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https://hygall.com/52071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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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이크의 달라진 태도와 행동은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로버트는 다음날에도 병실을 찾았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라서 병원을 들어서기 전 가만히 서서 제 목에 걸린 반지를 만지작거린 밥이었다. 

원래는 제 것만 걸려있었지만 지금은 제이크의 것까지 두개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처음 제이크가 줬을 때는 손에 끼고 있었으나 과거 사건으로 손을 다치면서 반지를 낄 수 없게 되자 목에 걸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나에서 두개가 되어버린 반지를 몇 번이나 굴리던 밥은 다시 옷 안으로 목걸이를 밀어 넣고 다짐하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제 들은 말로 마음은 엉망이었지만 만약 기억이 돌아오면 그 말들에 더 상처받을 것은 제이크 본인이었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 





*





“그래서 내가 루스터 자식이랑 화해를 했다고?”

“화해라고 해야 하나. 뭐 그 전보다는 덜 싸운 거라고 하자.”



코요테가 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벌써 와있었던 건지 열린 병실 문 사이로 소리가 새어나왔다. 밥 역시도 하비를 보는 건 오랜만이어서 반갑게 들어서려는데, 뒤이어 들리는 대화소리에 멈춰 섰다.


“하, 기가 차네. 나 진짜 별 짓 다하고 다녔네. 남자도 만나고.”

“.......너 설마 기억 잃었다고 밥한테 못되게 군 건 아니지? 베이비라고 죽고 못 살 때는 언제고.”

“야. 내가 걔랑 사귄 것도 기적이야. 안 말리고 뭐했냐?”

“참나. 네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냐? 말릴 거면 밥을 말렸을 걸. 나 말고도 아마 다들 그랬을 거다. 특히 피닉스랑 루스터가.”

“그럼 지들이 사귀지.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 내가 뭐가 아쉬워서 천하의 행맨이 저런 볼품없는 너드새끼를 만났지. 내가 뭐가 좋았다 그랬냐. 넌 들은 거 없냐?”

“야. 너 말 좀 예쁘게 해라. 이거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인성에 문제 생긴 거 아냐? 이러니까 애들이 널 백맨이라 불렀지.”


인성 얘기에 행맨이 잠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밥은 들어갈 타이밍을 놓쳐 문 앞에 서서 들고 온 짐가방 끈만 매만졌다. 지나가던 간호사가 왜 안 들어가냐며 인사를 건네는 걸 받으면서 밥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사실이잖아. 아니, 내가 남자를 만났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호모질을 할 거면 적어도 내 스타일은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 진짜 행맨. 너 진짜 나중에 그러다가 후회한다.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밥이 어때서.”

“후회? 후회를 왜 해. 아니지. 어쩌면 오히려 이제 정신 차린 걸지도.”





거기까지가 밥이 참을 수 있는 한계였다. 당장이라도 들어가자마자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고 싶었지만 참았다. 코요테는 밥이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그런 코요테에게 괜찮다는 듯 눈썹을 찡긋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 코요테. 오랜만이네.”

“......어, 어. 밥. 오랜만이야.”

“어제 온다는 얘긴 들었는데 일찍 왔네?”

“이 자식이 하도 날아오라고 지랄을 해서 말이지. 마침 근처에 있기도 했고.”




코요테는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행맨의 팔뚝을 쳤다. 그러나 행맨은 밥이 들어온 이후로 표정이 또 바뀐 후였다. 웃음기는 싹 사라진 채 못마땅한 기운이 가득했다. 아까 말하는 태도로도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챘던 코요테는 둘의 분위기를 보고 잘못돼도 뭔가 한참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밥은 제가 또 온 것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행맨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런 말들에 휩쓸려서는 안 되었다. 병원에 들어서기 전 했던 생각을 또 곱씹으며 태연한 척하려 마음을 다스렸다. 집에서 가져 온 가방을 병실 한 편에 내려놓고는 코요테를 향해 웃으며 말을 걸었다.




“뭐 마실래. 아래 내려가서 받아올 게 좀 있는데 오는 길에 사다줄게.”

“아- 괜찮은데. 그럼 커피로 부탁 할게.”

“알았어.”






그리고 밥이 병실을 벗어나려는 찰나, 행맨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밸도 없는 거 봐. 다 들어놓고 못 들은 척. 내가 불쌍해서 만나준 건 아닌가 몰라. 혹시 알아? 저런 식으로 나한테 애원해서 그랬을 수도 있잖아.”

“제이크. 아무리 너라도 이건 좀 실수하는 것 같다.”

“왜? 그렇잖아. 마차도. 내 취향 몰라?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니까. 과거의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서.”





돌아서서 너 지금 그 말 다 진심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담은 밥이었다. 그리고 도망치듯 병실을 벗어났다. 코요테는 제 친우의 입에서 쏟아진 폭언에 못 살겠다는 얼굴을 한 뒤 밥을 쫓아 뛰어 나섰다. 







밥은 복도 끝에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코요테는 행맨이 근 5년간의 기억을 잃었다는 말에 병문안은 다음에 가겠다던 페이백과 팬보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밥과 만나면서 조금 유해졌을 뿐 행맨은 행맨이었다. 특히나 5년 전, 미라클 미션 전의 행맨은 자신감과 이고가 극에 달할 때여서 돌아가신 루스터의 아버지를 입에 올리며 비아냥거리던 인물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어쩐지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마를 짚었던 코요테는 밥의 곁으로 다가갔다.




“밥.”


코요테가 부르는 소리에 마음을 가다듬는 듯 숨을 고른 밥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울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밥의 얼굴에서 물기는 보이지 않았다. 태연한 얼굴로 안경을 추켜 올린 밥은 오히려 코요테에게 사과했다.



“미안. 여기까지 와줬는데 곤란하게 됐네.”

“네가 사과할 게 뭐 있어. 그나저나 행맨이 한 말은 내가 대신 사과할게. 너도 알잖아. 쟤 원래 좀 못 되게 구는 거.”

“......응.”

“기억 잃고 혼란스러워서 그런 걸 거야. 아무래도 5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고, 쟤가 또 5년 동안 좀 많은 걸 했냐. 그거 다 따라잡으려면 부담도 좀 있을 거고.”

“괜찮아. 나도 이해해.”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코요테는 한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너무나 다른 분위기였다. 불미스러운 일을 겪고 전역해서 미라클 미션 멤버들 사이에서 걱정이 자자했던 것과 달리 밥은 행맨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어쩌다 멤버들이 모이는 자리면 행맨이 너무 밥을 챙겨 너네 언제까지 신혼일 줄 아냐며 핀잔을 종종 듣기도 했는데, 그런 소리를 들어도 배시시 웃기만 하는 밥의 얼굴은 사랑스러움 자체여서 보는 사람도 행복지곤 했었다. 이런 사고만 아니었어도 평생 그럴 것 같은 둘이었는데. 코요테는 착잡해지는 마음에 손을 들어 밥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냥 쟤가 한 말은 잊어 버려. 밥. 나중에 기억 돌아오면 아마 지가 한 말에 죽고 싶어 질 걸.”

“아마 그렇겠지.”

“당연하지. 내가 장담해.”



코요테의 말에 밥은 어설프게 웃어보였다. 곱씹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틀 연속으로 들은 말들이 밥의 속을 자꾸만 헤집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건 이쯤이 한계일 것 같아서 밥은 목을 가다듬고 코요테를 불렀다.



“코요테.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그럼. 얼마든지.”

“아까 내가 가지고 온 짐 좀 풀어줄래? 대충 필요할 것 같은 건 다 챙겨오긴 했는데. 혹시 더 필요한 거 있다고 하면 나한테 연락해주면 되고. 아, 그리고 안에 액자도 있는데 그것도 좀 잘 보이는데 놔줘. 의사 선생님이 과거가 떠오를만한 걸 가지고 있는 게 좋대서.”

“어? 네가 안 하고. 왜?”

“음. 네가 본 것처럼 내가 가면 제이크가 반응이 격하기도 하고, 프리츠가 어떻게 된 거냐고 들들 볶아서 얘기도 좀 해봐야할 것 같아서. 아, 내일 제이크네 부모님 오신다고 해서 그쪽에도 말씀드려야 하고.”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기에 코요테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밥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이만 먼저 가보겠다고 했다. 코요테는 그걸 물끄러미 보다가 밥에게 물었다.


“밥. 정말 괜찮겠어?”

“어? 응. 그럼.”

“.......그럼 됐다. 제이크한테는 내가 잘 말해둘게.”




코요테가 얘기한다고 해서 과연 행맨이 달라질까 싶긴 했지만 밥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돌아서서 가려다가 밥은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 입을 열었다.




“아, 그......제이크한테 우리 결혼한 건 말하지 말아줄 수 있을까?”

“너 그 얘기 안했어?”



밥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코요테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표정을 찌푸렸다. 




“제이크 반응이 너무 격해서. 말 할 타이밍을 놓쳤어. 나중에 좀 진정되면 하려고.”

“그래도 어차피 알게 될 텐데. 빨리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응. 곧 말하려고. 근데 오늘은 아닌 것 같아서.”



하비는 아까 과한 언사를 내뱉던 행맨을 떠올리고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연인이었다는 말에 저렇게 난리를 치는 거라면 결혼했다고 했을 때 반응은 아마 더 했을 것이었다. 아마 이대로 당장 이혼하겠다고 할지도 몰랐다. 그럴 리는 없지만 밥이 행맨의 태도를 보고 이대로 사인이라도 해버린다면 기억이 돌아온 제 친우는 뉘우칠 기회도 잃게 될 수 있었다. 약간 떨떠름하긴 했지만 알겠다고 대답한 코요테를 보고 밥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멀어졌다.

괜히 속이 복잡해져오는 기분에 밥이 사라진 자리를 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아까부터 소란스러운 단체 메신저에 답을 한 코요테였다.



[행맨 완벽하게 백맨 돼서 돌아옴.]




기다리고 있었는지 쏟아지는 답변에 코요테는 고개를 내젓고 다시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 넣었다. 




“.......진짜 말 안 해줘도 되는 거 맞나.”



우선 밥이 말하지 말아 달라 했으니 전하지는 않을 거지만 정말 이게 맞나 싶어 이마를 긁적인 코요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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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해피 설날 보내


행맨밥 파워풀먼
#기억잃고업보쌓는행맨
2023.01.23 03:20
ㅇㅇ
모바일
저 상처를 어쩔거야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00c8]
2023.01.25 09:57
ㅇㅇ
행맨은 결혼한거 알지도 못하네 그럼 이혼서류는 진짜 행맨뜻이랑 상관없이 세러신가에서 날라온건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밥은 이해한다고 해도 나는 못해!!!!!! 저거 하나하나가 다 업보로 돌아올거 생각하면 짜릿해서 지금 눈은 울고 입은 웃는거 실화냐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ef9]
2023.03.02 12:49
ㅇㅇ
모바일
와 이 업보맨 어떡해ㅠㅠㅠㅠㅠㅠㅠ 아 왜 내가 눈물나냐 내 맘이 이런데 밥은 진짜 마음 찢어지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e58]
2023.12.15 19:14
ㅇㅇ
모바일
와 밥 진짜 상처받았겠다 ㅜ
[Code: c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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