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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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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ㅅㅊㅈㅇ ㄴㅈㅈㅇ



"제이크...?"


루스터는 핸드폰의 벨소리가 두 번 울리기도 전에 곧장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복도에 목소리가 크게 울리지 않도록 그의 이름을 작게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전화 너머에서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루스터는 불안감에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리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그리고 그때, '삐-삐삐-'하고 짧게 전자음이 울렸다. 루스터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잠시 핸드폰을 아래로 내리고, 주변의 소리를 듣기 위해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루스터의 숨소리를 제외하고 복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까이하면 핸드폰의 스피커에서 확실하게 '삐-삐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루스터는 그제야 그 소리가 핸드폰의 버튼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이크, 지금 네 핸드폰 자판 눌린 것 같은데..."


루스터가 속삭이듯이 말해보지만, 행맨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통화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은 상태로 다니다가 실수로 전화가 연결된 것일까? 어느 쪽이든 루스터는 행맨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루스터가 핸드폰을 붙잡은 채 아무리 열심히 말을 걸어 보아도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루스터의 혼잣말들이 허공에 흩뿌려지고 있을 뿐, 행맨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들리는 것은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는 전자음이었다.


삐-삐삐- 삐-삐 삐-삐-삐- 삐-삐삐-삐 삐-삐삐-


다시 한번 길게 전자음이 들려오고, 루스터는 한 박자 늦게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금 행맨이 루스터와 제대로 된 통화를 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루스터의 추측일 뿐이지만, 행맨은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숨을 죽인 채 루스터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행맨과 통화를 했을 당시, 그가 언급했었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군인이라는 점에서 방금 전의 전자음은 꽤 효율적인 암호 전달법이긴 했다. 보안으로서의 기능은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혹여나 루스터와 행맨의 통화 내역을 도청하는 인물이 존재한다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고스란히 노출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루스터는 필기구 없이 최대한 머리를 굴려가며 그것을 빠르게 암기하고 해석해야만 했다. 핸드폰의 메모장 기능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 꽤 애석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전자음이 두 어번 더 반복된 이후, 행맨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것인지 전화를 끊었다. 루스터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고 잠겨 있는 철문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행맨 역시 루스터와 같은 루트로 이곳을 지나왔다면, 그가 보낸 메시지는 문을 여는 방법의 힌트일 것이다.

어떻게 된 구조인지는 모르겠지만, 루스터는 행맨의 메시지대로 조심스럽게 문을 몇 번 두들겨 보았다. 그리고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그 잠깐의 시간도 영원한 것처럼 느껴져 루스터는 아주 조금 초조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내 '철컥'하는 소리가 들렸고 루스터는 문고리를 돌려 있는 힘껏 철문을 밀어젖혔다. 어두운 복도에 빛이 쏟아진다. 그것은 마치 검은색의 도화지에 흰색의 물감을 들이부은 것과 같은 강렬함이 있었다.




루스터는 제 몸을 감싸오는 밝은 빛에 적응하기 위해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고 숨을 들이켰다. 그곳은 대형마트의 한 층을 고스란히 옮겨온 것 같은 장소였다. 높은 천장, 조명에 반사되어 반질거리는 바닥, 끝이 보이지 않는 진열대...이 모든 것이 루스터를 놀라게 하기 위한 서프라이즈 장난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이곳의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문을 열고 드나들 수 있는 영화의 세트장처럼 말이다. 루스터는 철문을 닫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마트 안으로 들어선다. 적어도 방금 전보다 훨씬 밝은 공간에 있어서인지 불안감은 한층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루스터는 마체테를 꽉 움켜쥔 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신선한 과일, 과자, 파스타 면, 탄산음료...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제품 코너가 있는 곳으로 가 우유의 유통기한을 확인해 보면, 기간은 아직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즉, 이곳은 '관리되고 있는 장소'라는 뜻이었다. 루스터는 허기를 느꼈지만,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들고 있던 우유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진열대 끝 마트의 벽면을 따라 한 바퀴 둘러본 결과, 이곳 역시 새하얀 방처럼 출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똑같이 벽이 옆으로 열리는 구조일까 싶었지만, 진열대로 막혀있어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루스터는 시리얼 코너 앞에 주저앉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행맨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일까? 긴장이 풀려서인지 루스터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울렸다. 극한의 훈련을 받아온 루스터인 만큼 일주일정도는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더라도 거뜬히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맨이 말한 '위험'에 대처를 하려면 최소한의 체력은 보존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환풍구 너머로 본 붕대를 두른 남자든 뭐든 무기가 필요할 정도라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은 틀림없었다.

루스터는 새어 나오는 한숨을 되삼키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최대한 안전해 보이는 음식을 고르기로 했다. 역시 이거일까 싶어 루스터는 통조림 코너를 천천히 훑어본다. 복숭아 통조림, 시금치 통조림, 토마토 수프 통조림...루스터는 손에 잡히는 통조림 하나를 집어 들어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온다. 겉에는 땅콩, 마카다미아, 호두등의 견과류가 그려져 있었고 루스터는 그 뚜껑을 열어 한 움큼 자기 입에 쑤셔 넣었다. 고소한 맛이 곧장 입안에 퍼지고 루스터는 느릿하게 그것을 씹어 넘겼다. 부디 최후의 만찬이 이 견과류 통조림이 되지 않기를 빌면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불호를 따질 것도 없이 전부 소중한 식량들이지만, 루스터는 견과류를 씹으며 느긋하게 쇼핑을 하듯 꼼꼼히 통조림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통조림 코너의 오른쪽 끝 부분. 벽에 붙어있는 진열대 쪽으로 루스터의 시선이 천천히 옮겨간다.

군인으로서 오랜 경험을 쌓다 보면 자연스레 길러지는 능력이 하나 있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었다. 불길한 예감의 적중 확률이 높아진다고 해야 좋을까. 루스터는 불빛이 거의 들지 않는 통조림 코너의 구석에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대로 뒤돌아 다른 코너로 가는 것이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스터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느릿하게 통조림 코너의 구석으로 걸어간다. 허리에 채워둔 마체테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고, 루스터는 손에 쥐고 있는 견과류 통조림을 옆의 진열대에 적당히 얹어두었다. 



통조림 코너의 구석에 진열되어 있던 것은 평범한 통조림 캔이었다. 겉에는 어린이용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귀여운 카툰체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금발의 소년이 눈알이 가득 들어 있는 유리병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림. 얼핏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루스터는 아멜리아가 요즘 유행하는 간식이라며 눈알 모양의 젤리를 선물했던 것을 떠올렸다. 안에 딸기잼이 들어있어 젤리를 깨물면 새빨간 잼이 흘러나오는 구조였다. 지난 할로윈에는 엄청난 인기로 물량을 구하기가 힘들어, 누군가의 집에서 눈알 젤리를 받으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SNS에 자랑하기 바빴다고 했다.

루스터의 내면에서 내용물을 확인해 보자는 외침과 열면 안 된다는 외침이 뒤섞여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평범한 '눈알 젤리'가 들어있는 캔일 뿐인데, 왜 온몸의 세포가 위험을 외치고 있는 것일까. 만약 루스터가 새하얀 방에서 눈을 뜨는 이상한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망설임 없이 통조림 캔을 열어보았을 것이다. 루스터는 털이 쭈뼛 서는 감각과 함께 떨리는 손끝으로 조심스레 통조림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딸깍, 하고 통조림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띠리링- 띠리링-


갑작스레 울리는 핸드폰의 전화 벨소리에 놀란 루스터는 손에 들고 있던 통조림을 놓치고 만다. 챙, 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통조림 캔이 바닥에 나뒹굴고 반쯤 열린 뚜껑 사이로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진득하고 투명한 액체. 그리고 바닥에 둥근 구체가 한 바퀴 데굴데굴 구르다가 멈춘다. 루스터를 올려다보고 있는 연녹색의 눈동자. 어째서인지 루스터는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저건...'


루스터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곧장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누가 봐도 젤리로 착각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다시 한번 벨소리가 울리고 루스터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넣어두었던 뒷주머니를 더듬거렸다. 그리고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른다. 이번에는 부디 행맨의 무사와 안전을 확인할 수 있어야만 했다.


"미안, 전화받았어. 제이크...너 괜찮은 거 맞지?"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으나 루스터는 행맨이 그 이변을 눈치채지 않기를 바란다. 행맨 본인도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 바쁠 텐데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루스터가 봤던 기괴한 통조림쯤은 행맨이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굴러다니는 눈알이 루스터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괜찮아...너는?"


핸드폰 너머로 약간 기운이 없는 행맨의 목소리가 들렸다. 행맨은 꽤 지쳐있는듯 했지만, 그래도 무사하다는 사실 그 자체에 루스터는 안심할 수 있었다. 루스터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바닥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고 몸을 돌려 밝은 쪽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행맨과 지금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방에서 나왔어. 그리고 네가 도와준 덕분에 문도 열었고."
"모스부호를 곧장 눈치챈 점은 기특하네...지금 어디야?"
"으음, 커다란 마트 한가운데."
"뭐 좀 먹었어?"
"견과류 통조림 조금."


역시 행맨은 철문 너머로 어떠한 공간이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루스터가 뜬금없이 '커다란 마트'라고 언급을 했음에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 말인즉슨, 행맨이 지나온 길을 루스터가 그대로 따라간다면 조만간 행맨과 조우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금 쉬고 있어. 거긴 안전할 테니까."
"응,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방보다는 괜찮은 것 같네."
"그렇다고 마음 편하게 이것저것 주워 먹지는 마. 그러다가 배탈 난다?"
"안 그래. 애도 아니고..."
"아무도 없는 마트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데도?"
"으음, 출시된 모든 프링글스의 맛을 확인해보고 싶기는 하네."
"가끔 네가 농담을 하는 건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어."


루스터는 행맨과 일상에서 주고받을 법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꽤 웃기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혼을 한 이후, 행맨은 곧장 자신의 SNS를 삭제한 뒤, 핸드폰의 전화번호를 바꾸고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행맨의 절친한 친구인 코요테조차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투덜거릴 정도였다. 루스터는 이혼한 전 남편의 사생활에 더 이상 간섭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행맨의 성격상 '이혼'을 했다는 이유로 비관적인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당시의 행맨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리고 비록 좋지 않게 헤어진 관계여도 루스터는 행맨이 쭉 행복하기를 바랐다.


"제이크, 나 지금 너에게 묻고 싶은 게 굉장히 많아."
"알아. 하지만 전부 설명할 시간이 없어."
"최소한...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정도는 알고 싶어서 그래."


그 말에 전화 너머로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루스터는 막연하게 행맨이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중인지 거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반응을 보면, 행맨은 루스터가 이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을 전혀 예상치 못한 것 같았고, 어떻게든 그를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듯했다. 다만 행맨 본인도 어떠한 위험에서 계속 도망치고 숨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아, 루스터는 행맨에게 숨기고 있는 것을 털어놓으라고 추궁할 수가 없었다.


"루스터,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널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낼 거야.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제이크, 제발.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냐. 너 지금 어디 있어?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지금은...우선 나가는 것부터 생각하자."
"제이크 세러신."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제이크!"


루스터가 목소리를 높여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전화는 매정하게 그대로 끊겨버린다. 몇 번이고 다시 행맨에게 전화를 걸어보아도 행맨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루스터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제자리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끓어오르는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행맨은 항상 그래왔다. 그는 항상 독단적이고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만 한다. 행맨은 미해군 최고의 병기가 지상에서 썩을 수는 없다며 위험한 임무도 망설이지 않고 쉽게 뛰어들곤 했다. 그는 항상 완벽해 보이기를 바랐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다. 그 뒷면이 얼마나 마모되어 있든, 남들에게 보이는 부분이 아름답게 세공되어 반짝이는 보석 같다면 그는 그걸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루스터가 보기에 그건 일종의 강박증에 가까웠다.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행맨은 계속해서 실력을 갈고닦으며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 위태로운 모습을 루스터는 곁에서 조용히 지켜봐야만 했다.

행맨과 루스터는 전투기를 타고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루스터라도 지금은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협력'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숨기는 것 없이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모아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행맨은 루스터에게 일방적으로 '통보'에 가까운 말만 하고 있었다. 루스터는 행맨 혼자 많은 부담을 지고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널 무사히 집에 돌려보낼 거야'가 아니라 '함께 나가자'는 말을 듣고 싶었다. 루스터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리고 약 한 시간이 흘렀지만, 행맨에게서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이 마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도 미리 물어보는 것이 좋았을까. 루스터는 입안이 바짝 마르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생수가 들어있는 페트병의 뚜껑을 열어 물을 마셨다. 진열대에 놓여 있던 것이라 그런지 조금 미적지근한 느낌이 들어도 갈증을 달래기에는 적절했다. 루스터는 당이 떨어져 판단력이 흐려질 것을 대비하여 자신의 주머니에 스키틀즈 한 봉지를 넣어두었다. 찝찝한 기분이 들어 통조림 코너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최대한 빨리 탈출하는 것을 전제로 짐을 더 이상 늘리지는 않기로 했다.

루스터가 주머니의 내용물을 정리하던 그때, '쿵'하고 철문이 열려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루스터는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복도에서 마트로 들어왔던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


루스터는 거의 욕설을 내뱉을 뻔했지만, 간신히 삼켜내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얼굴에 붕대를 두른 남자가 손끝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마트로 들어오고 있었다. 분명 루스터가 환풍구에서 봤던 그 남자였다. 그를 밝은 곳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루스터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남자는 루스터가 입고 있는 것과 동일한 회색 점프슈트를 입고 있었다. 다만 루스터의 점프슈트는 새것처럼 잘 다려진 깨끗한 옷이지만, 남자의 것은 낡고 피로 얼룩져 있어 원래의 원단 색보다 훨씬 어둡게 보였다.

붕대를 두른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것, 아마 환풍구의 철망이었던 것을 바닥에 내던지고 느릿하게 걷기 시작한다.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루스터는 재빨리 진열대 뒤로 몸을 숨긴 채, 허리춤에 있는 마체테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붕대를 두른 남자는 루스터가 있는 방향과 반대쪽에 있는 해산물 코너 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싱싱한 물고기들이 놓여 있는 가판대의 얼음에 자신의 손을 집어넣었다. 루스터는 아주 잠깐 그가 지혈을 하기 위해 얼음에 손을 넣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붕대를 두른 남자는 손을 휘저어 얼음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하더니 팔을 깊게 안쪽으로 뻗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달칵,하고 버튼이 눌린 소리가 루스터가 있는 곳까지 들려온다.


드르르르륵


가판대가 천천히 옆으로 밀려나고 그 밑으로 계단이 있는 통로가 보인다. 루스터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는 붕대를 두른 남자가 얼음에서 손을 빼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판대에서 생선 몇 마리가 철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고, 남자는 자신의 팔을 몇 번 문지르더니 계단을 내려가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드르르르륵'하고 가판대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고 마트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마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로는 생선 가판대 아래에 숨겨져 있던 모양이었다. 이대로 붕대를 두른 남자의 뒤를 쫓아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아니면 행맨의 연락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정답일까. 루스터는 긴장감으로 차갑게 식은 자신의 손끝을 문질렀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을 믿고 결론을 내리기로 한다. 

루스터는 항상 행맨에게 '너는 너무 느려'라는 말을 들어왔다. 횃대에서 내려올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루스터는 가끔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하는 순간이 있음을 알고 있다. 'Don't think just do.' 루스터는 짧게 숨을 들이켜고 몸을 일으켜 해산물 코너의 생선 가판대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얼음 속으로 손을 뻗어 문을 여는 장치를 찾는다. 손끝에 무언가 만져지고 루스터는 힘을 줘 그걸 눌렀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가판대가 움직이기 시작해 루스터는 손을 빼냈다. 계단 밑으로 뿌연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고 루스터는 곧장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그곳에 무엇이 있든 지금의 루스터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루스터행맨
2023.03.15 00: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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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설마 눈알 행맨 눈이고 붕대감은 남자가 행맨인건 아니겠지 ..? ㅠㅠㅠㅠ
[Code: 716d]
2023.03.15 00:57
ㅇㅇ
모바일
아 행맨은 마트 근처 아닌거 같으니까 다행히 아니겠구나 무섭닼ㅋㅋㅋㅋ ㅠㅠㅠㅠ 둘다 무사하게 해줘 센세
[Code: 716d]
2023.03.15 01: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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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이 생각하면서 내려왔는데 제발 아니기를 ㅠㅠㅠㅠㅠ꼭 내보내주겠다는 말이 불길하게 들리네 같이 나가자도 아니고 왜 본인은 포함을 안 히켜ㅠㅠㅠㅠ
[Code: 2255]
2023.03.15 01: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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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 여기서 돈띵트저스트두를 한다고...? 스릴 장난 아니다 무섭고 재밌어ㅓ
[Code: b2c2]
2023.03.15 01: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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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맨은 이미 못 나가는 몸이 됐나..??? 이거 진짜 재밌닽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숨도 안쉬고읽음 ㄹㅇ ㅠㅠ
[Code: 0e3f]
2023.03.15 01: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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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영화같아 읽는 내내 소름끼치고 무섭고..루스터 통조림 코너 구석에서 열까말까 하는거 진짜 긴장감 대박..음향효과가 환청으로 느껴질 정도 센세 천재야ㅠㅠ 행맨은 어떻게 잘 아는걸까 저렇게 알기위해 무슨 일을 겪었을까 저 남자는 누구고 통조림의 눈알은 복선일까봐 무섭고..진짜 너무 궁금하다
[Code: cf99]
2023.03.15 01: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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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ㅜㅠㅜ행맨은 무사한건가ㅠㅜ너무 무섭고요ㅠㅠㅠ저남자는 누구지...
[Code: 6b66]
2023.03.15 01: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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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서워 무서워 ㅠㅠㅠㅠㅠㅠㅠ 잠 다 잤다 미쳤다 ㅠㅠㅠㅠㅠㅠ 혹시 행맨이랑 루스터는 백룸같은 거에 갇힌건가? 근데 또 '관리되고 있는' 이란 걸 보면 누가 일부러 만들어놓고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같기도 하고....복도의 붕대남은 야생의 미치광이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출입구도 애매한 곳을 단번에 찾아 다니고....아는듯 모를 공간이랑 알려줄 듯 마는 행맨, 오로지 직감에 의지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밌는데.....붕새끼 너무 무서워욧.....센세 다시 올 때까지 잠못자 .....ㄷㄷㄷㄷㄷ
[Code: 04e7]
2023.03.15 01: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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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불길하게 시공간이 뒤틀려 막 여러명의 루스터와 여러명의 행맨이 존재하고 수없는 탈출 시도 중 저건 무언가 실패했을 때의 행맨의 눈이 아닌가 걱정도 되고 너무 두근두근한다 센세 어나더만 기다려ㅠㅠ
[Code: 4847]
2023.03.15 02: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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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눈 뭐야......행맨 아니겠지ㅠㅠ 진짜 긴장감 미쳤어 센세
너무 무서워...진짜 설마 행맨 눈은 아니겠지ㅠㅠㅠ 제발 루스터렁 같이 나가자 나가서 둘이 행복해야지ㅠㅠㅠ
[Code: e7c5]
2023.03.15 04: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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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왔다!!!!!
[Code: 8bfc]
2023.03.15 04: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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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붕키 무서워 안아줭...
진짜 넘모 잼따...
[Code: 8bfc]
2023.03.15 06: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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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ㅠㅠㅠㅠ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날지 짐작도 안 가서 더 무서움 엉엉ㅠㅠㅋㅋㅋㅋㅋㅋ 흐어어어 무서워ㅠㅠㅠㅠㅠㅠㅠ 센세 루행 꼬옥 건강하게 같이 나갈 수 있겠지요ㅠㅠㅠㅠㅠㅠㅠ
[Code: 59f9]
2023.03.15 08: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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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남이 행맨이면 어떡해ㅠㅠㅠㅠㅠㅠㅜ
[Code: b2c7]
2023.03.15 09: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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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흥미진진하다
[Code: 9611]
2023.03.15 09:48
ㅇㅇ
모바일
안돼 센세 제발 행맨 멀쩡히 살려줘 ㅠㅠㅠㅠㅠ
[Code: 2f58]
2023.03.15 12:23
ㅇㅇ
연녹색 눈알 누구 눈알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03a6]
2023.03.15 14:36
ㅇㅇ
모바일
아아악 눈알 안돼애애액 ㅠㅠㅠㅠㅠㅠ
[Code: 2920]
2023.03.15 15:24
ㅇㅇ
모바일
행맨 어딨는거고 왜 갇힌지 이유를 아는건지 왜 그렇게 말하는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489]
2023.03.15 16:07
ㅇㅇ
스토리 연출 존나 미쳤다ㅠㅜㅠ 눈앞에 영상이 그려져 센세ㅠㅠ 캔에서 초록색 눈알 나왔을때랑 그때맞춰서 행맨에게 전화걸려오는 타이밍, 널 꼭 내보내주겠다는 다짐... 모든 타이밍도 예술이다ㅠㅠㅠ
[Code: 7f20]
2023.03.16 00: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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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재밋고무섭고궁금하고쫄려센세......... 하 숨멎고 읽었네...
[Code: 6b67]
2023.03.16 15: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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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쫄려서 살살 읽으면서 내려왔어요 센세ㅠㅠㅠㅠㅠㅠ왜하필 병안에 들어있던 눈이 연녹색 눈이냐고ㅠㅠㅠㅠ붕대남은 왜하필 얼굴에 붕대하고 있고 루스터랑 같은 옷인데 낡은 옷 입고 있냐고ㅠㅠㅠㅠ제이크 본인은 나갈 생각 없는것처럼 아님 못나가는 사람처럼 너는 나가게 해준다는게 뭔데ㅠㅠㅠㅠ윗붕들처럼 혹시 붕대남 행맨일까 걱정하면서 내려옴ㅠㅠㅠㅠ모스부호 KNOCK이구나 행맨은 진짜 괜찮은건가ㅠㅠㅠ영화보는거 같아요 센세 존잼
[Code: 608a]
2023.03.17 02: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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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무서운데 존잼 ㅋㅋㅋㅋㅋ ㅠㅠ
[Code: b2a9]
2023.03.17 21: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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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다른 색도 아니고 연녹색 ㅠㅠㅠ 진짜 행맨 눈 만은 아니어야 한다
[Code: 174a]
2023.03.24 00:18
ㅇㅇ
눈알 뭐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무서워ㅠㅠㅠㅠㅠ왜 하필 연녹색이야ㅠㅠㅠㅠㅠㅠ 센세 제발 제이크 살려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봉대로 감은 남자는 누구지 아 진짜 소름이 쫙 돋았어 센세 영화보는 것처럼 다 눈에 그려져 이거 뭐야ㅠㅠㅠㅠㅠ
[Code: 3042]
2023.03.25 03: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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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센세ㅠㅜㅠ너무너무재밌어요ㅠㅜㅜㅠ
[Code: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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