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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3 00:16
새벽 다섯시, 하루를 시작하기엔 꽤나 이른 시간이지만 브래들리 브래드쇼는 화장대 앞에 앉았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콧수염이 없는 제 모습이 어색한지 괜히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퍼프와 브러쉬를 꺼냈다. 꽤 익숙한 손놀림으로 한 시간여만에 준비를 마친 브래들리는 거울 속 제 모습을 이리저리 점검한다. 창백한 핏기하나 없는 피부와 거뭇거뭇한 눈밑, 하얗게 일어난 입가. 누가봐도 시체같은 몰골이었다. 거기에 가장 공들여 준비한 손목의 물린 상처와 검은 손톱까지. 오늘도 출근하기에 완벽한 모습이었다.
몇 년전 좀비 사태가 발발한 이후로 해군 파일럿이었던 브래들리 브래드쇼는 백수가 되었다. 용케 좀비가 되지 않고 버텼지만 점점 숫자에 밀렸다. 동료들 몇은 행방불명이 되고, 몇몇은 좀비가 되었다. 괴로운 날들이었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기다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어쩌면 목을 매달고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들은 별안간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은 많았고 그들 중 하나가 좀비를 원래대로 돌리는 약을 발명했다. 원래대로라는 말엔 어폐가 있다. 육신은 원상태로 돌리지 못했으니. 인간의 기억을 되찾았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자아를 찾은 좀비들로 인해 혼란스러움은 일찍이 사그라들었으나 문제는 그 수였다. 인간이 다시 서기엔 좀비가 너무나도 많았다. 힘과 권력을 가진 이들도 좀비였으니 그야말로 좀비상위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기저기 좀비법이 개정되고 브래들리 브래드쇼 또한 이 개정법으로 직위 해제가 되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좀비를 죽인 죄를 묻진 않겠으나 결국 사람(좀비)을 죽인 살인자였으므로 더 이상 군대에 있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악착같이 살아남은 결말이 제대라니, 항의라도 하고 싶었으나 퇴직금이라도 챙기고 싶으면 그만하라는 상관의 명령에 결국 복종하고 말았다. 연금도 날아가고, 얼마 되지도 않는 퇴직금에 원래 가지고 있던 돈은 좀비사태로 은행이 망해 찾지도 못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종말이 아닐까?
쉬는 날이 몇 주, 몇 달이 되어가면서 브래들리는 초조해졌다. 금세 어떤 일이라도 할 줄 알았던 그는 서류에서 떨어졌다. 그야말로 광탈이었다. 나이 때문인가? 군인이라서? 나이를 속여도, 이력을 속여도 돌아오는 결과는 똑같았다. 이쯤되자 이유라도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적였다.
[좀비가 아니면 취직도 못하나요?]
브래들리의 눈을 사로잡은 문장이었다. 비슷한 글을 검색하자 계속해서 ‘인간’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저 내일 좀비되러 갑니다.]
[좀비 되고 싶습니다. 선제시 해주세요.]
좀비가 되는 건 불법이었지만 인간은 아예 면접도 보질 못했으니 여기저기 좀비가 되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브래들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좀비가 되어야 할까?
[좀비화장법으로 사랑하는 좀비의 마음을 사로잡아보세요.인간ver]
브래들리가 광고를 본 건 우연이었다.
커다란 손이었지만 손재주는 뛰어난 편이었다. 어릴 땐 그 손으로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브래들리는 인터넷으로 화장품을 쓸어담은 뒤 하나하나 익혔다. 그런데 아무래도 콧수염이 있으니 영 맛이 살지 않았다. 죽은 시체에게 콧수염이라니, 눈이라도 뒤집지 않는 이상 절대로 좀비처럼 보이지 않았다. 브래들리는 눈물을 머금고 콧수염을 밀었다. 그래, 어떻게 살아남은 인생인데 콧수염이 대수인가? 그렇게 브래들리는 좀비로 살아남기를 택했다.
“정치 외교학과라고요?”
“네에에...”
면접에서 브래들리는 침을 흘리며 혼신의 연기를 다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핮격 문자를 받은 브래들리는 1년째 좀비로서의 생활을 충실하게 보내고 있었다.
“조흐은 아치ㅁ, 브래드쇼오”
이른 아침, 택시에서 내린 브래들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느리게 걸어오는 팀을 만났다. 좀비인생 5년차에 접어 든 그는 턱에 구멍이 난데다 치아 몇 개가 없어 말이 조금 새고 느리지만 좋은 친구였다.
“좋은 아침. 7-1?”
“너허는?”
“난 6-1”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은 방부제룸이다. 아무래도 좀비의 특성상 몸이 썩기때문에 특수 처리를 하는 방부제룸은 매일 들려야 했다. 방부제룸을 나와 자리로 돌아가면 아침마다 하는 회의에 참석해야 했는데, 팀장인 제레미는 턱의 반이 날아간 탓에 항상 타이핑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오늘 회장님 아드님이 저희 회사로 발령 날 예정입니다
“... 보통은 숨기고 오지 않아?”
“그렇지. 그런데 인간이라던데?”
“인간?”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하다 제레미가 책상을 쿵쿵 내리쳤다.
-조용하세요!
겉으로야 인간과 좀비의 차별이 없다지만 직접적인 차별을 겪어본 바, 회장 아들이 인간이라고 하니 다들 불편해하는게 눈에 보였다. 거기에 브래들리는 괜히 가슴이 따끔거려 가만히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장 아들이라는 자가 등장했고, 인간은 불편하다고 외치던 이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마냥 인간이 어쩌고 하기엔 지나치게 잘 생긴 탓이었다. 그리고 브래들리는 서둘러 고개를 내렸다. 제이크 세러신? 그의 앙숙이자 영원한 행맨인 제이크 세러신이었다. 작전 중에 행방불명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소문일 뿐이었나보다. 집이 잘 산다던건 진짜였고.
“저 때문에 불편한 건 아니시죠?”
“아닙니다.”
“그럼 다행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이크 세러신입니다.”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흩어질 때 브래들리는 더 빠르게 움직였다. 들킬 때 들키더라도 최대한 늦게 들키는 편이-
“잠깐 저 좀 볼까요, 미스터 브래드쇼?”
브랙들리가 눈동자를 천천히 굴렸다. 제이크 세러신은 언제나와 똑같이 재수없는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소파에 앉은 제이크와 달리 브래들리는 불편하게 서 있었다. 들킨건 아닌지 머리가 너무 복잡 해 앉을 수도 없었다.
“불편할텐데, 편하게 앉아.”
어쩔 수 없이 착석한 브래들리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게 느껴졌다.
”설마 여기서 널 보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나도.“
”언제부터 좀비가 된 거야?“
”... 1년 정도?“
”1년?“
브래들리는 손목을 덜렁 들어 보였다. 제이크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러더니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너...”
브래들리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좀비 아니지?”
“무슨.. 말이야.”
“루스터, 좀비들을 속일 순 있어도 난 못속여.”
“......”
“아니면 병원 같이 가서 좀비 진단서 확인해볼까?“
”좀비가 아니면 취직을 못하는데 어떡해?“
”그래서 이렇게 감쪽같이 좀비 행세를 하셨다?“
”젠장...“
브래들리는 담배가 말렸다. 이렇게 들킬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정말 좀비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도움이 되질 않는다.
”자를거야?“
”꼭 그런 건 아니고.“
”아니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제이크가 상큼하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불길했다.
제이크가 오라던 약속 장소로 향한 브래들리는 약간 한숨을 내쉬었다. 좀비 세계에서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시체 레스토랑은 사람의 장기 모양으로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항간엔 실제 신체가 아니냐는 얘기도 돌아다녔지만 어디까지나 모양만 흉내냈을 뿐 진짜 사람 장기는 아니었다.
“여기로 불러낸 이유가 뭐야?”
“당연히 나와야지. 잊었나본데 여기서 갑은 나고 을은 너야 브래드쇼.“
네네, 어련하실까요. 브래들리가 자리에 앉자 제이크가 미리 주문 해두었던 뇌정식 코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게 먹고 싶어?“
”왜, 징그러워? 이런 것까진 좀비 흉내 내기 힘들어?“
”야.“
”농담이야. 다른 좀비나 사람들이 보면 나 물려고 하는 줄 알걸? 너 그러다 잡혀가. 그럼 큰 일이잖아?“
브래들리는 한숨을 쉬며 물을 들이켰다. 어찌됐든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세계였다. 좀비가 사람을 물려고 하거나 물면 살인죄가 적용된다. 그것도 문제였지만 잡혀가면 사기죄까지 물을지도 모른다. 화는 나지만 참아야 했다.
”분장 하고 있어도 여전하네.“
”시끄르으...븝으나 츠믁어“
모양은 징그러웠지만 맛은 괜찮았다. 좀비 모습을 하고 장기를 먹는 게 마치 진짜 좀비가 된 것 같아 기분이 그랬지만 배는 채워야했다.
”나 결혼 해.“
”뭐?“
”좀비랑.“
”축하한다?“
”축하 할 일이냐? 난 시체 취향은 아니야.“
”말이 너무 심하잖아.“
”그럼 너 좀비랑 섹..“
브래들리가 제이크의 정강이를 강하게 걷어찼다.
”조용히 좀 해. 미쳤어?“
”그렇다고 정강이를 까? 이럴 때만 빠르다니까.“
”시끄럽고, 그래서 본론이 뭐야?“
”내 애인 흉내 좀 내줘.“
”뭐?“
”그냥은 씨알도 안 먹힐테니까.“
”내가 거절하면?“
”거절 못해.“
”뭐?“
제이크가 자리에서 일어 나 허리를 숙였다. 버석한 입술에 따뜻한 체온이 닿았다 떨어지고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지기 시작했다. 브래들리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제이크가 마치 그를 보호하듯이 자켓으로 그를 가렸다. 그제서야 브래들리는 자신이 제이크 세러신이 파놓은 함정에 걸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욕이 한움큼 튀어 나오려 했지만 일단은 자리를 피해야했다.
다음 날 가십지는 물론이고 주요 언론에까지 제이크 세러신과 브래들리 브래드쇼의 얼굴이 도배됐다.
[세러신가의 안주인은 좀비?!]
[인간과 좀비, 세기의 로맨스]
[제이크 세러신은 언제부터 좀비를 만났나]
브래들리는 차라리 몇 년 전, 깔끔하게 죽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루
몇 년전 좀비 사태가 발발한 이후로 해군 파일럿이었던 브래들리 브래드쇼는 백수가 되었다. 용케 좀비가 되지 않고 버텼지만 점점 숫자에 밀렸다. 동료들 몇은 행방불명이 되고, 몇몇은 좀비가 되었다. 괴로운 날들이었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기다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어쩌면 목을 매달고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들은 별안간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은 많았고 그들 중 하나가 좀비를 원래대로 돌리는 약을 발명했다. 원래대로라는 말엔 어폐가 있다. 육신은 원상태로 돌리지 못했으니. 인간의 기억을 되찾았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자아를 찾은 좀비들로 인해 혼란스러움은 일찍이 사그라들었으나 문제는 그 수였다. 인간이 다시 서기엔 좀비가 너무나도 많았다. 힘과 권력을 가진 이들도 좀비였으니 그야말로 좀비상위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기저기 좀비법이 개정되고 브래들리 브래드쇼 또한 이 개정법으로 직위 해제가 되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좀비를 죽인 죄를 묻진 않겠으나 결국 사람(좀비)을 죽인 살인자였으므로 더 이상 군대에 있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악착같이 살아남은 결말이 제대라니, 항의라도 하고 싶었으나 퇴직금이라도 챙기고 싶으면 그만하라는 상관의 명령에 결국 복종하고 말았다. 연금도 날아가고, 얼마 되지도 않는 퇴직금에 원래 가지고 있던 돈은 좀비사태로 은행이 망해 찾지도 못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종말이 아닐까?
쉬는 날이 몇 주, 몇 달이 되어가면서 브래들리는 초조해졌다. 금세 어떤 일이라도 할 줄 알았던 그는 서류에서 떨어졌다. 그야말로 광탈이었다. 나이 때문인가? 군인이라서? 나이를 속여도, 이력을 속여도 돌아오는 결과는 똑같았다. 이쯤되자 이유라도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적였다.
[좀비가 아니면 취직도 못하나요?]
브래들리의 눈을 사로잡은 문장이었다. 비슷한 글을 검색하자 계속해서 ‘인간’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저 내일 좀비되러 갑니다.]
[좀비 되고 싶습니다. 선제시 해주세요.]
좀비가 되는 건 불법이었지만 인간은 아예 면접도 보질 못했으니 여기저기 좀비가 되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브래들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좀비가 되어야 할까?
[좀비화장법으로 사랑하는 좀비의 마음을 사로잡아보세요.인간ver]
브래들리가 광고를 본 건 우연이었다.
커다란 손이었지만 손재주는 뛰어난 편이었다. 어릴 땐 그 손으로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브래들리는 인터넷으로 화장품을 쓸어담은 뒤 하나하나 익혔다. 그런데 아무래도 콧수염이 있으니 영 맛이 살지 않았다. 죽은 시체에게 콧수염이라니, 눈이라도 뒤집지 않는 이상 절대로 좀비처럼 보이지 않았다. 브래들리는 눈물을 머금고 콧수염을 밀었다. 그래, 어떻게 살아남은 인생인데 콧수염이 대수인가? 그렇게 브래들리는 좀비로 살아남기를 택했다.
“정치 외교학과라고요?”
“네에에...”
면접에서 브래들리는 침을 흘리며 혼신의 연기를 다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핮격 문자를 받은 브래들리는 1년째 좀비로서의 생활을 충실하게 보내고 있었다.
“조흐은 아치ㅁ, 브래드쇼오”
이른 아침, 택시에서 내린 브래들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느리게 걸어오는 팀을 만났다. 좀비인생 5년차에 접어 든 그는 턱에 구멍이 난데다 치아 몇 개가 없어 말이 조금 새고 느리지만 좋은 친구였다.
“좋은 아침. 7-1?”
“너허는?”
“난 6-1”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은 방부제룸이다. 아무래도 좀비의 특성상 몸이 썩기때문에 특수 처리를 하는 방부제룸은 매일 들려야 했다. 방부제룸을 나와 자리로 돌아가면 아침마다 하는 회의에 참석해야 했는데, 팀장인 제레미는 턱의 반이 날아간 탓에 항상 타이핑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오늘 회장님 아드님이 저희 회사로 발령 날 예정입니다
“... 보통은 숨기고 오지 않아?”
“그렇지. 그런데 인간이라던데?”
“인간?”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하다 제레미가 책상을 쿵쿵 내리쳤다.
-조용하세요!
겉으로야 인간과 좀비의 차별이 없다지만 직접적인 차별을 겪어본 바, 회장 아들이 인간이라고 하니 다들 불편해하는게 눈에 보였다. 거기에 브래들리는 괜히 가슴이 따끔거려 가만히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장 아들이라는 자가 등장했고, 인간은 불편하다고 외치던 이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마냥 인간이 어쩌고 하기엔 지나치게 잘 생긴 탓이었다. 그리고 브래들리는 서둘러 고개를 내렸다. 제이크 세러신? 그의 앙숙이자 영원한 행맨인 제이크 세러신이었다. 작전 중에 행방불명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소문일 뿐이었나보다. 집이 잘 산다던건 진짜였고.
“저 때문에 불편한 건 아니시죠?”
“아닙니다.”
“그럼 다행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이크 세러신입니다.”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흩어질 때 브래들리는 더 빠르게 움직였다. 들킬 때 들키더라도 최대한 늦게 들키는 편이-
“잠깐 저 좀 볼까요, 미스터 브래드쇼?”
브랙들리가 눈동자를 천천히 굴렸다. 제이크 세러신은 언제나와 똑같이 재수없는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소파에 앉은 제이크와 달리 브래들리는 불편하게 서 있었다. 들킨건 아닌지 머리가 너무 복잡 해 앉을 수도 없었다.
“불편할텐데, 편하게 앉아.”
어쩔 수 없이 착석한 브래들리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게 느껴졌다.
”설마 여기서 널 보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나도.“
”언제부터 좀비가 된 거야?“
”... 1년 정도?“
”1년?“
브래들리는 손목을 덜렁 들어 보였다. 제이크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러더니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너...”
브래들리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좀비 아니지?”
“무슨.. 말이야.”
“루스터, 좀비들을 속일 순 있어도 난 못속여.”
“......”
“아니면 병원 같이 가서 좀비 진단서 확인해볼까?“
”좀비가 아니면 취직을 못하는데 어떡해?“
”그래서 이렇게 감쪽같이 좀비 행세를 하셨다?“
”젠장...“
브래들리는 담배가 말렸다. 이렇게 들킬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정말 좀비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도움이 되질 않는다.
”자를거야?“
”꼭 그런 건 아니고.“
”아니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제이크가 상큼하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불길했다.
제이크가 오라던 약속 장소로 향한 브래들리는 약간 한숨을 내쉬었다. 좀비 세계에서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시체 레스토랑은 사람의 장기 모양으로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항간엔 실제 신체가 아니냐는 얘기도 돌아다녔지만 어디까지나 모양만 흉내냈을 뿐 진짜 사람 장기는 아니었다.
“여기로 불러낸 이유가 뭐야?”
“당연히 나와야지. 잊었나본데 여기서 갑은 나고 을은 너야 브래드쇼.“
네네, 어련하실까요. 브래들리가 자리에 앉자 제이크가 미리 주문 해두었던 뇌정식 코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게 먹고 싶어?“
”왜, 징그러워? 이런 것까진 좀비 흉내 내기 힘들어?“
”야.“
”농담이야. 다른 좀비나 사람들이 보면 나 물려고 하는 줄 알걸? 너 그러다 잡혀가. 그럼 큰 일이잖아?“
브래들리는 한숨을 쉬며 물을 들이켰다. 어찌됐든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세계였다. 좀비가 사람을 물려고 하거나 물면 살인죄가 적용된다. 그것도 문제였지만 잡혀가면 사기죄까지 물을지도 모른다. 화는 나지만 참아야 했다.
”분장 하고 있어도 여전하네.“
”시끄르으...븝으나 츠믁어“
모양은 징그러웠지만 맛은 괜찮았다. 좀비 모습을 하고 장기를 먹는 게 마치 진짜 좀비가 된 것 같아 기분이 그랬지만 배는 채워야했다.
”나 결혼 해.“
”뭐?“
”좀비랑.“
”축하한다?“
”축하 할 일이냐? 난 시체 취향은 아니야.“
”말이 너무 심하잖아.“
”그럼 너 좀비랑 섹..“
브래들리가 제이크의 정강이를 강하게 걷어찼다.
”조용히 좀 해. 미쳤어?“
”그렇다고 정강이를 까? 이럴 때만 빠르다니까.“
”시끄럽고, 그래서 본론이 뭐야?“
”내 애인 흉내 좀 내줘.“
”뭐?“
”그냥은 씨알도 안 먹힐테니까.“
”내가 거절하면?“
”거절 못해.“
”뭐?“
제이크가 자리에서 일어 나 허리를 숙였다. 버석한 입술에 따뜻한 체온이 닿았다 떨어지고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지기 시작했다. 브래들리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제이크가 마치 그를 보호하듯이 자켓으로 그를 가렸다. 그제서야 브래들리는 자신이 제이크 세러신이 파놓은 함정에 걸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욕이 한움큼 튀어 나오려 했지만 일단은 자리를 피해야했다.
다음 날 가십지는 물론이고 주요 언론에까지 제이크 세러신과 브래들리 브래드쇼의 얼굴이 도배됐다.
[세러신가의 안주인은 좀비?!]
[인간과 좀비, 세기의 로맨스]
[제이크 세러신은 언제부터 좀비를 만났나]
브래들리는 차라리 몇 년 전, 깔끔하게 죽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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