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스는 슈슈랑 단 둘이 살고있음. 아빠는 원래부터 없었겠지. 아이스 어려도 그게 일반적인게 아니라는거 알지만 일찍 철이 들어서 슈슈가 슬퍼할까봐 한번도 왜 우리집에는 아빠가 없냐고 물어본 적은 없을듯.


그런 아이스에게도 작은 비밀 하나가 있었는데 그건 슈슈 방 서랍속에 들어있는 사진의 존재를 알고있다는거였음. 서랍 가장 밑바닥에 있는 수첩속에 끼워진 사진에는 아이스와 꼭 닮은 성인 남성이 슈슈랑 나란히 서있었겠지. 아이스 그거 보자마자 그 남자가 자신의 아빠란거 눈치챘을듯. 하지만 슈슈가 그 사람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주지 않는데에는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있는 아이스임.

일찍 철이 들었어도 아이스 겨우 아홉살이라 가끔 자신에게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는데 그럴때면 몰래 슈슈 방에 들어가서 그 사진 꺼내보고는 했겠지. 서랍 가장 밑바닥에 있었지만 먼지하나 없고 자주 꺼내본 흔적이 있어서 아이스 왠지 슈슈한테는 그 사진 봤다는걸 꼭 비밀로 해야될거 같다고 생각할듯.







슈슈는 신체가 온전하지 못한데다 몸이 약했음. 더구나 독일인인데다 오메가인 슈슈가 혼자 어린아이를 키우는건 슈슈에게도 아이스에게도 절대 쉬운일이 아니었겠지. 아이스에게도 종종 슈슈와 관련해서 시비를 거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러면 그날이 어른스러운 아이스가 유일하게 규칙을 어기는 날이었을듯.

오늘도 슈슈의 욕을 들은 아이스가 동급생을 두드려 팼고 그 일로 슈슈가 학교에 불려왔음. 먼저 시비를 걸었던 건 그 애지만 슈슈 앞에서 그 얘기 꺼내고 싶지 않은 아이스 입 꾹 다물고 변명도 사과도 하지않는데 슈슈 어렵지 않게 아이스가 친구를 때린 이유 짐작하겠지. 자라면서 속한번 썩인 일 없는 아이스가 유일하게 말썽을 부리는게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서 더 속상한 슈슈임. 그래서 아이스 더 혼내는데 아이스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그런 슈슈 마음 이해하기에는 아직 많이 어렸겠지. 슈슈한테 혼난게 많이 서러운데다 슈슈가 자기때문에 속상해하는거 보는것도 슬픈 아이스 혼자 침대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다가 문득 그 사진 떠올릴거임. 사진속의 남자는 아이스랑 닮았지만 다 큰 어른이었고 누구라도 의지할 수 있을만큼 든든해보였겠지. 나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슈슈가 슬퍼할까봐 한번도 꺼내본 적 없는 말인데 오늘따라 한번도 채워진적 없었던 빈자리가 유독 컸을듯.

잠시 고민하다가 조용히 이불 속에서 빠져나온 아이스 종이랑 펜을 가져오겠지. 지금껏 전화를 걸어볼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었지만 사실 그 사진 뒷장에는 전화번호가 하나 적혀있었음.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자주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남아있던 숫자 몇개 종이에 조심스럽게 써내린 아이스 그거 작은 손에 꼭 쥐고 몰래 집 빠져나갈듯.






공중전화 찾아간 아이스 망설임 없이 번호 누를거임. 신호가 세번 울리는 동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겠지. 오래된 번호라서 아무도 안받을지도 몰라. 어차피 전화 걸어서 할 말도 없는걸. 실망한 아이스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데 누군가 전화를 받았음. 여보세요? 하는 낮은 목소리가 근사해서 아이스 전화를 받은 사람이 사진 속의 남자가 맞는거 같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면 그제서야 자신이 충동적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는 아이스임. 슈슈가 가지고 있던 사진을 훔쳐보고 거기 있던 번호로 전화까지 걸어버렸으니 슈슈가 알면 분명히 슬퍼하겠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으니까 지금 끊어버리면 아무도 모를거라는 생각을 한 아이스 수화기 내려놓으려는 순간에 그 너머에서 다시한번 여보세요? 하는데 그 목소리가 어째서인지 조금 슬프게 들려서 전화 못끊었을듯. 클라우스? 하고 부르는 소리에 놀라서 침 꿀꺽 삼킨 아이스 그제서야 조금 주눅든 목소리로 그게..저는 토마스 카잔스키인데요, 클라우스는 제 어머니구요. 하고 대답하겠지. 그러면 한참동안이나 상대방이 아무 말이 없어서 역시 내가 실수했나 하고 겁먹은 아이스 다시 전화 끊어야하나 하고 생각할때쯤 겨우 대답이 돌아옴.



그렇구나 톰.. 톰이라고 부르면 될까?
네. 편한대로 부르세요.
그래 톰. 혹시 무슨 일 있는거니?

낮고 위엄있는 목소리는 아이스에게 무척 다정하게 들려서 안그래도 서러웠던 어린 아이스 무슨 일이냐는 말에 친구와 싸운 일로 슈슈에게 혼난거 저도 모르게 다 털어놓았을듯. 훌쩍 거리며 속상했다는 얘기를 늘어놓으면 남자는 그래, 많이 속상했겠구나. 하고 조용히 위로해주겠지. 한참동안 아이스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남자는 마지막에는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며 전화를 끊었음.



그 뒤로 아이스 자주 남자에게 전화 걸었을듯. 슈슈에게는 쉽게 하지 못했던 얘기들도 하고 슈슈에게 부리지 못했던 어리광도 부렸겠지. 남자는 무척 다정하면서도 아이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아이스 좀 헤깔렸을듯. 슈슈의 아들이라고 얘기했으니 자신이 남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그도 알거라고 생각했다가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걸 보면 짐작조차 못하고 있는거 같기도 했겠지.

아이스는 남자에게 궁금한게 많았음. 처음 전화했던 날 왜 슈슈의 이름을 불렀는지, 슈슈와 어떤 관계인지, 자신에게 왜 잘해주는지 같은 것들. 그에게 물어봤지만 애매하게 대답하거나 화제를 돌려버린다는걸 눈치챈 아이스 그 뒤로 물어볼 생각 하지 않았겠지. 슈슈와 남자가 사이가 나쁜걸까 생각도 했었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걸 깨달았을듯. 남자가 아이스에게 뭔가를 먼저 물어보는건 대부분 슈슈와 관련된 일이라서. 슈슈가 아프다고 얘기했던날 남자는 처음으로 아이스에게 한참이나 슈슈 상태에 대해서 물어봤었겠지. 그러면 아이스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할듯. 지금까지는 아주 가끔 자신에게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아이스지만 남자가 너무 다정하고 든든해서 꼭 이 사람이 내 아빠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싶음.










이번 휴일에 원래는 놀이공원에 놀러가기로 했었는데, 엄마가 아파서 못가게 됐어요. 다른 애들은 멀리에 있는 바다도 가고, 산으로 캠핑도 간다고 했는데..

휴일에 슈슈랑 둘이서 놀러가기로 했는데 못가게된 아이스 슈슈 앞에서는 절대 속상한 내색 안하지만 많이 서운하긴 해서 남자에게 전화 걸어서 조금 어리광 부렸겠지. 그래도 슈슈가 아픈게 제일 속상하다는 아이스 말에 남자는 한참 아무말도 못하다가 나라도 괜찮다면, 잠깐 드라이브라도 하지 않겠니? 라고 물어보면 아이스 깜짝 놀랄듯. 하지만 거절할 생각 없는 아이스 남자가 마음 바꾸기라도 할까봐 서둘러 네 저는 좋아요! 대답함.

며칠 뒤 있을 휴일에 남자와 약속을 잡고 며칠 내내 설레는 마음에 잠 설치는 아이스겠지. 슈슈한테는 솔직하게 말 못했을듯. 그러면 슈슈방 몰래 들어가서 사진 꺼내본거부터 멋대로 남자에게 전화 걸었던 거까지 전부 털어놔야해서. 그리고 남자는 슈슈를 싫어하지 않는데 두사람이 만나지 않는거면 슈슈가 남자를 싫어하는 걸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말 못했을듯. 남자를 만나서 자세하게 물어보고 두 사람이 사이가 나쁜거면 화해시킬 계획까지 세워보는 아이스겠지.




남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에 처음으로 슈슈에게 친구 집에 놀러간다는 거짓말을한 아이스 집과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남자 기다리겠지. 아이스는 남자의 사진을 봤지만 남자는 자기 얼굴 모르니까 혹시나 못알아보는 일 없도록 눈 크게뜨고 주변 살피는데 걱정할 필요도 없이 비싸보이는 승용차 한대가 아이스 앞에 부드럽게 멈춰섰을듯. 실제로 본 남자 더 어른스럽고 멋있어서 아이스 괜히 두근거리겠지. 아이스 한번도 가본적 없는 조금 멀리있는 바다까지 가서 물놀이까지는 못해도 바닷물에 발도 잠깐 담궈보고 하겠지. 아이스 신나서 슈슈랑 어떤 사이인지 물어보는 것도 까맣게 잊었을듯.


신나게 놀고 돌아오는데 집 가까워 질때쯤 되면 창밖은 이미 깜깜해졌겠지. 조금 초조해진 아이스 하루종일 조잘거리던거 멈추고 창밖만 살피는데 집 근처 길가에서 슈슈가 서성거리고 있었을듯. 아이스가 너무 늦으니까 아이스 친구 집에 전화해봤다가 놀러온적 없다고해서 그때부터 친구들한테 다 연락해보고 동네 돌아다닌 슈슈임. 어디갔는지 알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던 슈슈 차에서 내리는 아이스 보고 달려가다가 운전석에서 내리는 시니어보고 그대로 멈춰섰을듯.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데 덩달아 놀란 아이스 슈슈한테 뛰어가려다가 발 엉켜서 바닥에 넘어져서 울면 아직 굳어있던 슈슈보다 먼저 일으켜세워주는건 시니어겠지. 넘어져서 아픈거보다 슈슈 그렇게 놀란거 본적 없어서 겁먹은 아이스 잘못했어요 하고 울면 슈슈 그제서야 떨리는 손으로 아이스 달래줄듯.








아이스매브 시니어슈슈