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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5 23:46
아무튼 안맞춰주는 타브 보고싶다..
ㅅㅍㅈㅇ
복도 계단으로 누군가 올라오고 있는 발소리에 타브는 입을 다물었음. 숨을 곳을 찾아보았지만 복도에는 발광석 등과 횃불들 뿐이었음. 타브는 조용히 하라는 뜻에서 아스타리온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그를 이끌어 다시 침실로 들어갔음.
타브는 급하게 무기로 대체할 만한 것을 찾다가 대충 방안에 있는 플로어 스탠드의 받침과 헤드를 꺾어 창 모양으로 만들었음. 평소 들고다니던 자신의 무기에는 훨씬 못미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음. 급조한 무기를 들고 타브는 문가로 다가가 숨을 죽이고 바깥의 소리에 귀 기울였음. 페이브란체 사제보다 좀 더 보폭이 작은 걸음이 내는 발소리와 무언가 바퀴달린 물체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음. 우려와는 달리 낯선 이는 침실 옆쪽 문을 열고 들어갔음. 안도의 한숨을 내쉰 타브는 문에서 한발짝 물러나 아스타리온을 돌아봤음.
아스타리온은 중앙쪽에 있는 침대 앞에 서있었음. 매트리스를 적시다못해 바닥까지 낭자한 피와 정액의 흔적이 있는 곳이었음. 타브가 침대보까지 뜯어가는 바람에 침대는 곧 버려야 될 것 같은 흉흉한 꼴을 하고 있었음. 아스타리온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음. 피칠갑 된 침대를 보자 과거 카사도어에게 고문받던 비밀방의 모습이 그의 머리 속을 스쳤음. 고장난 전구처럼 점멸하며 점차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들에 아스타리온은 속이 역해졌음.
승천 의식을 치르고나면 이런 기억들은 다 잊혀질줄 알았음. 큰 힘을 가지고나면 더이상 나약하고 초라했던 스폰 때의 아스타리온은 지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때의 상처받고 유약했던 자신은 마음 속 깊은 곳에 흉터처럼 남아버렸음. 그건 아무리 닦아 없애려고 해도 남아있는 오래된 상흔이었음.
카사도어의 승천 의식을 빼앗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단순했음. 카사도어에게 쫒기면서 언제 잡힐지 전전긍긍하는 쓸모없는 자신을 타브가 언제든 질려서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음. 타브는 동료들을 이끄는 와중에도 항상 그런 아스타리온을 세심하게 보듬고 지켜주려고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아스타리온은 스스로가 너무 작아보였음. 아스타리온은 보호받는 약한 존재가 아니라 제 연인을 보호할 수 있는 자가 되고 싶었음. 승천의식을 치루면 조금이라도 더 쓸모있는 존재가 되어 타브 옆에 나란히 설 수 있을 것 같았음.
초월체 뱀파이어가 된 후 아스타리온은 이제 누구한테도 겁에 질릴 필요 없었음. 누구도 자신을 해할 수 없었고 누구에게 고개 숙일 필요도 없었음. 살아있는 기분을 만끽하며 한때는 벌레같이 기생하던 이 도시를 손에 쥐고 맘껏 가지고 놀 수도 있었음. 네더브레인을 퇴치하러 가는 타브에게 힘을 빌려주겠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을 때는 기쁨에 가슴이 벅차기까지 했음.
그런데... 무엇이 잘못된걸까? 타브는 아스타리온 곁을 떠났고 결국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음. 더러운 드로우 사제에게 노예처럼 다뤄지고 고문받기까지 했음. 타브에겐 금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 무도회와, 권력에 둘러싸인 삶만 안겨주고 싶었는데... 누군가의 손에 억지로 놀아나고 굴려지는 기분은 평생 모르길 바랬는데, 그랬는데...
그때 타브의 손이 아스타리온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왔음. 초월체가 되기전에도 느꼈던 단단하고 다부진 손이었음. 어깨에 느껴지는 온기에 정신을 차린 아스타리온은 자신의 손을 타브의 손위에 겹쳐잡았음. 창백하게 질려 차가워진 손에는 타브의 온기가 불타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음. 그 온기를 의식하자 아스타리온은 흐트러져있던 머릿속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음.
"괜찮아?"
"...조금 안좋은 옛 기억이 떠올랐을 뿐이야. 타인에게 원치 않는 일을 당하는 게 얼마나 기분 나쁜지 내가 잘 알지. 네가 이런 것들은 겪지 않길 바랬는데... "
"난 괜찮아, 아스타리온. 정말이야."
"아니, 내가 안 괜찮아. 이제 내 것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타브는 아스타리온에게 난 네 소유물이 아니라고 따지고 싶었으나 페이브란체 저택에 갇혀있는 지금 그와 말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음. 그런 사소한 것에 쓸 기운을 탈출하는 데 쏟고 싶었음. 지금은 페이브란체 사제가 자리를 비웠기에 잠시 소강된 상태지만 그녀가 언제 다시 침실로 돌아올지는 모르는 일이었음.
타브와의 대화로 아스타리온은 정말로 기운을 차린 것 같았음. 이젠 협탁 위의 미약이 든 향로를 보고 "이딴 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난 달링에게 천국을 선사할 수 있는데." 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였음. 하지만 타브의 정사로 얼룩진 상체를 볼때면 눈가의 근육이 약간 떨리는 것으로 봐서는 그도 일부러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농담을 던지는 것 같았음.
"일단 여기서 나가기 전에 내 무기부터 찾아야 해."
"네 무기?"
"응. 발더란의 무기."
"거인살해자를 가져왔어? 그건 연회장 전시대에 걸어둔건데 아무한테도 안들키고 그걸 가져갔다고?"
"하인들에게 안 들키려고 조금 많이 조심하긴 했어."
타브가 은신에 숙달되어 있던 것도 아니고 '조금 많이' 조심했다고해서 홀까지 가서 그렇게 큰 무기를 가져가는데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게 기가막혔음. 아스타리온은 생각보다 더 쓸모없고 무능한 어둠의 하인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고민했음. 심지어 타브를 찾으러 보낸지가 언젠데 아스타리온이 타브를 찾아낼 때까지 스폰들은 코빼기도 안보였음.
발더란의 거인살해자는 양손검이었는데, 고룡 다리 감옥의 지하에서 얻은 무기였음. 발더란의 이상한 시험들을 모두 통과하고 마지막 죽음의 존재도 쓰러뜨리고 나서야 겨우 획득한 무기여서 그런지 몰라도 이름만큼이나 흉흉한 외관을 자랑했음. 어찌됐던 별다른 손에 맞는 무기가 없어 이전까지 전리품으로 나온 무기들은 대부분 동료들에게 양보했던 타브가 처음으로 욕심을 낸 무기였었음. 네더브레인과의 전투가 끝나고 이제는 필요없어진 장비들을 정리해야 했을 때, 아스타리온은 별생각없이 창고 상자에 장비들을 넣어두자고 얘기했음. 이제는 실크와 보석들로 이뤄진 옷들만 걸치게 될테니 갑옷은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였음. 하지만 타브는 다른 장비들은 상관없지만 거인살해자 정도는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두고 싶어했음. 그말에 아스타리온도 과시용으로 발더란의 유물들을 진열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타브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의 장비들을 연회장에 전시해뒀었음.
타브가 없어진 며칠간은 정신이 없긴 했는지 아스타리온도 홀에 거인살해자가 없어졌는지도 몰랐음. 그렇게 큰 무기가 없어졌는데도 몰랐다니, 머릿속이 타브를 찾을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주변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음. 이미 타브가 없어진 마당에 타브의 장비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음.
"갑옷은 기동성 때문에 가벼운 가죽재질로 된 것으로 입고 왔어. 근데 검은 언더다크에서는 너무 눈에 띌 것 같아서 천으로 둘러서 묶어놨거든. 이 저택에 들어올 때 들고왔으니까 여기 어딘가엔 있을거야."
"이 드로우들의 안목이 절멸해 버린게 아니라면 걔네들도 무기의 진가를 알아보고 어딘가 보관해놨을 것 같은데. 나라면 잘 보이는 곳에 걸어뒀을거야."
"그럼 1층에 있지 않을까?"
발더란의 거인살해자가 어디에 있을지 아스타리온과 잠시 의논하고 있을 때, 복도쪽에서 다시금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음.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대화는 잘려나간 것처럼 끊겼고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섰음. 발자국소리와 바퀴소리는 이제 침실 바로 앞에 멈춰섰음. 타브는 어둠속에 숨는 능력은 없었기에 문 뒤에 바짝 붙었고 아스타리온은 대충 장식장 옆에 몸을 숙여 은신했음.
침실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인영이 들어왔음. 성인보다 훨씬 작은 어린아이같은 체구였는데 피부와 얼굴 생김새로 보아 딥노움 여성인것 같았음. 딥노움은 이것저것 청소도구가 들어있는 바퀴달린 청소도구함을 끌고 들어왔음. 타브는 긴장감에 몸이 바짝 굳었음. 침대가 비어있는 것을 봤으니 딥노움이 이대로 소리를 질러 경비병들을 끌어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러나 딥노움은 청소도구함의 대걸레로 바닥에 흥건한 피를 닦는데 열중했음.
이 침실에 인간 노예가 잡혀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았음. 그렇지 않고서야 침대에 묶인 사슬들이 끊어져서 널부려져 있는데도 저렇게 태평하게 청소에 정신을 쏟고있을 리가 없었음. 낯선 이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바로 뒤에서 급조된 창으로 찔러버릴 생각이었던 타브는 조금 마음을 바꿨음. 타브가 여태껏 봐왔던 딥노움들은 자기 신념에따라 움직이는 고집불통들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선한 친구들이었음. 호기심과 학구열이 뛰어난 종족이었기에 이런 곳에서 자의로 청소를 하고 있을 리는 없었음. 타브는 조심스럽게 청소에 열중한 딥노움의 뒤로 다가갔음.
"으읍!! "
"쉬... 조용히 해. 난 타브라고 해. 넌 여기 하인인거야?"
타브는 딥노움이 혹여나 소리를 지를까봐 그녀의 입을 단단히 막았음. 딥노움은 당황하여 잠시 버둥거렸지만, 이내 부드럽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긴장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음.
"소리지르지 않는다면 손을 뗄게."
그 말에 딥노움은 고개를 끄덕이고 저항할 마음이 없다는 듯이 순순히 들고있던 대걸레를 침대 옆에 기대놨음. 그것을 보고 타브는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음. 입에서 손을 완전히 떼어도 딥노움이 얌전히 있자 타브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음.
"넌 누구야? 여긴 어떻게 들어온거고? 뭔가 훔치러 들어온거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빨리 도망가."
"저기, 우린 좀도둑따위가 아니거든? 굳이 따지자면 너네 주인이 오히려 내 달링을 훔쳐간거지."
좀도둑 취급받는게 못마땅했는지 아스타리온이 끼어들었음. 어둠 속에서 갑자기 등장한 아스타리온 때문에 깜짝 놀란 딥노움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음. 타브는 다급하게 그녀의 입을 다시 막았음. 다행히 밖에서 누군가 뛰어 올라온다던가 하는 그런 소란스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음. 진정이 된 딥노움이 풀어달라며 손을 툭툭 건드리자 타브는 다시 그녀를 풀어주었음.
"세상에, 하이엘프까지! 사제님들이 보면 진짜 큰일 날거야."
"쉿, 우린 원래 우리 물건이었던 것들만 챙기고나면 바로 나갈거야."
"그게 뭔데?"
타브는 거인살해자의 외관을 두서없이 설명했음. 타브의 말에 딥노움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2층에 있는 방들에선 그런 거대한 무기는 본적이 없다고 대답했음.
"1층 중앙홀에 연결된 사제들의 성소에 있을 수도 있겠어. 하지만 거긴 내가 못들어가는 곳인데... "
"괜찮아. 우린 들어갈 수 있어. 지금 저택에 페이브란체 가 사람들이 몇명이나 있지?"
"지금 대모님은 의회 출석때문에 안 계시고, 다른 사제님들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가문을 이끄는 대모가 출타중이니 경비 인원도 많이 줄어있을 것이 분명했음. 페이브란체 가 사람들이 저택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타브는 최대한 조용히 빠져나가는게 목표였으므로 경비 인원이 줄었을 것이란 사실이 더 중요했음. 침실을 빠져나가려는 타브를 딥노움이 불러세웠음.
"나도 데려가줘. "
"너를? "
"난 이 도시인이 아닌데 여기 노예로 끌려온거야. 내 힘으론 절대 이 사슬을 끊을 수 없어. 하지만 넌... 넌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딥노움이 타브의 손목에 남아있는 수갑의 흔적을 가리켰음. 딥노움의 발은 커다란 청소도구함과 연결 되어있었는데 그녀의 작은 체구로는 두꺼운 사슬을 끊을 방도가 없었음.
"그냥 도와달라는건 아니야. 나에게 숨겨둔 폭탄이 있어. 너희들이 이 저택을 빠져나갈 때 도와줄게."
"폭탄이 있다면 그걸로 너 혼자 탈출하면 될텐데 우리보고 도와달라고 하는건가? "
타브가 또 쓸데없는 선의를 베풀 것 같은 생각에 아스타리온이 예민하게 쏘아붙이자 딥노움이 억울한 목소리로 답했음.
"청소도구함이랑 내 몸이 너무 가까이 연결되어 있어서 폭탄으로 이걸 떼내는건 불가능해. 그랬다간 내 발목도 날아갈거라고! 어찌저찌 잘 끊어낸다고 하더라도 이 저택을 나 혼자 빠져나간다는 건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잖아. "
나름 설득력있는 딥노움의 말에 불안해진 아스타리온이 타브를 돌아봤음. 타브는 딥노움의 말에 설득이 된 건지 문 손잡이를 잡았던 손을 떼고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음. 아스타리온은 한숨을 내쉬었음. 타브는 항상 이렇게 곤경에 처한자를 두고가지 못했음. 올챙이를 제거하느라 한시가 바빴던 순간에조차 약자를 도우는 것을 멈추지 않아서 항상 아스타리온을 돌아버리게 만들었음. 이럴 때는 타브를 말리는 것은 오히려 더 시간을 허비하는 꼴이니 차라리 그를 도와주어 빨리 끝내게 하는게 더 나았음.
타브가 사슬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사슬이 침대와 단단히 고정되어있고 타브의 몸이 사슬이 끊어질때까지 버틸 수 있어서 였음. 하지만 딥노움과 연결 된 사슬을 타브가 한 방식대로 끊으려 한다면 그녀의 발목이 부러질 수도 있었음. 게다가 청소도구함은 바퀴가 달려 잘 고정되어 있지도 않았음. 타브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중앙에 있는 침대 쪽으로 걸어갔음. 그리고 철제틀로 이뤄져서 몇십키로는 가뿐히 나가보이는 침대를 살짝 들어올려 딥노움의 발목에 연결된 사슬이 침대 모서리에 눌려 고정되게 했음. 이 상태라면 사슬을 잡아당기거나 비틀어도 그녀의 발목에는 무리가 없을거였음.
그러고나서 타브는 침대를 지지대삼아 청소도구함을 뜯어냈음. 사슬 중간이 아니라 청소도구함과 사슬의 연결부위가 뜯어진거라 사슬의 길이가 길게 남아버렸지만, 어찌됐던 거치적 거리던 도구함이 없어졌으니 이동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았음. 침대를 다시 들어올려 딥노움을 빼주자 자유로워진 그녀가 기쁨에차서 함박웃음을 지었음.
"아직 기뻐하긴 일러. 1층 성소로 안내해."
아스타리온은 그녀가 기뻐할 틈도 주지않고 재촉했음. 딥노움은 바닥에 나뒹그러져있는 청소도구함 밑바닥에서 폭탄 몇 개를 챙겨서 앞장섰음.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길게 남은 사슬이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음.
침실을 나서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자 커다란 중앙홀이 있었음. 타브는 딥노움을 따라 1층 복도 끝으로 향했음. 복도 끝에는 보통 문과는 달리 천장 끝과 거의 맞닿아있는 철제문이 있었음. 날카롭고 다양한 무늬로 시공되어 있는 문은 우아하고 절제된 느낌을 주었음. 타브는 시험삼아 문을 밀어봤지만 꿈쩍도 하지않았음.
"내가 할게, 달링."
아스타리온이 주머니에서 락픽 몇개를 꺼내 나섰음. 그가 락픽을 끼우고 몇 번을 돌리고 잡아당기자 철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음. 최근들어 자물쇠를 해제할 일이 없어서 몰랐지만, 발더스게이트에서 은행 금고를 털고 난 이후 그의 솜씨는 눈에 띄게 더 발전한 것 같았음. 이제는 아스타리온이 해제 못 할 자물쇠는 없을 것 같았음. 타브가 아스타리온을 바라보자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소의 문을 가볍게 밀어서 열었음.
성소는 중앙으로 뾰족하게 모이는 불규칙한 구조의 높은 천장과 중간중간 설치된 발광석과 횃불들로 빛나고 있었음. 언더다크의 드로우들은 거대한 석순 안쪽을 깎아 건축을 하는 것을 즐긴다고 하던데, 페이브란체 가문의 저택도 1층과 2층 구역은 인위적으로 만든 건축물이었지만 성소 구역은 석회를 깎아 만든 것 같이 불규칙적이었음.
거미줄을 본따 만든 그녀의 상징적인 문양이 새겨진 태피스트리가 벽에 걸려있었음. 그 아래에는 롤쓰가 거미로 현신한 모습인 조각상이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었고, 조각상 바로 앞에 마치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듯이 발더란의 거인살해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음. 그러나 타브는 바로 무기를 가지러 갈 수가 없었음. 거인살해자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페이브란체 사제가 보였기 때문이었음. 타브는 그녀를 보고 발소리를 내지않으려 했지만 뒤따라 온 딥노움의 발목에 달린 사슬이 시끄러운 소음을 냈기때문에 소용없는 일이었음.
사제의 몸이 움찔 떨리더니 그녀의 몸이 천천히 일어섰음. 뒤돌아선 페이브란체 사제는 머리칼을 단정히 묶어 올리고 있었고, 튜닉만 걸치고 있던 어제와는 달리 몸선에 딱 맞는 클레릭 갑옷을 장비하고 있었음. 갑옷은 지옥의 흑철이 여러겹 덧대있었는데 허리를 덮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천과 어우러져 날카로우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고있었음.
타브는 그녀와 마주친이상 전투를 피할 수 없음을 알았음. 페이브란체가 허리춤에 장비한 메이스에 손을 올리기 전에 타브가 먼저 튀어나갔음. 하지만 그녀와의 거리가 꽤 있었기에 창을 그녀의 목으로 찔러넣었을 때, 이미 그녀는 바닥에 놔두었던 방패로 몸을 보호한 뒤였음. 방패와 맞부딪힌 창이 옆으로 빗겨가며 타브의 몸이 크게 기울었음. 타브는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지만 뒤이어 올라오는 메이스까지 피할 수는 없었음.
"타브!!!"
아스타리온의 찢어지는 것 같은 외침이 들렸음. 시야가 한 번 점멸하며 머리에서 큰 둔통이 느껴졌음. 우측 전두엽쪽 피부에 출혈이 생겨 오른쪽 눈가를 적셔서 타브는 눈가를 거칠게 문질러 피를 닦았음. 페이브란체는 타브에게 쉴틈을 주지않고 곧바로 광휘마법을 외우려했음. 그러나 아스타리온이 손쇠뇌로 그녀의 어깨를 맞춰 저지했음. 정작 소음을 낸 당사자인 딥노움은 문가에 숨어서 떨고있었음. 아스타리온은 역시 쓸모없는 딥노움에게 친절을 베푸는게 아니었다고 혀를 찼음.
어깨에 쇠뇌를 맞은 페이브란체의 몸이 휘청이자 그 기회를 놓치지않고 타브는 조각상 앞에 놓여있는 거인살해자를 집어들으려고 했음. 하지만 페이브란체 사제가 휘두른 방패에 맞아 타브는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음. 그녀는 어깨에 있는 쇠뇌를 대충 부러뜨린 뒤 타브를 밟아 일어서지 못하게 했음. 분노에 차 꽉 다문 그녀의 입가 근육이 불룩 솟았고 눈에는 살기가 흉흉하게 돌았음.
"벌레같은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뱀파이어의 노예 주제에 예뻐해줬더니 도가 지나치는구나."
페이브란체의 눈길이 입구에 서있는 아스타리온에게 닿았음. 그녀의 입술이 한쪽으로 삐뚜름하게 찢어 올라갔음.
"네가 이 노예의 주인이냐? 감히 롤쓰님의 성소에서 소란을 일으킨걸 후회하게 해주지. 네 눈앞에서 노예의 몸을 찢어발기고 태워주마."
"누구 맘대로 내 달링을 찢고 태운다는건지... 나조차도 소중해서 상처 하나없이 다루는데 네가 감히 내 보물에 스크래치를 내놨잖아. 나야말로 내 것에 손댄 것을 후회하게 해줄게."
페이브란체의 살기가 느껴지는 말에도 아스타리온은 굴하지않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려다봤음. 분노한 페이브란체가 엎어진 타브의 머리를 다시 가격하려고 메이스를 들어올리자 아스타리온이 박쥐 수십마리를 소환했음. 박쥐들은 그녀가 내려치는 메이스를 대신 몸으로 막아내고 그녀의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고 시야를 막았음. 페이브란체 사제가 메이스와 방패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거슬리는 박쥐들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겨우 몇 마리의 박쥐만 해치울 수 있을 뿐이었음. 그사이 타브가 몸을 일으켜 거인 살해자를 집어들었음. 손에서 놓은지 겨우 며칠이 지났을뿐인데 굉장히 오랜만에 검자루를 잡는 것 같았음. 타브는 손잡이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횡으로 크게 휘둘렀음. 페이브란체가 반사적으로 방패로 막아서 상처를 내는 데는 실패했으나 대신 그녀의 손에서 방패를 떨어뜨리는 것은 성공했음.
타브가 다시 자세를 고쳐잡고 검을 들어올렸지만 페이브란체가 주문을 외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음. 그녀는 타브를 향해 광휘마법을 시전했음. 타브의 몸체가 광휘에 휩싸이며 불타올랐음. 몸 내부에서부터 차오르며 언데드인 타브의 근육과 피까지 태우는 광휘때문에 타브는 비명을 질렀음. 너무 큰 고통에 눈물이 주륵 흐를정도였음.
타브가 타오르는 빛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 페이브란체 사제가 다시 메이스를 휘둘렀음. 하지만 타브에게 정신이 팔린사이 어둠을 타고 다가온 아스타리온이 타브와 사제의 사이를 막아섰음. 갑작스레 나타난 아스타리온의 검이 페이브란체의 몸체를 깊게 베고 지나가자 피가 튀었음.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자 페이브란체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지고 이마에 힘줄이 솟았음.
"꼴에 주인이라고 노예를 감싸는 것이냐?"
"난 내 물건에 손대는 거 안좋아하거든."
아스타리온이 피가 묻은 칼을 앞뒤로 흔들며 비아냥거렸음. 그사이 광휘가 사그러든 타브는 온몸이 화상과 그을음으로 엉망진창이었음. 몸은 곧 쓰러질 것처럼 살짝 휘청거렸음. 그러나 타브는 굳건한 정신력을 발휘해 발을 지면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검자루를 부러뜨릴 것처럼 다잡았음. 성대에 피가 끓는 소리가 났지만 굴하지않고 타브가 소리질렀음.
"난 물건이나 노예가 아니거든!! 이 오만한 드로우랑 뱀파이어 자식들아!!!"
크게 휘둘러진 거인학살자의 검날이 페이브란체의 목에 꽂혔음. 잘라낼 생각으로 휘두른 것이었지만 화상을 입은 채여서 그런지 힘이 잘 실리지않아 검날이 목의 1/3쯤 박히는데서 그쳤음. 타브가 다시 검을 빼내자 페이브란체가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음.
"커헉..."
그녀의 목에서 나온 피가 금새 바닥에 고였음. 페이브란체는 피를 막기위해 손으로 목을 강하게 누르고 있었지만 울컥거리면서 분출하는 것을 막을수는 없었음. 타브는 쓰러진 그녀의 앞에 숨을 고르며 검을 지팡이처럼 잡고 지지대 삼아 섰음. 온몸이 화상으로 따끔거렸고 목에서는 피맛이 났으며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음.
곧 다리에 힘이 풀린 타브가 쓰러질 것처럼 비틀댔음. 가까이 다가온 아스타리온이 그런 타브의 허리를 단단히 잡아채어 지탱했음. 타브는 까끌하고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짧게 답했음. 아스타리온은 기분같아서는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타브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그의 몸이 성한 곳이 없었기에 참기로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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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브 직업 바바리안하고 파이터중에 고민하다가
타브의 덤덤하면서도 할 일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모습이 광전사보다는 왠지 파이터 배틀마스터랑 잘어울려서 파이터로 직업 정함ㅎㅎ
너무 길어져서 좀 애매한 곳에서 끊었네
암튼 노잼인데 봐줘서 고마워
발더란의 거인살해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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