌 이런 사람이지. 바람 빠진 웃음으로 픽 웃자, 행맨은 또다시 날 바라보기만 한다. 우리가 헤어지던 그날처럼, 아무런 말도 없이.
"...행이,"
"....이름으로 불러, 행이는 무슨 얼어죽을."
"....나는 너한테 미련있어서 나왔는데."
"...어쩌라는 거야."
"너는 여전히 네 잘못이 아니라는거네."
"내 생각은 변함없어, 난 언제나 옳아 수탉."
"아니, 이번엔 틀렸어. 언제나 네가 옳지만, 이번만은 네가 틀렸어. 난 널 놓지 않을거니까."
확신에 찬 말투에 행맨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래, 이렇게 흔들려만 줘. 그 틈을 비집고 반드시 얻어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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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가 방영되던 날은 7회를 찍는 날이었다. 예정되어 있던 사람과의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데, 저번주에 메기로 들어온 루스터는 짝이 맞지 않아 나갈 수 없었다. 잘 다녀오세요,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루스터가 다른 사람들을 배웅하는 모습에 괜히 심술이 났다. 쟤는 저번주에 막 들어와놓고 뭔 배웅이야, 배웅은. 마음속으로 툴툴거리면서도 흠 잡을 데 없이 에스코트를 마친다. 그 뒷모습을 루스터가 부엌 창문으로 빤히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누구랑 놀러간다고 저렇게 쌔끈하게 빼입었는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일 투성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화딱지 나는데 행맨만 배웅해주면 티날까봐 일일히 나가는 사람들 모두를 배웅했다. 너는 이런 내 노력을 알까, 아마 모르겠지. 살풋 웃음이 터지다가도 부엌 창문으로 얼핏 보이는 행맨의 모습에 다시 웃음이 들어갔다. 젠장할, 한 주만 일찍 들어올걸.
어김없이 열린 술자리에서 Y와 루스터는 우연히 비슷한 자리에 앉았다. 옛 연인임을 티내면 안되지만, 7회쯤 되니 다들 누가 누구의 X인지 대략적으로 짐작하는 분위기였다. Y는 루스터에게 옛날 그와 처음 만났던 이야기를 작게 속삭였다. 딱 이런 술자리에서 둘이 처음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루스터는 대학교 마지막 학년 동아리 회식에서 그녀를 만났다는 걸 기억하곤 작게 맞장구친다. 딱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비슷한 자리에 앉아 같이 술자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이어지는 추억 이야기에 어느새 푹 빠져 루스터는 행맨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행맨은 기회를 봐서 루스터 옆자리로 자리를 옮기려던 계획을 철회한다. Y와 루스터는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고, 그 둘의 이야기는 행맨이 아무리 엿들어봤자 모르는 이야기뿐이었다. 술자리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행맨은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소외감에 앞에 놓인 술잔을 벌컥벌컥 마신다. 나 보러왔다는 건 순 거짓말이네, 항상 넌 그런 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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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가 방영되던 날, 8화를 찍는 오늘은 숨겨왔던 X를 공개하는 날이다. 사실 예정은 9회쯤이었으나 다들 눈치챈 것이 분명해 제작진이 앞으로 조금 앞당겼다.
[X ♡ 제이크 세러신]
[2020.01.24~2021.01.03, 1년]
제이크는 본인의 이름이 화면에 뜨자 X와 하이파이브한다. 아메리칸식 쿨한 커플~이라는 컨셉에 맞게 둘은 헤어진 이후에도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는 설정이다. 사실 헤어진 뒤로 처음본 거긴 하지만, 둘의 X인터뷰는 장난기 가득하다. 각자의 X에 관해 험담만 잔뜩 늘어놓은 인터뷰가 끝나고, 행맨은 루스터를 바라보았지만 루스터는 화면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뭐야, 재미없게.
[Y ♡ 브래들리 브래드쇼]
[2015.12.09.~2020.12.29, 5년]
모인 커플들 중 가장 장수한 커플은 브래들리 쪽이었다. 화면 속 X 인터뷰를 진행하는 루스터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사실 나오는 것도 좀 염치가 없는 것 같았어요, 내가 너무 잘못해서 헤어진 거라."
마치 루스터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Y가 말을 받는다.
"응, 제가 나오자고 했어요. 그냥 묵은 감정을 아직 내가 못 털어내서...."
루스터와 Y의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행맨의 얼굴은 굳어가기만 했다. 날짜를 보니 나와 사귀기 바로 전 연인인 듯했다. 여전히 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차마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행맨의 가슴을 때린 유력한 문장도 있었다.
"결혼까지 약속했었는데, 제가 마음을 바꿨죠."
[왜요?]
"....음, 제가 그때는 너무 어려서 이기적이었죠. 나의 마음만 들여다볼줄 알았거든요."
루스터는 담담하게 그런 말을 털어놓고, 행맨은 그 말에 자신이 눈물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그런 행맨을 루스터는 바로 옆에서 힐끗거렸다. 지금 네 얘기 하는건데, 너한테 반해서 쟤랑 헤어진거라고 얘기하는 건데 아무래도 행맨은 눈치못챈 듯하다. 루스터는 머리를 짚고 한숨을 내쉰다.
12명씩 6커플이라 루스터의 영상을 마지막으로 불이 켜졌다. 다들 예상했던 대로라며 웃고 있는데, 다시금 불이 꺼지더니 검은 화면에 자막이 덩그러니 올라온다.
[이곳엔 7번째 X커플이 존재합니다.]
[Code: b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