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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4 01:06
00.
일요일 오후는 조용하다. 허니가 할 것은 많지 않다. 그저 내려야 할, 하나의 결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결정이 허니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마지막 동아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언제나처럼 머릿속으로 셈을 해 본다. 얻을 것, 잃을 것. 사실 답은 간단하다. 하지만 하나의 감정만이 그를 주저하게 만든다. 무슨 감정인지 명확하게 그는 정의내리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묵혀져 있던.....결국 최후의 고민 후 그는 문자를 보낸다.
[잘 부탁드립니다.]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이 막혀와 명치께를 두드린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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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브래들리 쿠퍼입니다."
"안녕하세요, 허니 비 입니다. 영화 재미있게 잘 봤어요."
"그래요? 그럼 초반에 제가 거지로 나오는 것도 보셨겠네요."
"그래도 잘생기셨던걸요."
"하하..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네요."
"솔직히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죠?"
촬영장 분위기는 훈훈하다. 모든 게 순조롭다. 두 배우들이 뼈대에 불과한 대본에 자유로이 살을 붙이고 형태를 능숙하게 만들어나간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그것은 마치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설렘을 가지고 서로를 탐색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흐름같다. 처음 만난 사이에도 불구하고 유머코드가 비슷한지 농담의 짓궂음이 맞물려간다. 그 짓궂음으로 인해 대화는 예의와 플러팅 사이를 오간다. 감독은 흡족하게 카메라를 바라본다.
컷!
그리고 흐름이 끊겼다.
흐름이 끊긴 후에 촬영장은 더 분주하다. 편집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의논과, 재촬영해야할지에 대한 여부, 다음 씬의 추가적 구상 등으로 스텝들은 분주하다. 스텝들에게 인사를 건넨 후 , 다음 씬에 대한 안내를 받고, 지시에 따라 마주앉은 두 배우 사이의 대화는 없다.
그제서야 대화로 가리던 아까의 긴장감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건 마치 둘 사이에 있었어야 할 대화들이 만든 팽팽한 침묵같다. 아니면 그가 허니에게 주는 벌일 수도....허니는 익숙해서 낯선 그 얼굴을 다시 보고싶은 충동을 내리누른다.
그를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출연을 결정했는지, 상대가 자신인 걸 알고 결정한 건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 없다.
허니는 집에서 연습한 대로 수십번을 되뇌인다.
허니는 그저 이 기회가 정말, 절실할 뿐이다.
큐!!!
"자, 가실까요?"
그 눈웃음 하나에, 내미는 팔의 온기에 모든 게 무너지려는 걸 간신히 다잡는다.
02.
"보고...싶었어요."
"네?"
"보고 싶었다구요. 허니씨 연기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제 상대가 누구실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
바보같은 공백이 생길세라 잽싸게 다음 멘트를 친다. 허니의 컨셉은 쾌활하고, 짓궂고, 당당하고...사랑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보게 된 상대가 마음에 드시나요?"
"...매우요."
허니는 저 눈빛을 아주 잘 안다. 사랑에 빠진 눈빛. 시리게 푸른 눈동자가 따스함을 띠고, 눈이 가늘게 접히는 그의 그 눈빛에 가슴이 저리다.
브래들리가 무릎을 꿇는다.
허니는 이 순간도 안다. 답지않게 그가 긴장한 듯 헛숨을 들이키고, 언제 준비한건지 허니가 제일 좋아하는 노란 프리지아 꽃다발을 내미는 그의 모습. 그 때와 오차 하나 없이 똑같다. 허니는 얼핏 시계를 본다. 오후 세 시 오십 분. 시간마저 정확하다. 어디로 들어가는지 몰랐던 레스토랑의 메뉴를 그제야 알아챈다. 허니가 한때 자주 즐겨 먹었던 완두콩을 곁들인 스테이크. 허니는 다음 그가 칠 대사를 안다. 냉수를 뒤집어쓴 것 같다.
"정식 프러포즈는 나중에 제대로 할 테지만...저와 결혼해주시겠어요, 미스 비?"
허니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환하게 웃는다. 정말 환하게. 노란 프리지아보다 더 환하게.
컷!!!
소리와 함께 내동댕이쳐진 기분으로 허니는 깨닫는다. 브래들리가 왜 출연을 결정했는지. 이건 허니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다. 허니가 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둘의 순간들, 둘이 함께 가질 수 있었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다시금 되새겨 주는 것. 머리는 차가운데 심장은 타들어갈듯 아프다.
03.브래들리의 이야기.
"브래드, 정말 할 거야? 안 해도 돼. 사실 안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한다니까, 형."
퍼블리시스트에게 브래들리는 단호하게 말한다.
"형, 근데 상대 출연자분도 내가 가상 남편일 걸 알아?"
"너는 그쪽에서 모셔가려고 안달하고 있어서 네가 이상형이라고 말했었던 상대 출연자를 미리 알려준 거긴 한데...하여튼, 그 옛날 영상은 언제 또 구했대, 아니 하여간..그 쪽은 네가 누군지 모를 걸. 서프라이즈? 뭐 그런 걸로 알게 한대."
"아니...알려주라고 해."
"뭐?"
"그리고 대체적 일정은 내가 짠다고. 늘 고마워, 형."
ㅂㄱㅅㄷ식으로 한 줄 정도 올린 적 있음
일요일 오후는 조용하다. 허니가 할 것은 많지 않다. 그저 내려야 할, 하나의 결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결정이 허니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마지막 동아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언제나처럼 머릿속으로 셈을 해 본다. 얻을 것, 잃을 것. 사실 답은 간단하다. 하지만 하나의 감정만이 그를 주저하게 만든다. 무슨 감정인지 명확하게 그는 정의내리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묵혀져 있던.....결국 최후의 고민 후 그는 문자를 보낸다.
[잘 부탁드립니다.]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이 막혀와 명치께를 두드린다.
01.


"반갑습니다, 브래들리 쿠퍼입니다."
"안녕하세요, 허니 비 입니다. 영화 재미있게 잘 봤어요."
"그래요? 그럼 초반에 제가 거지로 나오는 것도 보셨겠네요."
"그래도 잘생기셨던걸요."
"하하..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네요."
"솔직히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죠?"
촬영장 분위기는 훈훈하다. 모든 게 순조롭다. 두 배우들이 뼈대에 불과한 대본에 자유로이 살을 붙이고 형태를 능숙하게 만들어나간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그것은 마치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설렘을 가지고 서로를 탐색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흐름같다. 처음 만난 사이에도 불구하고 유머코드가 비슷한지 농담의 짓궂음이 맞물려간다. 그 짓궂음으로 인해 대화는 예의와 플러팅 사이를 오간다. 감독은 흡족하게 카메라를 바라본다.
컷!
그리고 흐름이 끊겼다.
흐름이 끊긴 후에 촬영장은 더 분주하다. 편집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의논과, 재촬영해야할지에 대한 여부, 다음 씬의 추가적 구상 등으로 스텝들은 분주하다. 스텝들에게 인사를 건넨 후 , 다음 씬에 대한 안내를 받고, 지시에 따라 마주앉은 두 배우 사이의 대화는 없다.
그제서야 대화로 가리던 아까의 긴장감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건 마치 둘 사이에 있었어야 할 대화들이 만든 팽팽한 침묵같다. 아니면 그가 허니에게 주는 벌일 수도....허니는 익숙해서 낯선 그 얼굴을 다시 보고싶은 충동을 내리누른다.
그를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출연을 결정했는지, 상대가 자신인 걸 알고 결정한 건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 없다.
허니는 집에서 연습한 대로 수십번을 되뇌인다.
허니는 그저 이 기회가 정말, 절실할 뿐이다.
큐!!!
"자, 가실까요?"
그 눈웃음 하나에, 내미는 팔의 온기에 모든 게 무너지려는 걸 간신히 다잡는다.
02.
"보고...싶었어요."
"네?"
"보고 싶었다구요. 허니씨 연기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제 상대가 누구실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
바보같은 공백이 생길세라 잽싸게 다음 멘트를 친다. 허니의 컨셉은 쾌활하고, 짓궂고, 당당하고...사랑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보게 된 상대가 마음에 드시나요?"
"...매우요."
허니는 저 눈빛을 아주 잘 안다. 사랑에 빠진 눈빛. 시리게 푸른 눈동자가 따스함을 띠고, 눈이 가늘게 접히는 그의 그 눈빛에 가슴이 저리다.
브래들리가 무릎을 꿇는다.
허니는 이 순간도 안다. 답지않게 그가 긴장한 듯 헛숨을 들이키고, 언제 준비한건지 허니가 제일 좋아하는 노란 프리지아 꽃다발을 내미는 그의 모습. 그 때와 오차 하나 없이 똑같다. 허니는 얼핏 시계를 본다. 오후 세 시 오십 분. 시간마저 정확하다. 어디로 들어가는지 몰랐던 레스토랑의 메뉴를 그제야 알아챈다. 허니가 한때 자주 즐겨 먹었던 완두콩을 곁들인 스테이크. 허니는 다음 그가 칠 대사를 안다. 냉수를 뒤집어쓴 것 같다.
"정식 프러포즈는 나중에 제대로 할 테지만...저와 결혼해주시겠어요, 미스 비?"
허니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환하게 웃는다. 정말 환하게. 노란 프리지아보다 더 환하게.
컷!!!
소리와 함께 내동댕이쳐진 기분으로 허니는 깨닫는다. 브래들리가 왜 출연을 결정했는지. 이건 허니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다. 허니가 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둘의 순간들, 둘이 함께 가질 수 있었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다시금 되새겨 주는 것. 머리는 차가운데 심장은 타들어갈듯 아프다.
03.브래들리의 이야기.
"브래드, 정말 할 거야? 안 해도 돼. 사실 안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한다니까, 형."
퍼블리시스트에게 브래들리는 단호하게 말한다.
"형, 근데 상대 출연자분도 내가 가상 남편일 걸 알아?"
"너는 그쪽에서 모셔가려고 안달하고 있어서 네가 이상형이라고 말했었던 상대 출연자를 미리 알려준 거긴 한데...하여튼, 그 옛날 영상은 언제 또 구했대, 아니 하여간..그 쪽은 네가 누군지 모를 걸. 서프라이즈? 뭐 그런 걸로 알게 한대."
"아니...알려주라고 해."
"뭐?"
"그리고 대체적 일정은 내가 짠다고. 늘 고마워, 형."
ㅂㄱㅅㄷ식으로 한 줄 정도 올린 적 있음
[Code: 385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